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陰陽) 이기(二氣)의 생성과 전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 이전의 우주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때에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아무 것도 없이 그저 텅 빈 공간뿐인, 그런 상태였을까요? 아마도 그 비슷했을 겁니다.
1. 태역(太易) = 징조, 가능성
실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곳에 어떤 공간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도 기운도 아니며, 심지어 공간도 시간도 아닌 어떤 것. 우주가 열리기 전의 상태는 아마 그러한 궁극의 공간이었을 겁니다. 다만 한가지 희미한 가능태로만 존재하는 상태, 그러한 시기를 역에서는 태역(太易)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 터이니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주는 그렇게 하나의 징조로만 존재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선인들은 말합니다. 이 시점을 무극(無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2. 태초(太初) = 음양
그런 뒤에 점차 태역의 시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정돈된 상태로 바뀌어 갑니다. 이 시기를 태초(太初)의 시기라고 하는데, 순일한 한가지의 기운이 드러나면서 태역의 시기로부터 태초의 시기에 진입하고, 태초의 시기로 진입한 후에는 그 한가지의 기운과 전혀 성질이 다른 또다른 기운이 생겨나게 됩니다. 초기에 먼저 생겨난 기운은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었으며, 그 뒤에 생겨난 기운은 밝고 뜨거운 기운이었습니다. 이 두가지의 기운은 서로 섞이면서 서로를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는데, 처음에 그 두가지 기운은 서로 혼융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상대가 존재하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태초의 시기 내에서 이 상태를 일러 태허(太虛)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상반된 두 기운은 점차 구체적으로 밀고 당기며 응집되었다가는 발산되면서 서로를 나투어 나가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 상태를 일러 태극(太極)이라고 말합니다. 태극을 달리 음양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근원적인 힘(음양을 기(氣)로 보았을 때 리(理)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태초의 시기에 등장한 두 가지의 기운은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었는데, 넓게 만연한 상태로 드러나 있는 기운은 차가운 기운이었으며 이 기운은 자꾸만 응집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차가운 기운 사이에 점의 형태로 퍼져있는 기운이 뜨거운 기운이었으며 이 기운은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자꾸만 발산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 기운을 일러 음(陰)과 양(陽)이라고 합니다.
사실 태초의 시기에 이루어진 음과 양의 운동은 아직 음양의 질이 형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태극(太極)이라는 상태로 부를 수 없는데, 이때에 이르러 음양의 기미가 생겨나고 음양이 서로를 인식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태극(太極)운동의 기미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태극의 운동단계는 태시(太始), 태소(太素)의 과정을 거쳐 음양의 구체적인 형과 질이 구비된 후에 이루어집니다. 형질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음양운동은 실질적인 운동효과를 나타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태시(太始) = 음양+질
이렇게 서로 뒤섞인 상태에 있던 음과 양의 두 기운이 각자에게 부여된 독특한 질(質)을 기반으로 점차 가시적인 작용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단계를 태시(太始)라고 합니다. 실제적으로 유(有)와 무(無)의 경계가 드러난 시점이 이 단계이고, 만연한 공간(空間)에 대해 시간(時間)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시점이 바로 이 단계입니다. 음의 기운을 공간이라고 본다면, 양의 기운을 시간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비로소 시간과 공간이 구체적인 밀도를 가진 상태로 인식됩니다.
태시 단계에서 시공이 드러나는 것은 무언가 밀도를 가진 질료(質料)들 때문인데, 이 질료들은 크게는 차갑고 뜨거운 두가지의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 부드럽고 딱딱한 질, 무겁고 가벼운 질, 매끈하고 거친 질, 밝고 어두운 질 등으로 세분화되어 갑니다.
4. 태소(太素) = 음양+질+형
음양 두 기운의 질이 드러나고 난 후에는 이러한 질들이 혼융되고 분리되는 등의 이합집산을 통해 형(形)을 만들어 나갑니다. 질과 질이 혼합 혹은 분리되기도 하고, 질과 형이 혼합 혹은 분리되기도 하고, 또 형과 형이 혼합 혹은 분리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는 이 과정을 일러 태소(太素)의 단계라고 말합니다. 이 태소의 단계에서 비로소 우주의 다섯가지 큰 기운인 오행(五行)이 드러나게 됩니다.
