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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자문_86.庶幾中庸 勞謙謹勅(서기중용 노겸근칙) 86.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와 『중용(中庸)』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11. 18. 18:44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와 『중용(中庸)』

 

庶幾中庸이면 勞謙謹勅이라.
(서기중용이면 노겸근칙이라.)
중용에 가까워지려면,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고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庶(무리 서) 幾(거의 기) 中(가운데 중) 庸(떳떳할 용)
勞(힘쓸 로) 謙(겸손할 겸) 謹(삼갈 근) 勅(경계할 칙)

 

 

요,순임금도 '允執厥中(윤집궐중:미덥게 그중을 잡음)'하여, '執基兩端(집기양단:그 양끝을 잡음)'하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勞謙謹勅(노겸근칙)'해야한다고 했다.'庶幾'는 거의 다다름을 뜻하며 '中庸'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과(過)하거나 不及(불급)함이 없는 상태 즉 不編不倚(불편불의)를 말한다.

 

유가(儒家)학파의 정통 학맥이 공자 → 증자 → 자사 → 맹자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전 이야기에서 말씀드렸지요? 공자의 뒤를 이은 증자(曾子)는, 공자의 직계 제자로서 유학의 13경전(十三經典) 중 하나인 『효경(孝經)』의 저자입니다. 자사(子思)는 바로 이 증자(曾子)의 제자였습니다. 또 그는 공자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공자에게는 백어(伯魚)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공자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사(子思)는 바로 백어의 아들입니다. 자사(子思)는 자(字)이고, 이름은 공급(孔伋)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사(子思)는 공자 가문의 대(代)를 잇는 장손(長孫)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자사(子思)가 가문의 대(代) 뿐만 아니라 학문의 대(代)까지 이었으니, 공자는 손자 하나는 정말로 잘 두었던 셈입니다.

자사(子思)를 두고 왜 유가의 정통 학맥을 계승했다고 할까요? 그것은 그가 지었다고 전하는 『중용(中庸)』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공자의 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체가 1백9자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유가(儒家)의 근본 철학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훗날 남송(南宋) 성리학(性理學)의 태두인 주희(朱羲 : 주자)가 『예기(禮記)』의 한 편(篇)이었던 『중용(中庸)』을 『대학(大學)』과 함께 따로 뽑아내어 사서(四書 : 논어·맹자·중용·대학)로 삼았습니다. 비록 『예기(禮記)』가 유가 사상을 총망라한 백과사전이고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서 유가(儒家)학파에서의 지위야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지만, 『중용(中庸)』을 단지 『예기(禮記)』의 한 편으로 남겨놓기에는 그것의 사상적 가치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자사(子思)가 『중용(中庸)』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공자 사상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소위 '중용(中庸)의 도(道)'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中)'은 치우치거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을 말하며, '용(庸)'은 항상 존재하는 이치로서 결코 바뀌지 않는 도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치우치거나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으면서도 결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로서 모든 유학자들이 추구하는 결코 바뀔 수 없는 이치가 바로 중용(中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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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용(中庸)'이라는 말의 뜻풀이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실천하기 힘들고 또 이루기 힘든 것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庶幾中庸(서기중용)이면 勞謙謹勅(노겸근칙)이라(중용에 가까워지려면,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고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는 바로 중용(中庸)을 실천하고 이루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입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고 삼가고 경계해야 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건만, 이렇게 해도 단지 중용(中庸)에 가까워지는 것일 뿐 중용(中庸)을 이룬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이윤숙 천자문역해

 

 

제9절 進退之節(진퇴지절) / 관리로서의 잣

 

[85]~[92]는 8개 문장 64자로, 나라의 관리로서 지켜야할 덕목과 자세에 대해 거론하였다. 유학의 기본정신인 인의(仁義), 절개와 지조, 중용 등을 한시라도 잊지 않도록 충고하고 있다. 또한 늘 겸손하고 삼가는 자세로 일을 하되 작은 일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꼼꼼히 가려서 처리할 것도 당부하고 있다. 아울러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진퇴의 절도를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며(맹자,사어,소광,소수), 관리로서 군자가 처신해야할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86]구절은 관리로서 스스로 수신(修身)하면서 내면으로 닦아야 할 덕목을 말하고있다. [87]구절은 외향적으로 드러나는 덕목인 이목(耳目)의 총명(聰明)을 강조하고 있다. [91].兩疏見機 誰逼解組은 받침없는 '운'을 맞추기 위해서 解組/誰逼을 두글자를 서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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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孟軻敦素하고 史魚秉直이라

맹가는 본바탕에 돈독하시고, 사어는 직간을 잘하였느니라.

