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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온 편지를 자세히 보건대 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점이 있으니, 대략 말해 보겠네. 그대의 편지에서 “만약 오로지 내면을 돌이켜 보기만 할 뿐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소홀히 여기면 결국 한 쪽으로 치우친 강서선학(江西禪學)처럼 되고 말 것이다.” 하였고, “한번 질의(質疑)하고자 했다가 도리어 죄과(罪過)에 빠지고 말았다.” 하였고, 또 “의리(義理)의 핵심이 되는 곳에 대해 어찌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여, 어투에서 불평스런 기상을 몹시 드러내는 것 같았네. 전일에 내 편지는 그냥 붓 가는 대로 써서 답을 보낸 뒤 까마득히 잊고 있었네. 알지 못하겠네만 그 편지에서 그대로 하여금 강서선학을 공부하게 한 무슨 대목이 있었으며, 또 의리의 핵심이 되는 곳에 대해 공으로 하여금 입을 다물고 말하지 못하게 한 적이 있었던가? 주자(朱子)는 문인(門人)에게 독서하는 법을 말하면서, “글은 차라리 얕게 볼지언정 너무 깊게 보아서는 안 되고, 차라리 낮게 볼지언정 너무 높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였고, 또, “그대는 글을 볼 때 의론을 세우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먼저 자기 생각으로 남을 볼 뿐 도리어 성현이 하신 말씀을 가져다 내 가슴 속을 적시는 것은 아닐세. 이후로는 그저 있는 그대로 보도록 하게.” 하였네. 내가 공의 독서를 보면, 언제나 자기 견해를 주장하여 굳이 글 뜻을 깊고 높게만 보려 하였네. 이런 까닭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하나의 이치를 알 때에도 미처 침잠하고 진밀(縝密)한 공부를 하지 못하고 먼저 자기 견해를 주장하여 기필코 글 뜻을 자기 뜻에 맞추려고 하더군. 여기에서 어서 머리를 돌리고 빨리 발길을 돌리지 않으면, 이런 습관이 오래 굳어진 나머지 자기 견해를 내세우는 성향이 강해지고 겸허한 마음으로 남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적어져서, 결국 심성(心性)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진덕수업(進德修業)의 큰 공부에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걸세. 세상은 쇠퇴하고 학문은 단절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인욕(人欲)에 함몰되어 버린 이 때 그대들 몇 사람이 급변하는 세상 풍파 밖, 한적한 초야에서 서로 어울려서 경서를 읽는 냉담(冷淡)한 생활을 하면서 옛 선왕(先王)의 유택(遺澤)을 노래하고 육경(六經)의 유지(遺旨)를 강론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크게 기쁜 일이요 좋은 소식인가. 이러한 까닭에 나도 그대들을 매우 아끼는 마음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은 헤아리지 않은 채 기필코 그대들을 잘 다듬어서 한 점 하자 없는 옥처럼 훌륭히 성취시키고자 하였네. 그래서 그 동안 그대가 편지로 질문하면 곧바로 수긍하고 듣기 좋은 말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걸세. 이것이 바로 내가 매양 그대의 견해에 반대했던 까닭일세. 옛날에 백낙천(白樂天)은 시 한 수를 지으면 반드시 이웃 노파에게 가 물어보고 그 노파가 이해하겠다고 하면 기록해 두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버렸네. 그대들이 나를 멀리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대들을 위해 백낙천의 이웃 노파가 되고 싶은데 그대는 허락해 줄 수 있겠는가?
[細觀來諭, 有未悉愚意者, 請畧布之. 公書云:“若一意反觀內省而脫畧於講討, 則未免江西1)一偏之歸.” 又云:“一欲質疑, 反陷罪過.” 又云:“義理頭腦處, 寧容噤嘿不言乎?” 辭氣之間, 太涉發露有不平底氣像. 前日愚書, 信筆書報後, 茫然忘失, 未知有何語句敎公以江西之學, 亦何嘗於義理頭腦處敎公以噤嘿不言乎? 嘗聞朱子語其門人以讀書之法曰: “文字寧看得淺, 不可太深; 寧低看, 不可太高.”2) 又曰: “公看文字, 好立議論. 是先以己意看他, 却不以聖賢言語來澆灌胸中. 自後只要白看乃好.”3) 愚嘗觀公之讀書, 每欲自主議論而必求其深高. 故讀一書得一理, 未及加沉潛縝密之功而先自主張, 必欲求合於己意. 若或於此不能亟回頭疾旋踵, 則膠滯之久, 自用勝而欠遜志虛受之義, 未必不爲心術之害而有妨於進德修業之大功矣. 當此世衰學絶人心陷溺之餘, 公輩數人, 相携於寂寞之濱滄桑局外, 自做冷淡生活, 歌詠先王之遺澤, 講論六經之遺旨, 是何等大歡喜好消息耶! 是以, 區區相愛之至, 不量自己之有無, 必欲其玉成而無一疵焉, 前後盛問之來, 不能言下領會而爲巽與之言. 此所以愚昧之見每見阻於高明者也. 昔白樂天作詩一篇, 必就問于鄰嫗, 嫗曰能解則錄之, 曰不能解則棄之. 愚於諸公, 若蒙不遐, 思欲爲白氏之鄰嫗, 公能肯許否?]
1) 江西 : 송(宋)나라 유학자인 육구연(陸九淵) 계통의 학자들을 가리킨다. 육구연은 강서(江西) 금계(金谿) 사람으로, 자가 자정(子靜)이고 호가 상산(象山)으로, 주희(朱熹)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의 학풍은 책을 읽고 이치를 토론하는 강학(講學)을 중시하지 않고 실천에 힘쓰며 돈오(頓悟)를 중시하여 선학(禪學)과 같은 성향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강서선학(江西禪學)이란 말이 생겼던 것이다. 2)《주자어류(朱子語類)》120권〈우록(㝢(宀/禹)錄)〉에 보인다. 3)《주자어류》114권〈덕명록(德明錄)〉에 보인다.
- 안정복(安鼎福),《순암집(順菴集)》6권,〈권기명에게 답함[答權旣明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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