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선생 건강교실/우주원리 강의

[스크랩] 오행의 상생 과 상극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1. 5. 18. 14:10

오행의 상생 과 상극


어쨌든 이전 강의에서 오행이란 "하나의 과정"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신다면, 이러한 과정에도 음양의 두 측면이 존재할 것이라는 걸 충분히 유추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행의 상생작용과 상극작용은 바로 이런 오행의 음양 두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목화토금수 오행을 다섯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이클로 보았을 때, 가장 간단하게 생각하면 첫번째 과정에서 두번째 과정 등으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상생관계라고 하고, 첫번째 과정에서 두번째 과정을 무시하고 세번째 과정으로 넘어가는 관계를 상극관계라고 합니다. 상생관계와 상극관계를 긍정적인 관계와 부정적인 관계로 보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사고(思考)는 그다지 바람직한 시각이 아니니 상생과 상극을 이해할 정도가 되었다면 그런 견해는 버리시고 오행의 원리적인 측면에서 사고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오행의 과정이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입니다. 생겨나서 자라나고 거두어서 감춰지는 순서가 오행의 한 사이클을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겨나서 자라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생이 되고, 그렇지 않고 생겨나서 곧바로 거두려고 하는 작용이 상극이 됩니다. 하지만 "생겨나서 자라나는 것"의 목적이 거두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생겨났을 때 수확이라는 목적의식을 갖지 않으면 자라나는 방향이 틀려질 수 있습니다. 상생작용과 상극작용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각 오행은 상극작용을 통해 극(剋)함을 받아 자신의 형(形)을 이루게 되고, 그럼으로써 상생작용을 통해 다음 단계 오행의 질(質)을 조성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木은 金의 극을 받음으로써 木 자신의 형을 이룰 수 있게 되고, 다음 단계의 오행인 火의 질을 조성함으로써 火를 생 해줄 수 있게 됩니다. 木에 金의 극이 작용하지 않으면 木 자신의 형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다음 단계의 오행인 火의 질을 조성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火를 생 해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 상생은 다음 단계 오행의 질을 생 해주는 힘이고, 상극은 상생에 필요한 선행조건인 형을 만들어주는 힘입니다. 상생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행되어 나가는 순서를 뜻하는 것이고, 상극은 단계에 따른 진행을 위해 필요한 힘을 확보하고자 하는 수단입니다. 모순과 대립이 없이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상극을 필요악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즉, 상극의 목적은 상생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증법적 논리에 의하면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반합 세단계를 거쳐야 된다고 합니다. 최초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正), 거기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이 필요하며(反), 그 과정에서 모순이 어느정도 제거된 현실을 이루게 된다(合)는 가설이 그것입니다.


불가의 입선단계도 동일합니다. 최초에는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선에 입문할 수 있습니다(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단계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표면적입니다. 그 다음은 모든 것을 회의하는 단계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심지어 부처까지도 부정하는 과정입니다(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이 단계에서는 표면적인 것과 이면적인 것이 뒤섞여 혼동의 극치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비로소 모든 것이 부정된 그 자리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게 됩니다(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단계의 긍정은 표면적인 것에서 이면적인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긍정입니다. 최초 단계의 긍정과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전혀 다른 셈입니다.


오행의 진행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오행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고(상생), 그 흐름을 타고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투쟁을 하며(상극), 그러한 상생과 상극이 얽힘으로써 한층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실질적인 상생)이 오행의 과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행의 상생관계는 만물이 진행되는 순서이고, 상극관계는 그러한 일의 진행에 힘을 실어주는 실질적인 원동력입니다. 상생이 전체적이라고 한다면, 상극은 구체적이고, 상생이 이상적이라면 상극은 현실적이고, 상생이 공간이라면 상극은 시간입니다.


오행의 상생관계는 하도(河圖)를 바탕으로 생겨난 개념이고, 상극관계는 낙서(낙서)를 바탕으로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도 미리 알아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앞 강의에서 보충강좌에서 <하도와 낙서>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는데, 그 자료를 주의깊게 보신 분이라면 오행의 상생과 상극이라는 개념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배포된 자료<하도와 낙서>를 읽어보지 못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살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관계를 물상으로 이해해서, 수생목(水生木)이니 물은 나무는 살려주고, 목생화(木生火)니 나무를 불을 살려주고...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10년이 아니라 백년을 공부해도 깊고 깊은 음양오행의 이치를 일할 수준 이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 공부할 때 기초적인 이해의 수단으로 물상을 받아들여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면 그 후에는 바로 버려야 하는 것이 물상입니다.


