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客)이 내게 말하였다. “그대가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사람들이 모두 말이 많으니,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가 말하였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 수 있겠는가?” 객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뜻을 고상히 하여 응시하지 않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성을 높이려고 응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높이고 낮추고, 억누르고 띄워주는 것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니, 그대는 위태롭게 되었네.” 내가 근심하며 말했다. “가벼운 것도 많으면 수레의 굴대를 부러뜨리고,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는 법이네. 남들에게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해명할 수도 없는 것이니, 내가 비난의 표적이 되겠구나. 그렇지만 그대를 위해 이전에 들었던 것을 말해 보겠네. ‘대개 선과 악은 자신에게서 드러나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서 드러나는 법이다. 자기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지만, 남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야 하겠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우라면 그들에게 맡길 따름이니, 내가 또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이 말에서 비난과 칭찬은 근심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객이 말했다. “훌륭하도다. 그대가 아니라면, 내가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대개 하늘이 돌면 땅이 반대로 움직이고 양이 열리면 음이 닫히는 등, 굽히고 폄[屈伸], 사라지고 생겨남[消息]과 오르고 내림[升降], 가고 옴[往來]이 모두 그렇게 되기를 기약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인사의 길흉(吉凶)과 시비(是非)도 서로 처음과 끝처럼 연결되어 있네. 그러므로 길함이 있으면 반드시 흉함이 있고, 옳음[是]이 있으면 그름[非]이 있으며, 칭찬이 있으면 반드시 비난이 있는 것이네. 그래서 ‘명분은 실제의 손님이고, 이로움은 해로움의 주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통해 말해보자면 칭찬한다고 반드시 기뻐할 것도 없고, 비난한다고 반드시 근심할 것도 없이, 천명에 순응할 따름이라는 것을 알겠네. 경전(經傳)에 이르지 않았던가? ‘내면을 살펴서 하자가 없으니,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내 장차 그대와 더불어 산과 바다에 정신을 깃들이고 천지의 조화를 살피면서, 포희(庖犧)를 좇아 따르리라.*” 내가 말했다. “좋네.”
* 포희(庖犧)를 … 따르리라 : 유유자적하며 은자의 생활을 즐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포희는 중국 상고 시대의 전설상의 황제인 복희씨(伏犧氏)를 말한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이 있다. 『陶淵明集 卷7 與子儼等疏』
客有謂余者曰。子之不赴春圍。人皆咻之。子且奈何。余曰。請聞其說。客曰。或云抗志以不赴。或云要價以不應。高之下之抑之揚之。不可勝紀。子其危哉。余憂之曰。羣輕折軸。積羽沈舟。人不可家至而戶說。吾其毁之囮哉。雖然。請爲子誦其夙聞。蓋善惡形於己。毁譽著於人。形於己。吾得以自盡。著於人。吾無奈何。吾得以自盡。吾當自勉。吾無奈何。任彼而已。吾又如何。吾於是知毁譽之不足憂矣。客曰。善哉。微子。吾誰與歸。夫天廻而地遊。陽開而陰翕。屈伸消息。升降往來。皆有所不期然而然者。而人事之吉凶是非。亦相與終始焉。故有吉必有凶。有是必有非。有譽必有毁者。故曰。名者。實之賓。利者。害之主也。由此而言。譽不必喜。毁不必憂。吾知順乎命而已。傳不云乎。內省不疚。何憂何懼。吾將與子。棲神山海。觀化天地。往追庖犧以從。余曰諾。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삼해(三解)」, 『고봉집 속집(高峯集 續集)』 권2, 잡저(雜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