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사진·그림

[스크랩] 吾園 山水圖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2. 3. 16. 23:58

 

吾園 張承業(1843~1897)

 

본관은 대원(大元). 자는 경유(景猷), 호는 오원(吾園)·취명거사(醉瞑居士)·문수산인(文峀山人). 선세(先世)가 무반(武班)이었으나 어려서 머슴살이를 했다고 한다. 서울에 정착한 후 수표교에 살던 이응헌(李應憲) 또는 역관 출신의 변원규(卞元奎)로 알려진 사람의 집에 기식하게 되면서 어깨너머로 글공부와 원(元)·명(明) 이래의 명적들을 접하고 스스로 익혀 어느날 문득 화리(畵理)를 터득하고 그림을 능숙하게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화명은 날로 높아져 왕실에서는 그를 대령화원(待令畵員)으로 불러들여 그림병풍을 제작하게 했으며, 이때 감찰이라는 정6품 관직을 임시로 제수받기도 했다. 그러나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했고, 특히 어떤것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궁궐에서 3번씩이나 도망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40대 무렵부터는 오경연(吳慶然) 등의 역관 중인계층과 김영(金瑛) 등의 여항문인(閭巷文人)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창작활동을 했으며, 녹청색 창의(彰衣) 차림의 특이한 모습으로 그림 판 돈을 술집에 맡겨놓고 매일 들러 마시면서 취한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기질은 강렬한 필법과 묵법, 그리고 과장된 형태와 특이한 설채법(設彩法)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細山水圖

장승업이 당시 유행하던 정형화한 남종산수화풍을 완벽하게 습득하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강변의 누각에 두 사람이 마주앉아 담소하고 있고, 강 위에는 이들을 태우러 오는 듯한 배 한척이 접근하고 있다. 때는 가을인 듯 강 건너에는 갈대가 우거졌고, 이 쪽 나무들 중 일부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원 말 사대가 중 예찬식의 구도와 필묵법을 사용하여 깔끔하고 투명하며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잘 표현하였다. 화면 가운데 접힌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더 작은 화첩이었던 것 같다.

 

 

眉山梨谷

 불우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화원화가로, 묘사대상의 본질을 깊이 연구하여 사실적인 화풍을 세웠으며, 독특한 화법으로 필치가 호방하고 대담하면서도 환상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현대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倣黃鶴山樵秋江圖

오세창이 편집했다고 전하는《근역화휘(槿域畵彙)》'지(地)'첩에 포함된 그림 이다. 이 작품은 위쪽에 "아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외로이 작은 배를 띄웠네. 기묘년 가을 본관이 대원인 장승업이 황학산초(왕몽)의 가을 경치 그림을 본따서 그렸다는 글이 있다. 이를 통해 1879년 장승업이 37세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산과 근경 바위의 표현에 장승업의 특징인 꿈틀대는 듯한 생동감이 나타나 있어 그가 30대 중반 무렵에는 이미 자신의 산수화 양식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산수도의 기본 도상은《명공선보(名公扇譜)》에서 딴 것이다.

 

  

草屋山水圖

 

 

 

古村瑞雪圖

 

 

 

 

楓林山水圖

장승업의 산수화 중 가장 이른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원래는 횡권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액자로 표구되어 있다. 가을철 단풍이 물든 숲과 이를 감상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화면 오른쪽 끝에 동자가 미는 수레를 탄 고사(高士)가 그려져 있으며, 화면의 나머지 대부분은 숲과 산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풍의 인물표현이나 호분(胡粉)을 바른 동자의 얼굴 모습, 그리고 수지법(樹枝法) 등 일부에서 장승업의 특징적인 면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초기적인 양상이 드러나 있다.즉 세부 필치에서 특유의 호방함이 전혀 보이지 않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되어 있는 점, 다양하기는 하나 다소 부조화된 나무들의 형태, 화면 중앙과 좌측 아래의 숲의 비례상 부조화 등에서 화보식(畵譜式) 남종산수화풍을 조심스럽게 익혀나가는 초기 습작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면 왼쪽 끝 아래에 '장승업인(張承業印)'이란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있다.

 

 

茂林村庄圖(1884)

이 산수도는 제목 그대로 무성한 활엽수림 속에 감싸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넓은 강과 멀리 율동적으로 펼쳐진 산수 등이 전형적인 남종화풍으로 그려졌으나, 세부를 살펴보면 당시의 형식화한 화풍이 아니라, 붓질 하나 하나에 모두 생기와 활력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중간 강변의 바위 표현에는 서울대박물관 소장 <방황학산초추강도>와 유사한 표현을 볼 수있다. 화면 위의 제문을 통해 중국 원대의 화가 방종의(方從義)를 방(倣)하여, 민태호(閔台鎬;1834∼1884)에게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민태호는 민영익(閔泳翊;1860∼1914)의 생부로서 사대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출처 : 오리진
글쓴이 : 오리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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