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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개인적인 의리를 잊어야 한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6. 21. 16:19

- 이백일흔다섯 번째 이야기
2013년 6월 17일 (월)
군주는 개인적인 의리를 잊어야 한다
  이 나라에 대통령 단임제가 정착된 이후로, 옛날 두 영웅의 천하쟁탈을 기록한 『초한지(楚漢誌)』와 같은 상황이 몇 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몇 개의 진영이 진검 승부를 펼친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어김없이 포용과 통합을 외치고, 그의 공신과 친인척들이 발호한다.

  그러나 『맹자(孟子)』에 “거이기(居移氣)”라는 말이 있다. 처한 지위에 따라 기상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녔던 가치관이나 인간관계는 대통령이 된 후에는 변하게 될 것이다. 아니, 변해야만 한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자체이다.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이기보다는, 국가를 발전시키는 통치를 해야 한다. 임기 동안 투표로 보장받은 권한을 통합이나 보은이라는 차원에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어제 대간(臺諫)에서 올린 계사(啓辭)에 답하신 비답(批答)에서,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의 도량을 예로 들면서 하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광무제 때와는 다릅니다. 광무제 때는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하다 보니, 오직 인재를 얻는 것에 급급하여, 그 사람의 품행과 명망이 어떠한가는 따지지 않고 진실로 쓸 만한 재주가 있다면 모두 거두어 받아들이기에 힘썼습니다. “반측자(反側子)들이 스스로 안심하게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만약 천하가 이미 안정되어서 군신의 의리가 크게 정해졌다면, 마땅히 강상(綱常)과 명의(名義)를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이니, 반측자들이 어찌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한나라 고조(高祖)는, 천하를 차지하지 못했을 때는 적진에서 도망한 자도 불러들이고 배반한 자도 받아들였으나, 천하를 얻고 난 뒤에는 정공(丁公)을 참수하고 계포(季布)를 사면하였으니, 선대의 유학자들은 “한(漢)나라의 기틀은 대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昨日答臺啓之批, 以漢光武之量爲敎, 今時則異於光武時矣。光武時則天下未定, 惟以得人材爲急, 勿論其人行誼名節之如何, 苟有可用之材, 則務皆收納, “欲令反側子自安”者, 此也。若天下已定, 君臣之義大定, 則當以綱常名義爲急, 反側子何可容貸乎? 是故漢高祖未得天下之時, 招亡納叛, 而旣得天下, 則斬丁公, 赦季布, 先儒以爲漢家基業, 蓋本於此。以光武時事, 以之於今, 則恐不襯貼矣。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영조 원년(1725) 2월 16일자 기사

  이 글은 개인의 저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承政院)의 기록인 『승정원일기』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경종(景宗) 때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역모에 연루되어 큰 피해를 입었던 노론(老論)은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다시 정권을 잡았다. 노론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여 그 배후를 일망타진할 기회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들이 지목한 배후는 목호룡이 고변하도록 ‘사주’한 소론(少論)과 그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지’ 않은 남인(南人)들이었다.

  영조 또한 당시 사건에 연루되어 세제(世弟)의 자리가 위태로운 적이 있었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즉위 초기인데다, 또 탕평(蕩平)의 차원에서 덮어두려고 하였다. 이런 경우에 기존의 임금들이 주로 인용하는 것이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의 사례였다. 영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무제는 전한(前漢) 말 황제를 자칭하며 세력을 떨치던 왕랑(王郞)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왕랑과 내통한 자신의 휘하 관원과 백성의 명단 수천 장을 발견하였으나, 읽어보지 않고 불태우며, “반측자(反側子), 즉 불안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 안심하게 만들고자 한다.”고 하였던 고사가 있다. 대단한 도량을 보여주는 미담이다.

  하지만 당시 입시(入侍)하였던 민진원(閔鎭遠, 1664~1736)은 한나라 고조(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과감하게 정공(丁公)을 처형하였다는 것을 들어 반박하였다. 정공은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장수로서, 고조 유방(劉邦)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을 당해 그냥 풀어준 사람이다. 고조로서는 생명의 은인이었던 셈인데도, 후세의 신하된 자들에게 자신의 주군을 배신한 자의 본보기로 삼아 처형하였다.

  즉, 광무제의 관용은 아직 황제가 되기 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황제가 되고 난 뒤에는 고조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 민진원의 주장이다. 그의 말이 당파적인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군주가 된 이후에는 군주가 되기 이전의 마인드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왕조시대의 군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대통령제에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반대자에 대한 관용의 문제이다. 투표로 선출하는 대통령은 지지자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지지자와 비지지자가 아니라, 아예 지지자와 반대자의 형태이다. 또한, 반대세력들은 정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줄기차게 통합과 포용을 요구한다. 선거에서 졌지만 내 몫은 그대로 보장하라는 식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다 싶으면, 그들은 전직 대통령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임기 내내 발목잡기식의 통치 방해 행위를 한다.

  왕조시대 같았으면 역모로 다스릴 일이지만, 민주화 시대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과 그 여당은 국민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무마하고 타협하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이럴 때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포용한다고 해서, 감동하여 가치관을 바꿀 사람들은 아니다. 어설픈 포용은 적군에게 ‘정도(正道)’ 운운하며 관용을 베풀다가 나라를 잃은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가에 큰 피해를 끼칠 판단의 오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통치 철학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지지자에 대한 보은 문제이다.

  정권을 잡으려다 보면, 기획을 잘하는 사람, 설득을 잘하는 사람, 선동을 잘하는 사람, 연설을 잘하는 사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상대 진영을 배신하고 귀순하는 자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국가의 통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인격자이고, 능력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을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던 식객(食客) 같은 이들도 있다. 그보다 큰 공은 없다. 그렇다고 닭울음 소리를 잘 내고 좀도둑질에 능했던 그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한비자(韓非子)』에 “현명한 군주는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낀다.”고 했다. 리더는 상을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보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의리 차원의 보답은 잊어야 한다. 특히 인사상의 배려에는 신중해야 한다. 능력 없는 사람이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 그 조직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배제된 공신들은 그럴 때 흔히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들먹이며 압박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배신이 아니다. 사냥개는 사냥 이외에는 쓸 곳이 없기 때문이다.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주요역서
      - 국역 갈암집공역, 민족문화추진회. 1999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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