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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쉬는 정자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1. 1. 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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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쉬는 정자

2011. 1. 10. (월)

  사람의 몸은 마음을 따르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를 쉬려면 몸을 쉬어야 하듯이 몸을 쉬려면 마음을 쉬어야 한다. 그림자가 무서워서 아무리 도망쳐도 그림자를 떼어놓지 못하였다는 옛 얘기 속의 사람처럼, 마음을 쉬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면 주인공인 마음이 도리어 그림자인 몸에 구속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라남도 담양(潭陽)에 가면 그림자를 쉬는 정자, 식영정(息影亭)이 있다.

  김군 강숙(剛叔)은 나의 벗이다. 그가 창계(蒼溪) 가, 소나무 아래 산기슭 한 곳을 얻어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각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는 비워두고 띠풀로 이엉을 얹고 대나무를 엮어서 날개처럼 처마에 잇대어 놓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깃털 일산을 씌운 그림배와 같다. 이 정자를 선생이 휴식하는 곳으로 삼고 선생에게 그 이름을 지어줄 것을 청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너는 장자(莊子)의 말을 들어보았느냐? 옛날에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 그림자를 피하려고 햇빛 아래를 도망쳤는데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끝내 그치지 않더니만 나무 그늘 아래로 가자 홀연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대저 그림자란 것은 오로지 사람의 형체를 따르니,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그림자도 고개를 숙이고 사람이 고개를 치켜들면 그림자도 고개를 치켜들며, 그 밖의 왕래와 행동거지를 오로지 형체가 하는 대로 따른다. 그러나 그늘과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과 낮에는 살아나니,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옛말에 ‘몽환포영(夢幻泡影)1)’이라 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조물주에게서 형체를 받으니, 조물주가 사람을 부리는 것이 어찌 형체가 그림자를 부리는 것 정도에 그치겠는가. 그림자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것은 형체의 처분에 달려 있고 사람이 천변만화하는 것은 조물주의 처분에 달려 있으니, 사람이 된 자는 응당 조물주의 부림에 따라야 한다. 나에게 무슨 간여할 것이 있겠는가. 아침에 부유하다가 저녁에 가난해지고 예전에 존귀하다가 지금에 빈천해지는 것이 모두 조물주의 풀무와 망치[爐錘]에서 만들어지는 일이다. 나의 일신으로 본다면 예전에 높은 관을 쓰고 큰 띠를 띠고 금마문(金馬門)ㆍ옥당(玉堂)을 출입한 것과 지금은 죽장 망혜 차림으로 푸른 솔, 흰 바윗돌 사이를 소요하는 것과 호사스런 관직을 버리고 빈한한 생활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과 조정의 고관대작들과 교유를 끊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는 것, 이 모두 그 무엇이 그 사이에서 장난을 쳐서 그렇게 되는데도 내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무슨 기뻐하고 성낼 것이 있으리오.”
  강숙이 말하였다. “그림자는 진실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선생은 굴신이 자신에 달렸으니, 세상에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밝은 시대를 만났으면서도 재능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는 것은 너무 과단한 것이 아닌지요?”
  선생이 응답하였다. “흐름을 타면 가고 구덩이를 만나면 그치는 법이니, 가고 그치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산림에 들어온 것은 하늘의 뜻이다. 단지 그림자를 쉴 뿐만이 아니라 나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조물주와 벗이 되어 대황(大荒)의 들판에 노닐고 도영(倒影) 속으로 사라지면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무어라 가리켜 말할 수 없을 터이니, ‘식영(息影)’으로 이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강숙이 말하였다. “이제야 선생의 뜻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을 적어서 기문(記文)으로 삼겠습니다.”
  계해년(1563) 7월 하의도인(荷衣道人)은 쓰다.

