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선생 건강교실/우주원리 강의

[스크랩] 오행의 개별적 특성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1. 5. 18. 14:00

<오행의 개별적 특성>

오늘은 각 오행의 개별적인 특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木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앞 강좌에서 막 생겨난 양기가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음기속을 의욕적으로 뚫고 나가려는 상태가 목(木)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때문에 木은 대단히 도전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木이 이렇게 도전적이 되는 것은 음기, 즉 水의 억압이 극심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水의 억압에 따른 반발심이 드러나는 상태가 木입니다. 木의 본성은 발산하는 기운입니다.


용출(湧出)하는 힘! 그 힘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릅니다.


자신을 극도로 억압하고 있는 음기를 뚫고 나가려는 木의 이미지는 끝이 날카로운 나선형의 전기드릴을 닮았습니다. 어디든, 무엇이든 뚫어버릴 것 같습니다. 여기를 뚫고 나가면 어디로 나가게 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지금의 이 참을 수 없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木의 지상과제입니다.


대단히 권위주의적이고 부모의 간섭과 통제가 심한 집안에서 반항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포용력이 넓기 때문에 반항아, 문제아가 되는 비율이 적습니다.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에 따르면 반발심과 도전의식도 강해지는 법입니다.


성이 문란하다 싶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는 일본과 유교적 사고에 입각해서 철저하게 성을 억누르는 우리나라를 비교해 볼 때 어느나라에 더 성범죄가 많겠습니까? 당연히 우리나라입니다. 성을 억누르니까 반발심이 커지게 되고 그만큼 성범죄가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木이 보여주는 도전의식, 반발심, 의욕적인 투지같은 것이 바로 이런 水의 억압에서부터 생겨납니다.


이렇듯 木이 보여주는 의욕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이 충동적이고 반발적입니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본능적입니다. 꾸준하지 못하고 즉흥적입니다. 일단 강력한 추진력으로 행동부터 하지만 그 행동을 뒷받침해줄 뒷심이 부족합니다. 어디로 튈줄 모르는 럭비공과 같습니다.


그래서 木은 金의 기운이 도와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金이 도와준다면 일단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섰더라도 움직이면서 주변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뚫고 들어가는 드릴끝에 방향을 줄 수 있습니다. 분출되는 힘을 한곳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강한 추진력에 버티는 힘까지 더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木은 金의 기운이 보태져서 양중의 음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땅속에 박힌 씨앗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따뜻한 봄이 되어 땅밖으로 양기가 감돌게 되면, 음기에 의해 씨앗의 내부 깊은 곳에 축장되어 있던 양기가 용틀임을 하게 됩니다. 씨앗의 바깥쪽을 싸고 있는 건 단단하기 이를데없는 껍질, 즉 음기입니다. 어느 정도의 조건만 구비되면 씨앗속의 양기는 온 힘을 한곳으로 집중하여 그 껍질을 뚫고 나옵니다. 씨앗의 껍질을 싸고 있는 것도 땅이라고 하는 강력한 음기입니다. 씨앗속의 양기는 그 땅덩어리까지 뚫고 지표면으로 머리를 내밉니다. 이것이 木입니다. 옛 선인들이 木의 이미지를 취상하면서 식물, 즉 '나무'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木은 또다시 음양의 이치에 따라 양목의 기운으로 음기를 뚫고 나오고, 일단 음기를 뚫고 나온 후에는 음목의 기운으로 주변상황을 고려하여 사태를 수습합니다. 양은 종적인 운동이고 음은 횡적인 운동이며, 양은 동적인 운동이고 음은 정적인 운동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것이 천간의 갑목(甲木)과 을목(乙木)입니다.


木은 방향으로 말하면 동쪽이고, 계절로 보면 봄이고, 인생으로 보면 소년기에 속합니다. 더 세분화된 내용은 <물상의 오행 배속>편에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木은 金이라는 음기를 필요로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양에 속합니다. 계절로 보았을 때 봄이라고 그랬는데, 봄은 만물이 생장하여 발달해 나가고 번식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뚫고 솟아난 식물들은 새싹을 돋우고 꽃을 피우기 시직합니다. 추운 겨울동안 움추렸던 동물들도 황성한 활동과 번식작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양기가 왕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든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동물이건 식물이건 영양물질을 많이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욕심이 많습니다.


