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남촌선생 대도문답

음부경과 도덕경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6. 11. 25. 12:17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과 헌원의 음부경

우리 한민족의 정통 역사 1만년을 말하는 환단고기 소도경전 본훈을 읽다보면

배달국 신시시대에 발귀리 선인이 있어 태호 복희씨와 동문수학 하였고 그 공부를 가지고 복희 선생은 팔괘와 하도로 우주이치를 정리하여 지구촌 전 인류의 문명시조가 되었다. 

배달국 시대(BC3897-2333)-약6000년 전 - 이때 이미 배달국에는 초대커발환 황웅천황님의 신하  신지혁덕이 최초로 녹도문자가 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으며 발귀리 대 선인이 아사달의 제천행사를 보고 찬송의 글을 지었다.(글자의 발명은 황제 헌원이 아니다.)

이때는 이미 3000년전  환국시절부터 하늘에서 내려 받은 우주의 진리가 우리 동이

구족에게는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후 발귀리의 후손으로 자부선인이 있었다.


그는 태어 나면서 부터 신명의 도를 통하여 후에 신선이 되어 승천 하였다  자부선인은

일찌기 일월의 운행도수를 측정하고 오행수리를 추정하여 칠정운천도를 지으니 이것이

칠성력의 기원이다 이 뒤에 창기소가 다시 그 법을 부연설명하여 오행 치수법을 밝혔다. 


이때 황부중경과 같은 대단한 서적이 있었고 후일 서방지나족(지금의 중국)이 대홍수로 

멸족의 위기를 맞아 禹(우)가 조선의 회계산에 가서 가르침을 받을때 자허(紫虛)선인을

통해 창수사자인 부루태자를 뵙고 황부중경을 전수받아 당시 멸족의 위기에 처한 지금의 중국 한족들이 생명을 구했다 후일 중국에서  왕의 선군통치비서로 홍범구주로 전해졌다.


자부선사에게 동문 수학한  제자들이 헌원.공공.대요.창힐이  있고 헌원은 스승인

자부선인께서 청구국 대풍산 남쪽 삼청궁에서 삼황내문을 전수 받아 서방지나족

즉 漢族(한족)의 문명시조가 되었다 이때 헌원이 스승님께서 받은 삼황내문은 녹도문으로 되어 있고 총 세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 더욱 부연 설명을 첨부하여 神仙 陰符(신선음부설)을 만들었다  韓民族 상고사를 모르면 중국역사에 나온 황제헌원의

음부경과 노자의 도덕경의 뿌리를 알수가 없다 (남촌선생 환단고기 강의 내용 중에서)


- 이하 도올 강의 내용에 대한 윤박사의 토론 -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진인들이나 조사들의 저서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도가의 맥을 이어온 정통자이기 때문이다. 도가(道家)는 심오하지만, 비법이나 학문은 반드시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법통(法統)이어서 도가가 수천 년 동안 맥을 이어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도가의 주요 경전인 『도덕경』을 주석한 사람은 수없이 많은데,

그들이 정통인지 사이비 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도덕경』은 노자(老子)가 지었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교범이 되는 도가(道家) 책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문자를 발명하고 중국 문화를 일으킨 황제(黃帝)가 지은 『음부경(陰符經)』이다. 노자는 이 책을 근거로 하여 『도덕경』을 지은 것이다. 때문에『도덕경』을 주석하면서 『음부경』을 거론하지 않으면 사이비이다.
도가(道家)의 이론은 스승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지 않는다면 정말 알기가 어려운데, 이는 수많은 사람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도가의 이론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노자(老子)는 황제(黃帝)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아 『도덕경(道德經)』을 지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노자는 문서를 관장하는 사관(史官)이라는 사실
노자는 황제(黃帝)처럼 스승이 누구이며 어떻게 선법(仙法)을 배웠다는 기록은 없지만, 하여튼 어떤 사람에게서 배웠을 것이다.(일설에는 노자 스승이 원시천존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자는

고서(古書)를 관리하는 장서실(藏書室)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한 황제(黃帝)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귀중한 서적을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노자는

황제(黃帝)가 지은 『음부경陰符經』이나 『황제내경黃帝內經』등 기타 책을 보고 학문과

수련의 경지를 높였던 것이다. 우리는 노자가 도덕경만 지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노자가 지은 책은 수십 종이나 된다. 노자도 책을 보고 배웠다고, 그가 지은 『내관경內觀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본래 성인이 아니다. 배워서 이렇게 된 것이다. 나는 도(道)를 구하기 위하여 천 권의 책을 안 본 것이 없다. 吾非聖人學而得之 故我求道不無受持千經.