물상이라는 것은 "이해(理解)"라는 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뗏목과 같습니다. 망망한 강을 건너 저쪽 언덕으로 가자면 뗏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강을 건넜다면 뗏목은 버려야 합니다. 강을 건너면서 든 정도 있고 애써 만든 뗏목이 아깝기도 하고.. 이러저런 이유로 뗏목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강을 하나 건널 때마다 그 무거운 뗏목들을 차곡차곡 어깨에 메고 다녀야 하겠죠. 결국 가고자 하는 곳에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뗏목의 무게에 못이겨서 쓰러지고 말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원리를 바탕으로 이해를 해야 이할, 삼할, 사할... 오행의 이해수준을 높여갈 수 있습니다.


물상으로 이해했을 때의 폐단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생화(木生火)니 "불을 살리는게 나무"라고 이해했다면, 실제로 불을 살려주는 게 나무뿐일까요? 석유와 같은 기름을 끼얹어도 나무를 던져넣는 것보다 훨씬 큰 화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생화(水生火)가 되는 셈입니다. 석탄같은 것도 있습니다. 돌덩이죠. 석탄을 써서 불을 살린다면 금생화(金生火)가 됩니다.


목생화하기 위해 금극목을 통해 목이 형을 이루게 되는 원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깎아서 쓸모있는 물건으로 만드는 것을 금극목이라고 이해했다면, 그렇게 애써 도끼로 깎아 쓸모있게 만든 나무조각을 목생화하기 위해 불쏘시개로 써야 하는 결과가 빚어지게 됩니다.


상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극화(水剋火)니 "불을 끄는 것은 물"이라고 이해했다면, 불을 끌 때 물로만 끌까요? 촛불이라면 입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끌 수도 있는 일이고(木剋火), 꺼야할 불의 범위가 넓지 않다면 모래(방화사라고 하죠)같은 것을 끼얹어서 끌 수도 있는 일입니다(土剋火).


상극의 작용은 극을 받는 대상의 형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물로 불을 끈다고 이해했다면 "水가 火를 극함으로써 火의 형을 조성할 수 있게 해준다"는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물이 끼얹어진 축축한 불섶을 화의 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상으로 오행을 이해한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오행이 체로 작용할 때와 용으로 작용할 때를 애매모호하게 뒤섞어서 난삽하게 꿰맞추려고 하게 되고, 결국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거지를 부리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역학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지경에 빠져있는 형편입니다. 이 모두가 물상이 주는 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상이라는, 받아들이기 쉽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이 음양오행의 학문입니다. "근본적인 원리"라고 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처음엔 좁고 불편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점점 그 길이 넓어집니다.


오행의 상생관계는 "만물이 진행되는 순서"라고 말했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은 "계절의 진행순서"입니다. 이것을 오행에 대입해서 생각한다면 오행의 상생관계에 따라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이 더 나이를 먹으면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는 것도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 순서"입니다. 때문에 인생의 과정을 오행에 대입해서 생각하는 것도 오행의 상생관계에 따라 진행상황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진행순서에 따른 오행의 순서는 목화토금수의 순서대로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행의 상생작용도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으로 이어지고, 다시 목생화, 화생토.. 로 진행됩니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런 모양이 됩니다.


                 



하도에 대해 설명할 때는 방위를 지키느라고 토를 중앙에 두었기 때문에 한쪽 파이조각이 빈 모습이었죠? 하도에서 설명할 때 제시되었던 그림과 비교할 수 있도록 나란히 놓아볼까요? 오행을 어떤 일의 진행과정으로, 하나의 순환사이클로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원리적인 하도식 그림보다는 각 오행이 평등하게 늘어서 있는 그림이 훨씬 더 이해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상극은 순차적인 과정에서 한 단계를 건너띈 형태가 되기 때문에 상극작용은 순서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목극토, 화극금, 토극수, 금극목, 수극화라는 관계를 갖게 됩니다. 역시 방위를 고려하지 않고 낙서의 그림형태와 비교해서 보도록 하죠.


