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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가(佛家)의 그림 심우도(尋牛圖)의 비밀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0. 2. 9. 12:34

 

 

 
 
 불가(佛家)의 그림 심우도(尋牛圖)의 비밀 불가(佛家)에서는 오래 전부터 ‘소’를 화신불(化身佛)이 된 부처로 보면서 소를 신(神)으로 모시고 사찰(절)마다 소를 찾는 그림(尋牛圖)을 대웅전이나 극락전의 외벽에 둘러가며 그려놓고 있습니다. 최초로 심우도(尋牛圖)를 그렸던 사람은 송나라 때의 곽암선사라는 분인데 화엄경에서 말하는 미륵불(彌勒佛)의 출세(出世)를 상징화하여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는 심법(心法)을 닦는 것이 본업이 되다보니 소(牛)를 찾아나가는 심우(尋牛)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미래불(未來佛)이라는 미륵불이 세상에 출세(出世)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도 없는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복음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재림 예수가 와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하였는데 재림 예수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연구는 전무(全無)한 상태이니 기독교나 불교는 심우(尋牛)의 종교가 아니라 심우(心牛)의 종교로 사람들의 종교일뿐입니다. 불가(佛家)의 도법(道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석가불의 진리로 낙원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내 뒤에 다른 부처님, 희망의 부처님, 구원의 부처님이라는 미륵불이 오셔서 이 모든 것들을 완성시킨다는 것이니 이제는 심우(尋牛)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심우(尋牛) 첫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그림입니다. 심우(尋牛)란 소를 찾는다는 것이지만 여기서 소(牛)는 짐승(가축)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십(十)자 진리를 짊어지고 가는 성인이요 진인(眞人)이요 미륵불을 말하며 그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牛=十+人). 그러므로 소를 찾는다는 것은 진인(眞人)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요 신인(神人)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니 불교에서는 법신불과 화신불이 보낸 보신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도교에서는 정도령(鄭道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예수가 보내겠다는 재림 예수의 실체를 찾아야 세상은 바뀐다는 것입니다. 석가불의 진리로 이 세상은 불국정토가 될 수 없고 예수의 복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열리지 않으며 지금까지 성인들이 말했던 진리로는 상춘(常春)이요 무릉도원이요 극락의 세계가 열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神)의 진리요 하늘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신인합일(神人合一)한 진인(眞人)을 찾아야 신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신인(神人)들이 될 수 있으며 신이 사람들에게 주셨던 본성의 자아(自我)를 회복하면서 경전들이 말했던 극락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을 담고 있는 심우도(尋牛圖)를 보면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시고 소를 찾아나가는 신령한 동자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신불이요 미륵불이 열고자 하는 세상을 찾아야 하며 정도령이 오면 열린다는 상춘(常春)을 찾아야 하고 재림 예수를 통하여 열겠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실체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심우도(尋牛圖)를 보면서 진리를 잃어버리고 신(神)을 잃어버리고 본성의 참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십(十)자 진리를 가지고 있는 신인(牛)를 찾아야 본성의 자아를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본연의 사람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으며 이 소(牛)를 찾으러 모든 사람들도 함께 떠나야 한다는 예언의 그림입니다. 견적(見跡) 두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그림입니다. 견적(見跡)이란 소의 흔적을 보았다는 것이니 소를 찾겠다는 마음을 정하고 소를 찾아나선다면 누구나 소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化身佛(석가)이요 성육신(成肉身)이신 예수의 진리를 통하여 석가가 말한 미륵불이요 예수가 말한 재림 예수의 흔적과 발자국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인이요 신인이었던 성인(聖人)들의 발자취를 따라갔더니 진짜 진인이요 진짜 신인의 흔적이 완연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진리의 숲으로 들어갔더니 소의 발자국이 뚜렸하게 보였고 그 발자국을 따라 동자승은 더 깊은 진리의 숲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들 자신의 진솔한 모습들이 되어야 합니다. 견우(見牛) 세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이니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달려왔더니 성인들이 말한 진짜 성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자승이 발견한 것은 소의 뒷모습과 소의 꼬리뿐이었습니다. 소의 뒷모습과 소의 꼬리가 보였다는 것은 소의 발자국을 보면 저 소가 분명하지만 생긴 것을 보니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며 자신이 상상한 자비로 똘똘뭉친 석가의 모습이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사랑의 예수님을 기대했는데 엉덩이와 꼬리밖에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뒷모습과 꼬리밖에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진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았지만 너무나 세상적이고 육체적이며 가증한 진리로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꼬리만 크게 보였으니 꼬리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사9:15)라고 하였던 것처럼 마귀들이 좋아하던 잡동사니 진리들을 가지고 있는 이단의 괴수와 같은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득우(得牛) 네번째는 득우(得牛)이니 '소를 얻었다'라는 뜻의 그림입니다.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고 소에게 고삐를 걸면서 소를 제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의 꼬리를 잡았다는 것은 소가 가지고 있는 거짓말과 같은 진리들을 붙잡고 그것으로 소의 고삐로 만들어 소를 제어(制御)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인들이 말하던 진짜 성인을 발견하였으나 그 분은 난폭하고 성질이 고약한지라 동자승이 다루기가 너무 힘이 들었지만 진짜 성인이라는 하는 사람의 꼬리에서 나오는 거짓말과 같은 진리들을 구구절절이 잘살펴 그 성인의 옳고 그름을 따지니 진짜 성인은 순해지면서 순순이 따랐고 동자승은 쉽게 결박하여 자기 수중에 넣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우(牧牛) 다섯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결박하여 고삐를 잡고 끌고가는 그림입니다. 