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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기원은 한국....유네스코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5. 3. 12. 20:47

인류기원은 한국....유네스코

 

유네스코, 인류의 기원은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이라고 발표 2009.10.28 검색어표시


유네스코,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발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탄미 발견함으로...

http://blog.naver.com/jumbo209/120093612052 

 


 세계 초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은 이집트인들이 아니고 한국인들이라고 발표했다.

이 사실은 2008년 10월 15일 명상신문의 역사란에 기고한 황문권 님에 의해서 밝혀 졌다.   

 

제목은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은 한국인이다라고 발표> 이다. 

      # 유네스코가 발표한 적이 없음 - 확인요 -

이 기사에서 “인류의 기원이 한국인들이라는 증거로 요동성 근방 만주지역에서 대량의 탄미(불에 탄 쌀)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탄미의 DNA 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니고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으로서 농사기술이 상당한 수준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되었고, 탄미는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의견이다.  또한 이 쌀은 1만 7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사람의 DNA를 검사한 결과 평균 수명이 1,000년 정도로 고조선 이전의 왕국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것은 우리나라가 1만년 세계의 종주국이라는 사실과 위서취급받는 [환단고기]의 역사가 진실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 대한민국이다. “ 라고 했다.

       # 한단고기는 20 세기 초 작품임

 

그렇다.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인류의 기원이 100만년 내외의 선사유적들이 즐비한 해땅 한반도인들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은 동방에 있다라고 했는데, 지상낙원 에덴동산이라는 곳도

실상은 중앙 아시아 천산이니 어쩌니 해도 그 뿌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유구한 해땅 한반도인

것이고, 한반도 후손들이 만주를 거쳐 서쪽으로 동쪽으로 이주를 통하여 이야기를 전해 주어서 만들어진

설화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성서에 에덴 동방이란 말 없음

우리나라는 부도지.환단고기 등 사료적으로도 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환국은 인류 최초의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마고성에 해당하는 충청도에서 세계 최초의 볍씨로 출토되었듯이  

1만 7천년 전의 쌀이 동아시아에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인류 최초의 것이 된다.  

         

자료 성 부족
환국 이전이라 함은 마고성 시대라고도 추정할 수 있는데, 이 역사는 오직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인도시성 타고르가 대한민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표현했고, 고구려인들은 우리 문명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노래를 했던 것이다.  
황하문명이나 슈메르.인더스.이집트.그리스.잉카.아즈텍 문명들이 결국에는 호남과 서남해를 중심으로 하는 마고성 한반도에서 흘러 나간 해문명의 줄기들이 아닌가?


한민족 한사상은 세계인류와 문명의 기원(起源)
문명 서천설(文明 西遷說)이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문명(나일강문명과 인더스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영향아래 자란 가지)이 지중해로(그리이스, 로마, 이베리아 반도), 지중해 문명이 대서양(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대서양에서 미주 대륙을 거쳐 태평양으로 중심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또 서쪽에서 발생한 문명은 서쪽으로, 동쪽에서 발생한 문명은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은 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설이므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메소포타미아문명이 서쪽에서 자생(自生)한 문명으로 보는데서 착오가 생겼고, 또 인도 불교가

동쪽 인도에서 자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으로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서 착각이 생겼으며,

황하문명도 자생하여 한국, 일본으로 전해진 줄로 아는데서 착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계문명의 기원은 한밝산(백두산)기슭 송화강에서 기원했다고 가정하면, 문명은 해가 비쳐지는 서쪽으로 이동한다는 설이 맞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정(假定)이 오늘날 사실로 실증(實證)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 든 문명은 한밝산 기슭 송화강에서 유래하여 서천하였으며, 중국, 인도의 문명은 서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다시 회수한 것이고,


오늘의 서양문명은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은 동천한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 자체의 이동에 의한 제자리 문명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문명도 제자리 문명에다가

서쪽으로 돌아온 문명이 접목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이 모든 인류 문명은 아시아 중북부의 기마 유목 민족이던 한족(桓族)이 바이칼 일대를 거쳐, 만주의

스므러(몽고말로 聖水:松花江)일대에 정착(定着)하여, 소를 이용한 농경정착 문명(소머리, 쇠머리 문명)을

창시한데서 비롯됩니다.


