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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플레이아데스의 사명] 임마누엘 이야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11. 24. 14:09

 제11장-[플레이아데스의 사명]  임마누엘 이야기

11장 임마누엘 이야기
 

창조 안에서의 우리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한 탐구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종교들과 다른 신앙체제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모든 종교들이란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인간의 시도들이다. 인간의 모든 역사를 통해 삶의 의미는 우상들이나 신화, 태양신, 조신(bird gods)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들에 의해 설명이 되어 왔다. 이런 것들은 시대의 이해와 지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삶에 대한 공부들을 단계별로 밟아야만 한다. 진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도전하고, 발견하며,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생각에 있어서 발상의 전환을 위한 시대, 우리 자신들을 위한 진리를 찾아 나서는 시대를 대표한다. 우리는 이제 종교들과 철학자들을 절대적인 권위자로 대접하고 경청해서는 안 되지만, 그 대신 그들의 말들을 우리가 개인적인 발견의 길을 걷는 데에 활용하기 위한 단지 하나의 정보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변환기에 있어서 우리는 창조와 자신의 연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 즉 스스로 자신들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어떤 신-하나님, 부처님, 신장님-이 어떤 것을 원한다고 말해 주는 영적인 영매(middle-man)들이 필요없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우리가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삶이 주는 어려움들을 직면하는 것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100퍼센트 책임을 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우리가 진실로 배우게 될 위대한 공부들인 것이다. 미래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모범과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개념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고대에는 신들이 이 지구를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홀로 서서 창조 안에서 자신이 영적으로 설 자리를 발견해야만 한다
 

새로운 시대가 되면 인간은 자신의 영혼과 접촉을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이미 창조의 한 부분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속에 창조 자체와 연결되어 있는 영적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게 된다. 이 영혼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실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창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됨에 따라, 우리의 영혼들이 텔레파시나 텔레키네시스, 미래 비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창조 및 고도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다른 존재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들과 같은 독특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음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교육과 새로운 방법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낡은 페러다임(paradigm발상체계)들이 답변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을 하고 있다. 우리의 영적 자아를 이해할 수 있고 이 자아를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리고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필요성이 여기에 있으며 종교는 그 대답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2천 년 전의 평균적인 사람들을 들여다 보면, 제대로 구성된 종교(기독교)가 얼마나 가치가 있었겠는지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는 혼돈의 시대였으며, 인간들은 자신의 삶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잘 짜여진 종교를 구슬프게 필요로 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신(하나님)과 인간의 삶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논리적인 방법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것을 제공했던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삶들이 스스로를 다스리기 시작할 수 있도록 십계를 가졌다.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에 준해 살 수 있었던 기본적인 법칙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들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존재에 대한 이유를 발전시켰으며 창조에게 보다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그들의 삶은 그로인해 보다 풍성해졌으며 보다 더 의미롭게 되었다. 기독교는 이들의 가르침들이 함께 집대성되어 신약 성서(the New Testament)가 되었을 때 탄생되었다. 태양신으로써 시대들에 대한 이해를 반영했던 이집트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그것의 시대에 대한 일종의 반영으로써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천 년이 흘렀으며 우리는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 즉 보다 복합적이고 정교한 이해가 요구되고 있는 시대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기독교는 원래의 형태 속에서 자체보다 오래 살아 왔으며, 더 이상 우리들의 의문들에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자신 속에서 찾아라. 그러면 당신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라나면서 내 부모들은 성공회와 아주 깊이 관계하고 있었다. 나는 신부의 보조인 보미사였으며, 영성체식(Communion ceremony)의 거의 전 과정을 단번에 암송하기도 했었다. 나의 성장 과정은 미국의 중서부 지방에 있어서는 아주 정상적인 것이었으며, 내가 살던 동네의 다른 어떤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로 당연스럽게 기독교를 배우면서 자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사물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으며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 했다. 그 뒤 나는 사업상 일본, 중국, 유럽, 이집트 등으로 여행하게 되었으며, 사람들마다 제각기 서로 다른 관점들과 깨달음(understanding)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동일한 것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라의 숫자들보다 더 많은 철학들, 신앙들, 그리고 종교들이 있었다. 어느 곳을 가든지, 당신은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듣게 된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은 환상적이었으며, 나로 하여금 인도에서 살았던 예수에 대한 책을 읽도록 이끌었다.   

