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우리역사 바로알기

해방되지 못한 역사관-한사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12. 10:41

해방되지 못한 역사관-한사군
 

뭐 첫째는 여기서 저하고 연배 비슷한 분들은 아마 초등학교  한사군이란 것에 대해서 달달 외웠을 겁니다. 시험에도 나왔죠. 한사군 이름 다 외워야 되고 낙랑이다 뭐 진번이다 임번 현도다 이름 다 외워야 되고 위치까지도 낙랑은 뭐 평안도 일대 해가지고 위치까지 다 외워야 됬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한사군이 뭡니까?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지역에다가 설치했다는 중국의 식민통치기관 아닙니까? 그 이름과 위치를 우리가 초등학교 때 달달 외워야 됐다? 해방된 나라에서 달달 외워야 됐다? 이거는 마치 우리 초등학교 중학생들에게 일본 총독 이름 외우게 하는 거하고 똑같습니다. 조선의 주둔했던 조선 총독부의 1대 총독은 누구냐? 2대 총독은 누구냐? 이게 시험문제 나온가 하고 똑같은 겁니다.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죠.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 사건이 무려 2200여년전에 있었던 사실인데, 2200여년전의 식민통치기관의 이름과 위치를 왜 외워야 했을까? 여기서 우리가 나라는 해방됐지만 역사관에서는 전혀 해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왔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과연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이 그렇게 진행됐느냐? 사마천이 살아 있을 때 묵도한 겁니다. 이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은, 근데 이 전쟁 기록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전쟁에 관한 경과를 죽 보면은 결론적으로는 중국이 이겼다는 거죠. 이겼는데 이기고 돌아왔으니까 한무제가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을 표창해야 되지 않습니까? 장군들을 심사해서 상을 줘야 되는데, 어떻하냐면 순차란 장군과 양복이란 장군이 있습니다.

순차란 장군은 오니까 목을 베서 귀시합니다. 귀시가 뭡니까? 그냥 목 베는것도 아니고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서 그냥 구경거리로 만드는 거죠. 또 한 사령관 양복이라는 사령관은 사형 선고를 내렸다가 막대한 돈을 바치니까 신분은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귀족에서 강등시키고 목숨은 막대한 돈을 받고 살려줍니다.

그 외에 위산이라는 인물과 공선소라는 인물은 이미 사형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마천이 뭐라고 부기하냐면 조선과 전쟁에 나섰던 인물중에는 아무도 제후로 봉함을 받은 사람이 없다.

원래 장군으로 중국에서 나가서 전쟁에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면 장군에서 후, 제후로 봉함을 받는 게 중국의 포상의 관례입니다.

근데 고조선과의 전쟁은 이기고 돌아 왔는데 아무도 제후로 봉 함을받기는 커녕 다 사형을 당합니다. 이상하죠? 전 세계 전쟁 역사상 이런 아무런 우여 곡절이 있을지라도 전쟁은 결과 중요한 거 아닙니까? 결과가 이게 좋으면 이겼으면 다 상을 주는 건데, 이겼다고 써놓고 오히려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다 사형시킵니다.

이건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 사마천의 사기에 다 나와 있는 겁니다. 그 반면에 고조선이 무너지는게 전쟁에서 져서 무너졌다기 보다는 고조선 지배층이 분열하면서 자체 붕괴하는겁니다.

자체 붕괴한 결과, 고조선에서 한나라에 항복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전부다 제후로 봉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후로 봉함을 받는 지역이 여기에 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이 쪽 지역이죠.

발해를 중심으로 저 산동반도에서부터 위쪽에 이르는 이런 지역들. 이건 점점으로 연결한건데 실제로 뭐 이 사람들이 제후로 봉함을 받은 받긴 받았지만 봉함을 받은 지역은 따지면 호수로 따지면 불과 수백 호 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지역들을 받는 겁니다.

근데 어쨌든 위치가 왜 고조선에서 한참 떨어진 이 쪽 지역을 봉지로 줬을까? 이거를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중요한 것이 한사군의 위치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그림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달달 외워야 됐던 위치의 말하자면 근본 사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병도씨가 쓴 국사대관에 나오는 한사군을 나타내는 겁니다.


-= IMAGE 3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보면 평양지역에 낙랑군이 있죠? 다른 모든 삼군도 한반도 내에 걸쳐서 있는걸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낙랑군입니다. 왜냐면 낙랑군은 한사군의 중심지입니다. 한사군의.

