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의 생성과정
앞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볼까요?
무극이 태극을 낳고 태극으로부터 음양이 태동되었습니다. 이 음양의 이기가 서로 질과 형을 부딪치며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다섯가지 요소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오행(五行)이 생성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주만물을 다섯가지의 요소로 구분해서 관찰해 보려는 오행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목화토금수라는 이름은 음과 양의 배합비율이 다른 정도를 의미하는 것일뿐, 실제의 나무, 불, 흙, 쇠, 물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개념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 편하도록 가까이 있는 물상 중에서 성정이나 형질이 비슷한 것을 취해서 쓴 이름이니까 말입니다.
오행과 가장 유사한 개념을 찾는다면 기후, 특히 계절의 측면을 생각하시는 것이 타당합니다. 원리적인 측면에서 음양 오행학 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있는 책이 "황제내경"인데 이 황제내경에서 다루는 주 내용들이 바로 운기(運氣), 즉 기후와 큰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계절의 측면도 오행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데, 기후라는 것은 매일매일 변화하는 측면이 강한 것이고, 계절이라는 것은 비교적 변화하는 측면이 적은 것입니다.
왜 목화토금수 다섯 가지인가?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다섯가지로 분류해 놓았고, 후세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확대 부연설명한 것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을 뿐입니다. 인도의 경우처럼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원소를 써도 상과없는 일이고, 몇가지를 더 추려넣어서 열가지로 나누어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니, 우주만물이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강의를 진행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겁니다.
주역의 시각으로 볼 때는 조금 다릅니다. 태극 양의, 즉 음양(陰陽)이 다시 각자 음양으로 나뉘어 사상(四象)을 이루는데, 이를 각각 태음, 소양, 소음, 태양이라고 합니다. 음에서 음양(태음, 소양)으로 나뉘고, 양에서 음양(소음, 태양)으로 나뉘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이렇게 나뉘어진 사상은 본래의 성질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여기에서 '음양이 각자 음양으로 나뉘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음양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운동과정으로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1년의 음양운동을 크게 양쪽의 봄여름과 음쪽의 가을겨울로 나눌 수 있고, 양쪽의 봄여름을 다시 음양으로 구분해서 봄(양중의 음), 여름(양중의 양)으로 나눈다면 음쪽의 가을겨울도 가을(음중의 양), 겨울(음중의 음)으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이미 보신 바 있습니다. 넷으로 나뉘었죠? 이것이 바로 사상입니다.
사상은 그 특성이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음양으로 구분한 것보다는 좀더 구체적이고, 여기에서 더 확대부연하면 상당히 복잡해질 것입니다. 1년을 예로 든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성은 거의 변하지 않지만, 1월, 2월, 3월... 식으로 더 세분화시켜 놓으면 그 특성을 파악하기가 꽤나 힘들어질 것입니다. 동무 이제마 선생도 사상의 특성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서 사람의 체질을 평생 변하지 않는 네 종류의 체질로 분류한 사상의학을 발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그림도 한번 보시죠. 이 그림은 첫번째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 보여드렸던 그림입니다.
중간지점에서 생겨난 양이 생장->왕->노쇠->사멸 과정을 거친 후에 또다시 중심점을 향하고, 그 중심점에서 생겨난 음이 똑같이 생장->왕->노쇠->사멸 과정을 거쳐서 다시 중심점을 향하고 있는 걸 보실 수 있죠? 앞에서 보셨던 것처럼 음과 양이 각자 내부적인 음양으로 명료하게 구분되고 있는 것보다는, 변화과정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조금 복잡해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똑같은 상황입니다. 음이 음과 양으로 나뉘고, 양이 다시 음과 양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여기에 토를 달아보겠습니다.
양쪽의 편에서 갈라진 음양에 목(木)과 화(火)를 붙이고, 음쪽의 편에서 갈라진 음양에 금(金)과 수(水)를 붙여보았습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상에 대입해 본다면 목은 소음, 화는 태양, 금은 소양, 수는 태음에 해당하게 됩니다. 목은 소음으로 양의 생장과정에 해당하고, 화는 태양으로 양의 사멸과정에 해당합니다. 또 금은 소양으로 음의 생장과정에 해당하고, 수는 태음으로 음의 사멸과정에 해당합니다. 목화금수만 따로 놓고 보았을 때도 그 안에 음과 양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에서 한가지가 빠져있죠? 토(土), 그렇습니다.