 

예수는 인도에서 살았다
 

내가 '셈야제 실버스타센터'에서 머물고 있을 때 나는 빌리의 '컨택노트'와 내가 가지고 갔던 다른 여러 가지의 책들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가운데 ‘Jesus Lived in India’(한글판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장성규 옮김. 고려원. 1987초판)라는 이름의 책이 한 권 있었다. 이 책은 내가 미국을 떠나기 전에 친구가 준 것이었다. 그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모든 것에 관한 것이었는데, 독일의 역사학자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in)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조사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형에서 살아 남았으며 그 뒤로도 여러 해 동안 인디아에서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이스라엘에서 수년간 연구를 한 끝에 펴낸 상세한 보고서이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인디아 등지에서 그는 십자가형 이후에 예수가 밟았던 길들을 밝혀 냈다. 그의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이 행해 왔던 탐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살아난 뒤에 밟았던 길을 따라 걸었는데, 그 결과 이 역사학자는 여러 나라들을 거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예수와 그의 가르침들을 묘사하고 있는 낡은 두루마리들과 서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예수가 인도의 슈리나가르라는 고장에서 자신의 말년을 보냈다는 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로 끝을 맺고 있는데, 그에게는 가족들이 있었으며 아주 나이가 많이 든 다음에 생을 마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책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잘 쓴 것이었다. 즉 저자가 자신의 모든 주장들을 아주 잘 뒷받침하고 있어서 설사 법정에 서더라도 저자가 충분히 승소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읽은 내용에 감명을 받아, 나는 플레이아데스인들과 접촉한 인물인 빌리가 이 책의 내용을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알고 싶어서 안달을 했다. 나는 빌리가 셈야제에게 종교(주로 기독교), 신(기독교의 하나님), 그리고 예수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에게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들이 역사를 실제로 목격하는 기술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한 개인의 경험에 대해서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빌리에게 전해 주었을지도 모르는 정보는 다른 어떤 데에서 나온 것 보다도 진실에 더 접근해 있을 것이었다. 역사상 예수의 삶과 죽음만큼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별로 없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다.
   

임마누엘(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나는 부엌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빌리를 찾아냈다. 그는 내가 이 책을 며칠동안 읽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온갖 질문들을 가지고 내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반 위에 놓인 라디오 위에서 메모지를 두 장 집어 들었다. 나는 내 첫 번째 질문이 예수가 정말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빌리도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빌리는 나에게 예수가 그의 진실한 이름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예수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생 동안, 그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이 이름은 A.D. 189년에, 여전히 기독교를 만들고 있는 단계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임마누엘의 가르침들이, 아마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을 최대한 발휘하여 다시 씌어진 것도 이 기간 동안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저술들 속에는 임마누엘(Jmmanuel)이 Emmanuel로 씌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많은 찬송가들 속에서도 여전히 이 철자, 즉 Emmanuel로 발견되고 있다. 아직도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라이라인들의 고대 언어 속에서는, 그 이름의 철자는 J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빌리는 그를 Jmmanuel이라고 지칭한다.
 

우리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임마누엘의 이미지는 길다란 금발 머리에 좁고 섬세한 골격을 가진 젊은이다. 빌리는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얼굴을 쳐다 보면서 몇 초 동안 생각을 하고 나서, 임마누엘은 십자가형에 처해질 무렵에 실제로 대략 178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78-80kg정도의 몸무게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검고 곱슬곱슬한 머리에 골격이 컸으며 커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볕에 그을었으며 햇볕에 장기간 노출된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에라 행성에서 온 셈야제가 그린 예수님의 초상화>

