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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라미드, 동이의 고분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15. 14:33

[펌]한민족참역사 http://cafe.daum.net/khankorea

 

동이의 유적,피라미드 고분

 

중국정부가 극비로 취급하는 단군조선 5011년 이전의 역사유물 고분군 자료를 소개합니다.

 

한민족 고대국인 한(환)국의 역사를 찾아서...

북중국과 중부 서인의 피라미드고분 항공촬영(첨부자료1)

 

1. 동복공정을 확실하게 추진하라.

 

이 피라미드고분의 평균 높이는 25~100m로 축조하기 위해서는 수만명이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최초의 발견은 1945년에 독일주둔 미조종사의 사진촬영과 보고서였으며,이에 대해 중국당국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중국당국에 의하면,1963년에 중국학자들이 이 피라미드고분을 진시황 무덤으로 예상하고 발굴했지만 탄소연대(c-14)측정에서 진시황의 무덤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서방으로 알려집니다.

 

현재, 중국정부에 의해서 철저하게 차단되어 학술적인 조사도 불가능한 상태이며,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독일의 고고학자 하우스 돌프가 만주의 피라미드를 촬영하여 독일로 보낸 후 서방세계에 만주의 피라미드를 알리는데 성공합니다.

 

2.세계사를 다시 써야하는 인류 최고의 고고학 유적 발견!

 

이 커다란 초유의 피라밋에 대해 서방의 학자들이 의문제기와 발굴요청(독일 고고학계,6차례나 공식 조사요청)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중국정부(1987)는 "사진은 합성,조작으로 그 지역에 그런 피라밋무덤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며 일체 접촉금지및 함구함으로써 발굴을 회피해 왔습니다.

 

그 발표와 함께 1990년대부터 중국정부는 고구려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켜 자국학생에게 가르치고 전 세계에 고구려역사가 중국역사라고 홍보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민족참역사 회원들께서는 이점 각별히 유념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첨부한 항공촬영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만주의 피라미드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계단식 형태의 모양을 하는 만주(장군총)와 한반도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과 너무도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학계에서는 이 공법을 [고구려특허 축조기술=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며,중국,일본지역에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고조선과 고구려 고유의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한민족 전통적 건축공법입니다.

 

그러면!  BC.3000년전 만주지역에 살던 민족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는데, 당시에 화하족(중국족)은 황하를 넘지 못하고 있었으며,석기시대였고, 만주지역은 중국의 '25사'와 한국의 사서에서 조선(古朝鮮)과 한국(환국桓國)의 활동무대로 되어 있습니다.

 

내몽골지역의 고분

 

최근에 중국정부는 침엽수등 나무를 심어서 은폐하고 있는데 중국의 <신화통신>에서 이 고분이 어느 민족이 만든 것인지 밝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3. 내몽골에 5000년 된 피라미드고분

 

(신화통신)

 중국 고고학자들은 중국북부 내몽골 자치지역에서 무려 5000년전의 피라미드고분인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 피라미드고분은 아오한 배너(Aohan Banner)지역의 시지아지(Sijiazi)마을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산봉우리에 있었으며,아래부분 길이는 30m 이상 폭은 15m 이상인 3층 석조건물이다.  

 

요녕성의 고고학 연구센터의 유명한 중국 고고학자 구오다쉰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고분은 지금부터 5000년 전 홍산문명시대의 것이라고 말한다.

 

일곱개의 무덤과 제단의 유적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발견되었고 제사단이 있던 자리에서는 한문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조각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은 고대인들이 천문(天文)을 익히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고분의 하나에서 고고학자들은 뼈로 만든 피리와 돌 반지를 찾았고,다른 고분에서는 사람의 크기만한 여신상(女神像)조각이 새겨진 돌을 발굴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의 벽에 새겨진 현재 힌두교의 시바신과 비슷한 상징으로 남근상을 찾고 놀랐으며,벽에 새겨진 현재 힌두교의 시바신과 비슷한 상징 밑에 여신(女神)들이 있는 작은 돌조각상을 찾았다. 

 

고고학자 구오는 상당수의 유물들이 처음 발굴되는 것들이며 이것들은 홍산문명의 매장풍습과 종교,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 그리고 사회구조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바로는 이 피라미드고분의 발견은 중국문명의 근원을 밝혀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였는데 이에대해, 한민족 역사학자들은 "그 유물은 중국보다는 한민족역사라고 말하는 편이 더 쉽고,역사적으로 합리적인 일이다" 라고 말합니다.

 

홍산문명은 내몽고(중국 자치주), 라이오닝(요녕성 서부), 하북(요녕성 서쪽)에 걸쳐서 분포된 신석기 문화권에 속하는 문명입니다.