태시의 단계에서 질이 드러나고 태소의 단계에서 형이 드러났다고 말을 했지만, 이것은 원초적인 측면에서의 진행순서(개념->현상)를 말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식하는 측면(현상->개념)에서 본다면 태시의 단계에서 형이 드러나고, 태소의 단계에서 질이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해야 인식이 가능해 집니다. 담겨질 그릇이 없는 상태에서 내용물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이 먼저인가, 형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는 마치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와도 똑같고, 조선왕조 오백년동안 시끄러웠던 이기론(理氣論), 즉 리(理)가 먼저인가 기(氣)가 먼저인가 하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이해하시고 일단 최초의 생성시에는 질->형의 순서로 진행된 것으로 알아두신 다음, 나중에 간지론(干支論)에서 응용하실 때에는 형->질의 순서로 바꾸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매우 중요한 말이긴 합니다만,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 모르신다 해도 나중에 다시 언급될 것이니 크게 신경쓰실 것은 없습니다.
위에서 태역->태초->태시->태소의 단계를 말했지만 그저 이러한 순서를 밟았다는 것 뿐이지, 각 단계들이 시간의 공백을 두고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간을 따지자면 거의 동시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옆에서 본 누군가가 있었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 꾸물거리던 우주가 갑자기 펑! 하고 터지더니 순식간에 태소의 과정까지 진입해 들어온 것을 보았겠죠. 그리고는 오행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이른바 빅뱅(Big Bang)입니다.
<음양의 분위기와 느낌>
이제 본격적으로 음양에 대해 언급할 차례가 되었군요. 음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아는 것이 아니라) 음양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만 파악한다면 음양을 이해하고 분류하며 실제 적용하는 데에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음양을 그냥 밤과 낮, 여자와 남자... 이런 식으로만 파악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실제 적용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암기과목이 아니라 이해과목이라는 걸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음양을 생각할 때는 항상 함께 놓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음양이 따로 떨어져서 노는 법은 없읍니다. 그리고 음양을 생각하실 때는 항상 진행되는 방향을 유심히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지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는지, 좌에서 우로 진행되는지 우에서 좌로 진행되는지, 느린 쪽에서 빠른 쪽으로 진행되는지 빠른 쪽에서 느린 쪽으로 진행되는지, 단단한 쪽에서 부드러운 쪽으로 진행되는지 부드러운 쪽에서 단단한 쪽으로 진행되는지... 음양이란 움직이는 운동이기 때문에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1. 음양의 분위기
음(陰)이 주는 분위기는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축축한 습기가 가득 퍼져있는 분위기입니다. 무한히 크고 넓게 퍼져있어서 한눈에 그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가시적인 것, 무언가가 끝없이 옆으로 옆으로 퍼져있으면서 힘차 보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아주 느린 속도로 스믈스믈 아랫쪽을 향해 스며드는 듯한 분위기. 이런 분위기가 음이 주는 분위기입니다.
반면 양(陽)이 주는 분위기는 일단 음(陰)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양적인 분위기는 음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일듯 말듯 미세하게 퍼져있는 뜨거운 점들, 눈에 확 띌 정도로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역동적이며 밝고 힘찬 기운이 만연해 있는 어둠 속을 뚫고 퍼져나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양적인 분위기입니다. 매우 건조한 무언가가 위로 위로 끝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치솟아 올라가는 듯한 분위기가 양이 주는 분위기입니다.
음양의 분위기 | |
음(陰) |
어둠, 축축함, 크고 넓음, 가시적, 꾸준함, 횡적, 느림, 아래쪽... |
양(陽) |
밝고 뜨거움, 비가시적, 역동적, 힘차다, 건조함, 빠름, 위쪽... |
2. 음양의 느낌
음적인 느낌은 나를 중심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느낌입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내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하는 것, 내 안쪽은 어둡지만 편안합니다. 매우 강한 응집력, 다른 힘의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끝없이 쪼그라들어 결국에는 밀도가 아주 강하고 단단하기 이를 데없는 다이아몬드같은 것으로 응축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 이런 식으로 아주 천천히, 조금씩조금씩 굳어져가는 느낌이 음적인 느낌입니다. 아주 크고넓은 무언가가 점차 아주 작은 점을 향해 뭉쳐지는 느낌, 처음에는 아주 느린 듯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는 느낌입니다. 힘의 작용면에서 구심력과 유사한 느낌을 갖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양적인 느낌은 나를 중심으로 무언가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입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도전적으로 발산해 나가는 기분. 무엇이든 거침없이 뚫고 나갈 것 같고, 어디로든 어떤 형태로든 자유롭게 퍼져나가면서 자꾸 분열되는 느낌. 매우 강렬한 팽창력. 다른 힘의 제재를 받지 않으면 끝없이 퍼져나가 결국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텅빈 허공같은 것으로 변해버릴 것 같은 느낌. 이런 식으로 아주 빠르게, 광적으로 흩어져 나가는 느낌이 양적인 느낌입니다. 아주 작은 무언가가 점차 아주 크고넓게 퍼져가는 느낌, 처음에는 아주 빠른 듯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입니다. 힘의 작용면에서 원심력과 유사한 느낌을 갖는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음양의 느낌 | |
음(陰) |
끌어당김, 편안함, 응집력, 단단함, 굳어져감, 구심력... |
양(陽) |
퍼져나감, 도전적, 발산, 분열, 팽창력, 텅 비어감, 흩어짐, 원심력... |
양의 기운은 음의 기운 속에서 끊임없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려고 애쓰고, 음의 기운은 그러한 양의 기운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는 느낌을 그릴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음양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음양의 분위기와 느낌은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꼭 그러한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주만물이 있은 후에 그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 음양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지, 실제로 음양이 먼저 존재한 후에 우주만물이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음양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면 스스로의 느낌대로 음양을 판단하면 될 것입니다. 즉, 음과 양이라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를 판단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것을 둘로 구분하든 셋으로 구분하든 열이나 백, 혹은 천으로 구분하든 상관없는 일입니다.