木의 욕심은 지극히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욕심입니다. 색욕, 혹은 욕정에 속하는 욕심입니다. 사춘기(思春期), 춘화(春畵), 춘정(春情), 매춘(賣春)... 그래서 木의 계절인 봄의 이미지는 육체적이고 성적인 상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춘기의 소년소녀들이 이성의 그림자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루종일 성과 관련된 상상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이러한 木의 본성때문입니다. 물론 木의 시기가 지나면 그런 성향이 상당부분 사라지게 됩니다만, 이 시기를 정상적으로 보내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성적인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추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음양의 이치라는 건 겉으로 양이면 속으로 음이 되는 법입니다. 겉으로 불길이 활활 타오를수록 속으로는 냉기가 더욱 거세게 솟아오릅니다. 몸안에 金氣가 충분해서 겉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제압할 정도라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금방 피로해 집니다. 마음은 천지사방으로 나돌아다니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온몸이 노곤하고 기운도 없어지고 꼼짝도 하기 싫어집니다. 이것이 흔히 '봄을 탄다'고 하는 병이 됩니다.


木은 음의 억압을 가장 심하게 받는 오행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그 작용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우리 삶의 측면에서 木의 부정적인 면을 살펴본다면, 아무 생각없이 행동하기 때문에 좌충우돌 하기 쉽고, 어떤 일이든 시작은 잘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이랬다 저랬다 심한 변덕이 심하고, 자기주장만 옳고 남의 조언이나 충고는 받아들일 줄 모르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득하게 일을 해나가지 못하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쉽게 좌절하고 맙니다.


목에 금의 기운이 적당하게 함유되어 있어서 정상적으로 작용할 때는 목의 작용이 부드럽습니다. 봄처녀의 허리처럼 하늘거리죠.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드러나는 형태는 지극히 유연해서 밖에서 보기에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다. 금의 기운이 부족하면 목의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밖에서 보기에도 매우 위험해 보이고, 금의 기운이 과도하면 목의 당돌함에 금의 살기까지 보태져서 극심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번에는 火에 대해서 살펴보죠.


 

음기를 뚫고 나온 양기가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가려고 하는 상태가 화(火)라고 했습니다. 얼핏 떠오르는 분위기가 만개한 꽃들을 연상시킵니다. 한껏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형형색색의 꽃들. 그도 그럴것이 火는 양중의 양이고, 세상에 거칠것이 없는 생명력, 그야말로 정열 덩어리입니다. 그렇게 갑갑하던 어둠과 축축한 음기를 뚫고 마침내 원하던 밝은 세상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벅찬 희열을 느끼겠습니까? 火의 본성은 퍼지는 기운입니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같은 횐희! 공기처럼 가벼워져서 끝도 없이 둥둥 떠다니고 싶습니다.


양중의 양인 火의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용틀임을 하며 불꽃을 쏟아낼 것 같은 활화산을 닮았습니다. 넘치는 힘과 정열, 이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이라는 시간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뿐입니다.


火는 불타는 사랑입니다. 말 그대로 불덩어리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원수의 집안이라는 사실도 중요치 않습니다. 그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만인지상의 왕위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습니다.


중국 청조의 3대황제였던 순치제는 6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17년간 중국대륙을 다스렸는데, 어느날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인은 만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실의 예법상 결혼을 할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순치제는 왕위를 버리고 그 여인을 선택하여, 그 여인과 더불어 한 조용한 사원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순치제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아들이 청의 성조(聖祖)라고 불리우는 강희제입니다.


이렇듯 火가 보여주는 열정이라는 것은 불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앞도 뒤도 보지 않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필요없습니다. 위아래도 없고, 부모형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와 내가 존재하는 현재'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화는 순양지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힘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끝없이 발산해 나가게 됩니다. 양중의 음으로 어느정도 양의 기운을 제어해주던 木의 기운이 쇠잔해진 시점이니 그 내면은 텅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씨앗 이야기로 되돌아가 봅시다.


