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선생 역리학/기공도공수련강의

신비의 도술 이야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21. 3. 11. 21:04

이정규 사범

[무예사랑방] 도(道)와 도술(道術) – 태극권과 어검술

발행일자 : 2015-03-23 10:38:19   

과학이 이처럼 발달한 시대지만 이성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신기한 일들이 아직도 사회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다.

재미있는 건 전통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기한 능력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극권의 내공(內攻)
중국 권법 중 최고를 하나 꼽으라면 당연 내가권(內家拳)의 대표인 태극권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공산혁명 당시 지주들과 호족세력들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그 세력을 약화시켰다. 이런 중국이 개방되기 전 죽(竹)의 장막으로 가려진 중국본토를 대만의 무술단체가 어렵게 찾아 간 적이 있었는데 특별히 진가 태극권을 보고 싶다는 요청을 공산당에 했다고 한다. 공산당이 태극권의 정통으로 알려진 진가구를 찾아 시연해 보이라고 명령했지만 노인이 된 장손은 밀농사를 짓고 있었고 공산혁명 때 부모와 조부들이 다 희생되어 자신은 배운바가 없다고 극구 거절하더란다. 그러나 억지 성화에 못 이겨 딱 한 번을 약속받고 시연을 했는데 이 장면을 본 대만 무술인들이 찍소리 한 번 못하고 혀만 내 둘렀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의 한 무예가가 호기심에 못 이겨 중국으로 무작정 날아가 진가구의 장손에게 한 수만 보여 달라고 매달렸다. ‘모른다. 안 된다.’로 일관하던 장손도 한 달을 끈질기게 매달리니 지쳤는지 ‘한 수만 보여주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에 다짐을 받고 한밤중 그가 머물던 호텔 옆 골목길로 불러내었다고 한다. 어두운 골목에서 장(掌)으로 벽을 치자 그 큰 호텔건물 전체가 흔들렸고 입이 턱 벌어진 사람에게 이제 봤으니 돌아가란 말을 하곤 사라졌다. 말로만 듣던 태극권의 비급(秘笈)이었다.

어검술(馭劍術)

미국서 만난 인품 좋으신 한 선배 관장님은 어려서부터 단전호흡, 기공수련 등에 심취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저런 도술들이 생겼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생각을 조종하기도 하고, 멀리 있는 곳의 일을 실시간으로 보는 천리안도 받았다. 그런데 신기한 능력들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간이 아픈 사람이 곁에 오면 자신의 간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고 신장이 안 좋은 사람이 오면 자신의 신장이 아파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 간이 나쁘지 않소?, 신장에 문제가 있지 않소?” 하면 다들 놀라더란다. 상대의 병든 기운을 몸으로 읽은 것이다.


그분의 여러 도술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단연 ‘어검술(御劍術)’이었다. 염력(念力)으로 허공에 칼을 날린다는 기법이다. 하루는 이분의 재주를 말로만 듣던 이가 찾아와 사기 치지 말고 그런 능력이 있으면 당장 보여 보라고 다짜고짜 대들더란다. “보고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소?”하고 묻자 코웃음을 치는데 갑자기 벽에 걸려 있던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와 목 밑으로 날아들었다. 날선 검이 공중에 뜬 채 목 밑에 들이쳐 있으니 하얗게 질려 사색이 되는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곤두서더라고. “칼에 지문하나 안 남기고 당신을 벨 수 있는데 이래도 못 믿겠소?”


이런 능력을 가졌으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지만 실제 사정은 달랐던 것 같다. 초능력이 생길수록 몸이 괴롭고 성격도 통제가 안 되더란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도 몸에서 뻗쳐 나오는 살기에 질려 피하기만 하고 문득문득 정신을 잃고 난폭해질 때는 이러다가 정말 사람 잡겠다 싶을 정도로 통제가 안 되었다고 했다. 결국 그 독한 기운이 가족들에게까지 뻗쳐 이런저런 일들로 말 못할 고생에 시달리다 마침내 그 모든 힘을 버리고자 대한민국을 떠나셨다.