목우(牧牛)란 소를 기른다는 의미이니 동자승이 소를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동자가 진인이요 미륵불이요 재림 예수와 같은 자를 양육한다는 것이 아니라 역(逆)으로 동자승이 진짜 진인으로부터 양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인이요 신인이 가지고 있는 극락의 진리를 동자승은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진인과 씨름을 하고 있는 장면으로 동자승이 이기면서 누런 황소는 점점 흰색의 황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승이 제자가 되고 제자가 스승이 되는 순간을 말하며 스승과 제자가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여섯번째는 동자승이 흰소에 올라타서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그림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결박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더니 하얀 소를 타고 금의귀향(錦衣歸鄕)을 하고 있습니다. 하얀 소를 탔다는 것은 신인(神人)이 가지고 있는 거룩한 진리 위로 올라갔다는 것이요 동자승이 소(牛)보다 큰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동자승은 소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요 동자승은 소와 하나가 되고 일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우재인(忘牛在人) 일곱번째는 소는 전혀 보이지 않고 동자승만이 홀로 앉아있는 그림입니다. 망우재인이란 소를 잊고 사람을 찾았다는 것이니 지금까지는 소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자신이 소보다 큰 자가 되었고 소를 버리면서 진짜 사람을 찾았다는 것이니 동자승은 자신의 본성의 자아를 찾았다는 것이요 신인합일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소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었고 소의 주인이 되면서 소가 자기의 것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소가 보이지 않으나 소가 없는 것이 아니며 혼자 있는 것 같으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만물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이 진짜 성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인우구망(人牛俱忘) 여덟번째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라 하여 사람과 소도 모두(俱) 잊어버리고(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직 둥근 원(圓)만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소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무(無)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소와 사람의 실체가 모두 사라진 공(空)의 자리를 말하며 神人合一한 자리에서는 모든 만물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가 된다는 진리입니다. 무(無)란 시작과 끝이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를 말하고 의심, 분별, 차별, 형식, 의식도 존재할 수 없는 자리이니 지금까지 존재하던 너와 나라는 개념이 없어지면서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버린 무극의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본환원(返本還源) 아홉번째는 근원이요 본원의 자리로 돌아간 극락이요 상춘(常春)의 그림입니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이니 진리는 맑고 맑은 상춘(常春)이요 성인들의 진리는 모두 충실한 열매들로 가득하여 오염되지 않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극락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화창한 봄날을 맞이하고 있으며 어떤 형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떠한 꾸밈도 없으며 성형(成形)도 전혀 필요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포용하면서 아무런 번뇌가 없이 만물을 바라보고 참된 神의 경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니 천하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열번째는 입전수수(入廛垂手)라 하여 동자승이 소(牛)를 제어하고 신인합일(神人合一)한 자가 된 후에 성내(城內)에 들어가 중생(衆生)들에게 손길을 내밀면서 선행을 베푼다는 중생제도의 원력을 밝히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제 동자승에게는 지복(至福)이 넘치고 있으니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깨닫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손을 펴서 도(道)를 세상에 펼치니 天地가 모두 하나가 되는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詩)는 입전수수(入廛垂手)에 대한 시로서 성(城)에 들어가 중생(衆生)들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흉선족입전내(露胸跣足入廛來) 가슴을 열고(胸) 맨발로 걸어(跣足) 시내를 왕래(往來)하면서 은혜를 베푸니(露)) '가슴을 열고 맨발로 성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상황을 가리지 않는 자비심으로 중생들에게 다가서서 은혜를 베푼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토도회소만(抹土塗灰笑滿) 흙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이지만 웃음이 가득하네. '흙먼지가 묻은 얼굴이지만 웃음이 가득하다'는 것은 중생들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랑이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중생들로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는 마음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용신선진아결(不用神仙眞我訣) 신선(神仙)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비결(秘訣)들을 사용(使用)하지 않는다. '신선(神仙)들의 진짜 비결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신선(神仙)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철학들을 말하지 않고도 중생들을 쉽게 깨우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진교고목방화개(眞敎枯木放花開) 곧바로 고목(枯木)들이라도 꽃을 피우네. 고목(枯木)들이 곧바로 꽃을 피웠다는 것은 거짓 진리에 의해 허덕이고 있는 중생(衆生)들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새로운 삶을 제시하니 바로 열매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일에는 목적(目的)이 있어야 하고 수행(修行)에는 성취(成就)가 있어야 하며 성취는 곧 회향(回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왜 소를 찾아야 하는가? 우리가 찾아야 하는 소(牛)는 천지개벽의 정신(精神)을 소유하고 있는 진리(眞理)의 주체(主體)이기 때문입니다. 개벽의 열쇠, 생명의 활방(活方)을 가진 절대자를 소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예언서의 기록을 빌리자면 소의 성품(性稟)을 가진 진인을 우성진인(牛性眞人)이라고 합니다. 진인(眞人)이란 진리를 통달하여 모든 진리와 일체가 된 사람을 말하니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의 다른 이름이요 법신불이 화신불이 되었던 석가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다른 이름은 재림 예수요 석가 말한 사람은 미륵불입니다. 그 분들이 와야 불국정토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이니 진인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진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나 기독교 뿐만아니라 도교나 한국의 정신사(精神史)들을 보면 그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이 진인(眞人)의 출세(出世)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것이 비결서와 예언서와 모든 경전들의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예정된 미래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뜨인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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