단단하기 이를데없는 음의 껍질과 땅덩어리를 뚫고 힘차게 지면위로 솟구쳐나온 양기가 점점 성장해 나갑니다. 커나가면서 줄기도 튼튼히 하고 위용차게 가지도 내뻗습니다. 그리고는 木의 기운이 마침내 쇠잔해지고 나면 화려한 꽃망울을 피웁니다. 형형색색의 꽃잔치가 벌어집니다. 불꽃, 옛사람들이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꽃에 비유했던 이유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정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꽃이 화려한 것은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비는 이꽃 저꽃을 옮겨다니면서 이 꽃의 꽃술에 저 꽃의 꽃가루를 묻혀 결국 꽃이 수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이 바로 火가 불꽃처럼 정열적이고 터질듯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火는 양 중의 양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양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발산하기만 할 것 같았던 火, 불꽃같은 아름다움으로 한없이 화려함을 뽐내기만 할 것 같았던 火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짝을 찾아 결국에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라는 이유 말입니다. 열매는 음이고, 궁극적으로는 水입니다. 火의 화려함은 결국 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火는 방향으로 말하면 남쪽이고, 계절로 보면 봄이고, 인생으로 보면 청년기에 속합니다.


火는 순양지기로서 계절로 보면 여름이라고 했습니다. 여름은 화려한 노출의 계절입니다. 청춘남녀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한없이 뽐내며 산으로 들로 젊음을 만끽하며 돌아다닙니다. 하룻밤 풋사랑에서부터 죽고못사는 정열의 사랑까지, 여름은 온통 사랑의 노래로 가득차 있습니다. 봄에 시작된 충동적이고도 본능적이며 성적인 본성이 여름에 이르러 그 절정을 맞이합니다. 엑스터시(ecstasy) 그 자체가 됩니다. 몸도 마음도 불덩어리가 됩니다.


하지만 여름에 느끼는 사랑의 엑스터시는 대부분 허욕입니다.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정사의 끝이 허망하기 이를데없는 것처럼 여름밤의 정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합니다만 외모가 화려한 사람일수록 머리에 든 게 없다고 하는 속설이 꼭 이 火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火의 욕심은 부리면 부릴수록 허망해 집니다. 내면이 허하면 허할수록 외면을 가꾸고 꾸미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무한반복하는 것이 바로 火입니다.


결국은 水의 방향으로 선회되어야만 火의 공허함이 사라지게 되고, 그 화려한 꽃망울은 열매를 맺는 용도로 사용되어야만 그 값어치를 다하게 됩니다. 자연을 관찰해 보면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일수록 지나칠 정도로 크고 화려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견실한 열매를 맺는 꽃은 크기도 적당하고 화려함도 적당합니다. 수정을 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에 딱 알맞은 정도로 말입니다.


신체적으로도 역시 음양의 이치에 따라 표면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 이면은 차갑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바깥으로 양기를 과도하게 소모하기 때문에 안으로는 소모되는 양기만큼 음기가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모되는 기를 보충하기 위해 여름에는 삼계탕을 먹고, 겨울에는 냉면을 먹었습니다. 계절에 맞춰 신체의 리듬을 살려주기 위해 여름에는 양기를 돋워주고 겨울에는 음기를 돋워줄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극양의 火는 양이 사멸해가는 시점이고 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가장 양이 성한 시점에서 음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또 가장 음이 성한 시점에서 양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고 음양의 법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은 土로 넘어갑니다.


한없이 발산해 나가려고만 하는 火의 기운을 수렴작용을 시작하는 金의 기운쪽으로 선회시키는 역할을 하는 중재자가 土라고 했습니다. 음은 스스로의 내부에서 양의 기운을 조장하기 때문에 土의 중재가 필요하지 않는 반면, 양은 끝없이 퍼져나가려는 속성때문에 土의 중재를 거쳐야만 음쪽으로 운동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土에는 개성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방향을 조정해 줄 뿐입니다. 방향의 조정을 위한 土의 본성은 통합시키는 기운입니다.

 



양도 아니고 음도 아니면서 양에 속하기도 하고 음에 속하기도 하는 土의 이미지는 양쪽의 무게를 똑같이 했을 때 평행을 유지하는 천칭저울을 닮았습니다. 아무런 감정의 표현도 없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법도 없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해대는 황희정승 같다고나 할까요?