② 『도덕경道德經』이나 노자가 지은 다른 책 내용 중에는, 황제(黃帝)의 저작물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첫째로,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편」과 「영추편」은 모두 81편으로 되어 있는데, 노자의

『도덕경』도 81장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도덕경』이 81장으로 되어 있는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은, 「영추편」에서 황제(黃帝)와 스승인 기백(岐伯)과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황제(黃帝)가 침(針)의 종류를 9가지로 나누는 이유를 묻자, 기백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옛 성인들이 창안한 천지의 원리는, 1에서부터 9까지의 숫자가 기본입니다. 그래서 중국을 구주(九州)로 나누었고, 침법(針法)도 구침(九針)으로 하고, 이에 관계되는 이론 책인 「영추편」도 구구(九九)는 81편으로 한 것입니다.”
노자는 이런 기백의 숫자의 이론에 따라, 『도덕경』도 81장으로 종결지은 것이다.
둘째로, 『도덕경道德經』 6장에 보면 “현빈(玄牝)의 문(門)은 천지의 뿌리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음부경陰符經』에도 “신기(神氣)가 정(精)과 더불어 상합(相合)하여 현빈(玄牝)과 옥호(玉戶) 위를 통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황제(黃帝)가 최초로 사용한 현빈(玄牝)이라는 말을, 몇천년 후 노자(老子)가 다시 사용한 것은, 노자(老子)가 황제(黃帝)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황제(黃帝) 이전에 지었다는 여타 서적에 현빈(玄牝)이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노자의 사상을 보통 ‘염담무욕(恬淡無欲)’이라고 한다. 그런데 음부경에도 “성인(聖人)은 염담허무(恬淡虛無)하여 진기(眞炁)를 본래의 정(精)과 신(神)을 몸 안에 가지고 있는데, 어찌

죽을 수가 있는가!”聖人恬淡虛無眞氣存元精神內守豈得死也.라는 글이 있고, 또 『황제내경』에도 “염담허무恬淡虛無하면 진기眞炁가 따르고 정(精)과 신(神)이 몸 안을 지키는데, 어찌 병이 들어올 수 있는가!”恬淡虛無眞氣從之 精神內守 病安從來.라는 말이 보인다.
이는 노자가 황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구절이다.


넷째로, 『음부경』에는 “군자는 도(道)를 얻으면 매우 궁리하여 실천을 하려고 하지만,

소인小人은 그 명(命)을 가볍게 여긴다.”君子得道固窮 小人得知輕命.라는 글이 있다. 그런데 『도덕경』 41장에는 “상급(上級)의 사람은 선도(仙道)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힘써 실천하고,

하급(下級) 사람은 이를 들으면 크게 비웃고 만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下士聞道, 大笑之.”라는 말은 내용이 비슷하다.


다섯째로, 『음부경』에는 “歸根復命”라는 말이 있는데, 『도덕경』 16장에도 “歸根曰靜, 靜曰復命”이라는 동일한 내용이 있다.


여섯째로, 『도덕경』 8장에 보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것이다. 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음부경』에도 “오장五臟의 기(氣)는 물 즉 수(水)를 얻는 것이 그 첫째이다.

五臟之氣水得其一者.”라는 비슷한 말이 있다.


일곱째로, 『음부경陰符經』에는 “몸은 나라가 되고, 마음은 임금이 되고, 정(精)은 백성이

된다. 以身爲國 以心爲君 以精爲民.”라는 글이 있는데, 노자가 지은 『내단경內丹經』에도

“성인(聖人)은 자기 몸을 나라와 같이하고, 마음을 임금과 같이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한다.

聖人以身爲國 以心爲君心正.”라는 구절이 있어 의미가 상통한다.


여덜째로, 『음부경陰符經』에는 황제(黃帝)가 스승들에게, “상권上卷의 신선神仙이 되는 포일법抱一法과 중권中卷의 부국안민법富國安民法과, 하권下卷의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법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구절이 있다. 그런데 노자가 지은 『내단경內丹經』에 “上有神仙抱一 中有富國安民 下有强兵戰勝 若得萬事畢”라는 구절과 거의 일치한다.
『음부경』 상. 중. 하 권에 있는 이 말은 『음부경』의 핵심으로, 노자가 지은 『내단경內丹經』에도 이와 같은 말이 있다는 것은, 노자가 장서실에 근무하면서 황제가 지은 책을 탐독하여, 황제(黃帝)의 단법(丹法) 이론을 계승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위 글로 미루어 볼 때, 황제의 『음부경陰符經』이나 『황제내경黃帝內經』은 2100여 년 후

노자가 지은 『도덕경道德經』의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 『음부경』은 선법(仙法)을 해설한