상생작용은 전체적인 과정을 일관되게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작용이고, 상극작용은 상생작용이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행되는 구체적인 작용입니다. 어떤 일이 진행되어 나간다고 하는 것은 처음과 끝이 있다는 뜻인데, 처음과 끝이 있다고 해서 결과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상극작용을 적절하게 받고 자라난 초목은 굵고 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잎과 꽃만 화려하게 나부끼다가 정작 쓸만한 열매는 하나도 맺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견실하게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상극작용입니다.


역시 이해를 돕기 위해 하도와 낙서를 합친 도형과 상생과 상극을 합친 도형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복잡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한가지만 생각하면 상생과 상극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상극을 통해 형체를 이루고, 상생을 통해 기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형이 없으면 질이 깃들 곳이 없습니다. 몸뚱이가 없으면 영혼이나 마음, 정신같은 것들이 머물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오행이라는 것은 한고리의 순환사이클이기 때문에 부분부분을 떼어서 보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순환사이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체 사이클중에서 어떤 단계에 해당하는지, 그 단계가 전체 사이클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상생이나 상극이라는 작용이 어떤 과정에서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생작용과 상극작용은 따로 떨어진 채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하고 극하는 관계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해도 숲만 봐서는 나무 개개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교육목적상 오행의 각 부분들을 개별적으로 떼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생과 상극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따로 떼어서 설명할 수는 없으니, 연관성이 강한 상생작용과 상극작용을 같이 묶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목생화 vs 금극목


木은 오행의 첫번째 단계이고, 火는 두번째 단계입니다. 첫번째 단계인 木은 감춰져 있던 양기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하는 단계이고, 두번째 단계인 火는 드러난 양기가 거침없이 퍼져나가는 단계입니다. 土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木火의 단계는 양에 해당하기 때문에 목생화는 양에서 양으로 확대되어가는 과정, 즉 양의 기운이 더욱 커져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생화, 즉 木이 火를 생해준다고 하는 것은 火의 단계에서 양기가 거침없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木의 단계에서 사전정지작업을 해주는 것으로 보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모든 과정의 초기단계가 바로 木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인생의 측면에서 보면 태어나서 어린아이로 자라가는 단계, 초목의 측면에서 보면 씨앗에서 싹이 터서 연약한 줄기와 잎을 뻗어내기 시작하는 시기, 하루의 측면에서 보면 미명으로부터 먼통이 터오면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 일년의 측면에서 보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어 비로소 만물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계절이 木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木의 성장단계가 지나고 그 성장기운이 힘을 받아 극을 향해 치달려가는 단계가 火의 단계입니다. 인생의 측면에서 보면 청년기가 되어 짝을 만나게 되는 단계, 초목의 측면에서 보면 화려한 꽃망울을 피우는 시기, 하루의 측면에서 보면 뜨거운 오후가 되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시간, 일년의 측면에서 보면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 온 천하가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허덕거리는 계절이 火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목생화의 작용은 바로 이렇듯 木의 발산지기를 火의 분산지기로 바꾸어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木의 운동을 직선으로 보았을 때, 그 직선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치의 지점에서 火의 운동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무를 보면 가지의 끝에서 잎에 생겨나고 꽃이 자랍니다. 나무의 가지부분이 木의 발산지기가 작용하여 생겨난 것이라면, 나무의 잎이나 꽃부분은 火의 분산지기가 작용하여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생화의 작용력은 木의 힘으로 가지를 굵고 실하게 만들어서 그 결과로 火의 힘을 통해 잎과 꽃을 무성하게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상생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순서대로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을 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법이죠.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게 되면 어떠어떠한 이유로 겉모습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동안(童顔)의 어른이지 결코 아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木에서 火로 넘어갈 때, 木의 상생작용이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火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火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木의 작용력이 작으면 당연히 火의 힘이 미약할 것이고, 火의 작용력이 작으면 土의 힘도 약해질 것이며, 토->금->수로 이어지는 오행 전체의 작용력이 미약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목이 화를 생해주는 상생작용은 화의 질을 조성하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이 작업에 필요한 목의 힘은 금이 목을 극하는 것에서 생겨납니다. 금이 목을 극하는 상극작용을 통해 일단 목이 형을 이루어야 화의 질을 조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금극목의 작용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면 목생화의 작용력이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극목이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화를 생해주는 목의 힘도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되기 때문에, 결국 화를 생해주기는 하지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도 있고 심지어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목이 화의 단계에 이르러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 있기 위해서는 금이라는 엄한 스승으로부터 절제를 배워야 합니다. 알곡과 쪽정이를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배워야 하고, 쓸데없이 기운만 빼앗고 어지럽게만 만드는 잔가지들을 쳐낼 수 있는 과단성을 배워야 합니다. 목에게는 이런 기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승인 금에게서 이런 형태의 교육을 받는 과정이 몹시 힘들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목 자신의 성질대로 반발하고 튀어나가고 밑천도 없이 도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럴 때 금은 목을 향해 회초리를 휘두를 수도 있습니다. 그 회초리는 당연히 목을 위한 것입니다. 금의 교육방법이 바로 회초리, 즉 채찍입니다.


