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날으는 홍범도가'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홍범도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의 활약상은 실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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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흉상 |
그는 1868년 평안도 평양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8살이 되어서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작은아버지 집에서 크게 된 홍범도는 어려서부터 다른 집 머슴살이를 하기도했다. 15살 때 평안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했고 그후 제지공장 노동자, 금강산 신계사 승려 등을 거쳐 산짐승을 잡는 포수 노릇로 하기도 했다.
그가 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었다. 1895년 11월 강원도에서 포수와 빈농 40여 명을 규합해 의병부대를 꾸렸다. 1904년 가을에는 함경도 북청의 일진회 사무실을 습격했고, 1907년과 1908년에는 함경도 일대에서 수십 차례 게릴라전을 벌여 일본 군경을 무찔렀다. 1908년 11월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고 1910년 6월 우수리스크에서 결성된 13도의군에 참여했다. 1919년 5월 대한독립군을 창설한 뒤 8월 함경도 혜산진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해 이름을 떨쳤다. 그후 대한국민회 산하로 들어가 대한북로독군부의 사령관을 맡았다.
1920년 6월 4일 항일무장독립군이 만주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첫 번째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었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다. 6월 7일까지 4일동안 치열했던 이 전투에서 일본군 150여명을 사살되었다. 홍범도 일지에는 두배인 일본군 310명을 사살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는 독립군이 만주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첫 번째 큰 전투였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그해 10월에는 청산리(靑山里) 대첩에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여 제2연대장 김좌진, 제3연대장 최진동과 함께 일본군을 크게 격파했다. 독립군도 1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일본군은 2천여 명이 전사하고 1천여 명이 부상했다.
이러한 전투뿐 아니라 민족의 역사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홍범도 장군은 오동진 장군과 함께 호주머니를 털어 환단고기 초간본 30권을 찍어내는 인쇄비를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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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홍범도 묘소 왼쪽에 있는 비문 |
홍범도는 1923년 군복을 벗은 뒤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하던 중 1937년 11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고려극장도 함께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지금은 알마티에 있다) 홍범도는 밤에는 고려극장 수위, 낮에는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며 말년을 보냈다. 1941년 독소전쟁이 터지자 73살의 고령임에도 "일본의 동맹국 독일을 무찔러야 한다"며 현역으로 참전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했다. 그는 광복을 불과 2년을 채 남기지 않은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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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얼살리기 국민운동본부에서 10월 18일 홍범도 묘역을 참배했다 |
취재팀은 겨레얼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임원진들과 함께 알마티에서 국내선으로 90분 거리에 있는 크질오르다로 가서 다음날 아침 시내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역을 찾았다. 비가 오는 가운데 '통일문'이라고 한글로 쓰여진 문을 들어가니 멀리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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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 왼쪽에는 1937년 강제 이주의 아픔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이라고 새겨져 있다.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 모두의 바램이기도 하다.
먼 이국땅 카자흐스탄 거기서도 크질오르다라는 곳에 묻히게 된 홍범도 장군. 그의 유해는 먼이국땅에 있지만 그의 생애가 남긴 정신은 한민족 모두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홍대장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눈과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 막 쓰러진다
오연발탄환에는 군불이 들고
화승대구심에는 내굴이 든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홍범도 대장님은 동산리에서
왜적순사 열백놈 몰살시켰소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놈이 게다짝을 물에 버리고
동래부산 넘어가는 날은 언제나 될가.
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