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증산도 개벽문화

인류 문명사를 바꾼 전염병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7. 12. 12. 14:59

인류 문명사를 바꾼 전염병 
 
박고지금博古知今, 옛일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옛일을 통해서 오늘의 일뿐만 아니라 미래를 여는 지혜의 눈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지구촌을 엄습하는 전염병의 대유행이 장차 어떻게 전개될지, 그 미래를 가늠하고 대비하는 데는 지난 날 전염병의 역사가 교훈이 되리라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장을 읽으며 인류가 겪은 고난의 질병 역사 이면에 새 문명을 창조하는 큰 손길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전염병은 문명의 동반자 전염병은 맨 처음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류가 역사의 첫걸음을 뗀 바로 그날부터 질병은 인간의 삶과 함께 그 맥을 이어왔다. 역사가인 윌리엄 맥닐 William H. McNeill 교수는 약 1만 년 전부터 대규모 전염병이 인류를 휩쓸었다고 보고 있다."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하면서 토양이 오염되었고, 소나 말 등 동물들에 기생한 세균이 인간에게 옮아 왔다. 동물과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생태계가 오염되면서 인간에게 전염병이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모여 살며 동물을 가축으로 길러 이용하면서 문명이 싹틈과 동시에 전염병이 유행할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명의 발상지가 곧 전염병이 태동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이 시작되기 전인 BCE 3500년 경, 동방 배달국의 태호복희太昊伏羲씨 (태극기의 건곤감리 등 팔괘를 처음 그린 분)가 생존했던 때에 이미 침술이 발명되었으며, 그 200년 뒤인 염제신농炎帝神農씨 때에는 의학이 발달했다. 신농씨는 농경과 교역, 그리고 의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의학이 발달했던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동방 땅에 질병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은 발달한 곳에서 그렇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전염병은 일찍이 태고 시대에 문명의 발원지인 동방 땅에서 발병하여 문명의 전파와 함께 주변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인류 시원 문명과 함께 발생한 ‘인류사 최초의 전염병’을 시두(천연두 , 두창, 마마)라고 추정한다. 시두는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염병이다. 그런데 우리가 문명사에서 알아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는 데는 전염병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윌리엄 맥닐 교수는 “전염병은 개인은 물론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해 왔다. … 질병으로 사회가 무너지고 가치관이 붕괴되고, 종래의 생활양식이 모두 박탈되어 의미를 잃어버렸다. 문명은 질병을 만들고,질병은 문명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했다. 
 
예전에는 이러한 사실이 역사가들의 문명사 해석에서 무시되거나 도외시되다가, 근래에 이르러 깨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설득력을 얻으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인류 역사를 관통하여 볼 때 특히 고대에서 중세,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 온 문명의 전환 과정에는 전쟁과 더불어 발생한 전염병이 가장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전염병
아테네는 국력이 가장 왕성했던 황금기인 BCE 430 년,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레폰네소스 동맹 도시들과의 전쟁에 휩쓸렸다. 스파르타의 침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중심부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덥고 숨 막히는 오두막에서 비비적거리며 지내야 했다. 곧이어 인구가 포화 상태로 밀집한 아테네에 전염병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참혹한 중상을 보이며 죽어갔다. 이 병에서 살아남은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BCE 460?〜BCE 395?)는 당시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건장한 젊은이들이 갑자기 심한 고열에 시달리며 눈을 비롯해 목구멍이나 혀 같은 내부 기관들이 붉게 충혈되었다.
병자들은 곧 온갖 종류의 신물을 토했고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그들은 열이 너무 심해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느꼈고 심한 갈증에 시달렸 다. 물에 대한 갈망으로 분수대로 모여들었으며 … 거리에서, 사원에서, 그리고 뛰어든 우물 속에서 죽어갔다. … 이 역병은 남녀노유, 노예와 장군, 그리고 의사들까지 가리지 않고 죽였다. 신들을 숭배하든 하지 않든 모두가 똑같이 목숨을 잃었다. … 역병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3년 이상을 더 머물러 있었다. 그때까지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죽었다. 많은 생존자들이 손가락, 발가락, 시력, 기억력 등을 잃었다」  
 
역병은 아테네의 군사력을 끝장냈을 뿐 아니라, 정치 질서와 도덕 질서를 붕괴시켜 사회가 해체되도록 만들었다. 결국 아테네는 5년 동안의 역병과 거의 30여 회에 달하는 간헐적인 전투 끝에 몰락하고 말았다. 아테네의 뒤를 이어 지중해를 제패한 로마제국 역시 전염병의 공격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로마제국이 몰락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염된 시두의 창궐이었다. 그 매개 역할을 한 주인공이 훈족이다. 훈족은 서양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북방 유목 민족으로 그들의 문화와 신체는 몽골리언의 특성을 보여준다. 훈족은 일찍이 1세기부터 몽골 고원에서 유럽까지 대이동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두를 옮겼으며 훈족에게 고향을 빼앗긴 민족들이 로마제국으로 이동을 함으로써 이 병이 로마로 퍼진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던 5세기 중반, 아틸라Attila 왕 (406? 〜453)이 이끄는 훈족은 로마로 진격하다가 로마의 관문에서 갑자기 퇴각을 했다. 로마에 시두가 발병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로마는 겨우 수천 명만이 살아남은 폐허로 몰락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4년 뒤, 로마 황제가 게르만족 장군에 의해 폐위되면서 서로마제국은 멸망을 하고 말았다.『생존의 비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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