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한 아기가 심하게 앓고 결국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 보니까 모든 게 깜깜하고 조용하고. 그래서 밤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왜 낮이 이렇게 더디게 오는 거지?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낮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아프기 직전까지 막 말을 배우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껴가던 아기에게 갑자기 세상이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터미네이터와 헬렌 켈러
영화 <터미네이터>시리즈를 보면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로봇들이 잇따라 등장해 인간을 주눅들게 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로 표징되는 가공할 완력과 초능력을 자랑하는 첫 번째 터미네이터로부터 형상기억합금으로 재탄생한 더 빠르고 강력한 두 번째 터미네이터 그리고 어떤 기계라도 만능으로 다루고 지배하는 여성형 로봇인 세 번째 터미네이터 등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 인조인간 앞에서 우리 인간은 자꾸 초라해지고 왜소해지기만 한다. 이런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은 그 존엄성을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줄기 배아세포의 복제라는 첨단 과학에 따라 인간의 장기가 대량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조차 복제될 수 있는 시대가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복제 가능의 시대에서 인간은 필요하면 기계의 부속품처럼 자신의 신체 일부나 거의 전부를 갈아끼우는 게 가능한 존재로 재규정된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귀 하나, 눈 하나의 소중함은 간단히 사라진다. 외형적으로 인간은 그런 복제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부속품을 갈아끼움으로써 마치 신체 이상의 한계라든가 수명 제한의 한계를 간단히 극복하는 것처럼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착시현상이 아닐까? 실제로 이런 식으로 인간이 재규정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닐까? 헬렌 켈러 태어나서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또는 성홍열, 수막염)으로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을 모두 한꺼번에 상실하는 3중 장애의 고난에 빠졌던 인간 이렇게 세상이 가없이 어린 자기를 갑자기 내팽개쳐 버리는 절대적인 절망속에서 처절한 노력으로 아주 힘들고도 느리게 그러나 마침내 성공적으로 그 닫혀버린 문을 열어낸 인간 그렇게 함으로써 그 어떤 비장애인도 해내지 못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해낸 인간. 개인적으로 지난 14개월동안 역사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 읽고 생각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인간적으로 증명해낸 인물이 바로 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특히 그가 그런 3중 장애를 딛고 일어선 뒤 쓰고 말하고 일함으로써 쉼없이 다른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을 되새기면 그의 독특한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대단히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는 어떻게 세상과 소통했는가
1880년부터 1968년까지 헬렌 켈러가 88년 생애를 다 바친 투쟁은 결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헬렌이 맞닥뜨려야 했던 세상은 오늘날과 달리 아주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시각-청각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 이전에 시각과 청각이 손상돼 언어장애까지 갖게 된 사람이 살아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대다수가 유아기 때 혈육에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일은 지구 곳곳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눈이 먼데다 귀까지 들리지 않은 사람은 괴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장성하기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곤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눈이 먼 아이들을 산꼭대기로 끌고가 굶겨 죽이거나 산짐승들에게 잡아먹히게 내버려 두었다. 다른 고대 사회에서도 눈 먼 아이들은 노예나 창녀로 파는 일이 흔했다. 동양에서는 으레 창녀가 됐으며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구걸하며 연명해야 했다. 시각장애 하나만으로도 이런 악행의 피해를 받을 지경이었으니 거기다 귀까지 들리지 않는 2중 장애인들은 다시 거기서 말까지 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인들은 어떠했을지는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이 암흑의 시대에 인간은 이런 표현을 마구 써댔다. 원죄의 대가, 어둠의 상징. 유대인은 <탈무드>에서 살아 있는 시체라는 표현까지 썼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산 채로 묻힌 시체를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조차 흔했다. 미국에서도 그런 장애가 마치 성병과 관련이 있다는 식의 무지와 오해때문에 헬렌 켈러가 기고하는 것을 기피하는 여성잡지도 있었다. 헬렌의 장애극복 과정은 또 어떠한가? 전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이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생님인 애니 설리번과 함께 기울인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1) 촉각만으로 만나는 세상 - 오로지 촉각만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촉각이 곧 눈이요, 귀요, 입인 것이다.
(2) 글자도 모르는 단계 - 글자를 손바닥에 써준다. 인형, 과자, 엄마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고 글자를 스스로 흉내내서 쓸 수 있게 된다.
(3) 머리 쓰는 법 가르치기 - 나무 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와 유리 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가져다가 실에 나무 구슬 2개를 꿰고 다음에 유리 구슬 1개를 꿰어서 헬렌의 손에 쥐어준다. 헬렌은 처음엔 나무 구슬만 꿴다. 그걸 다 빼내고 다시 제대로 꿴 다음 만져보게 하고 다시 하게 한다. 그 다음에는 헬렌이 정확하게 한다. 그러나 매듭을 묶지 않으니 다 빠져나가 버린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매듭을 묶었다.
