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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생 홍랑의 지독한 사랑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1. 10. 17. 22:41

 

 
기생 홍랑의 지독한 사랑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줄 여기소서         

 


- 홍랑
 
     세부설명
  1. 홍랑의 연시

2000년 11월, 조선 중엽의 대표적인 연시로 꼽히는 홍랑의 시 원본이 공개됐다. 이 서첩에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발문이 있는데 그는 이 시의 내용과 표현이 “보배”와 같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홍랑의 시조는 우리 문학사에서 아름다운 연시로 손꼽힌다.


2. 홍랑의 연인 최경창

홍랑이 사랑했던 연인 최경창은 조선 선조 때의 시인으로, 당대 문인이였던 송강 정철과 교류하면서 조선 중기 8대 문장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또한 율곡 이이는 최경창의 시를 가르켜 '청신준일'하다고까지 평할 정도였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확실치않은 홍랑과 그녀의 시가 조선 중기의 것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빼어난 시인 최경창과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일화는 조선시대 기생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조선 해어화사’에 소개되어 있다.


3. 만남과 첫 번째 이별

두 사람의 행로를 추적할 수 있는 기록은 최경창이 써 놓은 서첩의 서문이다. 최경창은 일찍이 탁월한 문장과 음악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 급제후 그는 함북 경성에 평사로 부임한다. 시와 풍류를 아는 젊은 관리 최경창과 재색을 겸비한 경성의 이름난 기생 홍랑. 정신적인 교감이 가능했던 그들은 사랑에 빠지지만 최경창의 경성에서의 임기가 끝나 이별을 하게 된다.



4. 사랑은 파직을 부르고

서울로 돌아온 최경창은 병으로 몸 져 눕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홍랑은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조정에 들어가 최경창은 파직을 당한다. 때는 명종비의 죽음으로 국상기간, 더욱이 동서인으로 나뉘어 당쟁이 자리잡던 시절이라 이들의 행각이 구실이 되었던 것이다.


5. 죽음으로 인한 이별 그 후

홍랑의 일로 파직 당한 뒤, 최경창은 평생을 변방의 한직으로 떠돌다 마흔 다섯의 젊은 나이로 객사하고 만다. 이승에서 그들의 사랑은 신분의 차이와 죽음으로 계속될 수 없었다. 최경창이 죽은 뒤 홍랑은 스스로 얼굴을 상하게 하고 그의 무덤에서 시묘살이를 시작한다. 홍랑이 죽고 난 뒤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한 집안 사람으로 여겨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홍랑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6. 재색을 겸비했던 조선의 기생

조선시대 기생은 ‘여악’이라 불렸다. 그들은 주로 양반 계층과 어울려야 했던 만큼 각종 악기와 가무, 문장을 배웠다. 관동지방 기녀들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잘 불렀고, 함흥의 기녀들은 용비어천가를 잘 읊었다고 한다. 비록 천민 신분이었지만 기생들은 예술보존자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7. 홍랑의 후손을 찾다.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이야기를 소상히 적고있는 <회은집>에 따르면 유일자(有一子), 즉 아들 한 명을 두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누구일까? 취재진의 추적결과 최경창의 서자 최즙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손은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서른 네살의 최경창이 홍랑을 만나 함께 지낸 것은 불과 6개월 남짓. 짧은 사랑이었지만 그 뜨거움은 400년의 세월에도 식지않고 후대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출처 : 건강의 터전 & 내일의 향기
글쓴이 : 고란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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