송화강과 연해주에 있는 우수리강(牛首里 江)은 쇠머리 문명(牛頭 文明, 혹은 스므러 문명, 성수문명)의

상징적 지명(地名)이며, 알파벳의 A는 쇠머리(牛頭)에서 나온 글자입니다.

이 모든 문명이 제집으로 찾아 돌아올 때는 이미 살도 찌고, 병도 들고 변질되어(異質化) 귀국한 것입니다.

본래의 지고(至高)한 정신이 탈색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본래의 제것으로 정화하여 발전시킬 장소로

찾아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류 문명은 한밝산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자라서 양 날개를 펼치고 어미닭이 되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모이를 주어 먹고살다가, 이제 제집 둥우리로 돌아와서 치료도 받고 몸보신을 한 다음

새알을 낳으려고 하는 순간입니다.


그 양 날개가 서(西)로는 서양문명(메소포타미아문명), 동으로는 마야-잉카 문명이 되었고, 좁게는

중국문명과 일본문명이 된 것입니다. 곧 안 날개와 바깥 날개가 된 것이지요.

즉 근동아시아←극동아시아→아메리카 신대륙, 또는 중국←한국→일본으로 표시할 수 있겠지요.

이와 같이 극동아시아, 곧 한국은 몸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극동아시아 문명을 황하문명으로서,

중국인의 문명으로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이제 황하문명의 모태가 되었던 송화강문명(스므러 문명)의 실재성을 고증하여 밝히고 우리 민족이

황하문명의 주인공이었음을 우리 자신들도 깨닫고 온 세계에 밝히는 것이 우리 인문학 종사자들과

종교계 인사들이 해야 할 커다란 과업이라 생각합니다.

 

 송화강과 황하문명을 北朝 및 南朝 文明으로도 볼 수 있으며, 三危山 일대 돈황 문명권도 포함하여

大黃河 文明圈이라 부르기로 함.

 여기 송호수(宋鎬洙)박사의 저서 《韓民族의 뿌리 思想》이라는 책 안에 있는 ‘한 사상의 문화사적

세계성’이라는 분장(分章)에서 다음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광명의 나라 동방(東方)의 ‘한’에서는 지금 깊었던 칠흑(漆黑)을 깨트리고 전 인류가 갈망에 찬 평화의

서광(瑞光)이 불끈 치솟을 것만 같은 기대에 부푼 주목을 하고 있다.
동과 서의 사상이 부딪힌 곳,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이 아니더라도 힘의 극한적인 응결처에서는

무언가가 기대 이상의 걸출이 화현(化現)하리라 믿는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중원(中原)을 지배했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실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이와 같은 실크 로-드 중원지배를 감추기 위한 힘겨운 역사 위조(僞造)였다.

그래서 한(漢)민족의 이름도 ‘한(韓)’의 이름을 빌린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상은 일본 사학가로서의 양심이 아직 남아있는 ‘오향’씨의 직언(直言)이다.


우리 는 위대한 조상들로 인해 광할하고 화려한 문화권을 향유했던 경험도 있고, 쓰라린 피압박의 치욕도 견디어 냈다. 강 건너 타국인이 ‘중원을 지배했던 단군조선’이라고 들추어 주는데도 우리 사학계에서는 ‘신화에 불과한 단군조선을 역사에 기술하면, 그 역사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라며 넋두리만 하고 있다. 애국적인 사가(史家)인지, 해국적(害國的)인 사가인지 모르겠지만, ‘공백사(空白史)’가 ‘실사(實史)’로 보일 때까지 사계(斯界)의 폭넓은 연구가 더욱 요청되며 그것이 당무일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선대문화를 자학(自虐)적인 그런 안경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가식이나 과장이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어디까지나 묻혀 있던 부분을 발굴하고, 그 가치나 본 모습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여 기서는 ‘한’의 고향을 찾고 또 우리 주변에는 오랫동안, 혹은 적잖은 관계성을 맺고 있는 불교·유교·도교, 또는 기독교 등의 세계적 사상의 큰 줄기들이, 그 뿌리의 방향은 과연 어디며, 또 ‘한’과는 어떠한 관계적 위치에 있는지를 탐색해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우리의 ‘한’의 원(原)줄기와 어떻게 연관지어져 있는가....(《韓民族의 뿌리 思想》에서 인용)