구절이 대부분이고, 『도덕경』도 은유나 비유법으로 기공(氣功)에 대한 의미를 감추어서 그렇지 대체적으로 선법(仙法)에 대한 글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노자(老子)는 황제(黃帝)의

이론을 이어받고 이를 더 연구하여, 『도덕경』을 지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③ 또 『열자(列子)』라는 책에 보면, 황제(黃帝)가 지었다는 책에 노자 『도덕경』 6장의 내용 전체가 실려 있다.
“황제가 지은 책에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 이것이 현빈(玄牝)으로,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 솜처럼 부드럽게 있는 듯 하여, 그것을 사용함에 힘들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물은 영원히 살지 못하는 것이다.’ 黃帝書 曰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故生物不生”라는 구절이 있다.
윗 글로 볼 때, 노자(老子)가 『도덕경』을 짓기 이전에, 황제(黃帝)가 지은 『음부경(陰符經)』 외에 다른 종류의 단법(丹法) 책이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구절을 노자가 인용하여 제자 윤희(尹喜)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그래서 『음부경』에 있는 현빈(玄牝) 도생일(道生一) 유약(柔弱) 등의 말이 『도덕경』에 보이는 것이다.

①, ②, ③으로 미루어 볼 때, 『도덕경』은 황제(黃帝)의 영향을 받아 노자가 지은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도덕경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 예를 들자면 제 1장의 유명(有名), 무명(無名) 유욕(有欲)

무욕(無欲) 6장의 곡신(谷神), 현빈(玄牝), 8장의 상선약수(上善若水), 10장의 천문(天門),

11장의 삼십폭공일곡(三十幅共一轂) 등의 단어는 전통 도가의 진인이나 조사들 즉 위백양,

여동빈, 구장춘, 오충허, 장삼풍, 유화양, 조피진 진인의 말을 인용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하찮고 엉뚱한 얘기를 말하게 된다.


현존하는 도덕경의 주석서 중에서 학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이 바로 왕필의 주석서이다. 그런데 도올은 진인이나 조사들의 책이나 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왕필(王弼)의

주석본을 최고로 여겨 신주 모시듯이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겨나게 된다. 왕필은 BC. 226-249년까지 생존한 인물로, 24세에 요절한 천재라고 하는데, 도덕경에 주석을 16-19세 쯤 했다고 한다. 머리는 좋지만 나이가 여려서 도가수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왕필은 직관 그대로 느낀 것을 썼을 뿐인데, 이것이 당시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필자도 각종 도가서(道家書)를 탐독하고 단전호흡을 수련한 지가 41년이 된다. 이제 간신히 진도(眞道)를 알 정도인데, 왕필은 선법(仙法)을 배우지 않고 도가서의 핵심인 도덕경에 주석을

가한다는 자체가 과욕이며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왕필은 어떤 스승에게서 배웠다는 기록도

없고 덜 성숙된 이론으로 혼자 도덕경을 주석했으므로, 정통 도가 이론과는 동떨어지고

수준이하의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 엉터리 이론이다. 그러므로 왕필의 주석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이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도덕경에 대하여 저서를 내고, EBS에서 강의를 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커다란 학문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도올은 왕필을 이 세상 인물들 중에서 가장 신봉한다고

했으므로 도올의 도가철학은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예를 들기로 한다.


소주천이나 대주천을 수련할 때는 도덕경 1장에 나오는 유식(有識) 즉 유명(有名)이나

유욕(有欲)은 의식을 가지고 수련하는 것이고, 무명(無名)이나 무욕은 허무 즉 무의식 상태를

말하는데, 이때 단(丹)이 형성 된다. 그리고 도태나 출신(出身)할 때는 역시 무명 즉 무위(無爲)로 수련해야 한다. 이런 이론을 모르고 도덕경을 말한다면 이는 사이비이다. 도덕경에 있는

무명이나 유명은 뜻을 잘 몰라 후대의 여동빈이나 구장춘 장삼봉 유화양 오충허 조피진

도인들이 자세하게 밝혀 놓은 것이다.


