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빙고는 옛날의 능음(凌陰)1)이다. 동빙고는 두모포에 있는데, 얼음을 넣는 창고가 하나뿐이라서 국가의 제향에 쓰이는 수요만 담당한다. 얼음을 저장할 때는 봉상시가 주관하며 별제 두 사람이 함께 검찰한다. 또 감역부장과 벌빙군관의 감독하에 저자도2) 부근에서 얼음을 채취하는데, 이것은 개천(청계천) 하류의 더러움을 피하기 위함이다. 서빙고는 한강 하류 둔지산 기슭에 있는데, 빙고가 8채(梗)나 되므로 모든 국용 및 여러 관사와 고위 관료가 모두 이 얼음을 쓴다. 얼음은 두께가 4치가량 언 뒤에 채취 작업을 하는데, 그때는 여러 관사의 관원들이 동원되어 경쟁을 하므로 군인이 많아도 잘 채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강촌 백성들이 얼음을 채취하여 군인들에게 팔곤 한다. 또 칡 끈을 얼음 위에 걸쳐 놓아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강가에는 땔나무를 쌓아두어 동상에 대비하며, 의원과 약을 갖춰 두어 병들거나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등 사고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다. 8월에 군인들을 보내서 고원(雇員)의 인솔하에 빙고의 천정을 수리하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썩은 것을 갈고, 담이 허물어진 것을 고친다. 또 압도(鴨島)의 갈대를 베어다가 빙고의 상하 사방을 덮는데, 갈대를 두껍게 덮으면 얼음이 녹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담당 관원이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얼음 저장하는 일을 하리들에게 맡기곤 하였다. 계축년(1493)에 얼음 저장이 허술하게 되자 상이 노하여 담당 관원들을 모두 파직하였다. 그 때문인지 갑인년(1494)에는 얼음 저장이 잘 되어 을묘년(1495)의 국상(國喪)과 중국 사신 접대에도 얼음이 부족하지 않고 가을까지 빙고에 얼음이 남아 있었다.
1) 능음(凌陰) : 주(周) 나라 때 얼음을 저장했던 지하 창고이다. 2) 저자도 : 지금의 금호동과 옥수동 남쪽 한강에 있었던 모래섬으로, 한강 본류와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삼각주였다. 한강에서도 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今之氷庫, 卽古之凌陰也. 東氷庫在豆毛浦, 只有一庫, 以供祭祀之用. 其藏氷時, 奉常寺主之, 與別提二人同力檢察. 又有監役部將伐氷軍官, 監取於楮子島之間, 所以避開川下流之汚也. 西氷庫在漢江下屯知山之麓, 庫凡八梗, 諸國用諸司諸宰樞皆須用之. 氷堅四寸然後始役. 當其時, 諸司之員, 爭相務勝, 軍人雖多, 不能善取, 村民鑿取賣於軍人. 又施葛繩於氷上, 以防顚躋; 設柴木於江邊, 以救凍人. 又置醫藥, 以濟疴傷, 其備患深矣. 當初八月, 多給軍人於氷庫, 庫員率軍人, 修理庫井, 樑桷之敗者易之, 墻籬之毀者改之. 又庫員一人往鴨島, 刈取葭薍, 蓋覆庫之上下四傍. 多積而厚藏之, 則氷不消融. 前者官人等日夜縱酒酣醉, 以藏氷之事, 委諸下吏. 癸丑年藏氷疏漏, 上怒皆罷. 甲寅年官吏用心藏氷, 故乙卯年國之大喪, 使臣宴需, 氷用不乏, 至秋庫有餘氷. - 성현(成俔, 1439~1504), 『용재총화(慵齋叢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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