(4) 포크 사용법 가르치기 - 손으로만 먹고 포크를 쥐어주면 내던지는 것을 계속 다시 쥐어주는 식으로 해서 성공한다. 음식은 포크로 먹는 것이다!
(5) 단어에 대한 이해와 추가 학습 열망 - 사물과 단어의 연관성을 깨닫는다.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그것이 우유와 다른 물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 장면이 영화 <기적은 사랑과 함께>에 감동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때부터 단어를 본격적으로 배워나간다.
(6) 점자 공부 - 손으로 써서 알게 된 알파벳과 단어를 점자로 바꿔 인식하게 한다. 그 결과 올바른 문장을 쓸 수 있고 자기가 쓴 글을 고칠 수 있게 됐다.
(7) 수화 알파벳 익히기 - 손으로 알파벳을 표현하는 수화 알파벳을 익히게 한다. 헬렌이 스스로 알파벳을 수화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한편 헬렌이 다른 사람의 손을 만져서 그 알파벳을 알아내도록 가르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화 알파벳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촉각만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단계다.
(8) 발음교육 - 이것이 가장 어렵고도 가장 극적인 대목이다. 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만져서 입술의 모양과 움직임, 혀의 위치, 목젖의 상태와 움직임 등을 느끼도록 한 뒤 그걸 그대로 흉내내서 소리를 내도록 한다. 보거나 듣지도 못하고 오직 촉각만으로 발성기관의 모든 것을 느껴서 그것을 흉내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재현하는 처절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재현한 소리는 보통 사람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한 단어를 발음하는 것을 배우는 데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절망해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많다. 어쨌든 발음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9) 점자로 독서 - 지식의 극대화·다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헬렌 켈러는 188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남군 퇴역 대위이자 면화농장주로서 주간지를 발행하는 지방 언론인이기도 했다. 생후 19개월 만에 병을 앓고 살아났으나 3중 장애에 빠진다. 그 뒤 거의 의사소통이 차단된 상태에서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생활을 한다. 접시를 깨고, 등불을 부수고,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손으로 휘젓고, 할머니를 꼬집어 내쫓고, 광문의 열쇠를 잠가버리고.
사회주의 경도 - 나치즘 반대 활동
그러다가 전화기의 발명자이자 장애인 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고로 장애인 특수교사를 가정교사로 두게 된다. 헬렌 켈러는 이 특수교사인 애니 설리번의 인내와 노력, 전문성 있는 교육으로 세상과 재소통하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그 결과 케임브리지 여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의 여자부 래드클리프대학을 졸업한다. 그 뒤 자신처럼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서 온 생애를 바친다. 당시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을 향해 장애인 교육시설과 교육방법의 개선에 지원해줄 것을 호소한다. 이를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국가의 순회 강연에 나서고 다양한 집필 활동을 벌였다. 순회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해 유럽과 동아시아 등 세계 39개국을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세계를 순회하며 전쟁으로 시각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 위문하고 지원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헬렌 켈러 국제상’이 생겨났다. 건강이 나빠진 뒤 말년에는 명상과 기도 생활을 하다가 1968년 숨진다. 정치적으로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에 깊이 경도됐으며, 전쟁과 나치즘을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인생에 과감한 도전이 없다면 그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안전에 집착하는 것은 미신에 집착하는 것과 다름없다. 안전이라는 것은 자연상태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대신 다른 쪽 문 하나가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바라보고 우리를 위해 다른 쪽에 새롭게 열린 문은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세상에서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다만 가슴으로 느껴질 뿐이다. 친구와 어둠 속을 함께 가는 것이 혼자 밝음 속을 가는 것보다 낫다. 나는 위대하고 고상한 일을 완수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의무는 작은 일을 바로 그렇게 위대하고 고상한 일인 것처럼 완수해내는 것이다. 우리가 한번이라도 즐거움을 느껴본 것이라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우리가 깊이 사랑한 모든 것은 우리의 일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우리 삶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다른 사람의 삶에도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 나름대로 경탄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심지어 어둠과 침묵조차도 그렇다. 그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기운을 내시게나. 오늘의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내일 찾아올 성공을 생각하시게. 어려운 과업을 세웠군. 하지만 참고 견디면 성공할 거야. 난관을 극복하노라면 기쁨이 찾아오나니. 지식은 사랑이며 빛이며 비전이다. 비관주의자치고 행성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이 있는가? 인간정신을 위한 신대륙의 항로를 개척한 사람이 있는가? 볼 수 있으면서도 비전이 없다면? 끔찍한 일이다. 과학은 거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나쁜 것-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치료하는 방법은 찾아낼 수 없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은 내게 깊은 위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세상에 즐거움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 용기인지 무엇이 인내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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