하지만 금이 목을 극하여 목의 형을 이루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 금 자신이 수를 생해주기 위해서 입니다. 금생수로 금이 수에게 힘을 실어주면 수는 수극화로 화를 극하게 됩니다. 수 자신이 원하는 것은 수생목으로 목을 생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금은 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수가 생해주고자 하는 목을 담금질시켜주는 것입니다. 금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화극금으로 화에게 극을 당하는 것인데, 수의 도움을 받게 되면 수극화로 수가 화를 극하여 금이 화로부터 과도하게 극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오행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켜있기 때문에 설명이 조금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오행의 상생과 상극도를 따라가며 생각을 해보면 조금도 혼란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의 오행은 자신을 중심으로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네가지의 상생과 상극작용을 거의 동시에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목이라는 오행의 단계에서는 수의 생을 받고(수생목), 화를 생해 주며(목생화), 금의 극을 받고(금극목), 토를 극하는(목극토) 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개별적인 오행에 대해 작용하는 상생과 상극의 작용을 전체적인 측면에서 살펴서 이것을 현실에 대입해서 응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역학입니다. 나중에 <천간지지>편에 들어가면 이러한 오행이 다시 천간 쪽과 지지 쪽으로 나뉘고 천간과 지지가 섞여서 움직이는 상황을 공부하게 될 것인데, 이 또한 종류가 많아져서 조금 복잡해질 뿐이지 지금 여기에서 배우는 내용과 한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더 나가서 <합충변화>편에 들어가면 개별적인 오행과 오행이 만났을 때 이들 상호간의 상생과 상극작용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가를 따지게 되는데, 이것도 천간 지지보다 조금 더 복잡해질 뿐이지 지금 여기에서 배우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명리학에 들어가 사주팔자 여덟자를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간과 지지로 나뉘어져 있는 여덟종류의 오행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혹은 상호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내용을 현실에 적용시켰을 때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명리학의 전부입니다. 어렵다면 어렵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간단합니다. 명리학을 어렵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위 임상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아무런 원리나 근거도 없이 개인적인 생각을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일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고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원리가 정확하다면 드러나는 결과도 정확해야 합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진리라면 우리나라에서나 아프리카 오지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사과를 떨어뜨리나 땅콩을 떨어뜨리나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하고, 머리큰 놈이 실험하나 코큰 놈이 실험하나 동일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를 어느 곳에 적용해야 될지를 모르게 되고, 엉뚱한 곳에 엉뚱한 원리를 들이대니 그것이 맞을 턱이 없습니다.

2. 화생토 vs 수극화


오행에서 火는 두번째 단계에 해당하고, 土는 세번째 단계에 해당하는데, 火는 다른 힘의 제재가 없다면 끝도없이 커나가고 분산되려고만 하기 때문에, 火의 단계에서 성장을 정지시키고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때 작용하는 힘이 바로 土입니다. 土가 필요하게 되는 이유는 양적인 생장의 기운(木火)을 음적인 수렴의 기운(金水)으로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火는 金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스스로 土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火의 단계에서 성장의 극한치에 이르게 되면, 가장 화려하고 가장 양기가 강한 그 시점에서 土의 작용력이 생겨납니다.