 그러면 우리 문명[松花江 文明]의 세계 문명사적 시원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동양에서도 한·중·일 한문 문명권(韓·中·日·漢文 文明圈)의 아류(亞流)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것입니다.


세 계 사상의 핵심은 선·불·유 [仙·佛·儒 : 선(仙)은 동선(東仙)→한사상·도교, 서선(西仙)→기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도교와 함께 선(仙)사상으로서 동양의 선도(仙道)를 철저한 희생과 사랑, 봉사정신으로 승화시킨 부활(復活)의 선맥입니다. 회교와 흰두교 역시 많은 신봉자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민족종교로서 세계종교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이들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선(仙)의 지맥(支脈)입니다.(물론 브라만교에서 힌두교가 나오고 불교가 연유되기는 했지만).
 

 유교의 뿌리


유교와 도교는 황하 문명권의 사상이니, 그 시원처(始原處)와 주역들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처음에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줄 때의 고차원적인 사상이 세속화(世俗化), 세분화(細分化), 이질화(異質化)되어서 되돌아온 것입니다.


황노교(黃老敎) 또는 황노지학(黃老之學)이라 불리는 도교는 동이족인 자부선인(紫府仙人)과 황제 헌원으로부터 교통(敎統)을 이어 노자【老子:성은 한씨(韓氏), 태호 복희와 같은 풍이족(風夷族), 내몽고를 거쳐 아유타(阿踰)에 이주해 살면서 동방[木]의 아들[子]이라는 뜻으로 개성(改姓)하여 이이(李耳)라 이름 했음:번한세가 (下) 도을왕 BC510】에 이르러 대성(大成)되나,


원래 우리의 선(仙)사상은 현실에 적극적이고 제세홍도(濟世弘道)에 능동적이었던 반면에, 중국 선(仙)은 현실에 불참하고 치세(治世)에 초연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선(仙)은 배달도·국선도(고구려의 조 衣仙人)·화랑도 등 현실 속에 뛰어들어 보국구세(補國救世)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반면에, 중국의 선(仙)은 부적(符籍), 괴이한 방술(方術) 등으로 오히려 혹세무민하는 면을 가진 도교 [Taoism]으로 이질화 된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도교의 자연회귀(自然回歸)와 무위사상(無爲思想)적 본 맥은 우리의 풍류도인 곧 ‘한’사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유교도 동이족인 공자가 고백했듯이 술이부작(述而不作), 곧 옛날에 있던 것을 기술해서 집대성한 것이지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북방 기마민족 선조들은 같은 충효(忠孝)라도 상무정신과 출가지효(出家之孝=간접적 효 : 한님과 한웅의 관계)를 중시한데 비해, 중국의 충효는 천황천자(天皇天子)정신, 곧 개인 숭배정신과 재가지효(在家之孝=직접적 효)로 농경 정착성에 맞는 사상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 松花江  : 下向性 사랑윤리→父慈子孝, 君義臣忠, 夫愛婦情 : 三倫    
   中   國   : 上向性 從屬윤리→父爲子綱, 君爲臣綱, 夫爲婦綱 : 三綱

유교 문명의 기본 도구인 한자(漢字)가 동이 - 예맥권의 글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명은 이미 했지만, 임승국 교수는 한자 53,525자의 발음 부호인 반음절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놓았습니다. 곧 유교문명은 창시자와 주역들이 동이민족입니다(한자 반음절 설명).
 