만약 土의 작용이 없다면 우주의 모든 것이 끝없이 생장해 나가기만 할 것입니다. 나무도 끝없이 자랄 것이고 사람의 키도 수천미터쯤 자랄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라는 것은 만물이 끝없이 생장만 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하여 충분할 만큼 성숙이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성장을 정지시키고 성수(成遂) 단계에 들어가게 합니다. 즉, 해오던 작업을 정리하여 마무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리작업을 맡는 것이 金입니다.


하지만 火는 순양의 불덩어리이기 때문에 金이 곧바로 작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끊임없이 유리한 기회를 기다리는, 상호대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쪽이 원한다 해도 마음대로 그쪽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쪽의 세력이 커지만 반드시 다른 한쪽의 세력이 작아져야 합니다. 만약 음양이 다른 두 기운이 맞부딪친다면 엄청난 음양의 충돌이 일어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土의 중재를 필요로 합니다. 土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火는 자신이 원하는 水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金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에 의하면 土는 火가 무한분열해 나갈 때, 그 극한의 지점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른바 "유형(有形)이 무화(無化)되는 시점에서 무화(無化)를 발판으로 유(有)의 기초를 창조하게 되는 지점"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말이 좀 어렵죠?


그래서 土를 中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사욕도 없는 불편부당한 중재자가 土입니다.

土는 방위로 말하면 중앙이고 계절로 말하면 여름끝의 장하(長夏)이며 인생으로 보면 중년기에 해당합니다.


실제적으로 장하라고 하는 계절은 없습니다. 딱 꼬집어낸다면 시기적으로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늦여름의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시점을 일러 장하라고 합니다. 더위의 허장성세가 가장 극심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썰렁하지만 한낮에는 어떤 여름날보다 무덥습니다. 긴팔을 입자니 한낮에는 너무 덥고, 반팔을 입자니 아침저녁에는 너무 썰렁하고.. 옷입기가 참으로 곤란한 시기가 이 시기입니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시기로 흔히 우리가 환절기라고 부르는 시기도 대표적으로 이 시기를 가르킵니다.


인생으로 보면 중년기에 속하는데 대략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나이에 해당합니다. 40대를 일러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하던가요?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을 시점이기 때문에 어느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불편부당입니다. 실무자로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지만 아직 관리자가 되지는 못한 시기, 일반 기업체의 체계로 본다면 과장쯤의 위치에 있을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방위로 볼 때 토를 중앙이라고 하고, 또 토가 가지고 있는 성정을 중정지기(中正之氣)라고 하는데, 혹시 중간이란 어느 지점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시소를 떠올려 봅시다.


양쪽의 길이가 똑같다면 시소의 한가운데 지점이 중간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지점이 양쪽의 길이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겠죠. 그렇지만 한쪽의 길이가 더 길다면 중간지점은 긴 쪽으로 더 이동해 가야 평행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길이는 같은데 무게가 틀릴 경우에는 어떨까요? 같은 크기의 돌덩이와 나무토막을 시소의 양쪽에 얹어놓았다면 당연히 시소는 무거운 돌덩이으로 기울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소가 평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게가 무거운 돌덩이쪽으로 중심축을 옮겨야만 합니다. 돌덩이와 나무토막의 무게 차이가 많이 난다면 중심점이 거의 돌덩이쪽에 붙어있어야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되겠죠.


이렇듯 土는 시소의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양쪽에 木火라고 하는 양의 기운과 金水라고 하는 음의 기운을 올려놓고 두 힘이 평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土입니다. 멀리 있는 木과 水보다는 가까이 있는 火와 金쪽에 무게중심이 더 실리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火의 세력이 크면 火쪽으로 더 다가가고, 金의 세력이 크면 金쪽으로 더 다가갑니다. 시소의 축이 정확하게 중심에 맞게 되면 오행의 이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火는 土의 조정을 받아 金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土는 결국 火의 발산지기를 金의 수렴지기로 전환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앞에서도 잠깐 土의 기능에 대해 언급했는데, 土는 土를 제외한 사행(四行)의 끝마디에 배당되어 다음에 이어지는 행(行)으로 방향을 전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언급했던 土에 대한 내용은 土가 지지(地支)에 대해 작용하는 측면, 그러니까 土가 지축이 기울어진 채 돌아가고 있는 지구에서 작용하는 측면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은 土가 천간(天干)에 대해 작용하는 측면, 그러니까 지축경사라는 변수가 적용되지 않는 하늘에서 작용하는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토가 천간과 지지에서 조금 다르게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천간과 지지>편에서 좀더 자세하게 다뤄질 것입니다.


