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字書]을 찾아보면 순(洵)이라는 글자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큰 덕이다.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합당하지 않으면 또한 천리에 따른 정당한 것이 아니다. 『주역』 「중부(中孚)」 괘에 “헤아리면[虞] 길하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믿을 바를 살피고 헤아려서 따라야 길하다는 말이다. 예컨대 도적이 서로 무리를 짓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사로이 사귀고, 소인이 패거리를 짓는 것도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정당성을 얻지 못하였다. 믿음이 정당성을 얻는 것은 잘 헤아리는 데 달려 있으므로 순(洵)의 자를 여우(汝虞)라 한다. 징(瀓)이라는 글자는 맑음이라는 뜻이다. 물이 머물러 있으면 맑아서 비춰볼 수 있으나 흐르면 비춰볼 수 없는데 이는 물이 안정되거나[定] 안정되지 않은 것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안정되어야 비로소 빛나고 밝아진다. 만약 늘 움직이고 바뀌어서 안정되지 않는다면 빛나고 밝아질 길이 없다. 백정자(伯程子, 정호)가 말하기를 “안팎을 다 잊어버리면 맑아서 아무 의도가 없고, 의도가 없으면 안정이 되고, 안정되면 밝아진다.”고 하였다. 마음을 맑고 밝게 하는 것은 안정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으므로 징(瀓)의 자를 여정(汝定)이라 한다. 호(灝)라는 글자는 물의 기세가 멀리 간다는 뜻이다. 물은 방울방울이 모여서 점점 큰물이 되고 마침내 바다에까지 흘러가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삽시간에 쏟아지지 않고 거듭 이어져서[習] 그렇게 된다. 『주역』 「감(坎)」 괘의 상전(象傳)에 말하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習坎)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행을 한결같이 하며 가르치는 일을 거듭한다.”고 하였다. 속수씨(涑水氏, 사마광)가 말하기를, “물의 흐름은 거듭 흘러서 그치지 않아 큰 시내를 이루고 사람의 배움은 거듭 익혀서 그치지 않아 큰 현자가 된다.”고 하였다. 학문이 넓고 크게 됨은 때마다 거듭하여 익힘에 있으므로 호(灝)의 자를 여습(汝習)이라 한다. 아! 옛말에, ‘사람은 이름을 귀하게 할 수 있으나 이름은 사람을 귀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자가 이름과 무엇이 다르랴! 이름과 자를 귀하게 하는 길은 바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헤아려서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믿음을 얻고, 안정되어서 얼음 항아리[氷壺]처럼 맑고, 이어져서 강과 바다와 같이 크게 된다면 이에 자기 자를 귀하게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대들 형제분은 저마다 이를 힘쓰시라.
考之字書, 洵信也. 信者大德. 人無信不立. 然信而不得其宜, 亦非天理之正矣. 易之中孚曰虞吉, 蓋謂審度其所信而從然後吉也. 如盜賊相群, 男女相私, 小人死黨, 非不信矣, 而皆不得其正者也. 欲其信之得正, 在乎善虞, 故字洵曰汝虞. 瀓淸也. 水之止者, 其淸可鑑, 而流者不可鑑, 以其定與不定也. 人之心定然後始有光明. 若常移易不定, 則無由而光明矣. 伯程子曰, 內外兩忘則澄然無事, 無事則定, 定則明. 欲其心之淸明, 在乎能定, 故字澂曰汝定. 灝水勢遠也. 水之自涓滴而至於尋丈, 終放乎四海者, 非一朝而致之也, 由其洊習而不驟也. 易坎之象曰, 水洊至習坎, 君子以, 常德行習敎事. 涑水氏曰, 水之流也, 習而不已以成大川, 人之學也, 習而不止以成大賢. 欲其學之廣大, 在乎時習, 故字灝曰汝習. 噫. 古語曰, 人能貴名, 名不能貴人, 字與名奚異哉. 貴名與字之道, 寔在乎其人. 虞而至於豚魚之孚, 定而至於氷壺之淸, 習而至於河海之大, 則斯可謂能貴其字矣. 此令兄弟其各勉之哉. - 김수항(金壽恒, 1629-1689), 「김순, 김징, 김호 삼 형제 자설(金洵瀓灝三兄弟字說)」, 『문곡집(文谷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