목화, 금수가 양양(陽陽), 음음(陰陰)인데 비해 금화는 음양(陰陽)으로 서로 대립하는 관계입니다. 화의 단계에서 금의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두 기질이 서로 대립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편의 양보를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이치는, 즉 천도(天道)는 그 대립을 해소시키기 위해 화의 극한지점에서 토가 발생하도록 한 것입니다. 반드시 토의 작용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화에서 금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김일부 선생의 [정역]에서는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40대 중년의 시기, 그 이전은 젊지만 세상을 알지 못하는 풋내기 시절이고 그 이후는 세상을 너무 알아버려 시들해지는 시기가 되어버리니, 중년의 시기는 젊음도 적당하고 세상도 적당히 알게 되는 싯점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생의 절정기,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가 중년의 시기가 될 겁니다. 그러한 때에 스스로 자중자애하는 토의 작용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장 화려한 때에 자중자애하는 뜻은 金이라고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죠.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확실한 결실을 얻기 위해서 일겁니다.


오행에서 세번째인 토의 단계는 바로 마라톤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바뀌는 방향을 지시하는 하나의 점, 즉 터닝 포인트입니다. 인생의 측면에서 보면 중년의 시기에 해당하고, 초목의 측면에서 보면 무성했던 잎과 꽃을 떨궈내고 막 열매를 맺게 하려는 시기이며, 하루의 측면에서 보면 한낮의 복사열로 인해 가장 뜨거운 오후 3~4시 정도에 해당하고, 일년의 측면에서 보면 절기로는 이미 가을이지만 여름이 극에 다달아 연중 가장 무더운 시기가 바로 토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화생토의 작용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화의 분산지기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안으로 착실하게 방향을 선회할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화생토의 과정입니다. 화의 기세가 높으면 높을수록 화의 생함을 받는 토의 힘도 커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위치에서 느껴지는 고독감도 커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절대강자는 절대고독"이라고 하죠. 무협소설에서 가장 많이 써먹는 주제입니다.



화가 토를 생해주는 화생토의 작용도 화가 토의 질을 조성해 주는 작업입니다. 화가 토의 질을 조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수의 극을 받아 화 자신의 형이 이루어야 합니다. 형이 존재하지 않으면 질이 존재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그릇이 없으면 그 안에 내용물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수극화를 통해 화로 하여금 형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수는 속이 꽉차있는 내실덩어리입니다. 그 자체로도 하나의 생명체나 마찬가지인 것이 바로 수입니다. 나무열매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 잎과 꽃의 도움을 받아 자라났지만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하나의 개별적인 생명입니다. 열매 자체보다도 그 열매안의 씨앗이 바로 수의 심볼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화는 덩어리가 크고 넓은 잎이나 꽃이기 때문에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그 시기만 지나면 금방 지게 됩니다. 실속이 없고 허영만 가득합니다. 머리는 쓸줄 모르고 몸 움직이는 것만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의 스승은 수가 됩니다. 수극화의 작용을 통해 수는 화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안으로 여문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뜨거운 열정 속에서도 차가운 이성을 내던져버리지 말것을 가르치고, 몸으로 움직여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 생각을 하면서 움직일 것을 가르칩니다. 수의 교육방법은 말없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화는 수의 가르침, 즉 수의 극을 받아 마침내 토를 생해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게 됩니다. 수의 교육방법은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사(禪師)들의 교육방법과 닮았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나 행동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없습니다.


수극화를 통해 수가 화를 단련시켜 주는 뜻은 수 자신이 목을 적극적으로 생해주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수가 목을 적극적으로 생해주면 목은 그 힘으로 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토라는 존재를 극하게 되기 때문에, 수가 토의 극을 받을 때 수 자신이 극단적으로, 혹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됩니다.


3. 토생금 vs 목극토


토생금은 오행의 세번째 단계인 토가 네번째 단계인 금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토가 분산지기인 화의 힘을 억눌러 성장을 정지시키고 방향을 선회시켜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금이 수렴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금은 흩어져 있는 양기를 거둬들여 다시 흩어지지 못하도록 두꺼운 껍질을 입혀두는 역할을 수행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겉은 음기로 덮여 있지만 속은 양기로 펄떡거리고 있게 됩니다.


