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나는 우유’ 굴
굴은 10월에서 3월까지가 먹기에 좋으며 추울수록 맛있다. 서양에서는 영어로 스펠링에 R자가 들어가지 않는 달인 5월(May), 6월(June), 7월(July), 8월(August)에는 굴을 먹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 시기가 바로 굴의 산란기여서 아린 맛이 나며 쉽게 상해서 중독되거나 배탈이 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굴을 식용해 온 듯하다. 철기 시대 초기의 경남 김해 조개무지에서 살조개, 새고막, 가막조개, 전복, 무명조개, 홍합, 굴조개, 다슬기, 우렁이 등 30여 가지의 조개 껍질이 나왔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1세기부터 나폴리에서 굴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로마의 황제들이 굴을 즐겨 먹었고,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굴을 계속 먹었으며,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하루에 175개나 되는 굴을 먹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강장 식품으로 여겨 왔는데 의서 『명의별록(名醫別錄)』에서는 굴의 효능에 대해 허열(虛熱)을 내리고 기결(氣結)을 풀며, 땀을 멎게 하고 갈증을 덜어 주며 노혈(老血)을 없애고 설정(泄精)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굴은 세계 곳곳에서 많이 나며 종류가 80여 종에 이른다. 나라나 민족마다 먹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어디서나 신선한 것은 날로 먹는다. 우리는 초간장이나 초고추장을 찍어서 먹지만, 유럽에서는 레몬즙만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겨울에 즐겨 먹는다. 중국에서는 날로 먹기보다는 거의 볶거나 끓여 먹는다.
굴은 바닷가 암초에 붙어 산다. 큰 것은 10cm 정도이고 폭이 3~4cm 되는 기다란 삼각형 모양으로 표면이 아주 단단하고 울퉁불퉁하다. 5월에서 8월 사이에 산란을 하여 유충이 살 곳을 찾아서 바다를 떠돌다가 바위에 붙어서 자란다. 다른 조개류와는 달리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성장하여 큰 굴이 된다.
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양식하기가 쉬운데 우리나라에는 한려수도의 청정 해역에 굴 양식장이 많다.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예전에 남양만에서 굴이 많이 났음을 알 수 있다.
회로 먹을 때는 큰 것보다 작은 굴이 맛있다. 천연 굴은 알이 작고 양식 굴은 대개 크지만 야무진 맛이 없다. 강굴은 굴을 깐 다음에 물을 타지 않아서 또렷또렷한 굴 알을 말하는데 굴을 맹물에 마구 흔들어서 씻으면 수용성 영양분과 단맛이 빠져 나가 맹숭한 맛이 난다. 소쿠리나 망에 굴을 담고 소금물에 담아서 굴 깍지나 잡티를 골라내고 손으로 휘저어 씻는다. 날로 먹을 때는 무를 강판에 갈아 섞어서 저으면 잡티나 껍질이 묻어 나가 깨끗해진다.
싱싱한 굴은 살이 오돌오돌하고 통통하며 유백색이고 광택이 나며, 눌러 보면 탄력이 있다. 살 가장자리에 검은 테가 또렷하게 나 있는 것이 껍질을 깐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전체가 불은 것처럼 희끄무레하고 살이 퍼진 것은 싱싱하지 않다. 천연 굴이 잘고 맛있지만 요즘은 양식 굴이 많다. 비닐 봉지나 통에 바닷물과 함께 포장하여 파는 것은 거의가 양식 굴인데 위생적으로 처리되어 있으므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깐 굴은 선도가 급격히 떨어지므로 선도에 자신이 없을 때는 전을 지지거나 찌개에 넣어 먹는 것이 좋다.
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는 말이 있듯 영양적으로 완전 식품에 가깝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에 라이신과 히스티딘이 많아 곡류에 부족한 아미노산을 보충할 수 있고, 당질은 글리코겐 형태로 많이 들어 있어 소화 흡수가 잘 되므로 회복기 환자나 노인, 아이들에게도 두루 좋다. 특히 ‘비타민과 무기질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철분, 아연, 칼슘, 인 등이 고루 들어 있어 빈혈 치료에도 아주 좋다. 또 타우린, 셀라늄, EPA가 함유되어 있어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등의 성인병 예방에 좋다. 한방에서는 간장 및 장 질환, 두통에 효과가 있고, 땀이 많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좋다고 한다.
굴로 만드는 우리 음식으로는 날로 먹는 굴회와 달걀을 씌워서 지지는 굴전유어가 있으며, 찌개나 국에도 넣고, 별미로 굴밥이나 굴죽도 만든다. 배추김치나 깍두기에 넣기도 하며 산지에서는 젓갈을 많이 담근다. 김치에 굴을 넣으면 김치 맛이 훨씬 좋아지고 영양 보충도 된다. 충남 서산의 붉은색 어리굴젓은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전라도에서는 이와는 달리 소금에만 절이는 석화젓이 유명하다.
『산림경제』에서는 “석화(石花 : 굴조개)는 이른 봄과 가을, 겨울에 먹는다. 회로 초장을 찍어 먹으면 좋다. 굴은 성질이 냉한데 밥 위에 쪄서 소금을 쳐 먹어도 좋다. 큰 굴을 떼어서 꼬챙이에 꿰어 기름장을 발라 구우면 절미”라고 하였다.
굴은 수분이 70%를 차지하므로 너무 많이 가열하면 수분이 다 빠져버려 쪼그라들면서 단단해져 맛이 없다. 어떤 음식을 만들든지 다른 재료가 다 익고 나서 마지막에 넣어 재빨리 잠깐만 익히는 것이 좋다. 서양에서는 굴프라이와 차우더(Chowder)를 많이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