孟(맏 맹)    軻(수레 가)    敦(도타울 돈) 素(흴 소)
史(역사 사) 魚(물고기 어) 秉(잡을 병)    直(곧을 직)

 

86.庶幾中庸이면 勞謙謹勅하리라

거의 중용에 이르려면, 수고로우면서도 겸손하고 삼가하고 경계하여야 하니라.

庶(거의 서) 幾(거의 기)    中(가운데 중) 庸(떳떳할 용)
勞(힘쓸 로) 謙(겸손할 겸) 謹(삼갈 근)    勅(경계할 칙)

 

87.聆音察理하고 鑑貌辨色이라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피며, 모습을 보며 기색을 분별하니라.

聆(들을 령) 音(소리 음) 察(살필 찰)    理(이치 리)
鑑(거울 감) 貌(모양 모) 辨(분별할 변) 色(빛 색)

 

88.貽厥嘉猷하니 勉其祗植이라

그 아름다운 꾀를 주니, 그 공경이 심기를 힘써라.

貽(줄 이)    厥(그 궐) 嘉(아름다울 가) 猷(꾀 유)
勉(힘쓸 면) 其(그 기) 祗(공경 지)       植(심을 식)

 

89.省躬譏誡하고 寵增抗極하라

몸을 돌아보며 살펴 경계하고, 은총이 더하면 극함을 막아야 하니라.

省(살필 성) 躬(몸 궁)    譏(나무랄 기)  誡(경계할 계)
寵(고일 총) 增(더할 증) 抗(겨룰 항)     極(다할 극)

 

90.殆辱近恥하니 林皐幸卽하라

자못 욕되고 부끄러움에 가까우면, 숲 언덕으로 나아감이 좋으니라.

殆(위태할 태) 辱(욕될 욕) 近(가까울 근) 恥(부끄러울 치)
林(수풀 림)    皐(언덕 고) 幸(다행 행)    卽(나아갈 즉)

 

91.兩疏見機하니 誰逼解組이리오

두 소씨가 기미를 보았으니, 누가 인끈 풂을 핍박하리오.

兩(두 량)    疏(성 소)      見(볼 견) 機(틀 기)
誰(누구 수) 逼(핍박할 핍) 解(풀 해) 組(끈 조)

 

92.索居閒處하고 沈默寂寥

한가로운 곳을 찾아 거처하니, 고요하고 적막함에 잠기니라.

索(찾을 색) 居(살 거) 閒(한가할 한) 處(곳 처)
沈(잠길 침) 默(잠잠할 묵) 寂(고요할 적) 寥(고요할 료)

 

자사[ 子思 ] 

고대 중국(전국시대)의 유가(儒家). 이름 급(伋). 자사는 자(字)로서 공자의 손자이며,
그의 저서라고 전해지는 『중용』(中庸)은 진대(秦代)의 자사학파(子思學派)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보통 자사의 사상은 자사학파의 사상으로서 고찰된다. 이 학파는 '성'(誠)을 매개로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을 세워 맹자와 함께 중국에서 최초로 유심론 사상의 토대를 쌓았다.
공자는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하였지만, 자사학파는 '성'(性)을 '천'(天)으로부터 부여된 것(천명)이라 하여 이 성을 좇는 것을 '도'(道),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규정, 하늘과 인간의 본원적인 일치를 선언하면서 그 일치를 지향하는 내성적(內省的) 수양, 실천의 모범을 확립하였다. 성을 쫓는 올바른 길은 군신(君臣), 부자(父子)간 등의 오륜(五倫) 질서인데, 이것은 동시에 오륜 질서의 절대화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몸을 닦는 것이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출발점, 근본이라는 논리, 수신(修身)→치인(治人)→치천하국가(治天下國家)가 설파되지만, 이 논리가 성립하는 경우는 '치자'(治者)에 있어서이다. 그러므로 천인의 합일을 지향하는 내성적 수양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치자'의 수양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천인합일의 근거를 '성'(誠)이라는 주관적ㆍ도덕적 범주에서 구함으로써 유교를 내면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송학이나 유심론 경향의 사상가에서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중용』은 그들에게 가장 중시된 책의 하나이다.
 