임마누엘의 출생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임마누엘이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이며, 모든 인간들과 똑같이 살다가 죽었음을 명백히 밝히기를 원했다. 그의 생애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진실을 위해 싸운 한 예언자의 삶이었다. 그는 플레이아데스에서 온 천상의 아들들로부터, 그들의 지혜를 통해 많은 교육을 받았다. 자기 영혼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그는 지구상에 창조의 지식을 전한다고 하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를 발견했다. 그의 출생은 플레이아데스인들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이는 지구상에 있던 플레이아데스인들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플레요스(Plejos)에 의해 요청되었던 것이다. 플레요스는 자신의 여생을 보내기 위해 플레이아데스로 되돌아 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 한 사람을 뒤에 남겨 그로 하여금 창조와 삶에 대한 공부들을 자기 대신 가르치도록 하고, 자신들은 플레이아데스로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지구를 다스릴 신들이 이제 더 이상 없었기 때문에, 플레요스는 플레이아데스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영혼을 지상에 탄생시키도록 허락을 구했고, 그들로부터 허락이 떨어졌던 것이다. 임마누엘의 경우 평범한 지구인 부모들로부터 태어나기에는 그의 영혼이 너무 고도로 진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역시 고도로 진화된 플레이아데스인 남자가 되기로 결정이 되었다. 가브리엘(Gabriel)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아데스인이 아버지로 결정되었고, 마리아(Mary 또는 Maria)라고 하는 지구 여자가 아이를 임신하기로 정해졌다. 그녀는 지구상에서 살고 있던 오래된 라이라인 영혼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녀의 유전자는 들어올 영혼이 보다 높이 진화하는 것을 도와 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임신시킨 수단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그러나 그가 그녀에게 이 가장 특별한 영체의 탄생을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이에 동의했고, 임마누엘의 영혼은 지구로 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그녀의 몸으로 들어왔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이 특별한 수태(impregnation)에 대해서 들었을 때, 요셉은 펄펄 뛰면서 이 일에 관련되지 않고 싶어했다. 그는 마리아에게서 떠남으로써 결혼 계획을 취소하려고 했다.
 

요셉의 마음을 이해한 가브리엘은 그에게 가서 이 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이 지구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이 일을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셉은 신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진정을 했고, 마리아와 결혼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켰다. 임마누엘은 말구유에서 태어 났다. 기독교 경전이 말하고 있듯이 여관에는 정말로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마누엘은 자신의 삶을 사는 기간 내내,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인 가브리엘을 알고 있었다. 그가 여러 차례 임마누엘을 찾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신이 아니며, 당시에 지구를 다스리고 있던 플레이아데스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지시를 받아 자신을 이 삶으로 불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지식은 신들의 것이었으나 그들은 단순히 관찰하는 쪽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이제는 지구인들이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을 배울 때이며 또한 창조와 자신들의 영적인 연관을 발견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더 이상 신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임마누엘이 이것을 설명하고자 노력했을 때, 그는 지구상의 인간들이 신이라는 존재에 의해 다스려지는 데에 익숙해졌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생각이 아주 천천히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달력에 의하면, 진실된 임마누엘의 생일은 2월 3일이지, 12월 25일이 아니다
 

임마누엘의 특별한 재능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래에 자신의 가르침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 우리와 똑같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한 천상의 자손에게서 태어났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신(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들은 창조와 모든 인간들의 한 부분인 영원한 영혼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들이 어떻게 자신의 가르침들을 신의 말씀과 연결시키게 될 지를 알고 있었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돌보아 주는 신이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인간은 아직 스스로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들에게 임마누엘이 함께 나눈 창조의 가르침들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전에 너무나도 많은 삶의 가르침들을 미리 가르쳐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심지어는 미래에 어떤 꼴이 될 지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삶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의 말씀들은 지구상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살아 남게 될 진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의 진실한 가르침들은 미래에 다시 한 번 지상에 나타나게 될 것이며, 지구상의 인간들을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이끌 영적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의 역활을 할 것이었다. 
 