 불교의 뿌리


불교도 인도에서 석가가 불교를 창시하기 전에 한국에 전불교(前佛敎)시대가 있었고, 그 때에 가섭불[迦葉佛:제3존불(存佛), 석가는 제4존불]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소수림왕 2년(AD 372)보다 369년 전인, 서기 4년에 금상(金像) 52불(佛)이 있어 절을 세웠다는 금강산기(金剛山記)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자신이 화엄경을 설(說)한 당시에 해동(海東) 금강산에 법기(法起)라는 보살과 1,200보살이 있었다고 시인했습니다.
 


전불시대의 절터가 여러 군데 있고(금강산·명주·양주) 절의 대웅전(大雄殿)도 승가(僧家)에서 새로 생긴 말이 아니고 그 전부터 있었던 한웅전(桓雄殿)에서 유래된 용어로서 ‘한’사상을 설법하던 자리에 그대로 절이 들어와서 토착화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은 곧 대(大)입니다.

 ■ 신시 15대인 치액특한웅(BC 2600)의 치액특은, 티베트라는 말이며, 네팔인은 한족(桓族)의 후손이고 석가도 아리안계의 인도인이 아니고 몽고계의 Nepal 인임. 부처님 이름인 釋迦牟尼의 인도말은 ‘사카무니’이며, ‘사카’는 그가 속한 部族이름이고 ‘무니’는 道를 깨달은 聖人을 말함. 


곧 ‘사카族’출신의 聖者라는 존칭임. 그의 姓은 ‘고타마’인데 이 말은 가장 훌륭한 소[牛]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은 소를 신성시하므로 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소라는 뜻을 지닌 존귀한 氏族의 왕족이었음. 모니(=무니, 牟尼 : 클모, 소울모 牛鳴, 和할이)는 聖人의 大覺인 소 울음소리와 연관성이 있음. 그의 이름은 ‘싯달타’로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뜻임. 


그래서 부처님 本名은 ‘고타마 싯달타’인데 가비라 城의 ‘숫도다나’ 임금님의 맏아들로 태어나, 결혼하여 사랑하는 처와 아이까지 둔 유복한 가문이었으나 느낀바 있어 出家하여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의 붇다[부처]가 되었음. 가비라城은 네팔의 타라이 盆地에 있는 도시임. 나중에 송화강의 쇠머리[牛頭, 牛首]문명을 알게 되면 인도 불교문명의 근원을 잠작케되므로 석가모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상세히 언급한 것임.



 기독교의 뿌리


다음은 기독교의 뿌리가 송화강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 학자들(역사학·고고학·탐험가·철학·인류학·신학)의 조사에 의하면 모세5경(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의 모법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법전이며 (함무라비: 바빌로니아 제1왕조 제6대왕 BC 1704-1662, 모세보다 500년전), 함무라비법전의 모법은 슈메르(Sumer)법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모세←함무라비법전←바빌론←아카드←슈메르).


그런데 슈메르 법을 만든 슈메르인들은 동방에서 왔으며(영국인 Kraemer 교수의 주장), 셈족이 아닌 아시아계 민족으로서 비셈족어인 교착어를 사용하였고(굴절어 : 영어, 교착어 : 한국어, 고립어 : 중국어), 태호복희가 사용한 팔괘부호와 비슷한 문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신앙면에서도 동이족과 같은 고산(高山·山嶽)숭배, 곧 산신(山神)숭배가 있었으며, 지구라트(Ziggurat)라는 높은 제단(祭壇)을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쌓아 놓고 거기에 올라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지구라트란 높은 곳인 산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GUR라는 말도 우리의 고리(고리국), 고구려, 고려 등과 같이 연관성이 있습니다.