 

중용[ 中庸 ] 

≪대학≫·≪논어≫·≪맹자≫와 더불어 사서(四書)라고 한다. 유교에서 사서라는 일컬음이 생긴 것은 중국의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이다. 주희(朱熹)가 ≪예기≫ 49편 가운데 <대학>·<중용>을 떼어내어 ≪논어≫·≪맹자≫와 함께 사서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후 사서는 유교의 근본 경전으로 반드시 읽어야 하였다.

≪중용≫은 이와 같이 ≪예기≫ 속에 포함된 한 편이었지만 일찍부터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으며, 한나라 이후에는 주해서가 나왔으며 33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송나라 정이(程頤)에 이르러 37장이 되었다가 주희가 다시 33장으로 가다듬어 독립된 경전으로 분리시켰다.

 

≪중용≫의 작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종래에는 ≪사기 史記≫의 <공자세가 孔子世家>에 “백어(伯魚)가 급(伋)을 낳으니 그가 자사(子思)였다. 나이 62세에 송나라에서 곤란을 겪으면서 ≪중용≫을 지었다”라는 대목이 있어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청대에 고증학이 대두되면서 자사의 저작이라는 정설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학자는 진(秦)·한(漢)시대의 어떤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저작이라 고증하기도 하고, 또는 자사의 저본(底本)을 바탕으로 후세의 학자들이 상당기간 동안 가필해 완성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여 아직까지 유력한 정설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유적(마왕패)에서 많은 고문들이 발견되어 연구한 결과 중용은 자사의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다.]  

 

≪중용≫을 흔히 유교의 철학 개론서라 일컫는데, 그것은 유교의 철학적 배경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장(首章) 첫머리에서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대목은 유교 철학의 출발점과 그 지향처를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삶을 누리자면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그 배움에는 길[道]이 있고 길은 바로 본성(本性)에 바탕하며, 본성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갖추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저절로 갖추어진’ 본성을 유교에서는 맹자 이후 ‘순선(純善)’한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송대에 와서 정립된 성리학은 이에 기초해 전개되고 있다.

≪중용≫은 33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전반부·후반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중용 또는 중화 사상(中和思想)을 말하고, 후반부에서는 성(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中)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不偏不倚無過不及)을 일컫는 것이고, 용(庸)이란 떳떳함[平常]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희는 설명하였고, 정자(程子)는 기울어지지 않는 것[不偏]을 중이라 하고 바꾸어지지 않는 것[不易]을 용이라 하였다.

중화 사상은 중용을 철학적 표현으로 달리 말한 것인데, 이 때의 중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로되기 이전의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마음이 발해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중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라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우주 만물이 제 모습대로 운행되어 가는 것을 뜻한다.

 

성(誠)은 바로 우주 만물이 운행되는 원리이다. 그 원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꿰뚫어 있다. 그래서 “성은 하늘의 도이고 성되려는 것은 사람의 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성실한 것은 우주의 원리이고,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우주의 운행 원리인 성을 깨닫고 배우고 실천하는 데에서 인격이 완성되며, 결국에 가서는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신라 원성왕 4년(788) 관리 등용법인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태학(太學)에 설치할 때 그 과목 중에 ≪예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삼국 시대에 ≪예기≫의 한 편으로서 ≪중용≫을 접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고려 말 정주학을 수용한 이후에는 사서의 하나로 ≪중용≫을 극히 존숭하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권근(權近)은 사서에 구결(口訣)을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모든 유학자들이 ≪중용≫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성리학이 바로 ≪중용≫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 사회에 있어서의 학술의 전개와 민족 문화 발달에 중용적 철학 사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시간과공간
글쓴이 : 재휘애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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