토는 상호 이질적인 화와 금 사이에서 화의 생을 받아 다시 금을 생해 줍니다. 토가 금을 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토의 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앞에서도 말했다 시피 목극토라는 상극작용이 있음으로써 이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토는 목의 극을 받아 먼저 자신의 형을 조성하고, 그렇게 이루어진 형을 토대로 해서 금의 질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행의 네번째 단계인 금은 인생의 측면에서 보면 장년기로 인생 전체를 통털어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바를 거의 달성한 단계에 해당하고, 초목의 측면에서 보면 무성했던 꽃과 잎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실한 열매만 남겨져서 익어가는 시기이고, 하루의 측면에서 보면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저녁 시간이고, 일년의 측면에서 보면 가을이 되어 밤낮으로는 겨울을 느낄 정도로 써늘하고 한낮에는 여름처럼 따가운 계절이 금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금은 수렴작업이 시작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금을 생해주는 토의 작용력이 미약하면 당연히 금의 힘도 미약할 것이고, 결실을 맺게 하는 금의 힘이 미약하면 수의 단계에서 거둬들여 축장하는 힘도 미약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목극토의 상극작용이 토의 작용력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 주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목은 화를 생해줄 목적으로 토를 극합니다. 목은 화를 생하고, 화는 토를 생해주는데, 목은 화를 생하면서 동시에 토를 극합니다. 목이 화를 생하는 과정에서 화가 방향성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토를 극하여 화로 하여금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한다"는 말 속에는 그 "극하는 대상을 이용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써먹는 것이 극하는 것입니다.


목이 토를 극함으로써 화를 생해주고, 목의 생함을 받은 화가 다시 토를 생해줍니다. 그렇게 되면 이렇게 화의 생함을 받은 토는 그 이전의 토와는 질적으로 다른 토가 됩니다. 즉, 목이 화를 생해주기 위할 목적으로 극을 하기 이전의 토가 아닙니다. 그것은 온실속에서 곱게 자라던 화초가 세찬 비바람과 극한극서의 수난을 당하면서 생명력이 강인해진 들꽃으로 바뀐 것과도 같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이 허약하던 책상물림이 고통을 참으면서 몸을 단련하는 훈련을 하고 실전에서 생사를 오가는 수난을 당하면서 강인한 전사로 다시 태어난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한 토의 힘이 금을 생해줄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목이라는 스승은 토로 하여금 강한 도전의식과 호호탕탕한 호연지기를 가르칩니다. 토는 중정지기로 조화와 균형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금을 생해줄 수 없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강하게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합니다. 토가 금을 생해주기 위해서는 금이라는 방향으로 뚫고 나가는 힘이 필요한데 바로 목이 토에게 그러한 힘을 주는 것입니다. 목의 교육방법은 자극과 충격입니다. 교묘하게 부추기고 꼬드겨서 아픈 곳을 콕콕 찌르는 방법으로 토를 가르칩니다.


목이 토를 단련시켜서 토의 형을 만들어주는 것도 토를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목 자신이 화를 적극적으로 생해줄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목이 적극적으로 화를 생해주어야만 화가 목이 가장 두려워하는 금을 제어해줄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목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말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각 오행의 개별적인 단계에서 상생작용과 상극작용이 맡은 역할을 설명하다보니 같은 의미의 말들이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어떤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귀찮다 생각하지 마시고 거듭 그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4. 금생수 vs 화극금


금생수는 오행의 네번째 단계인 금에서 다섯번째 단계인 수로 넘어갈 때 일어나는 상생작용입니다. 금에서 수렴지기가 작용하기 시작하여 수에 이르면 비로소 수렴작업이 종료됩니다. 목의 단계에서 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끝없이 팽창하고 분열되어 가던 양기를 수렴해서 흩어지지 못하도록 두껍고 단단한 껍질로 감싸두는 작업이 수렴작업입니다.