또한 슈메르인들도 난생신화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은 동이족의 특색입니다. 중국인은 고산숭배사상이 없는 평야성 국민이고 역시 난생신화도 없습니다.
슈메르에는 우르(Ur)라는 도시가 있었고 우르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 成約聖書 10章에 의하면 Terah라는 브라만교 신자가 Ur國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Abraham으로 Hebrew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함.Hebrew라는 말은 슈메르語로 산악 : Habiru(Bandit)에서 나왔으며, 슈메르인으로부터 산적으로 취급받은 미개상태였던 것으로 보임.

 한단고기 삼성기에 의하면, 한임의 나라 한국(桓國)이 천해(天海:바이칼호)를 위시하여 남북 5만리, 동서가 2만리나 되는 광대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안에 12분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12분국 중에 우루국(虞婁國)과 수밀이국(須密爾國)이 나오는데, 수밀이(슈메르·스므러)의 ‘숨’은 한민족의 정착 중심지인 송화강 [Sung-Ari]의 송-숭과 유음(類音)을 일으키며, 송하리가 일명 속말리(粟末里)로서 우리말의 소머리, 중국 음의 머리인 것입니다. 즉 송화강 [Sung-Ari]-속말리-송하리(松阿里)(阿里水·아리수)-머리-소머리(쇠머리)-우수하[牛首里江]와 같이 전음(轉音)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쇠머리의 진원지(震源地)는 송화강인 것입니다. 역사적 맥락의 선후관계를 대비하여 고찰해 보더라도(삼일신고 기록 등), 송화강에서 슈메르가 유래된 것이지 슈메르에서 송화강이 유래된 것은 아닙니다


〔물(믈, 므르) - 스믈(스므르:聖水, 송화강)-Sumer〕.
슈메르의 도시 우르(Ur)는 슈메르어로 소를 뜻한다고 하며, 히브리어 알파벳의 제일 처음인 ‘아레프’가 바로 ‘소(Ox)’라는 뜻이며, 영어의 A는 소머리 문화에서 유래된 소의 머리 형상입니다.


여 기 머리에서 마리(摩離) ↔개마리(개摩離:총의 개머리판)↔개마(蓋馬:개마고원)↔고마【固馬,곰〔熊〕↔검〔神〕】↔고마성↔마고성(한자는 읽는 방향이 좌우로 뒤집어 질 수 있음) 등의 유음(類音)을 상정(想定)할 수 있으며, 머리-짱백이-장백산-백두산의 연관성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 성서에 도피성(逃避城)에 대해서
“…도피성을 정하여 부지중(不知中)에 사람을 죽인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도망하는 자는 그 성읍(城邑)의 어구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피의 복수자가 따라 온다 해도 그 살인자를 그에게 내어 주지 말라…《여호수아記 20장 1-9》” 라고 적혀 있는데, 이같이 치외법권적 특정지역을 설정하여 죄인에 대한 피의 복수를 막고 자기 죄에 대한 최후의 절망을 구제해 주는 예외의 천은(天恩)을 설정하였는데, 이것이 우리의 소도와 기능이 흡사합니다.

이는 우리 고속(古俗)에도 ‘… 나라마다 별읍(別邑)이 있으니 수두(蘇塗)라 이름하였는데, 거기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고 신을 섬기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리로 도피해오면 모두 돌려 보내지는 아니한다.《三國志 魏書 韓傳》’라고 적혀 있으며, 도피성과 똑같은 수두(솟대)제단도 있습니다.

인간 창조의 시원에 대해서도 기독교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장 7절》’라고 하는데 비하여, 우리의 풍속통의(風俗通義)에서는 ‘천지가 개벽되어 사람이 있지 아니 하였는데 여와(女)님이 황토를 다져 사람을 지으시고 힘써 진흙중에서 사람을 건져내다…’라고 되어 있고, 우리 고유 경전의 하나인 참전계경에는 ‘여와님이 흙을 이겨 사람 형상을 만들고 혼령을 불어 넣어 칠일(七日)만에 이루어 마쳤다《參佺戒經總論》’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구약의 창세기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참고로 여와는 BC 3500년 경 신시 5대 태우의 한웅의 딸(公主)이며, 태호복희의 누이동생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신인 여호와 하느님은 이 여와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단정한다면 무리일까요.

