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詩酒)로 유명한 석주 권필은 그의 평소의 행각만큼이나 죽음도 독특했다. 광해군의 비(妃) 유씨의 아우 유희분 등이 방종하고, 벼슬아치들이 외척에게 아양을 떤다고 비꼰 궁류시(宮柳詩)가 발각되어 친국을 받고 귀양길에 올랐다. 이미 곤장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그의 벗들이 전별주를 주니 그것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시고는 44세를 일기로 죽었다고 전한다. 또는 유배를 떠나기 위해 동대문 밖 촌사에 머물렀는데 주인이 술을 대접하였더니 받아 마시고는 이튿날 죽어서 주인이 집 문짝을 떼어서 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런 그의 문집에는 편지 한 편이 있는데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필(韠)은 사룁니다. 보내온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칭찬은 지나쳤으나 책망하신 말씀은 참으로 맞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제 속마음을 펼쳐 보입니다.
1) 나는 본래 세상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고요.
저는 천성이 분방하여 세상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보면 반드시 침을 뱉으며 지나갔고, 뒷골목 누추한 초가 앞에서는 언제나 서성이며 혹시 안연(顔淵)을 볼 수 있을까 하며 기웃거렸습니다. 세상이 모두 어질다 하는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호로처럼 더럽게 여겼지만, 동리에서도 멸시당하는 건달이나 개백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반가워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에 “아, 내가 오늘 드디어 형가(荊軻)를 만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속에서 저를 괴상하게 보는 까닭인데, 저도 제가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2) 당신들이 옳다고 하는 그 공부도 해봤지만 아니더라고요.
때문에 굳이 세상에 맞추기가 싫었으며 산속에 숨어서 심성이나 수양하며 고인이 말한 이른바 도(道)라는 것을 구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周), 정(程), 장(張), 소(邵), 주(朱), 여(呂)의 저서를 읽고 사색하였습니다. 비록 감히 자득한 바가 있다고는 못하지만, 그중에 어떤 구절은 마음에 또렷이 새겨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결심하고 공부에 전념한 지 이제 6, 7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한 스승이 없었고 좋은 벗도 없어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냈으며, 더구나 술과 시(詩)를 좋아하는 습관이 온몸을 휘감고 있으니 비록 도에 뜻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 말과 행실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족하(足下)*께서 이리 책망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3) 자신의 잣대로 남들 바루려 마시고 스스로나 바루는 것이 좋겠더라고요.
아! 족하께서 저를 책망하신 말씀은 정말로 옳고, 족하께서 저를 아끼시는 마음은 참으로 도탑습니다. 저는 항상, ‘벗이 선하고 어진 사람이 되도록 권면하고 도와주는 책선보인(責善輔仁)의 도리’는 옛날 성세(盛世)에나 있었던 일이고 지금 세상에는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 그런 일이 생겨났고, 그것도 제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찌 족하께 절을 올려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 저 자신에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남을 책망하기는 쉬워도 자신을 책망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만약 족하께서 저를 책망하신 것을 가지고 능히 자신을 책망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일 것입니다. 삼가 필은 사룁니다. * 족하라는 말은 내가 당신의 발아래 있다는 뜻으로 상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韠白. 辱書, 許我太過; 而責我誠當. 不敢默默, 略抒情素. 僕受性疏誕, 與俗寡諧. 每遇朱門甲第, 則必唾而過之; 而見陋巷蓬室, 則必徘徊眷顧, 以想見曲肱飮水而不改其樂者. 每遇紆靑拖紫, 擧世以爲賢者, 則鄙之如奴虜; 而見任俠屠狗, 爲鄕里所賤者, 則必欣然願從之遊曰: “庶幾得見悲歌慷慨者乎” 此僕之所以見怪於流俗, 而僕亦不能自知其何心也. 以此不欲與世俯仰, 思將退伏山野, 收心養性, 以求古人所謂道者. 於是取周,程,張,邵,朱,呂之書, 讀而思之. 雖不敢自以爲有得, 而其文義之間, 或有犁然當於心者. 遂決意向學, 于今六七年矣. 然而無嚴師以臨之; 無益友以輔之. 悠悠碌碌, 與時泛浮, 而詩酒之習, 又從而纏繞之. 雖曰有志於道, 而其言其行, 只是向來底人耳, 宜足下之有是責也. 噫! 足下之責我誠是矣; 足下之愛我誠多矣. 僕嘗以爲責善輔仁, 古之道也. 今之世不復有行古人之道者, 於今忽有之; 而於吾身親見之. 敢不再拜賀足下, 又以自賀也. 雖然, 勉人易而勉己難. 足下能以勉僕者勉己, 則又幸矣. 不宣. 韠白. - (權韠, 1569~1612),「답송홍보서(答宋弘甫書)」,『석주집(石洲集)』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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