 

[金君剛叔吾友也, 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 得一麓, 構小亭, 柱其隅, 空其中, 苫以白茅, 翼以凉簟, 望之如羽盖畵舫, 以爲吾休息之所, 請名於先生. 先生曰 “汝聞莊氏之言乎? 曰 ‘昔有畏影者, 走日下, 其走愈急而影終不息, 及就樹陰下, 影忽不見.’ 夫影之爲物, 一隨人形, 人府則俯, 人仰則仰, 其他往來行止, 唯形之爲, 然陰與夜則無, 火與晝則生, 人之處世亦此類也. 古語有之曰 ‘夢幻泡影’. 人之生也, 受形於造物, 造物之弄戱人, 豈止形之使影? 影之千變, 在形之處分, 人之千變, 亦在造物之處分. 爲人者當隨造物之使, 於吾何與哉! 朝富而暮貧, 昔貴而今賤, 皆造化兒爐錘中事也. 以吾一身觀之, 昔之峨冠大帶出入金馬玉堂, 今之竹杖芒鞋逍遙蒼松白石, 五鼎之棄而一瓢之甘, 皐夔之絶而麋鹿之伴, 此皆有物弄戱其間而吾自不之知也, 有何喜慍於其間哉!” 剛叔曰 “影則固不能自爲, 若先生, 屈伸由我, 非世之棄, 遭聖明之時, 潛光晦迹, 無乃果乎?” 先生應之曰 “乘流則行, 得坎則止, 行止非人所能, 吾之入林, 天也, 非徒息影, 吾泠然御風2), 與造物爲徒, 遊於大荒3)之野, 滅沒倒影4), 人不得仰而指之, 名以息影, 不亦可乎?” 剛叔曰 “今始知先生之志, 請書其言以爲誌.” 癸亥七月日, 荷衣5)道人.]

- 임억령(林億齡)
 〈그림자를 쉬는 정자에 대한 기문[息影亭記]〉, 《석천집(石川集)》

 

▶ 대은암_국립중앙박물관 소장_겸재정선 진경산수화 인용

 

[해설]