음양을 합한 상태에서 본다면 최초에 음은 음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일단 양이 드러난 상태라면 두 기운은 결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양기는 음기 속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고,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양기는 음기의 또다른 형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음양의 생성단계를 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갈 것입니다.
음과 양이 서로 이질적이고 대립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음의 내부에서 양이 태어났기 때문에 양은 음을 자양분으로 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음은 자신이 고통스럽게 생성시킨 양의 기운이 소멸해서 없어지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즉, 음은 양의 터전이고, 양은 음의 보람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누르는 것은 양기가 흩어져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양기가 음기를 뚫고 끝없이 분열해 나간다 하더라도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과 같을 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음과 양의 분위기와 느낌을 토대로 음과 양의 뉘앙스를 몇가지로 대비해 보도록 하죠.
음은 어둡고 양은 밝습니다. 음은 축축하고 양은 건조합니다. 음은 횡적이고 양은 종적입니다. 음은 모여들고 양은 퍼져나갑니다. 음은 응축되려고 하고 양은 팽창하려고 합니다. 음은 수동적이고 양은 적극적입니다. 음은 느리고 양은 빠릅니다. 음은 가시적이고 양은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음은 구심력이고 양은 원심력입니다. 음은 편안한 느낌이고 양은 불안한 느낌입니다. 음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기분이고, 양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기분입니다. 음은 보수적이고 양은 미래지향적입니다... 음양에 대한 이해가 선 후라면, 어떤 물상이든, 이떤 기질이든, 어떤 상태이든 이러한 음과 양의 대비는 끝없이 해나갈 수 있습니다.
<음양의 구분>
이제 이러한 음양의 분위기와 느낌을 가지고 몇가지를 음과 양으로 분류해 볼까요? 이렇게 음양을 구분하는 것은 전체적인 측면에 대략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천지자연, 우주만물의 모든 것을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대상에 적용할 때는 반드시 비교기준이 있어야만 음양의 구분이 가능해 집니다. 꼭 상대가 있어야 비교가 가능한 것이고, 기준, 즉 비교의 기준점이 있어야 음양의 구분이 가능한 것이니, 그런 구분만이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비교기준은 비교가 가능한 것, 즉 동등한 위치의 질이나 형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늘과 바늘, 이런 비교는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비교대상의 형태나 위치, 성질, 어떤 면으로도 비교를 할 수 있는 기준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꽃과 여자, 이런 경우에는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할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라는 성질에서 기준점을 찾을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1.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밝으면서 한없이 퍼져있는 분위기로 보아 하늘은 양이고, 하늘에 비해 어두우면서 한없이 가라앉은 분위기로 보아 땅은 음입니다. 양이라는 것은 음을 먼저 전제로 한 후에야 드러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땅이 먼저 생겨나고 나중에 하늘이 생겨났다는 말일까요? 그런 건 아니죠. 이것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인식하는 측면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이 딛고 선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늘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인간이 인식하는 측면에서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을 비롯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양이고 땅이 음입니다.
2. 해는 양이고 달은 음이다. 불은 양이고 물은 음이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해는 스스로 빛과 열을 내뿜고, 달은 해가 내뿜은 빛과 열을 간직하고 있다가 지구에 뿌려줍니다. 해가 적극적으로 주는 존재라면 달은 수동적으로 받는 존재입니다.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 달은 조용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해는 양, 달은 음으로 봅니다. 해와 달, 이 두가지만을 두고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뜻입니다.
불은 양이고, 물은 음이다 라는 의미는 비교적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양의 기운을 대표하는 것이 불의 기운이고, 음의 기운을 대표하는 것이 물의 기운이기 때문에 불과 물은 양과 음의 특징을 상당부분 근접한 형태로 가지고 있습니다. 뜨겁게 솟아오르는 불기운, 차갑게 내려앉는 물기운, 정말 양과 음의 대표자답게 물상이지만 확실한 양과 음의 상을 담고 있습니다.