임마누엘은 약 13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인도로 여행을 하여 자신의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에서 그는 명상을 수련했고, 당시의 위대한 스승들로부터 삶에 대한 공부들을 배웠다. 동양의 지식은 별들에서 온 하늘의 아들들과 딸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었던 아틀란티스 시대 이래로 수천년간 전해져 내려온 것이었다. 여러 번에 걸쳐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방문을 받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그를 영능력으로 안내하고 그것들의 활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 뒤의 삶을 사는 동안 그것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진실로 그는 미래의 일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 났고, 또 그렇게 살 것이며, 자신의 사명을 다 할 것이었다. 자신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미래를 쉽게 내다 볼 수 있었으며, 그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을 알도록 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115세에 육체적으로 죽음의 운명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가 되면 자신의 육체는 아주 늙어 있겠지만, 자신의 영혼은 좌절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가올 자신의 십자가형(crucification)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 사실은 오직 육체적 고통만을 초래할 뿐이며, 이는 자신의 영능력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나면 자신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그를 대항하여 쏟아진 모든 증오는 그를 자신의 길에서 끌어내지 못했다. 진실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고통은 지나가 버리므로, 그는 고문을 당하고 파멸할 수도 있지만, 진실과 그의 영혼은 상처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글들
 

나는 임마누엘이 자신의 생애 중에 썼을지도 모르는 어떤 가르침들에 관심이 있었고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의 마태, 마가 복음과 신약이 어떻게 그것들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째서 임마누엘 자신이 쓴 오리지날 저서가 하나도 없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가 쓴 원전이 있었다면, 그의 진정한 말씀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우리가 알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빌리도 이와 같은 질문들을 플레이아데스인들에게 했었다. 그들은 임마누엘이 살았을 당시에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귀했기 때문에, 자신의 가르침을 써놓아야 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고 빌리에게 말했다. 그는 이것을 십자가형을 겪은 뒤에 자신이 어려서 영혼의 공부를 배웠고 나중에는 길고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던 인도로 되돌아 갔을 때 하려고 계획 했었다. 어쨌거나 그 당시에 그의 가르침들을 기록한 사람은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이었다. 유다는 임마누엘의 제자이자 훌륭한 친구였으며,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그를 배신한 사람이 아니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또한 이러한 가르침들이 단순히 임마누엘에게 전해진 것임을 명백히 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들을 자신의 플레이아데스 아버지인 가브리엘에게서와 어린 시절에 인도에서 살았을 때 그를 아주 잘 가르쳐 주었던 인도의 스승으로부터 스스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의 가르침들은 기록되어 미래를 대비하여 안전한 장소에 묻혀 있었다.
 

이 가르침들은 그의 기록관(scribe)이었던 유다 이스카리옷이 기록하고, 또한 그의 아들인 요셉(인도에서 나은 아들 가운데 맏이임-역자주)이 추가로 기록을 했으며 오랜 세월을 통해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진리가 후세들을 위해 긴 세월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의 사람들인 플레이아데스인들은 그 기록들이 미래에 발견되어 지구 인류들이 볼 수 있게 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래의 2천 년대에 있어서까지도 인간들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여, 또 다른 2백 년이 더 지나서야 진리의 밀알이 다소 영양분 있는 토양을 발견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유다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유다 아스카리옷은 우리가 세세년년 동안 들어온 것처럼 임마누엘의 배신자가 아니었다. 유다의 기록 하나가 도난을 당했다. 바리사이파 사람의 아들이며, 유다 이하리옷(Juda Ihariot)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이것을 임마누엘에게 불리한 증거로써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훔친 것이었다. 그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가방에서 몰래 이 기록을 빼내어 이것을 임마누엘을 노리고 있던 서기장들과 바리사이파인들에게 은 70냥을 받고 팔았다. 이것을 가지고 그들은 임마누엘을 신성 모독(blasphemy)으로 고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그것을 나중에 새로 한 번 더 써야 했고, 이것이 세월을 제대로 견딜수 있도록 보관을 해야만 했었다.
 

