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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진보하는 기술 때문일까요? 아니면 ‘빨리빨리’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급한 우리의 성격 때문일까요?
이제 느린 것은 곧 낙오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도 초고속이 아니면 답답해하고, 교육도 조기 교육이 아니면 불안해합니다. 심지어 갓난아기조차도 걸음마를 빨리하게 하려고 안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빠르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요즘은 조기 승진이 곧 조기 퇴사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은 조선 선조조의 명신입니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우정으로도 익히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가 30대의 젊은 나이로 문형(文衡 대제학(大提學))의 물망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중신(重臣)들이 조정에 모여 추천하는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권점이 하나 적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한 표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참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 웅성거렸습니다. 사실 당시 조정에서는 아무도 한음이 대제학이 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제학은 한 나라의 문장을 대표하는 중요하고도 영예로운 자리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문재(文才)와 높은 덕망으로 볼 때 한음이 적임자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의외의 결과에 놀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 때 상락부원군 김귀영(金貴榮, 1519∼1593)이 웃으며 나섰습니다.
“내가 추천하지 않았소.”
사람들이 더욱 놀라 이유를 묻자, 그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나이도 젊고 아직 벼슬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중한 벼슬에 오르는 것은 본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지요. 재주와 덕이 더 성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중용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외다.”
그 말을 전해들은 한음은 섭섭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위해주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당시 선비들은 둘 다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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