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령부(會寧府) 성 아래의 야인 속고내(速古乃)란 자가 은밀한 곳에 사는 야인들과 몰래 연통하여 와서 갑산부(甲山府)를 침범하여 사람과 가축을 많이 약탈하였지요. 그래서 변장(邊將)를 처벌하려 하니, 도망가 버렸습니다. 무인년에 남도병사(南道兵使)가 은밀히 장계를 올려 “속고내가 갑산 근처에 몰래 왕래하며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데 무리가 많아 잡기 어렵습니다. 청컨대 저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 군사를 출동해 사로잡으소서.” 하였습니다. 조정의 의론은 먼저 본도(本道)에 은밀히 하유(下諭)하고 이지방(李之芳)을 보내 감사(監司)ㆍ병사(兵使)와 함께 속고내를 잡아서 처벌하기로 하니, 상감께서 선정전(宣政殿)에 납시어 연회를 열고 어의(御衣)와 궁시(弓矢)를 하사하고 삼공(三公)과 병조(兵曹), 지변재상(知邊宰相)들이 둘러앉아 상감을 뫼시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이때 부제학이었는데 청대(請對)하고 나아가 아뢰기를 “이 일은 속임수를 쓰는 것이고 바르지 못하니, 왕자(王者)가 오랑캐를 막는 도리가 전혀 아니고 바로 몰래 좀도둑질이나 하는 도적의 계책과 같습니다. 당당한 큰 조정으로서 일개 작은 오랑캐 때문에 도적의 계책을 써서 국가를 모욕하고 위엄을 손상시키니, 신은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시니, 상감께서 곧바로 다시 의논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에 좌우의 신하들이 다투어 나아가 아뢰기를 “병가(兵家)에는 정공과 기습이 있고 오랑캐를 막는 데는 정도와 권도(權道)가 있으니, 임기응변해야지 한 가지 주장만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논의가 이미 합일되었으니, 한 사람의 말 때문에 갑자기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고, 병조판서 유담년(柳聃年)이 나아가 말하기를 “논밭 가는 일은 남종에게 물어야 하고 베 짜는 일은 여종에게 물어야 하는 법입니다. 신은 젊을 때부터 북방을 출입하여 저 오랑캐의 실정을 신이 이미 잘 알고 있으니, 청컨대 신의 말을 들으소서. 오활한 선비의 말은 형세상 다 따르기 어렵습니다.” 하였습니다. 상감께서 그래도 듣지 않으니, 재추(宰樞)들이 모두 불평을 품고 자리를 파하였습니다.
[會寧府城底野人速古乃者, 潛與深處野人通謀, 來犯甲山府, 多掠人畜. 邊將將治之, 亡去. 戊寅, 南道兵使密啓‘速古乃於甲山近處, 潛往來漁獵, 徒衆難捕, 請出其不意, 發軍掩捕.’ 朝議先密諭于本道, 遣李之芳, 同監司兵使捕獲置法. 上御宣政殿, 賜宴及御衣弓矢, 三公及該曹知邊宰相環侍. 先生時爲副提學, 請對進曰: “此事譎而不正, 殊非王者禦戎之道, 正類盜賊穿窬之謀. 以堂堂大朝, 爲一幺麽醜虜, 敢行盜賊之謀, 辱國損威, 臣竊恥之.” 上卽命更議, 左右爭進曰: “兵家有奇正, 禦戎有經權, 臨機制變, 不可執一論也. 詢謀已同, 不可以一人之言遽改也.” 兵曹判書柳聃年進曰: “耕當問奴, 織當問婢. 臣自少出入北門, 彼虜之情, 臣已備諳, 請聽臣言. 迂儒之言, 勢難盡從.” 上猶不聽, 諸宰樞皆懷不平而罷.]
- 이황(李滉), 〈조대우에게 답하다[答趙大宇]〉, 《퇴계집(退溪集》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