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눈과 술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0. 12. 30. 17:57

 
고전명구 - 백 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눈 온 세상의 환기

2010. 12. 30. (목)

펄펄 내리는 눈을 보면서
어찌 술 생각이 나지 않으랴
석 잔 술로는 부족하나니
한 말 가득 채워서 마셔보려네

   
 

坐對紛紛雪。那能不飮酒。三杯猶未足。行且到盈斗。
좌대분분설。나능불음주。삼배유미족。행차도영두。

- 이진망(李眞望 1672~1737)
 〈설리독작(雪裏獨酌)〉,《도운유집(陶雲遺集)》 (한국문집총간 186집)

[해설]

밤새 눈이 참 많이도 내렸습니다.

옥상에서 눈 쌓인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눈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조선의 한 시인을 떠올려 봅니다.

예전 같았으면 저 시인 못지않게
벌써 가슴이 벅차오르고
추억에 젖어들었을 텐데,
현실은 당장 출퇴근길부터 걱정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해 어지러이 다져지고
자동차 바퀴에서 튀긴 물에 더럽혀진 눈은
더 이상 동심의 순수함을 자아내지 못하고
그저 빨리 치워져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한적한 시골을 찾아
눈 위로 드문드문 난 발자국 따라 디뎌보기도 하고,
술과 시로 세상을 잊어보는 일쯤은
마냥 시대가 변한 것만을 탓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올해는 눈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해가 바뀌면 며칠 짬을 내어
옛 시인의 풍류를 흉내 내어 보는 것은 어떨지요.

글쓴이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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