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본초강목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2. 4. 8. 09:47

 

중의학(중국전통의학 - 중국에서는 정식명칭을 중국전통의학이라 하고

보통은 걍 중의학이라고 함) 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인물이

본초강목을 쓴 이시진(1518 - 1593)입니다. 

물론 옛날의 편작, 화타도 있으며, 삼국지 시기 직전 상한론을 쓴 장중경이나

기타 여러 의학가들도 있었으나, 모든 약재를 모두 집대성한 것은

이시진이 처음이라 하겠습니다. 

이시진은 대대로 의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떠돌이 의사로 비방을

사용하여 돈을 많이 벌었고, 이 돈으로 이시진의 집안은 약초의 고향인

안휘성에서도 꽤 행세하며 살았습니다. 

이시진의 아버지는 이시진에게 과거를 보게 하여 사대부 계층으로 신분상승을

시킬 생각을 했으나, 벼슬할 운은 아니었던지 과거에 계속 낙방하니,

하는 수 없이 집안에서 하는 약방을 보게 하였습니다.

당시는 한약방이 곧 한의원이니 이시진은 의사가 된 셈이라고 보아야겠습니다.

 이시진은 35세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십년을, 그 동안 존재하던 900여권의 의서를 읽고 그 책들에 나온  약 처방이 어떻게 옳고 그른가, 어떤 약재의 출처는 무어이고 용례는 무어인가, 이걸 걍 집대성 했습니다. 이시진과 그의 네 아들,

그리고 나중에는 손자 몇 명, 순전히 자기 직계 남자 자손들만 이 일에 가담했고,

타성은 절대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시진은 책만 본 게 아니라 직접 약재가 나는 곳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는데,

수십년간 돈도 안 되는 이 일을 적잖은 돈을 써 가면서 해야 했던 이유는

기록에 없어 잘 모릅니다. 

어쨌든, 이시진은 죽기 얼마 전 필생의 역작 '본초강목' 을

마침내 세상에 내놓았으며, 당시 거의 모든 저술가들이 그랬듯이 한 부를

북경 황궁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거창하다는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시진은 별로 실망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쨌든 그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이 큰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50여년간 이 책은 묻혀져 있다가 명나라가 망한 후 청군이 북경의

장서각(도서관)을 손에 넣었을 때에야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동의보감을 완성한 허준은 본초강목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게 옳습니다.

동의보감이 명나라에 흘러갔던 시기도 책이 나온 직후였을 텐데,

본초강목이 알려져 있었다면 동의보감을 역수입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후 청나라의 의사들이 본초강목에서 보충할 점을 더하여 신판이 나왔으며,

이후 본초강목은 1930년 중화민국 시대에 '중화약전' 이 나올 때까지

청국과 중화민국의 모든 약의 기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책이 있었다는 것을 걍 상식으로 알아 두면 좋고 동양의학사상 '전무후무' 가

있었다면 그 사람은 이시진이었다, 이것을 이야기해 두고자 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