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스크랩] 들은 말 즉시 잊고 /송 인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1. 10. 17. 22:38

들은 말 즉시 잊고 /송 인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 본 듯이
내 人事 이러호매 남의 시비 모를로라
다만지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노라


[지은이]
송 인(宋寅)1517~1584. 호는 이암. 중종의 서녀 정순옹주와 혼인한 부마이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고, 성품이 고결하여 태계.율곡 등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저서로 '이암집'이 있다.


들은 말도 말이 끝나는 대로 잊어버리고, 본 일도 보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히 씻어 버려야겠다. 세상에 몸을 두면서 살아가는 내 생각이 이러하니 남이야 시비를 하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로다.
단지 내 손이 아직 성하니 잔을 들 수 있어 술이나 마시노라.

당파 싸움에 해가 떠도 밤처럼 어둡던 이조사회에서 살아 갈려 면 몸에 지녀야 할 처세법이 있었다.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들어도 못 들은 척하거나,곧 잊어버림으로써 말을 옮기는 전언 자(傳言者)의 죄를 뒤 집어쓰지 않도록 해야하고, 눈으로 보고 도 못 본 척하거나, 아예 잊어버리는 방법이 최상의 처세였다.

살아가는 기풍을 그렇게 아주 본떠 버린 지은이는,그러므로 남의 왈가왈부에 개입할 것도없이 그냥 내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 갔다. 그러한 무관심 속에서도 성한 손이 아직도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니 잔이나 잡고 술이나 마시는 데만 열중한 것이다.

만약에 남의 말이 들려 와도 귀에 들어가지 않고,눈으로 본 일도 인식할 수가 없다면 그 사람은 인간의 생리나 기능을 아주잃어버린 사람이겠으나, 여기서 표현된 내용은 그러한 것과도 거리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말하자면,지은이의 신분이 왕의 외척인데다가 벼슬로는 도총관까지 지낸 귀족이자, 그 식견이나 문장으로도 당대의 명문가였으니,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할 말을 할 자유를 어느 누구 못지않게 향유할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은 말도 옮기지 않게 미리 잊어버리고, 본 일조차 안 본 거나 다름없는 상태, 말하자면 망각의 상태에 살면서 술잔이나 기울이자 했으니,그가 살던 시대가 얼마나 어지럽고,적이냐 편이냐를 가려 죽이고 살리는 재량권 행사도 얼마나 자의로 자행되었는가를 짐작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진리나 지식의 세계에서 볼때 하잘것없는 당쟁의 단면과 그 공포 분위기를 우리는 이 한 수의 시조 속에서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암 송인은 조선전기의 학자로 10세때 중종의 셋째 서녀인 정순옹주와 결혼하여 여성위(礪城尉)가 되고 명종때 여선군에 봉해졌다. 두루 요직을 역임하면서 도총관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고 이황, 조식, 성혼, 이이 등 당대의 석학들과교유하였으며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역할을 하였다.
글과 글씨에 능하여 양주의 덕흥대원군신도비,남원의 황산대첩비, 남양의 영상 홍언필비등에 전하며, 그의 저서로는 <이암유고> 12권 4책이 전해진다.

 

                                                     

 

출처 : 건강의 터전 & 내일의 향기
글쓴이 : 고란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