사실 음속에 양이 있고, 양속에 음이 있는 것과 같이 각 오행에도 개별적인 오행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木에도 목화토금수 오행의 작용이 있고, 火에도 목화토금수의 작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복잡해 보이지만 음속에서 양이 작용하고, 양속에서 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이 부분도 나중에 다른 강좌를 통해 다뤄보겠습니다.


역학에서 土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양의 기운을 음의 기운으로 돌려주는 역할때문에도 중요하고, 다른 사행(四行)의 기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각 오행에 포함되어 있는 土의 중재적인 기능은 木을 木답게 하고 火를 火답게 하며, 金을 金답게 하고 水를 水답게 하기 때문입니다.


土의 기운을 중정지기(中正之氣)라고 하는데, 木에 土의 중정지기(中正之氣)가 적당하게 구비되지 않으면 木의 기운은 넘치거나 부족하게 되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으로 그 작용이 드러납니다. 火土金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土의 기운이 적당하게 구비되지 않는다면 기운이 넘치거나 부족해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으로 그 작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土는 중정(中正)의 기운이기 때문입니다. 황제내경에서는 중정지기가 적당한 상태를 평기(平氣), 부족한 상태를 불급(不及), 지나친 상태를 태과(太過)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土 자체에도 土의 중정지기가 작용합니다. 土에서 중정지기가 부족하면 土의 중재작용이 힘을 갖지 못할 것이고, 중정지기가 너무 지나치면 土의 중재작용은 중재의 수준을 넘어 독재로 치달릴 것입니다. 토의 중재작용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서로 이질적인 기운들을 뭉치게 하는 기능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길이 오행대의에서 [오행전]과 [백호통]을 인용하여 "木은 土가 아니면 뿌리와 씨가 나서 무성하게 번영하지 못하며, 火는 土가 아니면 번영하지 못하니 土를 얻어야 형체가 나타나고, 金은 土가 아니면 틀을 만들어 이름을 날릴 수 없으며, 水는 土가 아니면 멈추거나 막아서 채울 수가 없다. 土가 작은 것은 부축하고 노쇠한 것은 도와서 그 도를 이루게 하기 때문에, 오행이 서로 土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 토는 네 계절의 끝에서 왕성하고 중앙에 거처하며, 土의 이름으로는 계절이 없다. 그러므로 사시와 함께 일어나니, 단지 사시에 의탁해서 서로 생해줄 뿐이다." 한 것은 바로 土의 이러한 점을 밝힌 것입니다.


모든 오행은 세가지 측면으로 그 작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즉, 해당 오행의 기운이 적당할 때, 그 기운이 부족할 때, 그 기운이 지나치게 많을 때, 세가지입니다. 앞에서 말한 평기, 불급지기, 태과지기도 같은 의미입니다. 해당 오행의 기운이 적당하면 그 본래의 성정이 긍정적으로 드러납니다. 기운이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부정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젠 金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음기의 강력한 제재로 양기의 발산작용이 위축되어 다시 응집되기 시작하는 상태가 금(金)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土의 작용에 의해 火의 운동방향이 金쪽으로 선회되었기 때문에 金이 본격적으로 본연의 임무인 수렴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金의 수렴작업은 金水 통일작용의 시작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金은 모든 면에서 木과 상반되는 성정을 보이게 됩니다. 金의 본성은 수렴하는 기운, 즉 모아서 조직화시키는 기운입니다.

 


木이 퍼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면 金은 한곳으로 모으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木이 넓게 퍼져나가는 힘에 방향성을 주기 위해 金의 기운을 필요로 한다면 金은 한곳으로 모아들이는 힘에 영향력이 미치는 반경을 넓히기 위해 木의 기운을 필요로 합니다. 무분열하게 흩어진 양기의 양과 크기를 줄이고 명실공히 질적으로 견실하게 만드는 것이 金의 역할입니다. 金의 수렴작용이란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일이기 때문에 金이 가진 성정을 일러 숙살지기(肅殺之氣)라고 합니다. 살기(殺氣), 엄숙하기 이를데없는 살기덩어리가 바로 金입니다.