한사군의 중심 - 낙랑군의 위치

그래서 과연 낙랑군의 위치가 어디냐 하는 점은 우리가 고조선사를 바라 볼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가 됩니다. 지금까지는 전부다 낙랑군은 바로 평양 일대에 있었다 라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낙랑군의 위치를 실제 어디냐라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사기태강지리지에 나옵니다. 판서를 잠깐 하겠습니다.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만리)장성의 기점이다 
 


이게 사기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소기, 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라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수성현과 바로 이 갈석산이 어딘가를 찾으면은 낙랑군의 위치가 어딘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수성현과 특히 갈석산이 어디냐? 여기만 찾아보면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가 있는 거죠.

근데 이병도씨가 뭐라 했냐면 이 수성은 황해도에 보면 수안이라고 있습니다. 아마 수성은 수안일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거가 뭐냐? 근거는 숫자 하나가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이 쓴 책을 보면 맹랑하지만 이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그 글에다가 맹랑하지만 나는 황해도 수성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맹랑하면 하지 말아야죠.

근거가 이거 딱 하나입니다. 그럼 중국 여러 지명중에 숫자 같은 지명 찾으면 백개 이상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갈석산이 있어야죠. 갈석산이 수안에 있습니까? 없으니까 그냥 근처에 산 하나 갖다가 저걸 갈석산이라고 했을 것이다 라고 해서 비극인건 그렇게 돼서 이 수성현이 실제로 황해도 수안이 됐다는 거죠. 그래서 보면 장성소기 여기에 장성이 시작됀다. 장성이 뭡니까? 만리장성이죠? 그러다보니까 중국의 만리장성이 이 안까지 그림을 보시면 중국의 각 박물관들 한번 다녀보세요. 다녀보시면 중국 박물관들에서 만리장성을 저 한반도 안 황해도 까지 끌어다 놨습니다. 그 이론 제공을 우리가 한 겁니다.

그럼 실제로 우리가 한 번 수성현과 갈석산을 한 번 찾아보자 라는 건데 지금 하북성 창려현이란데 가보면 갈석산이라는데가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입구에 신악갈석이라고 써있죠? 갈석산이 있습니다 가보면. 저희가 작년에 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왔습니다. 꼭대기에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창려현 전경이 나오는데, 위에서 보면 요새지죠. 사방이 산으로 거의 둘러쌓여져 있고, 저 끝에쯤 보이는 데가 바로 발해입니다.

그리고 저 지역이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하고 아주 가까운 지역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와 있는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다 하는 이야기는 현재 창려현 갈석산하고 모든 부분이 다 맞아떨어집니다. 저 근처에 바로 산해관을 비롯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저기에서 끝나고 끝나는 지역이니까 시작하는 지역이죠. 장성이 저기에서 시작되고 또 하나는 이 수나라 시대, 수양제가 있었던 수나라 시대에 관한 역사책이 수서 아닙니까? 이 수서에 보면 수성현이 바로 현재의 이름으로 현재의 이름인 창려현이다 라는 구절이 수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 사기태강지리지나 수서나 이런 모든 사료를, 중국 사료를 종합해 보고 그리고 실제로 현재의 갈석산에 저 하북성 창려현에 가보면 현재 갈석산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언제 시간되시면 북경에서 하루 코스면 하루나 넉넉히 잡아서 이틀 코스면 하루 코스면 충분히 다녀올 지역입니다. 저길 구경하고 나서 밤중에 북경까지 들어갔으니까 일찍 출발하면 하루면 갈 수 있는 지역인데, 분명히 중국 고대 기록을 보면 낙랑군 지역은 현재의 하북성 창려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걸 갖다가 지금까지도 현재까지도 평양지역에 있다. 얼마 전까지 고구려 연구재단 홈페이지에까지 이 낙랑군을 평양지역에 있는걸로 그려놨었습니다.

낙랑군이 여기 보시는 데로 갈석산을 중심으로 한 저 지역에 있느냐 아니면 평양지역에 있느냐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낙랑군이 지금 우리가 사료에서 보고 실제 답사로 확인한 하북성 지역에 있느냐? 있다라고 하면 이 의미는 뭐냐하면 한 나라는 고조선 영토를 거의 차지하지 못한 겁니다. 차지했다라고 해봤자 약간 저 일대 조금 차지해서 거기에다가 형식적으로 낙랑군이다 하는 거를 만들었다는 거죠. 그리고 광대한 고조선의 옛 지역들은 우리 선조들이 그냥 계속 다스리고 살고 했다는 겁니다.

그 지역에서 부여가 나오고 고구려가 나오고 옥저가 나오고 동여가 나오고 다 나오는 거죠.

한사군은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그냥 사군을 설치했다 이렇게만 딱 나옵니다. 그리고 이름자체도 안 나옵니다.