이와 같이 동서양의 역사적 여러 기록과 인종적·언어적·연관성, 슈메르인의 동방유입설(東方流入說), 고산숭배사상과 난생신화 등으로 고찰해 볼 때 슈메르(스므러)가 한국의 12분국 중에 하나로서, 한(桓)민족 중의 일부가 태호복희(BC 3500년경)의 문자와 한역(桓易)의 월력(月歷) 등을 익혀 한민족의 근거지, 또는 송화강 일대에서 서남쪽으로 서천(西遷)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슈메르인들이 동방의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동방에서 들어왔다는 유입설 외에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자생설은 없습니다.


이 처럼 소시모리(素尸毛犁), 우수국(牛首國), 소머리 데라[日本의 牛首寺], 우두산(牛頭山:가야산 및 춘천지역), 우수리강(牛首里江), 송화강[松花里, 소머리] 등 우두·우수·소머리는 일본·한국·만주 등 동북아세아만 국한되지 않고, 소머리족 곧 Sumer(또는 스므러)족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에서 스므르[聖水:송화강수]문명을 일으켜(BC 3000년 경 Sumer 문명탄생, BC 2900년 신시 10대 갈고 한웅시. Ur國 탄생: 서양사 연대표에 의함), 기독교 문명의 근원(根源, 뿌리·모델)이 됨으로써 


송화강의 소머리 문명, 또는 스므러[聖水]문명이 온 세계 문명의 뿌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증이 가능합니다. 또 이 추증이 사실로써 증명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 축제가 예수의 탄신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동지(冬至·Julian 달력으로 12.25.:붉은 팥죽을 끓여 먹고 동·서·남·북 4방에 뿌려서 제액하는 풍습. 태양이 강해지는 날. 게르만 민족의 동지라는 설도 있음)에서 연유하였다는 사실도 의미있는 일입니다(복음서에 예수의 탄신일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원래 1월 6일 이었던 것을 AD 3, 4세기경에 12월 25일로 정하였음). 


또한 기독교의 ‘아멘’, 불교의 ‘오-리, ‘우리말의 ‘아-리은 절대긍정, 수긍의 성음(聖音), 신음(神音)의 유음(類音)이며, 우리의 ‘3신 한얼 신앙’과 기독교의 ‘3위 1체 신관’이 흡사한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슈메르의 수도가 우르(Ur)이고 아브라함의 고향이 ‘우르’라면, 동이족과 헤브라이즘 [Hebraism, 히브리의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과는 관계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슈메르 제1왕조를 건설한 ‘엔릴’의 비문 서(序)에,
“왕위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승화된 교권과 왕권이 하늘나라에서 부여된 후에 인간은 예식과 신성한 규범을 완수(完遂)했도다《文定昌, " 韓國, 슈멜, 이스라엘의 歷史"》.


이 와 같이 교화(敎化)와 치화(治化)의 권한은 하늘나라(桓國)에서 부여받은 것으로 ‘한’사상과 이스라엘의 ‘민족신앙(Hebraism)’과는 숙명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헤브라이즘의 배경에서 창교된 기독교가 헬라철학[Hellenism : 그리스의 인본주의(人本主義)사상]의 영향을 받아, 유대의 헤브라이즘사상은 퇴색되고 이원론(二元論)과 물질주의 사상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 세계의 考古學者들은 발굴된 물증만을 증거로 하여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 분포지를 표시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냈음. 문화권이 처음으로 발달된 구대륙에 남과 북으로 문화권의 이동이 역력하게 나타난 것임.