金의 이미지는 번득이는 검을 치켜올리고 서있는 무사를 닮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무사.. 한눈에 봐도 무섭고 금방이라도 검을 날려 무엇이든 잘라버릴 것 같습니다. 오랜 단련으로 무사의 몸은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고 얼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그 무표정의 얼굴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것들을 얼려버릴 것 같이 차갑습니다. 암살을 명령받은 대상만 보인다면 꺼리낌없이 그 검을 휘둘러 베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는 무사... 이 팽팽한 긴장감, 이것이 바로 金의 이미지입니다.


 

 

온 힘을 집중해서 내리치는 힘이 金에 속하고, 이 살상반경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木입니다. 金에 木의 기운이 부족하다면 金이 작용하는 영역이 너무나 협소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金의 작용력이 상당부분 희석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金에 木의 기운이 적당하면 金의 작용도 적당할 것이고, 木의 기운이 과다하다면 작용반경은 넓지만 수렴시키는 힘이 약해져서 자칫 金의 작용이 木의 작용과 흡사해질 수도 있게 됩니다.


앞부분에서 木과 金은 형체를 가진 오행이라고 했는데, 그 형체라는 것을 껍질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木은 껍질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오게 하는 기운이고, 金은 껍질의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밀어 넣는 기운으로 말입니다. 木은 양기가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껍질을 점점 얇게 만들고, 金은 양기를 밖에서 안으로 밀어 넣고 나오지 못하도록 눌러야 하기 때문에 껍질을 점점 두껍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목들도 봄에는 껍질이 얇고 부드럽고 가을에는 껍질이 딱딱하고 뚜껍습니다. 사람들도 그렇죠? 봄에는 옷이 점점 얇아져서 여름이 되면 아예 입은 것 같지도 않게 되고, 가을이 되면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해서 겨울이 되면 아예 눈코입을 빼놓고는 옷으로 칭칭 동여매지 않습니까? 가을에는 양기가 안으로 들어가고 음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춥습니다.


다시 봄에 뿌려놓았던 씨앗으로 돌아가 봅시다.


봄에 뿌렸던 씨앗이 점점 자라 줄기와 가지를 늘어뜨리더니 여름 어느날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더니 가을이 오자 꽃이 지고 꽃이 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맺어집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잎은 말라 떨어지고 약한 가지도 떨어져 나갑니다. 줄기는 딱딱해지고 크기도 점점 왜소해 집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한번만 불어와도 그대로 말라죽을 것 같습니다. 희망은 열매뿐입니다. 시간이 늦기 전에 열매를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키워서 남기는 것 뿐입니다. 옛 사람들이 금에 대해 취상을 할 때 "돌 혹은 쇠"라는 물상을 대입해서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돌처럼 딱딱한 껍질, 쇠처럼 날카로운 살기, 그것이 바로 金입니다.


金은 방향으로 말하면 서쪽이고 계절로 보면 가을이고 인생으로 보면 장년기에 속합니다.


가을, 왠지 가을이라는 말만 들어도 스산한 느낌이 듭니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 같고 괜히 우울해지는 것 같고 혼자 조용한 곳에 가서 사색에 잠기고 싶고..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가을이고 산산한 바람이 부는 창가에서 책을 끼고 앉아 읽고 싶어지는 시기도 가을입니다.


이럴 때 남자들이 바람나기 쉽습니다. 가을이 주는 음기는 여자들의 마음을 적당한 정도로 차분하게 하는 반면, 남자들의 마음을 지나칠 정도로 가라앉혀 버립니다. 남자는 양적이기 때문에 같은 음기를 받더라도 여자보다 심하게 받게 되니까 말입니다. 괜히 기분이 침울해 지고 이유도 없이 사는게 의미없이 느껴집니다. 일할 기운도 살 의욕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바둥대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고개를 쳐듭니다. 처자식이 내 삶에 크나큰 짐이 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내 인생은 처자식에게 저당잡혀 있는 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어 집니다.


