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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8. 20. 05:04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자면 서로가 서로를 믿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서로를 믿는다고, 서로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그나마 지탱이 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인다고, 누구나 언제든지 속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게 모르게 남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늘 속고 속이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속임수가 판을 친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회에 대한, 사람에 대한 기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굴러가고 사람과 사람 관계가 지속된다.

  사전[字書]을 찾아보면 순(洵)이라는 글자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큰 덕이다.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합당하지 않으면 또한 천리에 따른 정당한 것이 아니다. 『주역』 「중부(中孚)」 괘에 “헤아리면[虞] 길하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믿을 바를 살피고 헤아려서 따라야 길하다는 말이다. 예컨대 도적이 서로 무리를 짓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사로이 사귀고, 소인이 패거리를 짓는 것도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정당성을 얻지 못하였다. 믿음이 정당성을 얻는 것은 잘 헤아리는 데 달려 있으므로 순(洵)의 자를 여우(汝虞)라 한다.
  징(瀓)이라는 글자는 맑음이라는 뜻이다. 물이 머물러 있으면 맑아서 비춰볼 수 있으나 흐르면 비춰볼 수 없는데 이는 물이 안정되거나[定] 안정되지 않은 것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안정되어야 비로소 빛나고 밝아진다. 만약 늘 움직이고 바뀌어서 안정되지 않는다면 빛나고 밝아질 길이 없다. 백정자(伯程子, 정호)가 말하기를 “안팎을 다 잊어버리면 맑아서 아무 의도가 없고, 의도가 없으면 안정이 되고, 안정되면 밝아진다.”고 하였다. 마음을 맑고 밝게 하는 것은 안정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으므로 징(瀓)의 자를 여정(汝定)이라 한다.
  호(灝)라는 글자는 물의 기세가 멀리 간다는 뜻이다. 물은 방울방울이 모여서 점점 큰물이 되고 마침내 바다에까지 흘러가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삽시간에 쏟아지지 않고 거듭 이어져서[習] 그렇게 된다. 『주역』 「감(坎)」 괘의 상전(象傳)에 말하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習坎)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행을 한결같이 하며 가르치는 일을 거듭한다.”고 하였다. 속수씨(涑水氏, 사마광)가 말하기를, “물의 흐름은 거듭 흘러서 그치지 않아 큰 시내를 이루고 사람의 배움은 거듭 익혀서 그치지 않아 큰 현자가 된다.”고 하였다. 학문이 넓고 크게 됨은 때마다 거듭하여 익힘에 있으므로 호(灝)의 자를 여습(汝習)이라 한다.
  아! 옛말에, ‘사람은 이름을 귀하게 할 수 있으나 이름은 사람을 귀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자가 이름과 무엇이 다르랴! 이름과 자를 귀하게 하는 길은 바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헤아려서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믿음을 얻고, 안정되어서 얼음 항아리[氷壺]처럼 맑고, 이어져서 강과 바다와 같이 크게 된다면 이에 자기 자를 귀하게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대들 형제분은 저마다 이를 힘쓰시라.

考之字書, 洵信也. 信者大德. 人無信不立. 然信而不得其宜, 亦非天理之正矣. 易之中孚曰虞吉, 蓋謂審度其所信而從然後吉也. 如盜賊相群, 男女相私, 小人死黨, 非不信矣, 而皆不得其正者也. 欲其信之得正, 在乎善虞, 故字洵曰汝虞. 
瀓淸也. 水之止者, 其淸可鑑, 而流者不可鑑, 以其定與不定也. 人之心定然後始有光明. 若常移易不定, 則無由而光明矣. 伯程子曰, 內外兩忘則澄然無事, 無事則定, 定則明. 欲其心之淸明, 在乎能定, 故字澂曰汝定. 
灝水勢遠也. 水之自涓滴而至於尋丈, 終放乎四海者, 非一朝而致之也, 由其洊習而不驟也. 易坎之象曰, 水洊至習坎, 君子以, 常德行習敎事. 涑水氏曰, 水之流也, 習而不已以成大川, 人之學也, 習而不止以成大賢. 欲其學之廣大, 在乎時習, 故字灝曰汝習. 
噫. 古語曰, 人能貴名, 名不能貴人, 字與名奚異哉. 貴名與字之道, 寔在乎其人. 虞而至於豚魚之孚, 定而至於氷壺之淸, 習而至於河海之大, 則斯可謂能貴其字矣. 此令兄弟其各勉之哉.
 
- 김수항(金壽恒, 1629-1689), 「김순, 김징, 김호 삼 형제 자설(金洵瀓灝三兄弟字說)」, 『문곡집(文谷集)』

  
  이 글을 쓴 김수항은 조선 현종, 숙종 때의 문신으로 두 차례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하여 송시열과 함께 서인의 예론을 주도하였으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뒤 노론의 영수가 되어 남인을 호되게 처벌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호란 때 대표적인 척화파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다. 그의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수흥(金壽興)이다. 김수항은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김창집(金昌集)이 영의정을 지냈고,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은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그래서 김수항은 형 김수흥과 함께 형제 영의정으로, 아들 김창집과 함께 부자 영의정으로 이름이 났다. 김창집의 4대손이 조선 후기 세도정치를 주도한 김조순(金祖淳)이다.