토는 양의 기운이 극에 달했을 때 음의 기운쪽으로 방향을 틀어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일종의 중재자입니다. 음의 기운이 극에 달했을 때는 달리 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양의 기운은 무한히 팽창하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하지만, 음의 기운은 스스로의 내부에서 양의 기운을 조장해 내기 때문에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양은 목->화->토->금->수->목...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만물을 형성하고 천변만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앞 그림에서 중앙에 해당하는 지점을 토(土)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오행을 방위에 할당했을 때 방위상으로 중앙이 토에 해당한다는 뜻입니다. 토 자체의 기능은 "운동방향을 바꾸게 해주는 힘"입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핸들에 해당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토입니다. 자동차의 기어에 해당한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기어라는 것은 진행속도를 바꾸기 위한 것, 즉 변속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방향의 선회"라는 土의 의미와 정확하게 부합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방향을 선회시키는 힘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火에서 金으로 넘어갈 때 강압적으로 방향을 선회시키는 힘과 水에서 木으로 넘어갈 때 자생적으로 방향을 선회시키는 힘, 두 종류입니다. 바로 앞에서 水에서 木으로 넘어갈 때는 자생적으로 양의 기운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土라는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土의 원리적인 측면으로 볼 때 음토인 기토(己土)가 자생적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힘이고, 양토인 무토(戊土)가 강압적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토와 기토를 놓고 보았을 때, 土가 가진 원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土의 작용은 양에서 음으로 넘어갈 때만 작용합니다.
사상(四象)에는, 즉 주역에는 따로 중재자 역할을 하는 토(土)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이 주역과 음양오행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관이 있다면 둘다 그 뿌리를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 두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둘 다 자연의 이치를 합당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진리이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주역과 음양오행의 경계를 허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은 팔괘로 이어져 64괘로 분화되고, 오행은 다시 하늘 쪽의 양과 땅 쪽의 음으로 나뉘어져 양의 기운은 십천간(十天干)으로, 음의 기운은 십이지지(十二地支)로 분화되게 됩니다.
음양이 오행으로 발전 되어가는 과정에서 음과 양이 구체적으로 세분화되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는 양중의 음(陽重之陰)을 목(木), 양중의 양(陽中之陽)을 화(火), .. 그런 식으로 대입만 했기 때문에 약간의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로 앞의 그림을 잘 살펴보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각 오행이 위치해 있는 지점을 특히 유념해 보십시오. 각 오행안의 작은 두개의 원들은 木의 경우라면 갑목(甲木), 을목(乙木), 火의 경우라면 병화(丙火), 정화(丁火).. 이런 식으로 각각의 오행안에 내재하는 음과 양입니다.
일단 태초의 음기 속에서 막 양기가 생겨나는 시점으로부터 살펴본다면,
막 생겨난 양기가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음기 속을 의욕적으로 뚫고 나가려는 상태가 목(木)입니다.
어느 정도 음기를 뚫고 나온 양기가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가려고 하는 상태가 화(火)입니다.
음기의 강력한 제재로 양기가 위축되어 다시 응집되기 시작하는 상태가 금(金)입니다.
음기의 강한 힘에 의해 응집된 양기가 매우 극소하게 응고되는 과정이 수(水)입니다.
木과 火 상태의 강한 양기와 金과 水 상태의 강한 음기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곳이 바로 화(火)와 금(金)의 사이인데, 이 火와 金의 충돌을 막기 위해 중재자이자 완충지대로 토(土)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음양의 정면충돌을 막는 장치가 바로 土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土는 자신만의 개성이 없고 충실한 중재자 역할만을 수행합니다. 土를 제외한 나머지 4행의 특성을 살펴볼까요?
木 - 어디든 끝없이 뚫고 나가려고 한다.
火 - 한없이 흩어지려고 한다.
金 - 끊임없이 뭔가를 모으고 싶어한다.
水 - 한없이 응고되려고 한다.