인생으로 보면 장년기에 속하는데 대략 50대 정도의 나이가 이 시기입니다. 장년의 시기는 일년중의 가을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중년의 시기까지 그나마 괜찮았던 피부가 어느날 눈에 띄게 쭈글거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더이상 젊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다급하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데 아이들은 커서 벌써 결혼을 해도 될 나이가 되어 있습니다. 사는게 말할 수 없이 허무해 지고, 지금껏 헛살아온 것같은 생각이 고개를 쳐듭니다..


이러한 金의 기운을 조용히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이용하지 못한다면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결국에는 일년, 혹은 일생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등한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이라는 한 고리의 매듭을 아름답게 엮어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水입니다.


 

음기의 강한 힘에 의해 응집된 양기가 매우 극소하게 응고되는 과정이 수(水)라고 했습니다. 水의 이미지에서 새로운 탄생을 위해 극도로 웅크리고 있는 생명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작지만 그 안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씨앗 혹은 열매, 그 열매가 영글어 가는 과정이 水입니다. 껍질은 두껍고 그 작은 불씨를 싸고 있는 것은 온통 어둠입니다. 水의 본성은 응고시켜 감추는 기운, 즉 엑기스만 남기고 모든 것을 털어내는 기운입니다.


가장 냉정한 죽음의 이미지가 바로 水입니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듯이 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꿈을 꾸는지 도무지 알수 없습니다. 水가 가진 절대절명의 과제는 단 한가지, 꺼져가는 불씨, 즉 미약한 양기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 미약한 양기를 지키기 위해 겉으로 두껍디 두꺼운 성벽을 쌓아올립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을 짓습니다. 오직 양기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水가 보호하는 양기는 원초적인 생명력입니다. 최초에 음기속을 떨치고 나왔던 그때의 그 양기입니다.


그래서 水는 상당부분 원초적인 측면에서의 생명력과 연관시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정력을 말할 때도 水의 측면을 생각합니다.


사실 水는 온통 어둡고 축축한 음기속에 양기가 갇혀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심한 구속감을 느낄 것입니다. 구속감을 느낀다고 해도 사지가 꽁꽁 묶여있으니 달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머리를 굴려 생각하는 일뿐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그래서 水는 지혜라고도 말합니다. 불타는 열정이 火라면, 냉철한 머리, 그것이 水입니다.


水의 기질이 강한 사람은 머리에 생각은 많고 몸으로 움직이는 건 굼뜨니, 밖에서 보기에 음흉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 하지도 않으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처럼 보입니다. 水 자체도 자신의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깊이 감추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水의 기질이 강한 사람에게는 모두 비밀스러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어렵게 무언가를 겉으로 표현하고 드러낸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빙빙 돌려서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水는 매사에 부정적인 측면도 강합니다. 사람 자체가 음침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하고 반골기질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뚜렷한 뜻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아주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 반항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개혁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水는 인내심 하나는 최고입니다.


음중의 음인 水는 철저하게 이성적입니다. 감정적인 면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습니다. 水의 기질이 강한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기 쉽습니다. 水의 기질이 강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그말은 '한눈에 반한 사랑'이 아니라 '이모저모로 따져보니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사랑입니다. 같은 음기에 속하는 金도 차갑지만 그래도 金은 속에 충성심이면 충성심, 맹목적인 사랑이라면 맹목적인 사랑, 이런 뜨거운 감정이라도 가지고 있습니만, 水는 겉으로도 안으로도 차갑습니다.


씨앗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볼까요?


봄에 뿌렸던 씨앗 하나가 자라서 결국 또다른 씨앗 하나를 남겼습니다. 이 씨앗 하나를 만들기 위해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낸 것이고, 이 씨앗 하나를 위해 줄기와 가지가 뻗히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것입니다. 목적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 고리의 매듭이 끝나고 다음 매듭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매개체가 바로 이 씨앗 하나입니다. 이 씨앗은 생명덩어리 그 자체입니다. 이 씨앗은 봄이 오면 또다시 왕성한 생명력으로 그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씨앗이 씨앗으로 남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씨앗이 존재하는 이유는 벅찬 생명의 약동을 느끼기 위해서 입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삶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 바로 火입니다. 水가 춥고 어두운 음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는 것은 바로 그러한 火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水는 火를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水는 방향으로 말하면 북쪽이고, 계절로 보면 겨울이며, 인생으로 보면 노년기에 속합니다.