남자는 외향적이고, 여자는 내향적입니다. 이를테면 사랑을 표현하는 면에서도 남자는 능동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입니다. 식물의 꽃술에 해당하는 생식기의 구조도 그렇습니다. 남자는 돌출되어 있고 내뿜으며, 여자는 함몰되어 있고 받아들입니다. 남자는 이성적인 측면이 강하고 여자는 감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양은 질(質)을 제공하고 음은 형(形)을 이룹니다. 그래서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입니다.
3. 부드러운 것은 양이고 딱딱한 것은 음이다. 생물은 양이고 무생물은 음이다. 삶은 양이고 죽음은 음이다.
양의 특성은 활동적인 데에 있고, 음의 특성은 고착적인 데에 있습니다. 활동적인 것, 즉 움직이는 것은 부드러울 수 밖에 없고, 고착적인 것, 즉 움직이지 않는 것은 딱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것은 양이고, 딱딱한 것은 음입니다. 이 말은 생물은 양이고, 무생물은 음이며, 삶은 양이고 죽음은 음이다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도 생물로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지만 죽어서 무생물이 되고나면 딱딱해집니다.
이렇게 말하면 간혹 엉뚱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자는 음이고 남자는 양인데, 그러면 여자는 딱딱하고 남자는 부드럽다는 말인가요?" 질문은 그럴 듯 하죠? 그런데 질문의 핀트가 틀렸습니다. 세상의 어느것도 '이것은 음이다 이것은 양이다' 이렇게 정해진 게 없습니다. 둘을 비교했을 때 음적이냐 양적이냐 분간할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음양는 상대적인 것이고 반드시 동일한 비교기준에 대해서만 상대의 음양을 논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잊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면 남자는 모두 삶이고 여자는 모두 죽음이 되어야 할 겁니다.
이렇듯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양적인 속성이 강한 것이고, 한곳에 고착되어 정지해 있는 것은 음적인 속성이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도 양기가 왕성한 낮에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음기가 왕성한 밤이면 조용히 수면을 취하게 됩니다. 인생의 하루는 일년과 닮았고, 일년은 일생과 닮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양과 음의 이치를 밟아나가고 있으며, 매일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시간은 양이고 공간은 음이다.
시간이란 내가 지나온 공간과 내가 가야할 공간을 분리시키는 가상의 개념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이 바뀌어가는 상황을 시간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 뿐이죠.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굳이 분리한다면, 시간이 없는 공간은 생각할 수 있어도 공간이 없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양이고 공간은 음입니다. 시간은 공간의 자식과도 같습니다.
5. 동양은 양이고 서양은 음이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종적입니다. 국민은 왕에게 복종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해야 하고, 젊은이는 노인을 우대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종적이라는 것입니다. 서양적인 사고방식은 횡적입니다. 국민은 왕과 계약관계를 맺고 부역과 세금을 교환합니다. 아내와 남편은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개인적인 측면은 터치하지 않습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고,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상대가 다른 상대에 무언가를 강압하는 면이 적습니다. 그래서 횡적이라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은 양이고, 횡적인 것은 음입니다.
6. 유심론은 양이고 유물론은 음이다.
정신이나 마음을 중시하면서 개인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유심론이고, 물질이나 의식(儀式)을 중시하면서 사회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유물론입니다. 개별적인 면을 강조하면 양이 되고, 전체적인 면을 강조하면 음이 됩니다. 크게 보았을 때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양이 되고, 공산주의라는 제도는 음이 됩니다. 물론 유심론에도 서양에서와 같이 이성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유심론이 있고, 동양에서와 같이 직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유심론이 있으며, 유물론에도 동양의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서양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쪽 측면으로만 존재하는 단세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보았느냐에 따라 음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유심론은 양, 유물론은 음에 해당한다는 의미입니다.