오행중에서 음기가 가장 강하게 내포된 기운이 수(水)이고, 양기가 가장 강하게 내표된 기운이 화(火)입니다. 그래서 오행의 운동은 원초적인 측면에서 보면 수기(水氣)가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변화운동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수기(水氣)에 대항해 나가는 화기(火氣)의 도전과 응전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水는 발산되면 火가 되고, 火가 응집되면 水가 되는 것이니, 水는 주관적인 실체이고 火는 변화된 모습입니다.
<오행의 개괄적 이해>
앞에서 오행의 이름인 목화토금수는 그 이름과는 상관이 없는 개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만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양운동의 시작단계에서 양 중의 음으로 끝없이 뚫고 나가려고 하는 기운", 그렇게 말하면 말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걸 찾아내서 이름을 붙였으니 그게 바로 목(木), 나무라는 겁니다. 이런 작업을 취상(取象)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물상(物象)중에서 유사한 것을 가져다 쓴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의 이치는 무형의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象)의 모습으로 드리워집니다. 그래서 金剛經에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라고 하셨죠. 우리가 이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어떤 것을 그려낸다고 할 때,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한 후라면 우리 주변에서 그것과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내서, 그것을 토대로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비교적 근사치로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근사치로 그려낼 수 있을 뿐이지 정확하게 "그것"은 아닙니다. 가장 근사치의 것으로 정확한 "그것"을 유추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상(象)입니다. 상에 빠지면 정확한 "그것"을 보기 힘들지만, 상에 의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그것"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상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르킵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달이지 손가락이 아닙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방향을 보지 않고서는 달이 있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 상이고,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달입니다. 이해하시겠죠? "상에 의지하되 상에 빠지지 말라!" 이것이 역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이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모토입니다.
단단한 땅을 뚫고 힘차게 지면위로 솟아오르는 나무(木)의 특성과 "음양운동의 시작단계에서 양중의 음으로 끝없이 뚫고 나가려고 하는 기운"이라는 개념이 유사하다고 해서 나무(木)가 그 기운 자체가 될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선인들이 목(木)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놨지만, 나무라는 물상 자체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면 뒤에서 목화토금수의 특성들을 무한히 확대부연하는 과정에서 자칫 길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전체적인 측면에서 오행을 이런 관점, 저런 관점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행의 순서에 대해 살펴볼까요?
오행의 순서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배당한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木->火->土->金->水 상생의 관계를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그것이 이치에 합당하니 우리도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오행은 木 火 土 金 水의 순서대로 진행되어 나갑니다.
오행의 순서라는 것을 무언가가 시작되고 끝맺음을 맺게 되는 한 고리의 매듭이라고 보시면 좋습니다. 시작부분이 목에 해당하고, 끝 부분이 수에 해당하며, 목에서 시작해서 수에 이르렀을 때 한 고리의 매듭을 맺게 됩니다. 음양이 운동하는 과정을 다섯 가지의 과정으로 확대한 것뿐이니 당연히 여기에도 음양의 이치가 그대로 대입됩니다. 가상의 중간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 중간점을 중심으로 음양으로 분리해 볼 수 있습니다. 음 부분에 해당하는 오행에는 음의 속성이 묻어나고, 양 부분에 해당하는 오행에는 양의 속성이 묻어납니다.