괴력
이밖에도 정통무술을 표방하는 무술단체들마다 전하는 괴력이야기들이 있다. 불귀(不歸)의 객이 된 스승이 생전에 한 주먹으로 소나무를 박살내고 바위를 연탄재 부수듯 차 부셨다고도 하고 천 길 낭떠러지를 낙엽처럼 가뿐히 오르내렸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초능력 도술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련이 극에 이르고 심신이 합일되면 이른다는 득도(得道)의 경지인가? 무예수련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의 인간완성의 경지인가?

도(道)와 도술(道術)의 구분
사실 오늘날도 세상 곳곳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이들에게 기대어 삶의 문제를 풀어 보려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때때로 이런 사람들의 신기한 재주를 보고 이들을 도인(道人), 도사(道士)라 부르고 이런 도술들을 도를 깨달아 얻은 능력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신기한 능력들은 근본적인 대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아는 도(道)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도술이란 아무리 그 능력이 신기하고 뛰어나도 사실은 한낱 재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능력들을 술(術)이라 하고 이런 도술을 부리는 사람을 술객(術客)라 부른다. 장풍도 술이고 축지도 술이다. 염력, 투시, 공중부양도 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재주인    술에 불과한 것이다.

도술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 단순, 무식해야 통(通)한다.
그런데 신기한 도술을 얻었다는 도파나 종교들의 수련을 보면 풀기 힘든 화두(話頭)에 집중 하던지, 벽에 점을 찍고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무서운 공동묘지에서 며칠씩 밤을 새가며 주문(呪文)을 외우기도 하고 절벽 끝에서 식음을 전폐한 채 목숨을 건 선정에 들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을 내려놓는 극한의 수련을 하다보면 점차 자의식(自意識)이 가라앉게 되는데 이것이 깊어지다 보면 나중엔 자신마저 잊고 마는 무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된다. 소위 말하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이 경지에선 나와 대자연의 경계가 사라지니 몸의 한계를 벗어나 말로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인간이란 생각하는 동물이고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사고(思考)를 멈추지 않는 존재이다. 그런데 자의식이 사라지고 생각이 멎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닌 상태, 알맹이인 의식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즉, 주인 없는 빈 집이 되는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무너진 의식의 경계를 뚫고 빈 육체 안에 다른 차원의 기운이 치고 들어오게 되는데 이 현상을 신통(神通), 영통(靈通)이라 한다. 즉, 귀신과 통하고 영과 통했다는 말이다. 이 때 그 영적인 기운이 가진 능력과 재주가 함께 들어오는데 이것이 신통력이다.

무예나 기공(氣功)수련을 하는 이들도 가끔 이런 힘을 얻곤 하는데 이를 기통(氣通)이라고 하나 기통 역시 신통과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기(氣)나 영(靈)이나 대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한 형태들이다. 그러니 제3의 기운이 내 안에 들어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 같은 현상인 것이다.

도를 깨치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만 신통을 하려면 단순 무식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이는 의식 수준이 낮거나 단순할수록 생각을 비우기가 쉽고 무의식의 경계로 쉽게 빠져 들 수 있다는 말이다. 무식한데 신통방통한 능력이 터진 무당들을 보면 이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도술은 도와는 상관없이 꾸준한 집념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 득도의 경지에 오르면 얻는다는 여섯 가지 초능력) 역시 따지고 보면 참선을 통해 의식을 비워가다 어느 순간 신통해서 얻은 능력이지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도술을 가진 자가 아무리 초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도를 깨친 사람 앞에선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는 도의 가장 낮은 경지가 술의 가장 높은 경지보다 높기 때문이다. 도에는 술의 힘이 내포되어 있지만 술에는 도의 힘이 없어 결코 도의 경지를 넘어 설 수가 없다. 그래서 도를 얻은 이는 비록 도술이 생겼다 한들 굳이 쓸 필요도 없고 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신통(神通)이 빠른 사람과 늦는 사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수련을 하며 신통력을 얻고자 하나 되질 않고 누군 사흘 밤낮의 노력만으로 신통을 얻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아무 노력도 없이 자다가 신통이 터지기도 한다. 기공수련 역시 몇 달 만에 기통을 하여 큰 능력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수련을 해봐야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것은 기통, 신통을 할 부류의 사람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기운과 주파수가 있는데 하필 이들이 가진 주파수가 주위에 다가온 외부의 기운들과 쉽게 동조되는 주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치도 않는데 신 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도술의 폐해
도술이란 이처럼 제3의 기운이 내 안에 들어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현상인데 문제는 이 기운이 실제로는 내가 닦아 얻은 내 힘이 아니기에 어느 순간 떠서 사라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니 잡으려 한들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참 도술로 주가를 올리다가 갑자기 도술이 떠난 이들은 그 잃어버린 기운을 찾겠다고 다시 산중수련을 하고 주문을 외는 등 애걸복걸하며 더 혹독한 수련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빌어서 다시 들어온 기운은 도리어 나를 지배하여 주인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몸과 정신까지 파괴되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 일생을 망치기도 한다. 그래서 술객들의 말로는 항상 비참하다. 말 못할 어려움에 시달리다가 패가망신을 하거나 과도한 방사로 단명(短命)을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도술 역시 공짜가 아니다. 초인적인 도술은 쓰고 난 만큼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구도자들은 구도 중에 만나는 술의 유혹은 쳐다도 보지 말라는 엄한 교훈을 듣는 것이다.

