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산 산행 후기
숲속에 매미가 하루아침에 목이 쉬고
방안의 모기떼 입이 돌아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눈치만 보고 있다.
24절기란 참으로 절묘하다.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24절후는 동양에 천주교를 처음으로 전한 마테오리치(時憲 利馬竇) 신부가
농부들에게 농사를 짓는 시기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호를 따서 시헌력(時憲曆)이라 하고 24절후는 양력(陽曆)이다.
매월 7-8일과 23-24일 사이에 한 절기씩 넘어 가는데
소설에는 반드시 눈이 오고 소한 대한에는 언제나
큰 추위가 올 정도로 신통방통하다.
처서가 지난 지 일주일 되는 오늘 아침은 제법 시원하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8월 30일 유림향우들이 모였다.
오늘은 52명이 신청 되었다고 임원진들이 즐거운 고민을 한다.
함양군 산악회의 회장님과 임원진들이 참석하셨다.
그러나 비가 오는 관계로 몇몇이 불참하여 다행이(?) 좌석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자리 잡고 갈수 있어 좋았다.
7시 예정대로 버스는 빗속을 헤집고 사당동을 출발 했다.
서울을 벗어나니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뜨거운 국물과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함양군 향우회 임직원들의 인사소개와
군 향우회 회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위로의 인사 말씀이 있었다.
지난 6월 교통참사로 힘들어 하는 향우들을 위문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참석 하신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직 정재삼/형춘정/노미숙 향우들이 입원 중이고 그 외 많은 분들이 아직도
힘들다. 필자도 그 사고로 6 7 8월 입원/통원치료를 받았으나 아직 어깨가 아프다.
지난 3개월 동안 피해를 당한 향우들을 군 향우회와 유림향우회
임직원들이 몇 번씩 일일이 찾아와 위문을 하고 위로금까지 전달해주심에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감사하다는 말들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다.
필자가 사고이후 처음 참석하는 산행이라 모두들 반겨주고 격려해 주었다.
충청도 땅 으로 접어드니 역시 산세가 수려하다.
북쪽으로 갈수록 바위가 드러난 악산이 많고 남쪽으로 갈수록 바위가 감추어진다.
금강산이 바위산인데 비해 지리산은 원만하다. 이런 산정기를 받은 사람의 체형도 똑같다.
상체는 골이나 내장을 감싸고 뼈가 겉으로 드러나 있고 하체(팔/다리/골반)는
뼈를 근육이 감싸고 있다.
충청도는 중원이라 바위와 흙이 조화롭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대표 경치 단양8경이 충청도에 모여있다. 풍수지리학에서
충청도를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을 즐기는
충청도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정치판에서 태산지석(泰山之石) 경상도와
춘풍세류(春風細流) 전라도가 싸우면 청풍명월(淸風明月) 충청도 JP가
언제나 중재를 한다. 그리고 암하노불(巖下老佛) 강원도는 지켜보고
경중미인(鏡中美人) 경기도는 빤짝 빤짝 기치를 발휘하며 실속을 챙긴다.
충북 괴산 땅에 버스가 멈추고 산행이 시작 되었다.
ㅇ청천면 사담리 일주문 공림사-685봉 안부-낙영산-685봉-8거리 안부-
도명산-마애불-삼거리-계곡-능운대휴게소
산이 높지 않고 많이 험하지 않아서 좋다.
정재규 회장 / 배성규 회장 / 조경래 등반대장 / 정재윤 부대장
정순용/형남구/정재순/유재현/서원숙/이성한과 그외 임원진들이
전체인원의 코스를 안내하고 이끌었다.
노호임 총무와 몇 분이 남아서 대원들의 하산 후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작년에 풍치를 고친 많은 향우들이 약초 세신을 부탁 했지만
필자의 산행 길에 눈에 띄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아 5-6 뿌리 채취 했다.
12시30분에 도명산 정상에 도착 했다. 바위틈에 어렵게 자란 소나무가
백년은 되어 보이는데 그 자태가 참으로 아름다워 사진들을 찍어댄다
모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었다,
언제나 그러 하지만 산 정상에서 먹는 밥과 반주로 곁 드리는 술맛이
일품이었다.
구이계곡을 내려다보며 하산 길도 절경이며
거대한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도 장관이려니와 그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은 시원하고 정갈하여 산행 길의 갈증이 말끔히 해소 된다.
정재규 회장이 이 좋은 경치를 두고 불이 나게 내 빼는
선두를 붙들어 두려고 하지만 원래 투박하고 거친 경상도 사람 기질
때문인지 자꾸 빨라진다.
요즘은 빨리 오르는 산행 보다는 천천히 즐기면서
행하는 산행이 대세다. 심지어 빼어난 경치의 골짜기에서 하루 종일
놀다오는 산악회도 많다고 들었다.