水의 본성이 응고하는 기운이듯이 겨울은 만물을 움추리게 만들고, 노년기의 인생은 몸도 마음도 움추려질대로 움추려져서 왜소해지는 시기입니다. 겨울은 춥고, 죽음이 바로 문턱앞에 와 있습니다. 이제 삶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자신이 이루었던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 태어나는 세대와 자연스런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삶과 일을 마무리해야 할 노년의 시기에 철부지 어린애처럼 부리는 욕심을 노욕(老慾)이라고 합니다. 노욕을 말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의 불안한 심리가 극단적인 욕심으로 발현된 것이 노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욕은 추해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더욱 추해보이는 것은 어린 여자를 맞아 회춘해 보겠다는 욕심입니다.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떠난다고 광고를 하고 가는 것도, 가기 싫어서 발광을 해대는 것도 추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은 시작보다도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해야할 일을 모두 끝낸 후라면 후회도 안타까움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한 일을 통해서, 그가 남긴 모든 것들을 통해서 그는 기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회전생이 실재한다면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렸던 사람일수록 지은 업이 많아서 음적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적게 소유하고 적게 누렸다면 그만큼 지은 업도 적을 것이니 다시 태어날 때는 양명한 생명으로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윤회전생하는 것은 업식(業識)이지 육체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업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기간동안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 보고 듣고 말하고 느꼈던 모든 것, 우리가 일으킨 찰나의 생각까지도 낱낱히 기록되어 있으니 불가에서는 이곳을 제8식 아뢰야식이라고 하고,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무의식의 표면에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생한 후에는 반드시 멸하는 것이 육체이고 물질이며, 생한 후에는 억겁이 지나도 멸하는 법이 없는 것이 업식이며, 영원히 생하는 법도 멸하는 법도 없는 것이 불성이라고 합니다.


업식은 영원불멸하여 쌓이고 또 쌓일 뿐 없어지지 않으나 불성을 보고 난 후에는 그 업식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하니 수천년 이래 그 많은 사람들이 불성을 보고자 애썼던 것이 아닐까요? 어머니의 뱃속에서 충분히 성장한 아기는 두렵더라도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혼자 숨쉬고 혼자 먹고 혼자 커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 세상은 볼 수 없습니다. 노년기의 마음은 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많은 경험과 지식이 지혜로 빛날 수 있습니다.


극음의 水는 그 깊고깊은 곳에 양기가 감춰져 새로운 생명으로 용틀림할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추우면 추울수록 그 내면에서는 뜨거운 생명이 고동치게 됩니다. 희망을 갖고 꿈을 꾸며 새로 태어날 그때를 위해 힘을 비축해 두는 시기가 바로 水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목은 문학적이고 화는 예술적이며 토는 즉물적이며 금은 관료적이며 수는 철학적입니다.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측면에서 보면


목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무언가를 계획하고 설계해서 실행에 옮기는 일에 능숙함을 보이게 됩니다.

화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어떤 일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측면이나 난관에 처했을 때 돌파해 나가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일단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강하게 밀어부치는 능력을 보이게 됩니다.

토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어지럽게 널려있는 일이나 사물들을 종합하고 통합시키는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금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금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기능인 통제능력과 조직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끊고 맺는 일을 정확하게 하게 됩니다.

수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수가 가진 원래의 기능인 지혜의 측면, 즉 개발하고 연구하는 분야쪽에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대략적이나마 각 오행의 개별적인 특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특성을 다룬 것은 아닙니다만 오행의 구분에 필요한 다뤘다고 봅니다.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계속 이어지는 강좌에서 보충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행을 볼 때는 반드시 음양을 전제로 해서 살피시기 바랍니다. 木은 전 오행을 통해서는 양의 측면이며, 火와 비교해서는 음이고, 金과 비교해서는 양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 나가시면 보다 쉽게 오행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능하면 물상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원리적인 측면에서만 오행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장 좋고, 그게 힘들다면 물상을 통하여 이해하되 각 오행의 본성을 염두에 두면서 물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福 祿 仁 壽
글쓴이 : 수리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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