 북쪽에서는 토기문화권의 유적이 유럽에서 소련을 거쳐 몽고를 지나 만주로 한 띠로 연결되어 있고, 남쪽에서는 채색토기문화권의 유적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소아시아와 인도를 지나 중국 북부를 거쳐 만주에 이르기까지 한 띠로 형성된 것을 발견했음. 


이 두 줄기의 문화유적이 백두산에 이르러서 겹쳐짐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세계는 인류 문명의 최초의 유적지를 백두산 아래로 흐르고 있는 송화강 유역으로 보고 앞을 다투어 연구하고 있음. 이솝우화가 인도의 고전이었음이 인도인에 의해서 확인된 것이 아니고 세계의 학자들에 의해서 성취된 것처럼, 세계 문명의 원천지가 백두산이었음이 세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정립되어 가고 있음.

 ■ 파미르·천산·텡그리산·알타이의 준가르 분지 일대에 있던 桓族 중에서 동으로 이동한 족속이 한웅·반고이고, 서쪽으로 이동한 족속이 Sumer인이라는 설이 있으며, 슈메루라는 말도 ‘한 마루’ ‘큰 산’ ‘해뜨는 산’ 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음. 


즉, 한=해=→→수(Su는 바로 Sun을 뜻함. 또는 首와도 일치함), 마루(산·언덕)→메루로 전음 된 것이라 함. 결국 슈메루 라는 말은 바로 우리말로써 Sumer인은 桓民族 문명의 傳受者임



아메리카 인디언과 한민족


다음은 미주의 인디언 문명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인디안은 더 설명하지 않더라도 인종적으로도 같고, 언어도 대단히 유사한 단어가 많습니다. 만주어, 몽고어, 퉁구스어, 에스키모어, 인디안어, 터키어는 어순이 주어 목적어 동사로서 한국어, 일본어와 동일하고, Sumer어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생활도구도 똑 같다고 합니다.
참고로 비슷한 말을 몇 가지 모아 보겠습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고산숭배사상이 있으며, 우리말의 사나이-산아이-사나-사내(山兒=男)라는 용어부터가 산신이 점지해 준 아이 인걸이 지령(人傑地靈)이라는 동일신념이 있습니다.

그들도 검·곰[熊,神]숭배사상이 있고 인디안 무당과 한국무당이 그렇게 같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짚신은 물론이고, 막걸리를 빚어 먹는다든지, 아기를 우리와 같이 업어 키우며, 산끈을 잡고 서서 아이를 낳는 풍습, 산끈과 비슷한 아마(亞麻)의 왼 새끼줄, HB 카우스타 라는 혈액소(血液素)의 공유, 몽고반점…, 인디언은 한 민족이 이동한 것입니다. 아메리카 문명은 우리의 제자리문화인 것입니다.


 ■ 미국의 아메리카 인디언은…만주의 한 민족이 빙해(氷海)를 넘어 알래스카를 거쳐 캐나다로 가면서 일부 남은 사람들이 에스키모족이요, 더 진행한 사람들이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이요, 또 더 진행한 사람들이 잉카(Inca)족이라 하겠다.  


지금도 잉카에는 한국 고유의 풍속인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새긴 목인형(木人形)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알래스카의 박물관에는 불상(佛像)을 비롯하여 향로·곡옥(曲玉)·촛대·청자기 등 무수한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즉 동양민족이 흘러간 발자취를 쉽게 인정할 수가 있다. 캐나다의 에스키모족이 기르는 개(犬)는 한국에서 간 개인 것이다. 《민족문화의 연구 p. 89》

 환국의 12연방 사람들 가운데 베링해협을 넘어 남·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이들이 곧 오늘의 인디언 아파치다. 그들의 말타고 달리는 기상은 곧 동이족의 그것이다. 팔짱을 끼고 아기를 업어 주는 생활습관에서 부터… 언어에서도 우리와 동일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다. 《上同 난외 주기》

백인 우월감에서 나온 인류의 발달 학설과 고대 문명의 원류론에 의하여 구라파에 가까운 난대 및 열대지방인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 유프라데스강)나, 나일강 하반(河畔)에다 설정한 인류의 고향은, 오늘날 중앙아시아인 천산과 파미르 이동(印)으로 점차 옮겨가고 있습니다.

