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으로 바라보는 겨울은 앙상하기만하고
몸으로 느끼는 겨울은 으스스하지만
그러나 그 계절 속으로 빠져가면 색다른 감동과 아름다움이 다가섭니다.
겨우 분간이 되던 산행길은 온통 눈에 덮여버리고
이따금씩 매어져있는 저 조그만 표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추위 속에 외롭게 매달린 리본이지만
전해오는 것은 따뜻한 배려와 정입니다.
고목에 붙어 겨울을 나는 버섯들.
식용인지 독버섯인지 굳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은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일이기에 말입니다.
순을 틔우고, 잎새를 벌리고, 꽃을 피우고는
마지막 열매로 마무리하는 나무의 삶.
비록 추위에 떨고 있을지언정
어느새 나뭇가지 속에서는 새 봄이 움트고 있을겁니다.
산행 길,
걷기에 거추장스럽기만 하던 조릿대들도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듯
무척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은 하얗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낙엽도, 씨방도, 푸른 잎새도
흰색 하나만으로 저렇게 곱게 단장할 수 있음은
자연만이 지닌 솜씨가 분명합니다.
그저 흑과 백의 조화임에도
그 절묘한 조화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발밑에선 사각사각 눈이 밟히고
사위가 온통 눈꽃으로 덮인 가운데 서면
옅게 낀 안개와 어우러진 계절의 정취는
벅찬 감동과 희열로 나를 휘감아 옵니다.
얼어붙은 어승생악의 분화구.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잿빛이었지만
뺨에 스치는 바람은 차갑기만 했지만
아름다운 겨울에 취해버린 가슴은
그 모든걸 녹이고 있었습니다.
2007. 1. 7
한라산 어승생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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