7. 먹는 것은 음이고 배설하는 것은 양이다. 욕심은 음이고 분노는 양이다. 들숨은 음이고 날숨은 양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내 안으로 음식물을 끌어당기는 음적인 행위입니다. 반면에 배설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토해낸다는 측면에서 양적인 행위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욕심은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에 음쪽에 속하고, 분노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뱉어내는 감정이기 때문에 양쪽에 속합니다. 먹고 배설하는 행위와 욕심내고 분노하는 행위는 동일한 면이 있습니다. 욕심과 분노를 음과 양의 측면으로 말한 것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고 사암침법의 복원자인 금오 김홍경씨가 한 말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똑같은 이치로 우리가 호흡을 한다고 할 때, 들숨(흡)은 음이고 날숨(호)은 양입니다. 우리 인간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양을 좋아하고 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악취를 맡았을 때 숨이 콱 막히는 것도, 좋은 향기를 맡았을 때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음을 버리고 양을 취하려는 반사적인 행동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죠. 몸에서 받아들인다고 먹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적절한 음양의 조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이 음양의 이치만 제대로 이해하면 오행은 8~90%이상 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행은 음양의 비율만 서로 달리해서 다섯가지로 분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행만 제대로 이해하면 십간 십이지지는 8~90%이상 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천간지지 또한 오행을 음양으로 분류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양을 다섯가지로 분류하든 열가지나 열두가지로 분류하든, 그런 방식으로 분류된 근거와 그것에 따르는 특성을 아는 것 뿐이기 때문에, 분량은 많아 보이지만 사실상 용어들 빼고는 어려운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 분류와 특성에도 어김없이 음양의 개념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음양을 소홀히 다를 수 있겠습니까?
음양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간지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간지지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명리학 등 응용분야에 들어갔을 때 딴소리 헛소리들을 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부분, 음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陽) |
천(天), 천간, 정신, 아버지, 남편, 남자, 불, 일(日), 낮, 상(上).. | |
음(陰) |
지(地), 지지, 육체, 어머니, 아내, 여자, 물, 월(月), 밤, 하(下).. | |
양(陽) |
전(前), 정(正), 시(始), 종(縱), 조(燥), 온(溫), 동(動), 대(大), 득(得).. | |
음(陰) |
후(後), 반(反), 종(終), 횡(橫), 습(濕), 냉(冷), 정(靜), 소(小), 실(失).. | |
양(陽) |
길(吉), 승(勝), 실(實), 선(善), 겉(表), 동양, 명, 자유, 백(白), 아들.. | |
음(陰) |
흉(凶), 패(敗), 허(虛), 악(惡), 속(裏), 서양, 암, 구속, 흑(黑), 딸.. |
아래는 이 강의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음양을 구분해본 도표입니다. 살펴보시면서 왜,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음양이 나뉘는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기준)에 따라 음양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음양이란 비교기준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양운동의 특성>
1. 음양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음양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뀐다, 변한다' 는 의미의 역(易)이라는 말 속에 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뀐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바뀌고 비교기준에 따라 바뀐다는 뜻입니다. 손톱은 쇳조각과 비교해서는 음적(陰的)이고, 피부와 비교해서는 양적(陽的)입니다.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변하고, 양이 극에 이르면 음으로 변합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 말은 해병의 구호일 뿐이지 음양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음양이란 상대적인 개념이지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2. 음양은 서로 공존한다.
음과 양은 결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누차에 걸쳐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두 힘이 서로 공존하는 상대라는 뜻입니다. 손등이 없이 손바닥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두 힘은 항상 같이 붙어다닙니다. 어둠이 없는 빛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빛과 어둠은 항상 붙어다닙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그동안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간과 공간이 복합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른바 '시공간 연속체'라는 개념입니다. 음양은 이와같이 서로가 서로를 이루고 있는 한몸의 다른 측면과도 같이 공존하는 상대입니다.
음과 양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몸이기 때문에 표피인 양 속에도 음양이 있고 그 이면인 음 속에도 또한 음양이 있으나, 표피는 양의 기운이 강해 양이라 이르고 이면은 음의 기운이 강해 음이라 이릅니다. 또 같은 원리로 겉이 양인 것은 속으로 음이고 겉이 음인 것은 속으로 양입니다. 음과 양은 크고작은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감으로써 만물을 형성합니다.
3. 음양은 결코 결합하지 못한다.
음양은 항상 옆에 있으면서도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두 갈래의 철길과 같습니다. 양의 힘이 커지면 음의 힘이 작아지고, 음의 힘이 커지면 양의 힘이 작아집니다. 이러한 상황을 옛사람들은 상호대대(相互待對)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양이 물러가기 시작하고, 양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음이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음이 극에 달하면 서서히 양이 생겨나고, 양이 극에 달하면 서서히 음이 생겨납니다. 양이 많은 곳에서는 음이 살지 못하고, 음이 많은 곳에서는 양이 살지 못합니다.
낭월스님의 책을 보면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며, 결혼이란 음양의 결합이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중화(中和)라는 개념이 음과 양을 결합시킨다는 견해도 있는데, 이또한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조화(調和)라고 말한다면 옳을 수 있습니다. 중화, 혹은 중(中)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대입해 사용하는 개념일 따름입니다. 음과 양의 세력판도가 달라지면 중(中)이라는 것의 위치는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때문에 음이 양화(陽化)되고 양이 음화(陰化)될수는 있을지언정, 음과 양은 결코 결합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4. 겉으로 양이면 속으로 음이고, 겉으로 음이면 속으로 양이다.