이 유다 이하리옷이라는 자의 아비가 정말 임마누엘을 박해한 자였는데, 자기 아들의 죄를 숨기고 집안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사람들에게 배신자가 임마누엘의 기록관인 유다 이스카리옷이라고 떠벌렸던 것이다. 그의 권력과 사회에서의 위치 때문에 그의 말을 사람들이 믿은 것이다. 이것은 서기장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 가운에 한 사람이 그를 배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도록 넘겨 주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중들은 만일 거느리고 있던 추종자들이 그를 배신하고 그를 팔아 넘긴다면, 어떻게 그의 교훈들이 진실한 것일 수 있겠는지에 회의를 품을 것이었다. 그러나 도기장이의 피밭에서 실제로 목을 스스로 매단 것은 바리사이파인 스므온의 아들, 유다 이하리옷이었다. 임마누엘과 함께 인도로 여행을 같이 계속하여 그의 기록관 노릇을 한, 친구이자 제자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아니었던 것이다.
   

십자가 처형
 

임마누엘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앞에 섰다. 빌라도는 그에게 판결을 내리고 싶지 않아 그것을 그의 피를 요구하며 고함지르는 백성들에게 떠 넘겼다. 그는 살인자 두 명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다. 군중들이 악을 써대는 속에서, 그는 심하게 매질 당했다. 갈비뼈의 대부분이 부러졌고, 그는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힘조차 없어 시몬(Simon)이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골고다(Golgotha)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그는 십자가에 못박혔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허공에 세워졌다. 십자가에 사람을 못박는다는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저 묶는 것이 전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군중들과 로마 군인들은 고위 성직자들의 선동을 받아 광란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임마누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되었을 때, 심한 폭풍이 시작되어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 상태가 세 시간이 지속되었다. 폭풍이 끝날 무렵 그의 머리가 갑자기 앞으로 떨어지면서, 그는 혼수 상태(coma)에 빠져들게 되었다. 군인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 있는지를 보기 위해 창으로 그의 넓적 다리를 찔러 보았더니, 물과 섞인 피가 흘러 나오자, 군인은 임마누엘의 생명이 빠져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임마누엘이 죽었다고 외쳤다.
 

군중들 속에 아리마대에서 온 요셉(Josheph of Arimathea)이 있었는데 그는 임마누엘의 추종자였다. 요셉은 그가 죽지 않았고 단지 많은 뼈들이 부러졌고 심하게 얻어 맞았기 때문에 혼수 상태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임마누엘은 영혼에 있어서는 강했지만, 이같은 육체의 훼손은 그에게조차도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임마누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묻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그는 그리고 인도에서 온 임마누엘의 친구들 몇이 거기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무덤으로 데리고 갔다. 그것은 비밀 출입구를 따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인도에서 온 임마누엘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무덤 입구를 지키기 위해 남아 있었 던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출입 할 수 있었다. 임마누엘의 건강이 다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데에는 사흘이 걸렸다. 그는 인도에서 온 친구들의 적절한 간호를 받았는데, 그들은 그를 되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특별한 기름들과 연고(salve)들을 가지고 왔었다.
 

임마누엘이 뒤에 나 있는 비밀 출입구를 통해 무덤을 빠져나간 뒤, 공중에서 커다랗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밝은 빛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 그의 플레이아데스인 아버지인 가브리엘이 나왔다. 그는 군인들을 잠재워 놓고, 출구를 막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옆으로 굴려, 임마누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사라진 것을 보도록 했다. 그들은 가브리엘로부터 지시를 받고 시내로 들어가 제자들에게 임마누엘이 회복되어 일어났음과 갈릴리로 가는 노상에서 그를 만나도록 하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말했다.
 

임마누엘은 제자들 앞에 두 번 더 나타났는데, 한 번은 그들이 '마지막 만찬(the Last Supper)'을 갖기 위해 며칠 전에 모였던 방에 있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갈릴리로 가는 길 위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자취를 감추어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시리아에 내려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다마색, 즉 다마스커스(Damascus)에서 삼 년간을 살았다.

