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남촌의 세상사는 이야기

판도라의 상자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9. 1. 21. 20:47

부활하는 보물

판도라의 상자

아름다운 재앙

[ Pandora Box ]

소유자 판도라
시대 고대 그리스
지역 그리스
출전 신통기 등
물건의 형상 항아리, 상자

금단의 상자를 열어 인류에게 죽음과 병을 안겨준 처녀 판도라. 그러나 원전을 찾아가면 원래 그녀 자신이 인류에 대한 재앙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과연 최후에 남은 '희망'은 나쁜 것이었을까, 아니면 선한 것이었을까?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읽어보자.

판도라의 항아리

판도라 이야기는, 사람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를 설명하는 그리스판 죽음의 기원 신화이다. 이런 종류의 신화로는 구약성서에 있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 견줄 만큼 중요하다. 판도라 이야기는 긴 역사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는데, 그러면서 각각 시대에 맞도록 조금씩 내용이 변화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살아남아 성장해온 신화이다.

그 증거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판도라가 연 것은 상자였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원전을 기록한 그리스 서사시인 헤시오도스(그리스 신화의 원전 『신통기()』의 저자. 기원전 8∼9세기의 사람)의 기술에 의하면 원래는 '판도라의 항아리'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식품 보존을 위해 사용되었던 피토스라는 종류의 항아리에 온갖 재앙이 봉인되어 있었다. 항아리가 상자로 바뀐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인 것 같다. 또한 판도라의 속성도 크게 변화했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에서는 그녀 자신이 제우스가 인류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재앙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재앙

헤시오도스가 기술한 전승에서 판도라 이야기는 거인 프로메테우스와 신들의 왕 제우스 사이에서 일어난 일련의 싸움들 속에 등장한다.

거인 프로메테우스('앞을 보는 자'라는 의미)는 신들 중에서도 특출한 지혜를 지닌 자이며 인간들의 편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처음 인간을 창조한 자였다고도 한다(원래 남성만의 종족이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물로 바쳐진 소의 몫에 대해 인간의 편의를 꾀하고, 제우스의 뜻을 거스르고 인류에게 불과 기술(문화)의 지식을 전달했다. 이로 인해 둘은 대립하게 되고 후에 프로메테우스는 카우카소스 산 봉우리에 결박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독수리에게 간을 갉아먹히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전에 제우스는 불을 얻게 된 복만큼의 재앙을 인류에게 보내주려고 했다.

제우스의 뜻에 따라, 우선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흙으로 꽃조차 부끄러워하는 처녀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지혜와 기술의 여신 아테나는, 그녀에게 여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관한 재능과 띠와 옷을 선물했다. 아프로디테는 처녀에게 사랑스러움을 주었다. 이처럼 신들이 계속해서 선물을 주고 마지막으로 헤르메스가 그녀의 가슴에 거짓, 아첨, 교활함, 호기심을 채워주고 처녀에게 신들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판도라라는 이름을 붙였다(판도라의 어원에는 아주 다양한 해석이 있다).

이리하여 '최초의 여자' 판도라가 탄생했다. 이것은 신들이 힘을 기울여 창조한 아름다운 재앙이고, 남자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매력 덩어리였다. 헤시오도스는 말한다. 실로 판도라에게서 시작된 여성의 계보야말로 남자들에게는 최대의 재앙이라고.

제우스는 신들의 사자(使)인 헤르메스에게 명하여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 앞으로 데려갔다. 에피메테우스('후에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 지혜로운 프로메테우스와 비교하면 다소 우둔한 동생)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가 보내는 선물은 인간에게 화를 미치기 때문에 받지 말고 돌려보내라"라는 말을 들어왔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이 말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기뻐하며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름에 걸맞게 그는 나중에서야 겨우 실수를 깨닫게 된다.

한편 에피메테우스의 저택에는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인간에게 해가 되는 온갖 것들이 봉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헤르메스에게서 호기심을 부여받은 판도라는 그 안을 확인해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어느 날 항아리를 살짝 열어보고 말았다. 그러자 안에서 죽음과 병, 질투와 증오와 같은 수많은 해악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사방에 흩어지게 되었다. 판도라의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재앙으로 괴로워하게 되었다.

판도라는 허둥대며 항아리를 닫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해악은 풀려나오고 만 것이다. 다만 유일하게 항아리 안에 들어 있었던 희망을 제외하고는…….

이것이 판도라 이야기의 원형이다.

판도라의 상자 본문 이미지 1

여러 가지 이설()

헤시오도스가 남긴 전승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나 의문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설들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판도라가 연 것은 온갖 좋은 것들은 가득한 상자였다는 이야기도 그 하나이다. 이 이야기에서 판도라는 제우스가 인간에게 준 성실한 선물이었고 상자는 신들로부터의 결혼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판도라가 부주의하여 항아리를 열어보고 말았기 때문에 좋은 것들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유일하게 희망만이 남겨졌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왜 희망이 나쁜 것들의 항아리에 봉인되어 있었는지는 역시 커다란 의문점이었던 것 같다. 희망이라는 것은 어느 때에도 인간을 버리지 않으며 이것을 품고 있는 한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일은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헤시오도스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세 사람들은 제각각 이 이야기에 수정을 가했고, 현재 폭넓게 연상되고 있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유일한 희망'은 곧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을 버리지 않는 유일한 구원'으로 인식되고 재앙을 초래한 여자 판도라라는 이미지를, 마지막 희망을 안고 일어서는 기특한 처녀 판도라로 변화시킨 것이다.

판도라는 고대 여신

이에 대한 감성의 차이는 이야기 속의 판도라(여성)의 취급에도 잘 나타나 있다. 헤시오도스는 원전(『신통기』, 『일과 나날』)에서, 요컨대 남자의 모든 재앙의 원인은 여자라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되풀이하여 여성을 멸시한다. 여기에는 헤시오도스 자신의 개인적 여성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는 황금 양피의 마녀 메디아도 그랬던 것처럼 여성은 그다지 좋은 역할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제우스로 대표되는 부권적 권위가, 대지모신을 대표로 하는 모권적 권위로부터 사회의 주도권을 빼앗았다는 고대 그리스 역사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

모성은 고대를 향한 반작용으로 부당하게 명예를 손상당했다.

판도라도 사실상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원래 대지의 여신, 생명을 잉태하는 모신의 다른 이름 중 하나였다. 헤시오도스 시대에서조차 제의나 이름이 이미 잊혀져버렸을 정도로 오래된 존재였던 것 같지만, 원래는 오래된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는 '최초의 여자'로서 전승되게끔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근거로 하여 현재는 판도라라는 이름의 어원은 헤시오도스의 기술과는 매우 다르게 '전부를 주는 여자'였다는 게 정설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항아리에서 날려보낸 것은 원래 대지의 혜택(곡물 같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판도라 상자의 이야기에는 독자가 이처럼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치게 만드는 공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 이외의 이야기가 녹이 슨 지금도, 판도라 상자는 살아남아 변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시켜 알맹이의 형태를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이 금단의 상자 전승은 앞으로도 역시 살아나갈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도라의 상자 [Pandora Box] - 아름다운 재앙 (부활하는 보물, 2002. 1. 20., 도서출판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