이런 도인들은 분명히 무위를 무의식에서 수련하는 것으로 보았다. 왕필이 말한 것처럼

살아가는데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도올은 왕필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출세나 재물에 대한 욕심을 비우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용옥은 “비어 있지 않으면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궤변이고 아전인수격이며 어불성설이다. 비어 있다는 것을 실제의 사물과 사람의 마음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도덕경 원문 제 1장의
此兩者 同出而異名
차량자 동출이이명
라는 구절에서 왕필이나 하상공이나 모든 사람들은 위와 같이 同出을 붙였는데, 도올은

此兩者同, 出而異名(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라고 떼어서 해석했다.
이 원문의 해석은 "유위(有爲)인 유명(有名) 즉 소주천과, 무위(無爲) 즉 무명(無名)인 대주천은 같은 줄기에서 나온 것이다.그러나 이름이 다른 것이다. "라는 뜻이다. 유위와 무위의 경계가, 바로 도가의 虛이고 불가에서 말하는 空인 것이다. 수련을 할 때 의식이 살아 있는 소주천을

하다가 한단계 더 깊어지면 무위인 대주천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의식으로 돌아오면

이것이 有名이 되어 동출 즉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유명 무명 등 이름이 두 개인 것이다.

그래서 오충허 조사는 도가와 불가는 같다는 뜻으로 선불합종이라는 책을 지은것이다. 그런데 도올은 同자와 出자를 붙여서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다." 라고 해석했다. 소주천과 대주천이 어찌 같은 것인가. 이것이 어떻게 심오한 노자의

취지인가. 도올은 도가의 근본원리와 수련법인 소주천과 대주천을 전혀 알지 못하고,

혼자 생각한 검증되지 않은 억지 해석인 것이다.


도태(道胎)를 이루어 양신이나 법신이 나오려면 최소한 30여 년 이상 수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왕필은 24세에 죽었고 도덕경은

17세 전후에 썼다고 했으므로. 왕필은 진짜 도(道)의 근처에도 전혀 못간 것이다. 왕필은 도가를 모르는 유치원 수준이다. 도가를 알려면 소주천이나 대주천이 돌아가고 단(丹)을 이루는 순양체(純陽體)가 되고 출태를 알아야 한다. 왕필의 주석본에서는 이런 구절이 하나도 없어서 엉터리인 것이다.

그런데 김용옥은 이 세상에서 왕필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고로 도올의 도가나 도덕경 이론은 엉터리이고 사이비이며 사기 놀음인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이나 잡설로 독자나 시청자를 잠시 현혹시켰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황제(黃帝)가 지은 음부경을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도올 저서 어디에 황제(黃帝)에 대한 구절이 나오는가. 더 연구하여 진도(眞道)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고, 다음에 도인들의 저서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도가에 접근해야한다. 도올의 학문적 커다란 실수는 도가서를 전혀 모르는 왕필의 주석본만을 너무 신봉하여 이를 인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올은 6장에서 곡신(谷神)을 계곡의 신(神)으로 여자의 음부라고 했는데, 이는 소주천이나 충맥(衝脈)을 말하는 것이다. 또 현빈(玄牝)을 가물거리는 암컷으로 보아 문구 해석에 지나지 않고, 심오한 뜻을 모른다. 이는 심장과 신장으로 숨을 쉬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단법수련을 해보면

금방 안다.


5장에서 탁약(槖籥)을 풀무라고 했는데, 이는 호흡(呼吸)이라고 많은 조사(祖師)들이 한결같이 주석하였다. 감리교구라는 수련을 하면 정말 풀무질을 하는 것과 같다.


11장에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을 만든다.(삼십폭공일곡 三十輻共一轂) 이는

서른 개의 혈점(穴点)이 하나의 소주천(小周天)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도올의 도덕경에 대한 이론은 도가 이론을 전혀 모르고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만

논한 저질이며 유치한 수준이다. 이는 도(道)의 최고 경지인 달한 진인(眞人)들이나 조사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찮은 왕필 이론만 추종하여 어설픈 지식으로 사람들을 기만한 것은

마땅히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근신해야 할 것이며, 더욱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와 여동빈 진인, 오충허 진인, 유화양 조사, 장삼봉 진인들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도덕경을 잘못 알고 덜익은 헛소리를 하여 존귀한 도덕경을 하찮은 책으로 추락시키고,

자기 명예를 올린 허욕을 씻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도올 선생을 구지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학문은 시비를 가려 설왕설래하여야만

발전을 한다. 그 중에서 도가(道家) 철학은 대부분 사람들이 유가(儒家)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많아서 스승에게서 배우지 않거나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데, 자기 명성을 얻기 위하여 옛 진인이나 조사들의 말은 인용하지 않고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진리인양 주장하기

때문에, 이에 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은 이를 모르고 엉터리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혼동과 착각에 빠지게 하여 그들의 영혼을 망가뜨렸다면 이것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도올 선생 !
수년 전에 주장했던 이론이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면, 학문의 발전과 도(道)를 갈구하는

사람들과 전국의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을 위하여 공개 토론을 하여 시비를 가려볼 의향은 없으신지 .......... ?

2008년 4월 3일
혜성당 도원 원장 철학박사 윤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