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쥐인생 소인생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8. 27. 14:07

- 이백여든다섯 번째 이야기
2013년 8월 26일 (월)
쥐의 삶을 살려는가, 소의 삶을 살려는가
  우리 주위에 있는 동물들 가운데 사람들로부터 가장 미움을 받는 동물은 아마도 쥐일 것이다. 쥐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음습하고, 비열하고, 기회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정말 쥐만큼 나쁜 이미지만 떠오르는 동물도 없다. 쥐라는 동물이 원체 나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는 탓에, 쥐를 칭할 적에 그냥 쥐라고 칭하기보다는 오히려 ‘쥐새끼’라는 비속어로 칭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반해, 소라는 동물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겉모습부터가 쥐와는 딴판이다. 믿음직해 보이고 착해 보인다. 겉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우리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끼치고 있다. 그러니 소는 사랑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동물이다. 이렇듯 소와 쥐는 같은 동물이면서도 그들이 하는 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자신의 행실로 인해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은 동물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삶을 살아 소와 같은 대우를 받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독만 끼치는 삶을 살아 쥐와 같은 대우를 받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 주어지는 삶이다. 그러한 삶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쥐새끼’와 같은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사람이 사는 집에는 그 집의 주인과 아내가 집안의 중심이 되며, 이들을 곁에서 돕는 사람들은 각각 맡은 일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다. 음식 만드는 일을 맡은 자는 계집종이고, 마소 치는 일을 맡은 자는 사내종이다. 그 아래로 기르는 가축들까지 모두 각자 맡은 직책이 있다.
  말은 사람을 대신하여 짐을 싣거나 사람을 태우고 달리며, 소는 무거운 짐을 끌거나 밭을 간다. 닭은 울어서 새벽을 알리며, 개는 짖어서 문을 지킨다. 이들은 모두 맡은 바의 직책을 가지고 주인을 돕는 것이다.
  쥐란 놈들에게 내 묻는다. 네놈들은 맡은 일이 무엇이고, 누가 길렀으며, 어디서 생겨나서 번성하는가? 구멍을 뚫고 도둑질을 하는 것만이 오직 네놈들이 할 줄 아는 것이다. 대개 도둑놈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법이다. 그런데 네놈들은 어찌하여 집 안에 살면서 도리어 주인의 집에 해를 끼친단 말인가? <중략>
  네놈들은 음식을 보면 훔쳐서 먹는데, 이것은 네놈들도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어째서 옷을 쏠아 조각내놓아 입을 수 없게 만들고, 어째서 실을 쏠아 베를 짤 수 없게 만들어 놓는가?
  네놈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고양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고양이를 기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내가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것은, 나의 성품이 본래 인자하여 차마 악독한 짓을 할 수 없어서이다. 만약 나의 이런 덕성을 무시하고 함부로 날뛰어서 내 성질을 돋운다면, 네놈들을 응징하여 후회하게 할 것이다.
  네놈들은 빨리 내 집을 피해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사나운 고양이를 풀어서 하루아침에 네놈들을 잡아먹게 할 것이다. 고양이의 입술에 네놈들의 피를 묻히게 하고, 고양이의 뱃속에 네놈들의 살을 장사지내게 할 것이다. 그때에는 비록 다시 살아나려고 버둥대도 목숨을 다시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서 속히 떠나되,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잽싸게 도망치라.

惟人之宅, 翁媼作尊, 挾而輔之, 各有司存. 司烹飪者赤脚, 司廝牧者崑崙. 下至六畜, 職各區分. 馬司代勞, 載驅載馳, 牛司引重, 或耕于菑, 鷄以鳴司晨, 犬以吠司門, 咸以所職, 惟主家是裨. 問之衆鼠, 爾有何司? 孰以汝爲畜? 從何產而滋? 穿窬盜竊, 獨爾攸知. 凡曰寇盜, 自外來思. 汝何處于內, 反害主家爲? <中略> 飮食之是盜, 汝亦營口腹. 何故噬衣裳, 片段不成服? 何故齕絲頭, 使不就羅縠? 制爾者貓, 我豈不畜. 性本于慈, 不忍加毒. 略不德我, 奔突抵觸, 喩爾懲且悔. 疾走避我屋. 不然放獰貓, 一日屠爾族, 貓吻塗爾膏, 貓腹葬爾肉, 雖欲復活, 命不可贖. 速去速去, 急急如律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쥐를 저주하는 글[呪鼠文]」,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수박씨를 까먹고 있는 생쥐를 묘사한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그림 백가지』에서 인용

  고려 때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쥐를 소재로 하여 지은 글이다. 이규보는 호가 백운거사(白雲居士)로 9세 때부터 이미 신동으로 알려졌으며, 14세 때 ‘나라의 기재(奇才)’라고 일컬어졌다. 26세 때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東明王)의 생애와 발자취를 노래한 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지었으며, 이후 주옥과 같은 많은 시문(詩文)을 남겼다. 그는 일생동안 시와 술과 거문고를 아주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규보는 이 글에서 먼저 한집안에 살아가는 동물들이 모두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주인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고 하였다. 그런 다음 쥐를 꾸짖으면서, 쥐가 하는 모든 일이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임을 말하였으며, 끝부분에서는 쥐들에게 고양이를 풀어놓기 전에 미리 도망쳐서 새로운 삶을 도모하라고 하였다.

  쥐란 놈은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동물로, 우리의 주위 어느 곳에서나 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어둠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세상에도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쥐의 습성을 고스란히 닮은 자들이 곳곳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사람이면서도 쥐새끼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짓을 하는 자이다. 우리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온갖 잡스러운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남들에게 큰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본분을 저버리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다. 흔히 화이트칼라의 범죄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근 듯하지만 놓치지 않는다.[天網恢恢 疎而不失]”라고 하였다. 하늘이 악인을 잡기 위하여 쳐놓은 그물은 그 코가 아주 넓어서 쉽사리 빠져나갈 수 있을 듯이 보이지만,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잡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잘못을 저지른 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언젠가는 그에 따른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쥐새끼와 같은 짓을 한 자들이 요행히 인간이 만든 법망에서 빠져나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처벌을 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는 범죄를 저지르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늘의 법망에 걸려든 것이기에, 언젠가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나날을 살아가야 한다. 또한, 그에 대한 벌은 그 자신이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후대에는 반드시 받게 되는 법이다. 법률에는 구멍이 있을지언정 천리(天理)에는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쥐란 놈은 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해독을 끼치는 쥐새끼가 될 수밖에 없다. 소가 되거나 닭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자신의 행실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칭송을 받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쥐새끼들 내가 괭이 안 기르는 줄을 알고, 家鼠知吾不畜猫
어둠 틈타 쏘다니며 말 달리듯 소리 내네. 乘昏奔作馬奔聲
이놈들아 괭이 없다 기세 맘껏 펴지 마라, 憑渠莫恃方張勢
눈이 밝은 고양이를 내일 데려 올 것이다. 明目烏圓得在明

  조선 중기 진주(晉州) 출신의 학자로, 평생 학문연구에만 몰두하였던 각재(覺齋) 하항(河沆 1538~1590)이 지은 「큰 쥐를 미워하다.[憎碩鼠]」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의 표현대로 현재 사람이면서도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쥐새끼와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은, 언젠가는 ‘눈이 밝은 고양이’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쥐새끼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것도 없다.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실로 인해서 남들로부터 쥐새끼와 같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성실히 생활해 간다면, 최소한 남에게 해독을 끼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조금이나마 남에게 혜택을 끼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선용 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