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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 강숙(剛叔)은 나의 벗이다. 그가 창계(蒼溪) 가, 소나무 아래 산기슭 한 곳을 얻어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각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는 비워두고 띠풀로 이엉을 얹고 대나무를 엮어서 날개처럼 처마에 잇대어 놓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깃털 일산을 씌운 그림배와 같다. 이 정자를 선생이 휴식하는 곳으로 삼고 선생에게 그 이름을 지어줄 것을 청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너는 장자(莊子)의 말을 들어보았느냐? 옛날에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 그림자를 피하려고 햇빛 아래를 도망쳤는데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끝내 그치지 않더니만 나무 그늘 아래로 가자 홀연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대저 그림자란 것은 오로지 사람의 형체를 따르니,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그림자도 고개를 숙이고 사람이 고개를 치켜들면 그림자도 고개를 치켜들며, 그 밖의 왕래와 행동거지를 오로지 형체가 하는 대로 따른다. 그러나 그늘과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과 낮에는 살아나니,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옛말에 ‘몽환포영(夢幻泡影)1)’이라 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조물주에게서 형체를 받으니, 조물주가 사람을 부리는 것이 어찌 형체가 그림자를 부리는 것 정도에 그치겠는가. 그림자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것은 형체의 처분에 달려 있고 사람이 천변만화하는 것은 조물주의 처분에 달려 있으니, 사람이 된 자는 응당 조물주의 부림에 따라야 한다. 나에게 무슨 간여할 것이 있겠는가. 아침에 부유하다가 저녁에 가난해지고 예전에 존귀하다가 지금에 빈천해지는 것이 모두 조물주의 풀무와 망치[爐錘]에서 만들어지는 일이다. 나의 일신으로 본다면 예전에 높은 관을 쓰고 큰 띠를 띠고 금마문(金馬門)ㆍ옥당(玉堂)을 출입한 것과 지금은 죽장 망혜 차림으로 푸른 솔, 흰 바윗돌 사이를 소요하는 것과 호사스런 관직을 버리고 빈한한 생활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과 조정의 고관대작들과 교유를 끊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는 것, 이 모두 그 무엇이 그 사이에서 장난을 쳐서 그렇게 되는데도 내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무슨 기뻐하고 성낼 것이 있으리오.” 강숙이 말하였다. “그림자는 진실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선생은 굴신이 자신에 달렸으니, 세상에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밝은 시대를 만났으면서도 재능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는 것은 너무 과단한 것이 아닌지요?” 선생이 응답하였다. “흐름을 타면 가고 구덩이를 만나면 그치는 법이니, 가고 그치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산림에 들어온 것은 하늘의 뜻이다. 단지 그림자를 쉴 뿐만이 아니라 나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조물주와 벗이 되어 대황(大荒)의 들판에 노닐고 도영(倒影) 속으로 사라지면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무어라 가리켜 말할 수 없을 터이니, ‘식영(息影)’으로 이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강숙이 말하였다. “이제야 선생의 뜻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을 적어서 기문(記文)으로 삼겠습니다.” 계해년(1563) 7월 하의도인(荷衣道人)은 쓰다.
[金君剛叔吾友也, 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 得一麓, 構小亭, 柱其隅, 空其中, 苫以白茅, 翼以凉簟, 望之如羽盖畵舫, 以爲吾休息之所, 請名於先生. 先生曰 “汝聞莊氏之言乎? 曰 ‘昔有畏影者, 走日下, 其走愈急而影終不息, 及就樹陰下, 影忽不見.’ 夫影之爲物, 一隨人形, 人府則俯, 人仰則仰, 其他往來行止, 唯形之爲, 然陰與夜則無, 火與晝則生, 人之處世亦此類也. 古語有之曰 ‘夢幻泡影’. 人之生也, 受形於造物, 造物之弄戱人, 豈止形之使影? 影之千變, 在形之處分, 人之千變, 亦在造物之處分. 爲人者當隨造物之使, 於吾何與哉! 朝富而暮貧, 昔貴而今賤, 皆造化兒爐錘中事也. 以吾一身觀之, 昔之峨冠大帶出入金馬玉堂, 今之竹杖芒鞋逍遙蒼松白石, 五鼎之棄而一瓢之甘, 皐夔之絶而麋鹿之伴, 此皆有物弄戱其間而吾自不之知也, 有何喜慍於其間哉!” 剛叔曰 “影則固不能自爲, 若先生, 屈伸由我, 非世之棄, 遭聖明之時, 潛光晦迹, 無乃果乎?” 先生應之曰 “乘流則行, 得坎則止, 行止非人所能, 吾之入林, 天也, 非徒息影, 吾泠然御風2), 與造物爲徒, 遊於大荒3)之野, 滅沒倒影4), 人不得仰而指之, 名以息影, 不亦可乎?” 剛叔曰 “今始知先生之志, 請書其言以爲誌.” 癸亥七月日, 荷衣5)道人.]
- 임억령(林億齡) 〈그림자를 쉬는 정자에 대한 기문[息影亭記]〉, 《석천집(石川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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