  이 글은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68세 되던 해 7월에 지은 것으로 그의 사위 김성원(金成遠)이 지어준 정자에 대해 쓴 기(記)이다. 석천은 62세 때 담양부사(潭陽府使)로 부임하였는데 담양은 그에게 귀거래(歸去來)의 공간이 되었다. 석천이 을사사화(乙巳士禍)로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 주로 이 식영정이 있는 담양의 성산동(星山洞)에서 살았으며, 그가 64세로 치사한 뒤에도 오래도록 머물러 살았다. 또한 이곳은 석천의 둘째 부인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석천은《장자(莊子)》를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정자의 이름인 ‘식영(息影)’도《장자》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 가지고 대뜸 석천이 노장(老莊)의 정신세계를 지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장자》의 의사(意思)를 사용하여 이 정자를 무대로 한 풍류와 은일(隱逸)의 정신을 잘 표현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장자》에서 식영은 갖은 곤욕을 치르며 천하를 주유하는 공자(孔子)에게 은자(隱者)인 어부(漁父)가 충고하는 말 중에서 나온다. 여기서 어부는 인의(仁義)를 가식적인 것으로 보고 자신의 참된 본성을 지킬 것을 주장한다. 이를테면 무위(無爲)의 삶을 중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양학에서 무위(無爲)는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유교와 불교에서도 무위의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무위는 한문 문화권에서 추구한 공통의 가치였던 것이다. 다만 그 무위의 내용과 무위를 실현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노장과 불교가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꺼리며 가급적 현실과 떠난 자리에서 자기 본성을 지킴으로써 무위를 실천하고자 했다면 유교는 현실을 떠나지 않은 자리에서 무위를 실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옛 선비들은 출(出)ㆍ처(處)의 도리를 중시했다. 출은 세상에 나가서 벼슬하는 것이고 처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출ㆍ처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장과 불교는 어디까지나 처(處)의 자리에 서서 현실을 저만큼 비껴 앉아서 무위의 삶을 살고자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유교는 공자(孔子)가 용사행장(用捨行藏)6)을 표방한 이래 출(出)함직하면 출하고 처(處)함직하면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출ㆍ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무위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위 글에서 석천은 과거 높은 벼슬에 있었던 것이나 현재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이나 모두 조물주의 처분에 맡기고 자신은 전혀 간여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출(出)과 처(處) 어디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그렇지만 기실 석천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처(處)함직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그는 ‘단지 그림자를 쉴 뿐만이 아니라 나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조물주와 벗이 되어 대황(大荒)의 들판에 노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영(倒影) 속으로 사라져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무어라 가리켜 말할 수 없을 터’라 하여, 출(出)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무위의 삶을 처(處)에서 완성하겠다고 하였다. 석천은 이러한 자신의 정신의 지향을《장자》의 식영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도영(倒影)은 《사기(史記)》〈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나오는 말로 하늘 위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킨다. 이곳에서는 해와 달의 빛이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비치기 때문에 이곳에서 아래로 해와 달을 보면 그 그림자가 모두 뒤집혀 아래로 비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따라서 이곳으로 들어가면 햇빛의 영향권을 아주 벗어나므로 세상에서 늘 따라다니던 그림자가 자취를 감출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즉 도영은 처(處)의 극점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영은 우리 마음 속에서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에 비유될 수 있다.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에 들어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비추어 본다면 생각의 구속을 아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원에 은거하며 마음의 자유를 추구한, 석천의 처(處)는 유자(儒者)의 출처관(出處觀)을 벗어난 것이 아니면서《장자》의 정신과도 기맥이 통한다. 그가 당대에 처사로 이름이 높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등과 깊이 교유했던 것도 그들과 취향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유자의 출처관을 가졌으면서 자신이 사는 세상을 처(處)함직한 것으로 인식, 처에 치중하여 노장풍(老莊風)의 은일(隱逸)의 멋을 풍기는, 유선(儒仙)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당시 강호(江湖)의 지식인들의 풍조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온통 출(出)을 지향하는 도도한 물결 속에 휩쓸려 가고 있다. 중국의 신화에 과보(夸父)라는 선인(仙人)이 해를 쫓아서 달리다가 목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자기 그림자가 무서워 피하는 자나 해를 쫓아 무턱대고 달리는 자나 모두 허상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인 줄 누구나 알겠지만, 과연 이 어리석음을 벗어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그림자를 피하지도 않고 해를 쫓아 달리지도 않고 도영(倒影) 속에 처함으로써 나도 안락하고 남도 안락하게 해 주는 은일의 지식인이 꼭 필요한 오늘날이다.

 

1) 《금강경(金剛經)》 “일체의 모든 현상들은 꿈과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도 같고 번갯불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하였다.
2)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열자는 바람을 타고 시원스레 잘 날아가서 15일이 된 뒤에 돌아왔다.[夫列子御風而行 泠然善也 旬有五日而後反]” 하였다.
3) 《산해경(山海經)》〈대황동경(大荒東經)〉 “동해 밖에 대황 중에 산이 있으니 이름이 대언으로 해와 달이 나오는 것(곳)이다.[東海之外 大荒之中 有山 名曰大言 日月所出]” 하였다.
4)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어울려서 함께 비상했으니 장적(張籍)과 황보식(皇甫湜)을 땀 흘리며 달리다 넘어지게 해, 도영 속으로 사라져 바라볼 수도 없게 했네.[追逐李杜參翶翔 汗流籍湜走且僵 滅沒倒景不可望]” 하였다.
5) 남조(南朝) 송(宋)나라 공치규(孔稚珪)가 함께 은자 생활을 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주옹(周顒)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마름풀 옷을 불사르고 연잎옷을 찢어버리고 속진에 찌든 얼굴을 뻣뻣이 치켜들고서 속된 모습으로 마구 달려 나갔네.[焚芰製而裂荷衣 抗塵容而走俗狀]” 한 데서 온 말로 은자(隱者)의 옷을 뜻한다.
6) 세상에 쓰일 때는 나가서 자기의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았을 때는 물러나서 숨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에게 이르기를 “쓰이면 나가서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물러나 숨는 것을 오직 나와 네가 그렇게 할 뿐이다.[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述而》

 

    


글쓴이 /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 주요저서
-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2007)
-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 주요역서
-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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