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윤휴의 문집 『백호전서(白湖全書)』에도 실려 있는데, 두 번째 행의 소계(小溪)가 소동(小童)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시상 전개를 고려할 때 『대동시선』 쪽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3행의 하처(何處)는 ‘어느 곳’이라는 일반적인 쓰임과 달리 이 시에서는 ‘어느 때’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말을 타고 맑은 시내 주변에 펼쳐진 이른 봄의 경치를 유유히 감상하다가, 아직 꽃이 피지는 않고 풀이 막 돋아나려 하는 때가 봄 경치 중에서 제일 좋다고 자문자답하는 내용이다. 얼핏 생각하면 봄꽃이 난만하고 날씨도 화창한 때가 더 좋을 듯하지만, 심미안을 가진 시인의 눈에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이 시를 쓸 때의 저자 나이가 25세라는 걸 감안하면 다소 의외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시를 이해하는 단서를 저자가 쓴 금강산 기행문 「풍악록(楓岳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저자는 56세였는데, 동행한 사람들과 가을 금강산 산행이 좀 이르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꽃은 떨어질 때는 보고 싶지 않고 술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서는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한 뒤에, “모든 천지 만물의 이치가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세상에서 부귀와 번화(繁華), 성색(聲色)을 누리는 자들은 특히 이 이치를 알지 않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이 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주의해 보면, 이 시는 단순히 봄의 풍경만을 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좋은 날이 남아 있어 기다림이 있는 삶의 시간을 주목한 것이다. 흔히 철리시(哲理詩)라거나 송시풍(宋詩風)의 시라고 부르는 것으로, 머리나 이치로 읽어야 하는 시이다. 어떤 일에 여지를 둔다든가 할 말을 다 말하지 않는 등, 인간사의 오묘한 이치를 담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 시의 이해에 도움을 줄 만한 시로 당나라 양거원(楊巨源)의「성동조춘(城東早春)」을 본다.
시인들의 맑은 경치 이른 봄에 있으니 詩家淸景在新春 갓 싹이 튼 노란 버들 아직 고르지 않네 綠柳纔黃半未勻 상림원 꽃 비단처럼 화사할 때를 기다린다면 若待上林花似錦 문 나서면 온통 꽃구경하는 사람으로 넘칠 테지 出門俱是看花人
상림원은 장안에 있던 궁궐 후원이다. 그 궁궐 후원에 꽃이 구름처럼 피어나면 사람들도 구름처럼 북적일 것이지만, 오히려 맑은 봄 경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면 이른 봄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표면적인 뜻이다. 그러나 내면적인 뜻은 자못 심각하다. 『천가시(千家詩)』에 주석을 낸 왕상(王相)의 견해는 이렇다. 재상이 인재를 발탁하는 것은 그 인재가 아직 비천할 때에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공업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알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른 봄은 인재가 아직 그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이며 궁궐 후원에 꽃이 필 때는 사람들이 다 알 때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일이 지나간 뒤에 깨닫는다는 경어(警語)로도 읽힌다. 거의 동시대 시인인 한유(韓愈)의 시에도 이와 유사한 시가 있다. 「초춘소우(初春小雨)」라는 시이다.
장안의 대로에 보슬비 촉촉이 적시니 天街小雨潤如酥 멀리서 보이던 풀빛 가까이선 안 보이네 草色遙看近却無 지금이 일 년의 봄 중에 가장 좋은 시절 最是一年春好處 버들 빛이 도성에 가득 찰 때보다 훨씬 낫구나 絶勝煙柳滿皇都
양거원의 시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달라도 그리고 있는 풍광은 닮았다. 양거원의 시가 상징과 가설을 통하여 버들이 갓 피어나는 이른 봄의 기대감을 주목하고 있다면, 한유의 시는 자기 체험에서 나온 비교를 통해 만물을 적셔주는 봄비와 갓 피어난 버들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우리나라 목은 이색의 시를 보면 한유의 시와 문자는 달라도 의미는 일치한다. 「이른 봄에 백부께 부쳐 올리다[早春寄呈伯父]」라는 시이다.
풀빛은 푸르고 버들 빛은 누런데 草色靑靑柳色黃 봄 구경에 연일 마음이 미칠듯하네 尋春日日祗顚狂 제발이지 꽃을 활짝 다 피우진 말기를 丁寧莫遣花開盡 꽃이 피려 할 그 때가 가장 흥이 나거니 花欲開時興最長
두 문호가 이른 봄을 좋아하는 같은 흥취를 노래한 것이 흥미롭다. 다만 목은의 시가 한유의 시보다 계절감이 약간 늦은 듯 보인다. 버들잎이 봄비를 맞아 살며시 실눈을 뜨고 세상을 구경하고 봄바람이 한 올 한 올 빗질을 해 주는 때나, 복사꽃이 금방 머리를 빗고 홍조를 띤 채 방문을 살짝 열어 내다보는 자태를 두고 어찌 우열을 논하겠는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운 두 시인의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선조 때 삼당시인으로 이름났던 백광훈(白光勳)의 「계당우후(溪堂雨後)」라는 시를 보자.
어젯밤 산 속에 비가 내렸으니 昨夜山中雨 앞 시내 지금 물이 불었으리라 前溪水政肥 대 숲 집 그윽한 봄꿈 깨어나니 竹堂幽夢罷 봄빛이 사립문에 가득하구나 春色滿柴扉
윤휴의 시가 다소 작위적인 면이 있다면 이 시는 시의 흥취가 자연스럽다. 산에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났고 그 봄비가 그치자 사립문 앞에 봄빛이 완연하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봄비가 내린 뒤에 새싹이 돋는 풍경을 그린 시는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憂)」와 정몽주의 「봄(春)」이란 시를 들 수 있다. 권필의 시 「조춘(早春)」에 보이는 “어젯밤에 슬며시 남쪽 시내에 비 내렸으니, 시냇가에 새싹이 얼마나 돋았을까[昨夜無端南澗雨, 澗邊多少草芽生]”하는 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봄비, 개울물, 새싹 등 구사하는 시어까지 비슷한 것은 이른 봄이 주는 상황이 서로 비슷하기도 하지만 이전의 작품을 알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른 봄의 광경을 노래한 절창으로는 역시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익숙하다. 후대에 나온 이른 봄을 노래한 많은 시의 원형을 여기서 본다.
“나무는 생기가 돌아 잎을 틔우려 하고 샘물은 졸졸거리며 흐르기 시작하네. 만물이 제때를 만난 것을 부러워하면서 우리 생이 다해 가려 하는 것을 아쉬워하네.[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지금 이때야말로 만물이 제때를 얻어 그 생의(生意)가 활발하게 드러나는 시기가 아니겠는가. 시인들이 밝은 눈으로 용케도 알아보고 사랑하였나 보다.
보통 한시에서 봄풀[春草]이 나오면 강엄(江淹)의 「별부(別賦)」나 왕유(王維)의 「송별(送別)」이란 시에서 유래하여 이별의 슬픔을 상징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위 시에서 보듯이 아직 미약하지만 큰 가능성을 품고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풀이며 나무의 싹을 보면 필요의 유무를 떠나 무한한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옛 시인들이 이맘때를 특히 사랑했다 하니, 슬그머니 나도 그들 마음을 따라 봄 구경을 나서고 싶어진다. 한유의 말처럼 ‘일 년의 봄 중에 가장 좋은 시절’이 벌써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는 기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