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사람닭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5. 7. 14:35
- 삼백스물한 번째 이야기

2014년 5월 5일 (월)

‘사람닭’ 이야기 - 자식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성

대한민국을 절망케 하는 사고에 온 국민이 슬프다. 모두들 흐느낀다. 낱낱이 드러난 대한민국의 민낯에 얼굴이 붉어진다.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그동안에 이루었던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자존심도 자긍심도 세울 길이 없다. 잘못된 안내방송에 따라 선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자신의 책임은 도외시한 채 수많은 아이들을 뒤로한 채 빠져나오는 선장의 모습에, 일사불란한 구조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정부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일고, 분노가 치민다.

이제 우리 기성세대들은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무슨 말을 할까? 원칙을 따르다가 자신의 목숨마저 잃게 된 이런 사태 앞에서, 무슨 말을 할까? 원칙을 지키라고 할까? 안내요원의 말을 따르라고 할까?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과 함께, 꽃다운 학생들이 스러짐과 함께,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지금은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것조차도, 살아가는 원칙을 얘기하는 것조차도 미안스럽다. 평범한 일상조차도 죄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기에서 절망만 하고 있으면, 스러져간 꽃들에게 다시 한번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시는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젠 꽃들에게 미안스러운,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스러져간 꽃들에게 속죄할 수 있다.

5월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날이 들어 있는데, 5월 5일의 어린이날과 5월 8일의 어버이날이다. 자녀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자애, 부모와 어른에 대한 효성과 공경을 특별히 생각해 보기 위하여 날짜를 정해 놓은 것이다. 사랑과 자애, 효성과 공경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목숨 다음으로 중요한 덕목이다. 이것들은 인간 도리의 기본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어느 한쪽을 폐해서도 안 되는데,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 그렇지가 못하여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이웃집에서 닭을 기르고 있는데, 그 닭이 자신의 새끼 닭을 몹시 사랑하여, 혹 자신의 어미 닭에게서 먹이를 빼앗아다가 자신의 새끼 닭에게 먹이기도 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 새끼 닭이 자라나서 다시 또 병아리를 깠다. 그러자 그 새끼 닭도 역시 자신이 깐 병아리를 사랑하기를 그의 어미 닭이 자기를 사랑하듯이 하였다.
어느 날 그 어미 닭이 부엌 부뚜막 위에 흘려져 있는 밥알을 발견하고 쪼아 먹으려고 하였다. 그때 그 새끼 닭이 달려와서 그 어미 닭과 싸워 밥알을 빼앗아다가 자기가 깐 병아리에게 먹이기를, 마치 작년에 그의 어미 닭이 자신에게 먹이기 위하여 자신의 어미 닭과 싸우듯이 하였다. 내가 그것을 보고는 탄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작년에 그의 어미 닭이 자신의 새끼 닭을 기를 적에 어찌 올해에 그 새끼 닭이 또 그 어미 닭이 그 할미 닭에게 하듯이 자신의 먹이를 빼앗아서 자기 닭의 병아리에게 줄 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무릇 사람이라고 이름 하는 자들도 역시 이와 같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들은 열이면 열 사람이 다 그런 데 반해, 자기의 자식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백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다. 또 부모의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자들은 백이면 백 사람이 다 그런 데 반해, 자식이 자기에게 보답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는 천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만 있다.
이와 같은 자들은 바로 작년의 그 어미 닭과 같은 것이다. 바야흐로 자신이 자신의 어미 닭과 싸워서 자신의 새끼 닭들에게 먹일 적에는, 그 새끼 닭이 자라나서는 또다시 자신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새끼 닭의 병아리들에게 먹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 사람으로서 닭들과 같아서야 되겠는가? 만약 닭과 같다면, 그런 사람을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닭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그런 사람을 일러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사람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鄰家畜雞。雞愛厥子。或至與厥母爭食以哺其子者。明年其子長而又生子。亦愛之如厥母之愛厥也。一日厥母拾遺飯於竈厨之間將食之。厥子來。與之闘奪。以哺厥所生。若昨年厥母之爲其子而戰厥母也。余適遇之。歎曰。噫噫。昨年厥母養厥時。豈謂今年其子又作厥母之於厥祖樣也哉。凡名爲人者亦若是。不能盡父母之養者什什。不知愛厥子者。百而有一乎。不能報父母之恩者百百。不望報於子者。千而有一乎。若此者。卽昨年母雞也。方闘其母養其子。不知厥子又闘其母養其子。噫。可以人而同於雞乎。然則以是謂人耶雞耶。謂之人不可。則雖謂之人雞。亦可也。