항상 부분을 생각할 때는 전체적인 면을 먼저 보고 그 안에서 부분을 봐야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음양에서 오행으로 확대했다고 해서 목화토금수라는 부분적인 면에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음양이라는 전체적인 면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겨우 다섯(?)으로 확대된 것뿐인데 이 과정에서 전체적인 면을 보지 못한다면, 나중에 이것이 열개(천간)로 확대되고 열두개(지지)로 연역되었을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천간지지가 교차하고 합충 변화가 무성해지면 더 이상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결국 두 손을 들고 마는 상황을 연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매듭이 오행의 진행과정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느 것이든 이렇게 오행에 입각해서 그 진행상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오행에 대입해서 생각해 볼까요? 위에서 언급했던 각 오행의 대략적인 특성을 생각하시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뒤에서 각 오행의 개별적인 특성들을 자세하게 다룰 것이니 구체적인 사항들은 그때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음양의 시기로 구분해 본다면, 태어나서 중년의 나이까지를 양으로, 중년 이후 죽을 때까지의 시기를 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의 시기는 자라나는 시기이고, 음의 시기는 움츠려드는 시기입니다. 양의 시기에는 몸도 마음도 의지도 크지만, 음의 시기에는 몸도 마음도 의지도 수그러듭니다. 그 분수령이 되는 중년의 나이를 대략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태어나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는 시기까지를 양기가 태동하는 木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누구나 발랄해 보입니다. 어린애들은 어디든 치고 나가고 싶어합니다. 어디로 튈줄 모르고 자기 마음을 자기 자신도 모르지만 무슨 일이든 의욕만큼은 하늘을 찌릅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되고 아가씨가 됩니다. 이 시기를 火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이 시기의 남녀는 모두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발산해 냅니다. 그럼으로써 나비가 꽃을 찾고, 꽃이 나비를 불러들이듯 각자에게 맞는 짝을 찾게 됩니다.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로 만난 두 사람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눈을 떠가면서 자기자신만을 주장할 수 없는 시기가 됩니다. 이 시기가 土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자신을 죽이고 상대를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조화를 이뤄나가게 됩니다. 이 조화의 과정을 통해 양으로 발산하기만 하던 기운이 음으로 수렴되기 시작하는 방향으로 일대 방향전환을 합니다.
사실 중년의 시기를 土의 시기로 놓고 보기는 하지만, "방향의 선회"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갈 때도 土의 시기로 볼 수 있고, 청년기에서 장년기로,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넘어갈 때도 土의 시기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실질적으로 중년이라는 건 없다는 거죠. 청년의 시기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장년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니 말입니다. 土에 해당하는 환절기는 늘 위험과 기회가 교차하는 시기입니다.
나이가 들고 장년이 되어 이제는 문득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기에 접어듭니다. 金의 시기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뭔가 하나를 이루어놓고 싶다는 욕심도 생깁니다. 그만한 힘도 있습니다. 자신이 해오던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은퇴해서 쉬고 싶어집니다.
이제 일에서도 은퇴를 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말년에 접어듭니다. 水의 시기입니다. 그 늠름하고 아름답던 육체도 초라할 만큼 왜소해졌습니다. 이제는 뜻도 의지도 약해졌지만 일생을 통털어 적어도 한가지만큼은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끝내지 못하면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할 것 같습니다. 책, 이름, 자식.. 하다못해 회한이라도 남겨놓고 드디어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것으로 일생이라는 한 고리의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또다시 윤회전생을 한다면 또다른 매듭을 지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오행의 순서로 본 사람의 일생입니다. 너무나 간략하지만 말입니다.
하루의 측면에서 오행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새벽녘에서부터 해가 막 지는 시점인 저녁까지의 시간을 양으로 보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저녁시간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간으로 환산해서 본다면 새벽 3시 30분에서 오후 3시 30분까지의 시간을 양으로,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날 새벽 3시 30분까지의 시간을 음으로 봅니다. 새벽이 너무 빠르고 저녁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이 드시죠? 그래도 양의 기운이 생(生)하기 시작하고, 음의 기운이 생(生)하기 시작하는 시간을 그 시간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오후 3시 30분 전후를 양의 시간과 음의 시간이 교차하는 시간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24시간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황도대의 각 별자리에 태양이 머무는 시간인 2시간을 1시각으로 하여 하루를 12시각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12를 4로 나눈다면(실질적으로 土의 시각은 없는 것으로 보고) 각 오행에 할당된 시각은 3시각씩이 됩니다.
그래서 12지지가 할당된 12시각제로 봤을 때, 인묘진(寅卯辰)시를 木, 사오미(巳午未)시를 火, 신유술(申酉戌)시를 金, 해자축(亥子丑)시를 水로 봅니다. 목화금수에 해당하는 시각의 마지막 부분, 즉 진술축미(辰戌丑未)시가 土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土에 해당하는 시간은 木火金水의 마지막 시간에 배당되어 다음 오행, 아니 사행으로 방향을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시는 3시 30분~5시 30분, 묘시는 5시 30분~7시 30분, 진시는 7시 30분~9시 30분까지로 木에 해당합니다. 예전 허준선생의 야담에, 애를 낳지 못하는 부인이 와서 울고불고 매달리자 허준선생이 한 달 동안 새벽이슬을 받아다가 마시면 애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나옵니다. 왜 새벽이슬일까요? 그것은 생명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시간에 맺힌 이슬이기 때문입니다.