'음양은 서로 공존한다'는 설명에서도 언급이 있었습니다만, 음양의 또다른 특성중의 하나가 표리(表裏)가 서로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전후(前後), 본말(本末) 등의 성질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한가지의 물상이나 한종류의 사건에도 음양이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겉이 양이면 속은 음이고, 겉이 음이면 속은 양입니다. 처음이 양이면 끝은 음이고, 처음이 음이라면 끝은 양입니다. 앞의 내용들을 유심히 살피신 분들이라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5. 음양은 티끌 속에서부터 온 우주까지 가득 존재한다.
음양은 작기로는 먼지 속에서부터 크기로는 저 광대무변한 우주에까지 두루 존재합니다.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가 되고, 분자들이 모여서 세포가 되고, 세포들이 모여서 기관을 이루고, 각 기관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체를 이루듯, 음양은 원자속에서부터 인체에 이르기까지, 인체에서부터 온 우주만물에 이르기까지 두루 존재하면서 만물의 자연적인 흐름을 조정하는 궁극의 원리입니다. 법성게(法性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하나의 티끌 속에서도 상하팔방을 머금고 있는 것.. 그것이 음양이고 태극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음양운동의 이러한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태극(太極) 그림이죠. 일단 한번 보실까요?
이 태극 그림을 보고 있으면 뭔가 음양에 대한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두 기운이 뭉쳐있는 것 같으면서 싸우고 있고,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끌어안고 있고.. 서로 다른 기운을 가진 두 기운이 치열하게 자리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이좋게 어울려 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흔하게 보아온 그림이기 때문에 별 느낌이 없으시다고요? 그렇다면 아직 충분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약간 달아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에서는 편의상 윗 쪽의 붉은 부분을 양으로, 아랫 쪽의 파란 부분을 음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한쪽이 음이라면 다른 한쪽은 양인 것이고, 한쪽이 양이라면 다른 한쪽은 음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앞에서 음양은 상호 대대하는 존재라고 말한 거 기억나시죠? 한쪽의 기운이 성(盛)해 가면 다른 한쪽의 기운은 꼭 그만큼 쇠(衰)해 가고, 한쪽의 기운이 쇠해 가면 다른 한쪽의 기운은 꼭 그만큼만 성해 가는 것, 그것이 대대(對待)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더 성하거니 덜 쇠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 말은 양이면 양, 음이면 음, 한쪽의 기운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만약 양의 기운 안에서 양이 출현해서 생장해나가는 부분을 양중의 양(陽中之陽)이라고 한다면, 가장 왕 한 시점을 넘어 노쇠해 가는 부분을 양중의 음(陽中之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의 기운에서도 음이 출현해서 생장해나가는 부분을 음중의 양(陰中之陽)이라고 한다면, 음이 가장 왕한 시점을 넘어 노쇠해 가는 부분을 음중의 음(陰中之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더욱 정확하게 음양운동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태극의 모습과 비교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음양 론 에서 이 부분까지를 확실하게 이해하셨다면 이제 비로소 오행론으로 넘어가실 수 있습니다. 강의가 오행론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이 음양론에서 언급 해던 부분들은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음양을 확대한 것이 오행이고, 오행을 확대한 것이 천간 지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느 것 하나 외우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꼭 외워야 될 것이 있다면 외워야 한다고 언급해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외우는 것도 일단 이해가 된 다음이라면 훨씬 쉬울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다룬 음양에 관한 내용들은 대략적인 아웃라인일 뿐이라는 걸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음양 관은 본인 스스로가 이루어나가는 것이지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내용을 이해하셨다면 충분히 자신만의 음양 관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오행론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좀더 심화된 형태의 음양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행론으로 넘어가서 좀더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약간씩 오행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음양이 적용되는 예를 훑어볼 것입니다. 그럼 다음 강의에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보충>
음양오행설의 발전과정 - 역사적 측면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다루는 학문을 역학(易學)이라고 합니다. 역학은 천(天)과 인(人)을 이어주는 어떤 이치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서 거기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중화(中和)를 추구합니다. 이와같은 언표에서 몇가지의 중요한 개념들이 등장하는 걸 볼 수 있죠? 음양, 오행, 천인감응, 도, 중화... 이런 것들입니다. 일단 이런 말들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명리학이나 풍수 등 응용역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뿌리를 찾아본다는 데에서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입니다. 다른 내용들은 강의 사이사이에 해나가기로 하고 일단은 음양과 오행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음양과 오행을 한뭉텅이로 다루고 있죠. 그런데 정작 음양론과 오행론은 그 종자부터가 다릅니다. 즉, 따로 발전해 오다가 차츰차츰 서로의 영역을 들쑥날쑥 하더니 어느날 합방을 해버렸죠. 그후부터는 늘 함께 붙어 다닙니다. 도대체 이것들이 언제 합방을 했을까요? 여기에 천응감응사상, 도와 중화의 개념까지 슬그머니 들어와서는 원래 이것들이 한몸이었던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들이 가족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음양에서부터 출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은주시대 이전에 음양이라는 건 그렇게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그저 차고 뜨거운 것, 그늘과 양지 등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의미밖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로 기후나 천문현상을 설명할 때 음이니 양이니 하는 말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음양의 의미를 거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노자입니다.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짧은 책을 썼다고 전해지는 사람인데, 그 양반이 시중에 떠도는 허접한 음양의 개념에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가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노자의 사상은 당시에 그다지 환영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가끔 들춰볼 뿐 음양론이라는 것이 보편화되지는 못했습니다. 그후에 공자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해서 역시 구석방에 처박혀 있던 주역이라는 책을 끄집어내서 써먹는데...