저 보세요. 사마천이 살아 있을 때 목격한 전쟁인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까지 당했던 사람이 그 옛날 일까지 다 답사 다녀가면서 기록을 했던 사람이 자기가 살아 있을 때 목도한 전쟁의 결과로 한사군을 설치했으면 왜 그걸 이름을 기록을 안했겠느냐? 그리고 어떤 기록에는 중국 어떤 기록에는 2군으로 나오고 어떤 기록에는 또 3군으로 나옵니다. 아주 혼재가 되어 있는 거죠. 이러한 것들이 말해주는 게 뭐냐? 결국은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이라는 거는 외형상 중국이 이겼다라는 형태를 취했지만 사실은 이긴 것이 아니라 그냥 고조선은 상부체제가 자체 붕괴한 거고 붕괴한데서 전쟁이 끝났고 중국은 한나라는 고조선 영역을 거의 차지하지 못했다라는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 결론이 또 나오는 이유가 뭐냐하면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하지 않습니까? 침공할 때 보면 좌군 12군, 우군 12군을 나눠가지고 진격로를 너는 어디를 거쳐서 어디로 와라 하는 진격로를 다 제시를 해줍니다. 그 진격로에 이 사군 이름이 거의 다 나옵니다. 낙랑군도 나오고 뭐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근데 여기에서 한 번 보세요.

낙랑이 당시 수양제가 공격하려고 했던 평양성 지역이, 고구려 수도가 평양성 아닙니까? 근데 기존의 견해대로 낙랑이 평양에 있다 그러면 수양제가 처음에 24군을 출발시키는데가 북경 북부의 탁현이라는 곳인데 거기에서 출발시키면서 너는 낙랑을 거쳐가지고 낙랑으로 와라 이 얘기니까 앞뒤가 안 맞는 거죠.

그 얘기가 가능하려면 수양제가 공수부대가 있으면 가능합니다. 공중에 떠가지고 공수부대가 내려오면 되는데 그렇지 않는 한 이게 앞뒤 말이 안 맞는 겁니다. 그럼 이런 여러 많은 실증적인 사료들이 있으면 우리가 기존에 믿어 왔던 한사군의 위치 지정이 대단히 잘못됐구나 라는 거를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실제로 고구려 동천왕 같은 경우를 보면 동천왕이 막 서안평을 공격하지 않습니까? 고구려 동천왕의 싸우고 하는 지역들이 저 서쪽으로 위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저 동천왕이 서쪽으로 진격을 해가지고 위나라하고 막 싸움이 되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다 이 당시에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나 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는 거죠.

정리을 하면 한사군이라는 거는 중국에서 고대 기록은 그 당시 전쟁의 기록은 우리가 중국 사료 밖에 남아 있는게 없으니까 고조선 측에서 쓴 사료는 없기 때문에 중국 사료를 가지고 우리가 해석을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 사료를 해석을 하고 그 다음에 중국 사료에 나와 있는 사료와 그 지역들을 답사를 다녀보면 결국은 한사군이라는 것은 저 난하근처 산해관 일대의 고조선 서쪽 끝자락 일부를 차지했으면 그 쪽 극히 일부를 차지해서 형식적으로 한사군이란걸 만들었을수는 있지만 고조선의 옛 주요한 옛 지역들은 한나라가 전혀 차지하지 못했다.

못했으니까 한무제가 이기고 돌아온 장수들을 다 사형시키지 않겠습니까? 그 땅을 전부다 차지해가지고 고조선을 다 차지해가지고 돌아왔다라면 이기고 돌아온 장수를 갖다가 사형시키는 세계 전쟁 역사상 그런 임금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 중략 .............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아까 우리가 고인돌을 봤지 않습니까? 만주지역에도 광범위하게 많은 고인돌이 퍼져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 역사가 한반도 내에 국한된 시간보다는 오히려 그 넓은 대륙과 해양에 걸쳐있었던 때가 훨씬 더 깁니다.

한반도가 우리 역사의 주 무대가 된 게 몇 년 입니까? 불과 천 몇 백년 되지 않습니다. 그 훨씬 그것보다 몇 배 더 되 기간동안은 우리가 저 만주대륙, 내몽고 일대를 다 포함한 만주대륙이 우리의 역사무대였고, 일본열도까지 포함한 대해양이 우리 역사의 무대였다는 겁니다.

증산도 사상연구소 콜로키움 중에서  2007. 1. 9 (화)




현 국립중앙 박물관 낙랑실에 나와있는 왜곡된 한사군 설명과 낙랑군의 위치 설명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잘 번역도 되어 있어 관광온 외국인들에게도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