수의 단계에서 두껍고 단단한 껍질로 양기를 봉인해 두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다음번의 순환 사이클로 넘기기 전까지 양기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계절로 보아도 춥고 어두운 시간이 계속되니 가능한 한도내에서 철저하게 방어막을 쳐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센 음기의 압박에도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씨만은 꺼뜨리지 않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앞의 오행들과 마찬가지로 금이 수를 생해주는 힘은 화가 금을 극하는 가운데 생겨나게 됩니다. 화가 금을 극함으로써 금의 형이 만들어지고, 화극금하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금의 작용력도 강해집니다. 축장해야 할 양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표피도 점점 두꺼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금은 화극금하는 화의 상극작용을 통해 수를 생해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행의 마지막 단계인 수는 인생의 측면에서 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있는 노년기에 해당하고, 초목의 측면에서 보면 가지끝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열매가 떨어지는 시점에 해당하고, 하루의 측면에서 보면 밤이 점점 깊어져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시간에 해당하고, 일년의 측면에서 보면 밤낮으로 차가운 한파가 몸서리를 치게 하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수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실질적으로 오행의 모든 단계는 수의 단계를 향하고 있습니다. 수를 목표로 해서 전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진행되는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지 꼭 수가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행이라고 하는 것은 과정 전체, 즉 하나의 사이클 전체를 바라보면서 각 단계를 평가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각 단계들을 개별적으로 떼어놓고 보았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는 오행이라는 전체 과정이 마무리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금생수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음번 오행이라는 순환사이클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매우 미약한 생명력을 가진 채로 새로운 오행의 순환사이클을 돌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마무리가 중요하듯이 오행의 다른 어떤 단계보다도 금생수의 단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히 불가에서 말하기를, 윤회전생하는 주체가 업종자(業種子)라고 하는데, 이 업종자라는 것은 오행의 각 단계에서 차곡차곡 쌓여진 업들이 이 수의 단계에서 하나의 씨앗으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업종자는 다음번 오행의 사이클이 돌아갈 때, 즉 다음 생에서 환생하여 다시 생명체로 살아가게 될 때 소위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수를 생해주는 금의 힘은 화가 금을 극함으로써 생겨나게 되는데, 화극금을 통해 화가 금에게 단련을 시켜주는 내용은 화려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화는 생명력, 즉 양기의 소중함을 금에게 가르쳐 주고, 그 생명력의 극치에서 맛볼 수 있는 뜨거운 열정과 약동하는 삶의 모습을 깨우쳐 줍니다. 금수는 음기이기 때문에 동적이기 보다는 정적이므로 금에는 움직이는 면이 적습니다. 화는 금에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라고 일러줍니다. 그것이 금의 스승으로서 화가 맡은 역할이고, 화가 금을 가르치는 교육방법은 바로 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화 또한 그저 금을 단련시켜 주기 위해서 화극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행의 어느 것도 일방적으로 생해주기만 하고 극하기만 하는 게 없습니다. 화는 화생토로 토를 적극적으로 생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금을 단련시켜 주는 것입니다. 토의 조력을 받아야만 화는 자신을 극하는 수의 과도한 제어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수생목 vs 토극수


수는 오행의 마지막 단계이고, 목은 오행의 첫번째 단계입니다. 오행이 목화토금수의 순서를 밟아 하나의 순환사이클을 끝낸 후에는 다시 수생목의 상생작용을 통해 또다른 순환사이클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오행이라는 매듭은 하나하나 쌓여나가게 되는 것이죠. 오늘이라는 오행사이클이 끝나면 또다시 내일이라는 오행사이클이 돌아갑니다. 올해라는 오행사이클이 끝나면 다시 내년이라는 오행사이클이 돌아갑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라는 순환사이클 속에서 살고, 벼나 보리같은 초목은 일년이라는 순환사이클 속에서 살고, 우리 인간은 7~80년 정도 되는 순환사이클 속에서 삽니다.


이렇게 오행이라는 순환사이클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오행의 마지막 단계인 수에서 다음번 사이클로 넘겨질 수 있도록 생명의 씨앗을 축장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금생수의 작용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서 수의 단계에서 튼튼한 씨앗이 만들어졌다면 새로 시작하는 오행의 순환사이클이 훨씬 좋은 조건에서 돌아가게 될 겁니다.반대로 금생수의 작용력이 미약해서 시원찮은 씨앗이 만들어져 있을 경우에는 새로 시작하는 오행의 순환사이클 전체가 매우 힘든 과정들이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만약 금생수의 작용력이 극단적으로 떨어져서 수의 단계에서 축장해 두어야할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면 당연히 다음번 오행의 순환사이클로 넘어갈 수 조차 없겠죠.