사시는 9시 30분~11시 30분, 오시는 11시 30분~오후 1시 30분, 미시는 1시 30분~3시 30분까지로 火의 시간에 해당합니다. 화는 양중의 양이기 때문에 화의 시간은 덥습니다. 실질적으로 가장 더운 시간은 오시이지만, 우리가 체감하기로 가장 더운 시간은 미시입니다. 한참 더울 때 땅에 축장되어 있던 태양의 열기가 복사되어 나오는 시간이 바로 미시의 끝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신시는 3시 30분~5시 30분, 유시는 5시 30분~7시 30분, 술시는 7시 30분~9시 30분까지로 金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金에 해당하는 시간은 하루동안 해오던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편안하게 쉴 수 있겠지만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불편할 겁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계산해 보는 시간이 되겠죠.
해시는 9시 30분~11시 30분, 자시는 11시 30분~새벽 1시 30분, 축시는 1시 30분~3시 30분까지로 水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水에 해당하는 시간은 새로 밝아올 하루를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입니다. 내일을 위해 최대한 양기를 비축해두는 시간이 바로 水의 시간입니다. 자연의 이치상 이 시간대에는 잠을 자야 합니다. 이 시간대에 잠을 자지 못하면 다른 시간대에 아무리 많은 잠을 자도 몸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매일 새로 태어나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루도 그렇고 일년도 그러하며 우리 인간의 일생도 똑같습니다. 그 사람이 보내는 하루를 보면 그 사람이 일년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보내는 일년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이 어떠할 것이라는 걸 미루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火와 水의 측면에서 오행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오행 중에서 음기가 가장 강하게 내포된 기운이 수(水)이고, 양기가 가장 강하게 내포된 기운이 화(火)입니다. 그래서 오행의 운동은 원초적인 측면에서 보면 수기(水氣)가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변화운동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수기(水氣)에 대항해 나가는 화기(火氣)의 도전과 응전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水는 발산되면 火가 되고, 火가 응집되면 水가 되는 것이니, 水는 주관적인 실체이고 火는 변화된 모습입니다.
바로 앞 <오행의 생성과정>에서 음기를 대표하는 것이 水, 양기를 대표하는 것이 火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水가 발산하면 火가 되고, 火가 수렴되면 水가 됩니다. 이런 이치를 물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이 팽창하면 불이 되고 불이 응축되면 물이 되고... 이런 현상을 어떤 현실적인 물상에서 관찰할 수 있겠습니까? "음양이란 상대적인 모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음양이라는 것은 한번은 발산하고 한번은 수축하는 운동을 의미합니다. 소강절 선생이 그랬다고 하던가요? 10년이 넘게 자신의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과정에서 음양오행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접어지고 한번은 펴지는 것이 바로 음양입니다. 접어지는 것이 水이고, 펴지는 火입니다. 막 펴지는 상태가 木이고, 완전히 펴진 상태가 火이며, 다시 접어지려는 상태가 金이고, 완전히 접어진 상태가 水입니다. 土라는 것은 펴진 손을 접으려고 하는 마음, 혹은 접어진 손을 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방향타가 되어 손이 접어지고 펴집니다. 이것이 음양오행입니다.
火와 水는 순양과 순음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火와 水가 음양의 경계를 구분해주는 선의 위와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木은 火를 향해 움직이고, 金은 水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완전하지 못한 양인 木이 완전한 양인 火를 향해 움직이고, 완전하지 못한 음인 金이 완전한 음인 水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작용의 순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木은 金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金은 木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며, 火는 水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水는 火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모든 오행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水이고, 水에서는 다시 木이 발생하여 새로운 오행의 과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간략하게 보면 마치 불빛이 한번 깜박이는 과정과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달리 보면 전파 같은 것이 한번 파동을 일으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 하는 문제는 바로 오랫동안 물리학계의 논쟁거리가 되어왔었는데 수많은 실험 끝에 근래에는 정리가 되었다죠? 바로 "빛이란 입자의 속성과 파동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빛이란 입자가 파동 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같은 논리로 음양의 깜박임은 오행이라는 입자들의 운동을 통해 파동의 형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깜박임의 상하 정점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火와 水입니다.