 

임마누엘과 사울
 

그가 자신의 동생인 토마스(Thomas), 즉 도마와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이 이 때였다. 그의 동생은 그에게 사울(Saul)에게서 그의 추종자들이 당하고 있는 참혹한 일들을 전해 주었다. 임마누엘은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했다. 사울은 나중에 폴(Paul), 즉 바울로 알려지게 된 자이며 기독교의 형성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이다. 살아 남아서 신약을 만들게 되는 임마누엘의 가르침들에 대한 것은 그가 나름대로 이해한 부분들이다.
 

도마는 임마누엘에게 사울이 아주 악랄한 적이 되어 누구든지 그를 신봉하는 자에 대해서는 협박을 하고 다닌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이웃나라들에 있는 회당(synagogue)들에까지도 편지들을 보내어 임마누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의 적발을 요구했고, 자신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해 와서 재판에 넘겼던 것이다.
 

임마누엘은 자신이 사울을 손보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짰다. 그는 사울이 다마색으로 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길에서 그를 마주쳐서 잊을수 없도록 한 수 가르쳐 주기로 계획했다. 사울은 그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할 것이었다.
 

임마누엘은 몇 가지 비밀스러운 것들 -화약, 연고, 그리고 액체들- 을 스스로 준비하여 시내를 떠나 길가에 숨어서 사울을 기다렸다. 밤이 되자 그는 사람들이 한 무리 길을 따라 오는 것을 보았고, 그 가운데에서 사울을 볼 수 있었다. 임마누엘은 자신이 특별히 준비한 것들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엄청나게 밝은 불빛과 소음들을 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으며 혼을 빼놓게 만들었다. 연기가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감싸게 되자, 임마누엘은 사울이 들을 수 있도록  고함을 쳤다. 임마누엘의 목소리를 듣자, 사울은 그가 유령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여 겁에 바싹 질리게 되었다. 임마누엘은 연기 속에서 말을 계속하여, 사울로 하여금 시내로 들어가거든 자신의 제자에게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도록 하였다. 그는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 다마스커스로 향했다.
 

사울과 다른 동료들은 자신들이 유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고 두려움에 질려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임마누엘이 무덤에서 나와 그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리고 혼돈에 빠진 채 그 들은 다마스커스로 여행을 게속했다. 임마누엘의 제자 한 사람이 사울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 주었다. 그 바람에 그는 서서히 이해를 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겁에 질렸기 때문에 사울은 약간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별로 많이 알아듣지를 못했었다.
 

사울은 당시의 고위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즉 그는 환생(reincamation)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울이 임마누엘의 목소리를 듣고 빛을 보았을 때 임마누엘이 부활했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을 자신의 가르침들 속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임마누엘이 죽음에서 일어나서 부활했다고 하는 생각의 시발인 것이다. 사울은 임마누엘이 결코 죽은 적이 없으며, 단지 자신을 놀린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임마누엘과 동생인 도마, 유다 이스카리옷,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는 인도로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많은 나라들에서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연설의 내용이 너무 혁신적인 바람에 종종 박해를 피해 달아나야만 하기도 했었다. 인도로의 여행이 몇 년씩 걸렸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서파키스탄이라고 불리는, 한참 높이 올라가 서히말라야 산맥의 마지막 발꿈치 근처에 있는 나라에서 그의 모친은 병이 심해져서 죽게 되었다. 임마누엘의 나이가 38세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오늘날 마리(Mari)라고 불리고 있는 파키스탄의 작은 마을에 묻혔다. 모친을 잃은 뒤 임마누엘은 인도의 북부를 가로지르는 카시미르라고 알려진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더 깊이 전파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가 약 45세 정도 되었을 때,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여 여러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다른 모든 평범한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정착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인도의 슈리나가르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그 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가르침들을 전파했다. 약 115세의 나이로 그는 자연사(natural death) 했으며, 시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무덤에 묻혔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약 90세 정도에 죽어 슈리나가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묻혔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맏아들 요셉이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유다의 뒤를 이어 기록하다가 아버지가 돌아 간 다음에는 인도를 떠났다. 3년 동안의 여행 끝에 그는 예루살렘에 와서 정착했고 여생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가르침들을 적은 원본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들을 맨처음에 임마누엘이 들어가 있었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속에 감추었다. 그는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탈무드 임마누엘(The Talmud of Jmmanuel 임마누엘의 가르침)
 

1963년 플레이아데스인들은 라시드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 카톨릭정교의 사제를 두루마리가 묻혀 있는 장소로 이끌어 갔다. 그 두루마리는 송진 속에 넣어진 채 임마누엘이 젊었을 때 이런 목적으로 자신의 아버지,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수정처럼 투명한 상자에 들어 있었다. 고대 아람어로 씌어진 두루마리들은 아들 요셉이 감추어 두었던 납작한 바위 밑에서 발견되었다.
 