기묘한 도술은 만물의 궁극의 원리인 도를 깨우쳐 얻은 능력이 아니기에 술객(術客)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세상에서 천대받고 크게 쓰이지도 못한다. 뛰어난 초능력도술로 세상을 구한 이가 역사에 있었던가?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적장들을 도술로 혼내주었다는 통쾌한 이야기도 있지만 풍전등화에 놓인 국운을 건져낸 것은 정작 우직함으로 충정을 다한 충무공 이순신이었다. 강감찬, 을지문덕이 뛰어난 도인으로 도가의 계보에 올라 있으나 이들이 나라를 지킨 실력도 도술이 아니라 그들이 닦아 지닌 뛰어난 지략과 백성을 사랑하던 어진 덕(德)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현대의 도술
또한 현대의 과학기술은 현대인들을 인류 역사상 뛰어났던 어떤 술객보다 뛰어난 초능력자로 만들어 냈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초등학생이 천리안을 가진 술객보다 못할 것인가? 책상머리에 앉아 화상통화를 하고 막대한 분량의 서류뭉치들을 클릭 한 번으로 세상 반대편으로 전송하는 회사원들은 어느 시대 술객들의 축지법에 뒤지지 않는다. 공항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승객들은 공중부양을 하는 어느 술객보다 더 빠르고 넓게 세상을 누빈다. 장풍으로 100미터 밖의 바위를 부순다 한들 버튼 하나로 수 백 만의 인명도 살상할 수 있는 정밀타격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지구 가득히 존재하는 오늘날 무슨 큰 쓸모가 있겠는가?

현대에서는 도술의 용도가 크질 못하다. 죽도록 고생해서 얻어 봐야 고작 눈요깃거리 밖에 안 되는 도술을 쫓아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쓸모 적은 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테크놀로지를 통해 현대판 도술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오늘날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추는 것이야 말로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초능력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현대의 도인(道人)
태권도, 공수도, 합기도, 유도, 검도 등 우린 도(道)라는 글자를 운명처럼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도라는 글자 앞에 붙는 태권, 공수, 합기, 유, 검 자(字) 역시 술(術)이다. 술이 방편이고 몸이라면 도는 목적이고 머리다.

그런데 혹시 우린 몸을 닦고 술을 닦는 데만 너무 치중하다 짐짓 우리 안에 갖췄어야 할 내용물을 충실히 채우지 못하진 않았는가? 몸만 비대하고 머리는 빈약한 속빈 강정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이젠 술을 넘어 도에 이르러야 한다. 태권으로 도를 이룬 태권도인(跆拳+道人). 합기로 도를 이룬 합기도인(合氣+道人), 공수로 도에 이른 공수도인(空手+道人), 검으로 삶을 지평을 열어 제친 검도인(劍+道人)이 되어 주어야 할 때이다.

뛰어난 장인이 만든 작품에 재주와 기교만 가득하고 혼(魂)이 담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만대에 남아 그 이름을 전할 순 없을 것이다. 천년을 내려오는 고려청자가 귀하고 석가탑, 다보탑이 칭송받는 이유는 그 안에 한 맺히도록 아름답게 깃든 장인의 혼(魂) 때문이다. 우리 또한 우리가 닦는 무예에 그런 혼과 기백을 담아 후세에 전하는 이 시대의 도인(道人)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