동이족이 살던 북경 남방 주구점(周口店)에서 나온 유원인(類猿人)의 뼈는 인류학상 획기적인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고전인《신사기(神事記):대종교 경전(大倧敎 經典)》와 《태백일사》에 이르기를 ‘오물(五物=行:지상에서 달리고,    :하늘에서 나르고, 化:화생하고, 游:물 속에 살고, 裁:재배하는 것)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은 사람인데 그 처음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으니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이었다. 각각 천하(天河:松花江)의 동과 서에 있어 그 처음에는 서로 왕래하지 않더니 오랜 후에 만나 서로 짝하였더라…그 자손이 오색족으로 나뉘었는데 가로되 황·백·현·적·람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오색인종의 시초가 성수인 소머리강(松花江)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소머리 문화는 서(西)로는 황하와 메소포타미아·인도, 동으로는 우리나라·일본·북남미 대륙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지구의 가장 중심지요, 정상인, 짱백이산인 백두산(太伯山)에서 흘러내리는 성수인 하늘가람(天河)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반(阿般)이와 아만(阿曼)이가 서로 만나 오색인종을 낳았고 그때부터 인류의 문명은 시작이 된 것입니다.

 ■ 天河는 통상 松花江을 말함이나 바이칼 호수도 聖水로서 天水, 天河라고도 함. 古代人의 聖水에 대한 일반적 표현으로서 이로 인하여 인류 始初地의 추적에 너무 개의할 필요는 없고 인류 문명의 발원지를 소개하는데 목적이 있다.

 영국인 크라멜 교수가 ‘역사는 스므러에서 시작되었다’고 설파한 그 스므러는, 메소포타미아의 스므러가 아니고 스므러인이 동방에서 왔다고 했으니까 스므러인의 고향인 동방의 스므러, 즉 지구의 짱백이에서 내린 성수요, 천하인 소머리물, 곧 송화강인 것입니다.

유교·불교·도교·기독교 문화가 선재(先在)하고 있었던 그 오랜 옛적의 석유한국(昔有桓國)의 ‘한’나라가 모든 나라의 최초였고, 오색인종의 처음이 ‘한’족이었으며, 모든 사상의 원초(原初)가 ‘한’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만년 전부터 꽃핀 동이(東夷)문화가 5000여년 전에 서방으로 유출하였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지구를 두루두루 돌고 돌아 제 뿌리를 향해 찾아든 모습은 다양합니다.

불교는 나갈 때의 상투를 깎아 던지고 대신 삭발·장삼에 불경을 끼고 되돌아 왔고, 유교는 유건(儒巾)·도포(道布)에 4서 3경을 싸 가지고 되돌아 왔으며, 또 도교(道敎)는 오두미(五斗米)를 갖고 무위자연에 유유(流遊)하면서 구름타고 들어 왔고, 기독교는 노란 곱슬머리와 파란 눈에 붉은 신·구약을 끼고 들어 왔으니, 이러한 모습들을 과연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알성급제의 위풍(威風)으로 보아주어야 할 것인지는 아무래도 이 가문(家門:조국)에 대한 공과로써 품평(品評)되어 져야 할 것입니다.

■ 그네들은 일찍부터 하늘을 무서워 섬기고 날마다 한 바퀴씩 하늘을 막질러 건너가는 해를 세계의 임자로 믿고, 고산의 꼭대기는 하늘로 통해 다니는 발판인 동시에 하느님이 인간에 와 계시는 대궐로 생각하여 하늘과 해와 산을 한 끈에 묶은 듯한 굳은 신앙을 가졌었다. 넓은 하늘과 빛나는 해와 높은 묏부리를 우러러 보고는 지극히 크고 먼 기상을 기르는 사람의 씨앗이었다.(최남선의 《아시조선》 p.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