라시드는 그 두루마리의 내용을 아람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사본들을 만들어 두었다. 그는 이것들을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루마리들은 길었고, 무려 120장(chapter)이 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스위스에 있는 빌리에게 불과 그 가운에 36장만을 그 때까지 보내 주었을 뿐이었다.
 

바그다드에서 자신의 가족과 숨어 있던 이 좋은 신부(이 당시에는 이 때문에 신부직을 떠나 있었고 결혼도 했었다-역자주)는 기독교 세력과 유태 세력이 보낸 자객들의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레바논으로 달아나서 그는 가족과 함께 난민 수용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가족들이 유태 군인들에게 발견되는 바람에 수용소는 파괴되었고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살육 당하고 말았다. 가족과 함께 간신히 학살을 피한 그는 야밤에 도주를 했는데, 이 때 두루마리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직후에 신부와 그의 가족은 한 테러리스트 갱이 갈기는 증오와 분노의 기관총탄 세레를 받아 살해당하고 말았다. 오직 그가 번역한 36장만이 이 세상에 남아 있게 되었다. 오리지널 두루마리의 운명은 밝혀지지 않은 채이다. 이들 36장은 빌리에 의해 정확한 독일어 성서체로 재번역된 다음, 영어로 번역되어 오늘날 (탈무드 임마누엘(The Talmud of Jmmanuel)이라는 작은 책으로 나와 있다.
 

미국의 와일드 플라우어 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이 책은 또한 ‘천상의 가르침(Celestial Teachings)’이라고 하는 동반 책자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제임즈 디어도르프(James Deardorff)박사라는 기독교 역사학자가 썼으며, (탈무드 임마누엘)의 가치를 검증하기 위한 6년간의 연구 결과이다(한글판 ’탈무드 임마누엘’은 1994년 초에 '홍진기획'에서 미국의 와일드 플라우어 프레스와 계약을 맺고 독한 대역으로 출판하였다).   

 

주 기 도 문
 

서양의 학교나 교회에서는 대부분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을 배운다. 그런데 (탈무드 임마누엘)속에서는 이것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읽게 된다. 임마누엘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우리 속에 있는 영혼과 우리의 창조와의 연결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노력했다. 아무도 그가 가르치고자 하는 명상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신에게 부탁하는 기도라고 생각했다. 잘못 이해가 된 채로, 주기도문은 ‘탈무드 임마누엘’속에 기록되어 있는 형태만을 취해 씌어지게 되었다. 임마누엘이 처음에 말했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이 내용은 '나의 영혼이여'라고 하는 제목의 명상법인 것이다. 여기에 주기도문의 원형을 싣는다. 이것은 임마누엘의 원기록인 ‘탈무드 임마누엘’에서 취한 것이다(와일드 플라우어 프레스와 흥진기획의 허락을 얻어 게재함. ‘탈무드 임마누엘’ p6-45).

 

나의 영혼이여
(주기도문으로 알려져 있는 기도의 원형)


나의 영혼이여, 그대는 전능합니다.
그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빕니다.
내 안에 그대의 왕국을 스스로 구현하도록 하소서.
그대의 능력이 내 안과 지구 위에서, 그리고 하늘들 안에서
펼쳐지도록 하소서.
오늘 하루분의 양식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내 잘못을 인식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유혹과 혼란으로 이끌지 말고, 
나를 잘못으로부터 구원하소서.
이는 내 안의 왕국과 능력과 지식이
영원히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나는 동의합니다)

 

(계속)

 

악성 위장병 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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