유림 산악회도 이제는 산행속도를 좀 줄여서 산세를 충분히 즐기면서
향우들 끼리 그동안 참아왔던 고향이야기도 충분히 나누어 바쁘게만 달려온
현실속의 스트레스도 충분히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정상을 향한 질주형태의 산행은 육체적인 운동에 불과하다
따라가기 바빠 좌우 돌아볼 겨를도 없고 숨이 차서 옆 사람과 대화도
아니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화양구곡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단양8경중에 하나로서 산수의 빼어남이 중국의 강서성에
위치한 무이산 계곡의 무이 구곡, 문공서원의 풍경과 흡사하여 화양구곡이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철철 넘쳐흐르는 벽계수와 그 옆으로 거대한 바위를 쌓아 올려놓은 것처럼
깎아지를 절벽 화양 계곡은 화양동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특별히 오늘은 그 절경 속에 발을 당구고 가게 해준다.
굽이치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소주 한잔을 마시며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어 놓은 암자를 건너다보니 우암과 미수에 얽힌 일화가 생각이 난다.
우암 송시열선생은 유학에 대가요 허미수 선생은 道家(도가)의 수행을 많이 한사람으로
당대에 쌍벽을 이루면서 정치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암이 깊은 병이 들어 장남을 불러 미수에게 가보라 했다.
아들이 정적(政敵)이라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리니 대뜸
공복에 비상 세 수가락을 먹으라 했다. 비상이라 함은 청산가리와 같은 극약이 아니던가?
그 장남이 매우 불쾌했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부친의
병세를 소상히 아뢰고 처방을 해주기를 간청하니 미수가 마지못해 몇 자 적어준다.
그것을 우암에게 올리니 그 처방전은 보지도 않고 대뜸
다른 말은 없더냐고 다구 쳐 묻는다. 할 수 없이 비상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극약처방이라서 그 양을 줄여서 전하니 우암이 벽장 안에 준비해둔
비상을 꺼내 먹고 병을 고치는데 그 양이 미수가 말한 양이 아니어서
완쾌되지는 못했다. 후 일 결국 그 병으로 우암이 죽게 됐다.
비록 정적일지라도 대인끼리는 이처럼 통하는 바가 있었으나 범부들이
어찌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었겠는가? 휴식을 끝내고 절경을 구경하면서
돌아 내려오니 우암께서 후학들을 가르쳤던 서원이 있다.
이 서원에서
조선의 역사를 주도했던 인물들이 수없이 배출되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명문 대학교와 같은 곳이다. 절벽 여기 저기 우암의 필체들이 새겨져 있다.
푸른 물길 따라 아래로 내려오니 관운장을 모신 만동묘가 있다.
천하영웅 관운장은 화룡도에서 적장 조조를 살려 보내 줄 정도로 의리가
깊은 장수로서 충의(忠義)의 표상이었다.
그는 죽어서 수많은 천지신명들의
신망(信望)을 얻어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추대 되었으며 천상 복마대제
로서 중국 사람들이 오래 동안 민간신앙으로 모시어 왔다.
만일 복마(伏魔)가 붙어 어쩔 수 없을 때 관운장을 찾는 주문을 읽으면
즉시 물러간다. 대 차럭주로서 道家에서 많이 읽어 왔다.
雲長呪(운장주)
天下英雄關雲長 依幕處 謹請天地八位諸將
천하영웅관운장 의막처 근청천지팔위제장
六丁六甲 六丙六乙 所率諸將 一別屛營邪鬼
육정육갑 육병육을 소솔제장 일별병영사귀
唵唵★★ 如律令 娑婆訶
엄엄급급 여율령 사파하
왜인들이 불의하게 저의 스승 나라인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 때
관운장의 신명이 나타나 불의한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감사의 뜻으로 조선강토 곳곳에 관운장의 사당을 세웠다.
서울 숭인동에도 동묘가 있고 태인에도 관왕묘가 있고
전주 남고산에도 관왕묘가 있으며 이곳에도 만동묘가 있다.
우리는 관운장을 본 받아 마땅히 충의(忠義)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입구 주차장에 오니 하루 종일 참았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한다.
그동안 향우님들이 정성 들여 끓여 놓은 수제비가 기다리고 있다
비가 오는 날 먹는 수제비는 별미이다 더구나 이곳 화양계곡에서
먹는 수제비는 더할 나위 없는 별미 중에 별미였다. 반주로 먹는
막걸리는 더욱 얼큰하게 취한다. 경치에 취하고 수제비 맛에 취하고
푸근한 고향친구들과의 대화 속 그 향수에 취하고 옛 성현들의 행적에 취하고
이래저래 대취 하여 버스에 올라 노래 한곡 뽑고
서울에 도착하니 벌서 밤 열시가 되었다.
이번 산행도 참으로 즐겁고 의미 깊은 산행이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산행이 되기 위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애 써주신 임원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직 산악회에 못 오신 향우님들이 더욱 많이 참여 하시어 달콤하고 아련한
향수의 이삭을 주어다가 삭막한 현실 속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보약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 南村생각 --
-남촌선생 강의 내용 중에서- 南村先生 010-5775 5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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