벼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수확철이 되면 지주와 소작농사이에 씨나락 싸움이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씨나락이라는 게 별게 아니고 그해 수확한 나락 중에서 가장 굵고 실한 놈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같은 논에서 자란 벼라고 해도 실한 놈이 있고 부실한 놈이 있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실한 놈이 가격도 많이 나가겠죠. 그래서 지주입장에서는 수매에서 값을 많이 받기 위해 실한 놈을 많이 가져가려고 하고, 실제 농사를 짓는 소작농 입장에서도 내년에 다시 씨뿌릴 생각을 해서 알이 실한 씨나락을 많이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게 씨나락 싸움입니다. 지주는 돈 때문이겠지만, 농부는 본능적으로 금생수 수생목으로 이어지는 오행의 사이클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튼튼한 씨앗으로 새로운 오행사이클을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음기에 의해 굳건하게 응축되어 있던 씨앗 내부의 양기덩어리는 외부환경이 양기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점이 되면 비로소 껍질이라는 음기를 뚫고 외부의 양기쪽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수에서 목의 단계로 이어지는 수생목의 상생작용입니다.


사실 수생목의 상생작용은 오행의 한 매듭과 다른 매듭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눈에 띄는 면이 적습니다. 늙어서 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새로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연상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실질적으로 각 오행의 순환사이클은 마지막 단계에서 일차로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되고 또다시 다음번 매듭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공원에는 수령이 5,000년이 넘는 거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고 합니다. 그 나무 옆에 가면 사람이 고목에 붙은 파리처럼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 나무들은 5,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형성해 놓은 껍질이 워낙 두껍기 때문에 산불이 나고 벼락이 내리쳐도 껍질만 조금 그슬릴 뿐 까딱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곳 요세미티공원의 기념품 센터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좁쌀만한 검은색 알맹이들이 담긴 조그만 비닐봉지를 나눠주는데 그 좁쌀만한 알맹이가 바로 그 거목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5,000년 수령의 거목과 좁쌀만한 씨앗. 이 둘 사이의 연관관계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씨앗을 심으면 그 거목들과 같은 나무로 자라날 것이고, 그로부터 5,000년이 지난다면 그렇게 자라난 나무도 요세미티의 거목들의 모습을 닮아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그 두 거목이 분명히 동일한 나무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두 거목이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둘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그 조그만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수생목으로 수가 목을 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토극수를 통해 토의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토는 토극수를 통해 수가 형을 이룰 수 있게 해주고, 수는 형이 이룬 후에야 수생목으로 목을 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가 목을 생한다는 것은 목의 질을 조성해주는 것이라고 앞에서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다른 내용은 다 잊더라도 "상극은 형을 만들고 상생은 질을 만든다"는 것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토의 교육방법은 설득입니다. 응축된 상태로 끝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수를 향해 토는 끊임없이 조화와 균형에 대해 말해줍니다. 수가 그렇게 굳건하게 양기를 축장하고 있게 된 이유가 그 씨앗으로 하여금 화려한 생명의 불꽃을 터뜨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끊임없이 수에게 설득하고 설득합니다.



앞에서도 무수히 언급했다시피 토극수를 통해 토가 수를 극하는 방법으로 단련시켜주는 이유도 사실은 토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극을 당하게 되는 목인데, 목극토하는 목을 제어해줄 수 있는 것은 금밖에 없습니다. 토는 이런 금을 생해줌으로써 금이 목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를 극하는 방법으로 단련시켜 주는 것입니다. 금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금 자신이 생해주는 수이기 때문입니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상생작용과 상극작용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기 때문에 어떻게 그림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림을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이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오행의 원리에 입각한 이와 같은 설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일차적으로 물상을 통해 이해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물상을 통해 이해하신 후에 원리를 생각하시면서 다시 훑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다음 강의는 종합적으로 오행에 대해 살펴보면서 음양오행편을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출처 : 福 祿 仁 壽
글쓴이 : 수리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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