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공밥을 먹지 마라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4. 29. 11:10
- 이백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2014년 4월 24일 (목)

공밥을 먹지 마
일하지 않고 밥 먹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不事而食 禽獸之類
불사이식 금수지류

- 김주신(金柱臣, 1661~1721)
「선비 행장(先妣行狀)」
『수곡집(壽谷集)』 권7


윗글은 조선 후기의 문인 수곡(壽谷) 김주신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을 기술하면서 어머니께 평소 들었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읜 아들에게 무척 엄격하셨던 어머니는 아들이 빈둥대고 태만한 모습을 보이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훈도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유사한 뜻으로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관리들이 스스로 녹만 축내고 있다고 자책하거나 혹 남의 무능함을 질타할 때 많이 쓰는 말입니다. 시위(尸位)는 헛되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에 “태강이 시위하여 안일함과 쾌락으로 그 덕을 상실했다.[太康尸位以逸豫,滅厥德]”라고 하여 하(夏)나라 태강(太康)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것을 지적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소찬(素餐)은 수고하지 않으면서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무위도식(無爲徒食)과 같은 말인데, 『시경』 「위풍(衛風)」 벌단장(伐檀章)에, “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는구나[彼君子兮 不素餐兮].”라고 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구한말 당시 대신들을 비난하면서 “멍청한 자는 시위소찬에 만족하고 영악한 자는 책임만 면하려고 한다.”라고 질타한 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눈치나 살피며 안일만 탐하다가 마침내 군중의 분노를 일으키고 결국 나라와 백성을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혹 내가 떳떳지 못하게 공밥만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엄청난 재난을 초래한 빌미가 된 것이 아닌지 통절히 돌아볼 때입니다. “시위(尸位)는 신하로서 대죄(大罪)에 해당된다.”라 하고 관직을 단호하게 뿌리친 퇴계 선생(退溪先生)의 모습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놀라운 공부 > 옛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닭  (0) 2014.05.07
천상(天上)의 절벽(絶壁)  (0) 2014.04.30
꽃 피는 좋은 시절  (0) 2014.04.29
의로운 개[義犬] 이야기  (0) 2014.04.29
역사의 이면에 숨은 희생자  (0) 201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