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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 유물 사진전 소개 영상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8. 10. 28. 20:21

홍산문명 유물 사진전 소개 영상

글로벌대한 0 73
인류 창세사를 다시 쓰게 한 홍산문화130년에 걸친 이라크 지역의 유적 발굴을 통해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세상에 드러난 것에 필적하는, 20세기 동북아 최대의 발굴 사건이 있다. 배달 동이의 문화가 세상에 드러난, 요서 지역(발해연안 지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 발굴이 바로 그것이다.
요서의 여러 신석기 문화 가운데 세간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끈 것은 홍산문화이다. 홍산문화는 요령성 조양시 건평建平현과 능원凌源현의 접경지역에서 번창했던 ‘석기와 청동기를 섞어 사용한 BCE 4700~BCE 2900년경의 문명’이다. 홍산문화는 1979년 객좌현 동산취촌東産嘴村에서 엄청난 제사 유적이 발굴되고, 1983년 그 인근 우하량촌牛河梁村에서 고대 인류의 정신문화를 가능케 한 3요소인 돌무덤[塚], 신전[廟], 제단[壇]이 발굴된 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하량의 적석총 중에는 천제를 올리던 원형 3단 구조의 제단[壇]을 갖춘 것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하다’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나타나 있는 우하량의 제단은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이다. 홍산인의 신전[廟]터에서는 여신상과 함께, 홍산인의 토템 신앙을 보여주는 곰 소조상과 새 소조상이 발굴되었다. 홍산인은 곰과 새를 신성시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총·묘·단을 모두 갖추고 국가 단계의 복잡한 문명을 일군 홍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의 문화와는 계통이 전혀 다른 문화이며 중국 황하문명 태동의 밑거름이 된 배달 동이족의 독자적인 문화이다.왜 홍산문화를 알아야 하는가홍산문화가 세계인을 정말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정교하고 다양한 옥玉 문화 때문이다. 여러 적석총에서 공통적으로 옥기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는데, 부장품으로 옥기를 사용한 것은, 옥이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뜻하고 하늘의 신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홍산인들은 옥을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 신과 소통하는 신물, 천제에 사용하는 제기 등의 소재로 사용하였다.옥기 중에 배달과 고조선이 실존 역사임을 증명하는 것이 있다. 우하량 제16 지점에서 발굴된 ‘옥검玉劍’과 내몽골 지역의 나만기奈曼旗 유적에서 출토된 옥으로 만든 도장인 ‘옥인장玉印章’ 등이 그것이다. 옥검은 놀랍게도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과 똑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다. 한민족의 독특한 양식인 비파 모양의 칼이 고조선 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배달 시대에 개발된 것임을 알 수 있다.옥인장은 정치적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로 BCE 4700년에서 BCE 2900년 사이에 번성한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 옥인장을 가장 오래된 도장이라 하여 ‘중화민족제일인中華民族第一印’으로 규정하지만, 중화주의에서 나온 근거 없는 주장일 따름이다. 옥의 재질이나 그 양식으로 볼 때 옥인장은 어디까지나 배달의 유물이다. 이 발굴은 『삼국유사』와 『환단고기』에서 전하는 ‘환국의 마지막 환인천제가 동방 역사 개창을 떠나는 환웅에게 종통의 상징으로 천부인天符印을 전수하였다’는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한다. 그런데 홍산문화보다 더 오래된 흥륭와문화(BCE 6200~BCE 5200)에서도 고대 동북아의 옥기가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흥륭와 지역에서 출토된 옥결(옥 귀고리)과 모양이 유사하고 만들어진 시기도 비슷한 옥결이 우리나라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유적지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옥결의 출토는 배달이 건국되기 이전인 BCE 6천 년경부터 요서, 요동, 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