역시 공자도 음양이라는 개념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공자의 입장에서 음양이란 그저 그의 이원철학 즉, '우주에는 상호대대(相互對待)하면서 상호작용(相互作用)하는 두 가지의 힘이 존재함으로써 만물을 발생시킨다'는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강유, 동정, 소식, 굴신, 왕래, 진퇴 등의 개념의 한 부분으로 취급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주역의 본문에 해당하는 괘사, 효사에는 음양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공자가 설해 놓았다고 하는 괘사전, 설괘전, 문언전 등 이른바 십익에 가끔 음양과 관련된 어구들이 나옵니다. 후세 사람들이 주역이 음양을 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은 사실 장자입니다.
장자가 그의 책 천하편에서 '역은 음양을 말한 것이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뒤의 사람들은 그저 '아, 그랬습니까?' 하고 주역을 해석할 때 당연히 음양론에 입각해서 해석을 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노장사상이라는 말도 있듯이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이 장자이니 당연히 음양의 의미를 중시했을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을 겁니다. 뭐, 엎어치나 매치나 마찬가지니까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하더라도 이치적으로 틀리진 않으니까 상관없는 일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말은 그럴 듯 한데 이상하지 않느냐? 주역의 괘상을 보면 양괘는 --이요 음괘는 - -이라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있는데 주역이 음양을 논한 게 아니라고?" 맞습니다. 그렇지만 노장 이전에 주역에 등장하는 괘상이라는 것은 점을 치기 위해 준비된 단순한 상징, 서로 상대적인 것을 의미하는 상징기호였을 뿐입니다. 여기에 무슨 우주적인 차원의 철학적 개념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는 뜻이죠. 이것을 공자는 자신의 이원철학을 설하는데 이용하려고 시도했고, 공자의 그러한 시도에 힌트를 얻은 장자가 '--괘는 양을 의미하는 것이요 - -괘는 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고 음양이라는 도구를 통해 재차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후에 춘추전국시대가 지나고 진한시대에 들어가 유가의 경전들을 음양(오행)론에 입각해서 해석을 하게 되면서 음양이라는 것이 우주의 본질적인 측면을 구성하는 두 가지의 큰 힘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더이상 해석을 가하고 말 건덕지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때방식 그대로 당연히 '우주가 음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지고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음양오행론은 한대(漢代)보다도 훨씬더 인식의 수준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던 음양관이 점차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햇빛이나 따뜻한 기후, 계절 등을 의미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로 천문이나 기후현상 등을 논하는 곳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점차 천지의 사이에서 실재하는 풍, 우, 회, 명 등의 몇가지 기운들과 함께 언급되는 두 가지 기운의 의미로 사용되어 그 해석의 범위가 넓혀졌고, 그 다음에는 우주의 본질적인 측면을 해명하는 실체적이고 근원적인 두가지의 기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음은 오행입니다.