- 김약련(金若鍊 1730~1802), 「사람닭 이야기[人雞說]」, 『두암집(斗庵集)』


▶산수문자도(山水文字圖) 부분. 『한국의 미8, 民畵』에서 인용.
중국의 유명한 효자들을 상징하는 죽순[孟宗], 잉어[王祥], 부채[黃香], 귤[陸績], 거문고[舜임금]를 그려 넣은 '孝子圖'


조선 정조와 순조 때 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생의 대부분을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보냈던 두암(斗庵) 김약련(金若鍊)이, 닭이 자신의 어미 닭이 먹을 먹이를 빼앗아 자신의 새끼 닭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느낀 심정을 기록한 글이다. 두암의 이 글은 효(孝)의 사상이 퇴색한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대부분 자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사랑을 쏟는 반면, 부모에 대한 효성은 등한시하고 있다. 자식을 위하여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부모를 위해서는 적은 돈도 아까워하고, 심지어는 애완동물이 병이 나면 가축병원에 데려가면서도, 늙은 부모가 병이 나면 늙어서 그런 것이려니 한다. 또한, 우리들은 대부분 자식이 자신에 대해서는 효성을 다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 등한시한다. 아니 아예 부모의 은혜를 깡그리 잊고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까지 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누가 가르치지 않고 시키지 않더라도 모든 부모 된 사람들이 다 잘한다. 아니 도리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부모에 대한 효성은, 그것이 사람의 본능이기는 하지만, 자녀에 대한 본능만큼 큰 본능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으면 소홀히 하기가 쉽다. 여북하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고, ‘열 자식이 한 부모 못 모신다.’고 하겠는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자기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는 것이다. 자신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면,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식은 굳이 자신에게 효성을 다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당연히 효성을 다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지 않았을 경우,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식은 제아무리 자신에게 효성을 다하라고 다그쳐도 효성을 다할 리가 없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 평범한 이치를 안다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 자기 자녀에게 불효를 저지르라고 가르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자기 자식에게 불효를 저지르라고 가르치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참으로 두렵고도 두려운 일이다.


선비에게 부모 있어 당에 계신데,
가난해서 맛난 음식 못 드리누나.
새조차도 사람 마음 감동케 하니,
숲 까마귀 반포함에 눈물 떨구네.

士有親在堂
貧無甘旨具
微禽亦動人
淚落林烏哺

이 시는 현종 때 이조 판서와 개성부 유수 등을 지낸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이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인조에게 지어 올린 시로, 『인조실록(仁祖實錄)』에 실려 있다. 여기에 나오는 반포(反哺)라는 말은, 까마귀 새끼가 다 장성한 뒤에는 먹이를 물어다가 늙은 어미에게 먹여 주어 어미의 은혜를 갚는다는 고사(故事)에서 온 말로, 부모에게 효성을 다 바쳐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옛날에는 효리지치(孝理之治)라고 하여, 효를 근본이념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시켰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효라는 이념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 시를 본 인조는 박장원의 효성에 대해 칭찬하면서, 박장원에게 쌀과 베를 내려 주어 어머니를 봉양하게 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장사익의 <꽃구경>이라는 노래가 흐른다. 이 순간이나마 어머님을 생각해 보고 싶어 일부러 틀었다.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 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가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신대요? 아,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대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노래를 들으면서 노쇠한 몸으로 홀로 시골에서 지내고 계신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파트 생활은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하시면서, 오셨다가도 곧바로 내려가, 굳이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 깊은 속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며 치솟아 오른다. 그저 죄송해서 눈물이 난다.

이 화창한 5월에, 우리 기성세대들이 잘못해서 스러져간 꽃들에게 미안하여 고개가 숙여지고, 내가 잘못해서 홀로 계신 어머님께 죄송해서 눈물이 난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다..



정선용 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