다음은 木과 金의 측면에서 살펴볼까요?
오행 중 양 중의 양인 火와 음 중의 음인 水는 형체를 갖지 않은 것입니다. 양 중의 음인 木과 음 중의 양인 金은 형체를 가진 것입니다. 형체를 갖지 않은 것과 형체를 가진 것을 음양으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구분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형체를 갖지 않은 것은 양이고, 형체를 가진 것은 음입니다. 순수한 것은 양이고, 섞인 것은 음입니다. 火와 水는 양이면 양, 음이면 음의 위치에 가있는 반면, 木과 金은 그 자체로 양과 음이면서도 순수한 기운에 뭔가가 섞여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木이 양 중의 음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木에 섞여있는 게 뭘까요? 그것은 바로 金이라는 음의 기운입니다. 木이 자신의 성정대로 뭔가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힘을 한곳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힘을 한곳으로 집중한다"는 것은 양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죠? "힘을 한곳으로 집중하는 것", 바로 그것이 金의 속성입니다. 木에 섞여있는 기운이 金기운이고, 그래서 木을 양 중의 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金기운에도 뭔가가 섞여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金이 음중의 양이라는 말은, 金이 가진 음의 속성중에 양의 속성을 가진 기운이 섞여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金 속에 섞인 양의 기운, 그것은 木의 기운입니다. 金이 자신의 성정대로 뭔가를 모을 수 있기 위해서는 한없이 흩어져 있는 기운들을 한칼에 뚫어버릴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金이 가진 살기, 이른바 숙살지기입니다. "뭔가를 관통해 나가는 힘", 그것은 일반적인 음의 속성과 다르지 않습니까? 金이 휘두르는 칼끝에 해당하는 속성이 바로 木의 속성입니다.
이렇게 木과 金이 서로 상대적이면서도 서로의 힘을 의지하고 있는 것은 음양의 이치에 따른 것입니다. 木은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金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金 또한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木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바로 金이고, 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바로 木입니다.
그런데 火는 양의 주인이고, 水는 음의 주인이기 때문에 다른 기운이 섞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火는 방만한 주인처럼 그대로 한없이 흩어지기만 하려고 하고, 水는 그렇게 부지런한 주인처럼 끝없이 응고되려고만 합니다. 이렇게 보면 火가 한없이 흩어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는 것이 木이고, 水가 끝없이 응고될 수 있도록 사전작업을 해주는 것이 金입니다. 이것은 火와 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木과 金의 입장에서 본다면 火와 水를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죠.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다보니 火나 水를 위해 대비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오행의 생극(生剋)관계는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木은 火를 생하고(목생화), 火는 土를 생하고(화생목), 土는 金을 생하고(토생금), 金은 水를 생하고(금생수), 다시 水는 木을 생하는 것(수생목)이 오행의 상생관계입니다. 생한다고 하는 것은 각 오행이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수행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이지 반드시 木이 火를 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행의 상극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이 토을 극하고(목극토), 화는 금를 극하고(화극금), 토는 수를 극하고(토극수), 금은 목을 극하고(금극목), 수는 화를 극하는 것(수극화)이 오행의 상극관계인데, 오행의 상극관계 또한 목이 토를 극할 의도를 가지고 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이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토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용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오행의 생극관계는 다른 강의에서 따로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니 이 강의에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간단하게 오행의 생성과정과 전체적인 모습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개별적인 오행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부분을 볼 때는 항상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살피시기 바랍니다. 오행을 볼 때는 음양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피시고, 천간지지를 볼 때는 오행과의 연관성과 음양과의 연관성을 동시에 살피셔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해가 되지 않고 그냥 외우는 형식이 되고 맙니다. 역학에서 외워서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때까지 오행의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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