  이 글은 김수항이 부사를 지낸 김수오(金粹五)의 아들 김순, 김징, 김호 삼 형제에게 자를 지어주면서 쓴 글이다. 그 중에서 김호는 충청도 유생으로서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라고 청하였고, 당쟁의 와중에서 김만중을 구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성격이 강직하여 대간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자는 이름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름의 뜻을 반영한 글자를 자로 삼는다. 맏이의 순(洵)이라는 글자는 ‘참으로, 진실로’라는 뜻이어서 신뢰에 관해 말한 『주역』의 「중부」 괘에서 의미를 따와, 믿어야만 할 것을 잘 헤아려서 정당한 믿음을 얻도록 바라는 뜻으로 여우(汝虞, 너는 잘 헤아려라)라고 붙였다. 둘째의 징(瀓)이라는 글자는 맑다는 뜻인데 맑음을 상징하는 것은 물이다. 물이 맑게 비추려면 고요하고 안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정해져 있기를 바라는 뜻으로 여정(汝定, 너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여라)이라고 붙였다. 셋째의 호(灝)라는 글자는 특히 물이 한없이 넓다는 뜻이다. 물은 한 방울 두 방울 모여서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한없이 넓고 큰 바다를 이룬다. 그래서 물이 그치지 않고 이어져서 흐르고 흐르는 모습을 상징한 『주역』 「감」 괘에서 괘의 이미지 풀이를 따와 여습(汝習, 너는 꾸준히 거듭하여 익혀라)이라고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서 청년이 되어 제 몫을 할 나이가 되면, 어느 사회에서나 한 사회의 주체적 구성원으로서 승인하는 통과의례를 베풀어준다. 성인식이라 하든, 관례라 하든 이런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어엿한 한 사람으로서 책임의식을 지닌 주체자로서 그 공동체와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이렇게 관례를 치를 때 성인이 될 당사자에게 친지나 후견인이 자를 붙여 주었다. 이 청년이 앞으로 이렇게 살았으면, 이런 인물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아득한 신화적 시대부터 숭고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일이었다. 우리는 사물을 무어라고 이름 붙이고 부름으로써 그 대상을 파악하고 그 대상과 나 사이의 관계를 형성한다.

  이름은 그 사물의 본질을 남김없이 반영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불완전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름이 없으면 우리는 그 사물을 일컬을 수도 없고 그 사물을 무어라고 판단할 수도 없다. 히브리 신화에 의하면 하느님이 빛을 창조하여 시간을 이루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여 공간을 이루고 그 공간 안에 삼라만상 물건을 창조한 다음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였다. 그러고 나서 사람에게 사물을 보여주었다. 처음 사람 아담은 하느님이 자기에게 데리고 와서 보여주는 사물을 하나하나 무어라고 불렀다.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 이름은 지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존경하는 이, 거룩한 이, 위대한 이에게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기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이름이 불리면 대답을 한다. 대답을 하는 행위는 이름 부른 자에게 지명을 당한 것이다. 이름에 관해서는 부르는 자가 불리는 자보다 힘이 있다. 그러므로 전통사회에서는 아버지, 할아버지, 스승, 임금과 같이 존경해야 할 대상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기 이름도 존경하는 이 앞에서 외에는 쉽게 부르지 않았다.

  케케묵은 복고풍의 퇴행적 취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름을 바르게 붙이고 바르게 부르고 존중하는 일은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신망을 받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 나의 후견인이 되어서 나를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이끌어주고 내가 반듯하고 당당하고 어엿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지켜봐 주며 그런 뜻에서 나에게 자를 붙여주고, 또 내가 삶을 잘 살아서 나름대로 내 세계를 일구었을 때 또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에게 앞으로 삶을 잘 살아가도록 바람을 담아 자를 붙여주는 것은 뜻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너무나 훼손되었고 이름을 너무나 쉽게 다룬다. 더 나아가 이름의 의미를 공공연히, 나서서 배신하고 훼손한다. 인민 전체의 의지를 모아 조정하고 국가 전체의 복지와 평안을 추구해야 할 최고지도자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 이익을 다투고, 인민과 국가를 위해 복무해야 할 관료가 권력 카르텔을 결성하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지위를 지칭하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와 가치와 바람을 훼손하는 일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원리를 물었다. 공자는 정치의 원리를 인민의 생계대책, 치안과 국방, 인민의 신뢰를 들었다. 자공이 상황에 따라 하나를 포기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공자가 치안과 국방을 먼저 포기하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부득이한 상황에서 남은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공자가 생계대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지만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하였다.

  형주에 몸 붙여 있던 유비가 남하하는 조조 군에 쫓겨 도피하자 유비 휘하에 있던 인민이 유비의 피난행렬에 따라붙었다. 이들을 버리고 가자는 참모들의 말을 듣지 않고 피난민을 이끌고 가던 유비는 결국 더 많은 인민을 희생시켰다. 피난민은 왜 유비를 따라갔을까? 이들은 적어도 유비는 자기들을 버리지 않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나 운용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믿음을 얻을 수 없다. 국가의 권위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위아래가 서로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면 결국 믿을 것은 내가 또는 우리가 가진 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의 기강이 혼란하고 정치의 권위가 사라진 곳에는, 돈이든 권력이든 물질이든 그것을 가진 자는 그 힘을 폭력적으로 행사하고 또 그것에서 소외된 계층은 폭력에 희생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폭력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다. 혁명이란 그래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위아래가 서로 믿는 사회가 되려면 조금이라도 더 권력이 많고 더 우월한 자가 믿음을 보여야 한다. 믿음을 얻는 길은 자기 이름을 회복하는 데 있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관료는 관료라는.


  

  
김태완 글쓴이 : 김태완
  • (사)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 주요저서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소나무, 2004
    -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2007
    - 『율곡문답,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역사비평사, 2008
    - 『경연, 왕의 공부』, 역사비평사, 2011
    - 『맹자,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꿈』, 아이세움, 20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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