사기(史記)의 역서(曆書) 부분에 "황제께서 오행을 세우시고 오부를 일으키셨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후세에 전해지는 전설로 파악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오행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상서(尙書)와 감서(甘書)로, 같은 내용의 이 두 서적에 "유호씨가 오행을 업신여기고 삼정을 태만히 하였다" 는 한 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때는 오행이라는 말이 그냥 '마땅한 도리' 정도의 의미로만 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은대에는 우리나라에서 3(三)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것만큼 5(五)라는 숫자를 중요시해서 무엇이든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근원적인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이기 때문에 오행이라는 것이 아니고, 5라는 숫자 속에 어떤 것들을 분류해서 넣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뒤에 처음으로 오행에 물질과 기능, 성질 등을 배당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은나라 사람 기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홍범(洪范)이라는 책입니다. 전국시대 말기 정도에 등장한 정치관련 서적인데, 이 책에 오행이라는 말이 잠깐 언급되어 오행에 몇 가지의 물질과 성질을 배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있는 홍범구주(洪范九疇)의 내용에 그것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오행의 성정을 의미하는 윤하, 염상, 곡직, 종혁, 가색 등의 어구도 여기에 등장합니다. 물론 춘추시대에 이미 오행을 이용해서 사물의 성패를 해석하는 일이 상당히 유행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고 산발적이었습니다. 기자 이후부터는 여기저기에서 오행이라는 개념을 갖다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떤 통일된 형태로 쓴 것은 아니고 그냥 우주와 인간 세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종류와 기능, 성질, 사리 등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각자 입맛에 맞게 적용시켜서 쓴 정도입니다.
오행이라는 틀이 본격적으로 조직화되는 것은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십이람(十二覽)에서부터 인데, 그때부터 오행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통일한 형태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여씨춘추는 진시황의 아버지로 알려진 거부 여불위가 수많은 식객들과 함께 편찬해 낸 책으로,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진대로 접어드는 시점입니다.
이렇게 따로 발전되어오던 음양이라는 개념과 오행이라는 개념이 합쳐진 형태로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음양가로 알고 있는 추연 이라는 인물로 부터 입니다. 이때는 이른바 춘추전국이라는 철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진한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이들의 음양 오행론에 입각한 온갖 술수와 요언 들이 중국전역을 휩쓸게 됩니다. 당시에 음양가는 유가, 법가, 도가와 더불어 제자백가의 4대 주류를 형성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배우게 될 명리학 이라는 것도 이때 이들에 의해 정리된 것입니다.
물론 '명리학의 역사' 등속의 글을 접해보신 분들은 "춘추시대의 귀곡자로부터 연유한 명리학이 어떻게 진한시대 초엽에 형성된 것으로 보느냐"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음양론과 오행론이 아직 무르익지도 합쳐지지도 않은 춘추시대에 어떻게 명리라는 체계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이 진한시대의 추연 이후로 그 학설을 등에 업은 일파들이 소진과 장의의 스승이요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스승인 귀곡자의 위명을 끌어들여 끼워 넣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음양 오행론에 입각한 각종 술수관련 서책들이 천 몇백편이 될 정도라고 하니 아마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술수들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사실 추연 이후 음양 오행론에 의해 여러 가지 술수들이 등장한 것이 아니고, 그 전에는 뿌리 없이 떠돌던 갖은 술수들이 음양 오행론이라는 학문적인 틀 속에 들어온 것으로 봐야 옳을 것 같습니다. 천문, 상법, 역법. 시구, 잡점, 부적, 방술, 종교, 무술 등 미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들, 근거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아무튼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술수들이 음양오행이라는 틀 속으로 몰려듭니다.
추연은 오행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사물 정도로 파악한 게 아니고, 우주와 인간사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다섯 가지의 원소 혹은 기(氣)로 파악했기 때문에 이런 술수들이 쉽게 음양오행의 틀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추연이 설했던 음양오행은 지극히 유물론적으로 자연현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하늘의 순리에 따라 왕조의 교체까지도 가능하다고 보는 그의 역사철학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온갖 방사와 신선설, 근거없이 길흉을 점치던 참서, 신비주의적인 종교 등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와 무언가 이론적 바탕을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죠.
이런 경향은 한대의 동중서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대할 수 있는 명료한 음양오행의 형태로 정리됩니다. "천지의 기는 합해지면 하나가 되고, 나누어지면 음양이 되고, 나열되어서는 오행이 된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사시(四時)를 오행운행의 경과로 보았고, 하늘과 인간은 서로 밀접한 형태로 감응하여 움직인다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주장하여,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자세를 견지합니다. 더불어 음양오행의 방식으로 유가의 경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합니다. 물론 음양오행설은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식자들은 이러한 학설을 허탄한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순자 같은 사람은 천도와 인사는 전혀 무관하며, 화복은 모두 인사에 달렸다고 음양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유가(儒家)의 여러 경전에는 음양 오행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가에서도 음양오행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렇게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며, 더 나아가 한대에 동중서의 건의로 백가를 물리치고 유가가 선양되었기 때문인지 한대이후의 유가는 거의 음양 오행화된 유가로 기울게 됩니다. 추연에 의해 자연철학이자 역사철학으로 한차례 변모했던 음양오행설이 또다시 유가에 의해 정치철학으로 변모되어 당시 최고지성들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학설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대 수 백년 동안 위로 천자에서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음양오행의 관념이 깊게 뿌리내리게 되고, 그러한 내용들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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