 

고분의 위치도(내몽고자치구와 적봉지역)

 

지금까지 학계통설로 볼때 중국에는 이집트와 남미에 있는 대형피라미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신화통신의 기사를 보면 대륙의 고조선지역인 내몽고과 만주지역에 피라미드 존재가 확인된 것입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외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오랜 세월이 지나 수목이 우거져 산처럼 변해 있는 것도 많은데 중국정부는 현재 이를 방치하고, 피라미드 연구자체를 철저하게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와 그동안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피라미드문명을 중국은 홍산문명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이 홍산문명을 역사학적으로 해석하는데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이 바로 우리 한민족참역사의 4한국론(단4국)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한민족 역사인 것입니다. 축조연대는 고조선시대로 보아 무리가 없으며, 이전의 한(환)국시대 환인(칸)이나 고위지도층의 무덤, 또는 단제 겸용으로 추정됩니다.

 

 

4. 티베트의 거대한 피라미드고분

 

 피라미드 고분에 대한 다른 신문(중앙일보)의 글이 있는데,한민족과 관련있는 유적으로 판단되어 별도로 소개합니다. (고조선은 4한국으로 나누어 세계를 지배했는데 그중 한 지역인 티베트 4단군 지역)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로 알려진 이집트 기자(쿠푸왕)피라미드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티베트 서쪽에서 발견했다고 중국 톈진일보가 보도했다. 발견된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높은 피라미드는 180m 정도로 쿠푸왕의 피라미드(146m)보다 규모가 크다.

 

톈진일보는 현재 티베트지역의 유적을 조사했는데 티베트 서쪽 끝단에 위치한 강런보치봉(神山) 주변지역에서 100개가 넘는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티베트 피라미드가 세계 최대 규모임을 확신하면서 대부분 피라미드들이 극히 오래된 탓에 심하게 훼손됐지만,정밀조사한 결과 피라미드의 윤곽을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 피라미드들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이 움푹 들어간 경우가 많았고 거대한 석조인물상도 발견되었는데 이번에 발굴된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멕시코 마야문명의 피라미드와 유사하다.(한국인=에스키모=인디언=잉카=몽고=마야)

 

 

인류최초의 민족,한민족의 참역사

 

 첨부자료 설명

1. 서안지역의 단군릉 항공촬영사진(1947년 독일주둔 미군수송기),사각형태를 유념

2. 이집트 피라밋에 대한 항공사진(1번과 비교:1968년)

3. 마야지역 남미 인디오(한민족,후손)들의 유적(밝혀짐)

4. 아메리카 인디언 피라미드 유적(단계식 제무덤)

5. 인디언 피라미드(당시 알래스카와 동아시아는 육지로 연결)

6. 오키나와 해저에 수장된 피라미드(당시는 육지)

 

 

1. 서안지역 단군릉(1945년 독일주둔 미수송기촬영)     2. 이집트 피라밋

 

1장안지역 피라미드,        2,이집트 미라미드,         3,마야 피라미드,           4,오리온별자리,

모두 같은 문명입니다.

 

3. 마야지역 남미 인디오들의 유적                           4. 아메리카 인디언 피라미드(단계식 제무덤)

 


미국 일리노이주 커호키아에 있는 인디언 피라미드,미국의 세게문화유산

 

 

5. 인디언 피라미드(당시 알래스카와 동아시아는 육지)                 6. 오키나와 해저에 수장된 피라미드(당시는 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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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군총, 밑변길이 약 31m 정사각형

 

고조선시대 제2단군지역 피라미드, 함양 인근지역

 


하우스돌프의 하얀피라미드 책에 실린 피라미드군락, 함양 인근지역

 

중국이 마지못해 공개한 3천년전 만주지역 서단의 피라미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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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제국의 문화

 

한민족참역사에서 미대륙 인디언과 잉카가 우리 한민족(동이족)이라고 주장하는데 학계에서는 너무 심한 유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할수 있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 분명한 한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부터 이러한 합리적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멕시코에 팔렝케 유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발견된 마야 파칼왕(파 칸)의 피라미드는 한국의 장군총과 같고 파칼왕의 머리는 가야의 두개골 변형임이 입증된 바 있습니다. 누구나 멕시코여행을 가고저하시는 분은 그곳의 제1유적지인 마야의 피라미드를 반드시 보시게 될텐데요,먼저 한국에서 다음 몇곳의 유적지를 답사해보고 떠나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첫번째는 안동시 안동탑과 산청의 산청탑을 살펴보고, 두번째는 서울 방이동에 있는 백제고분을 답사하고, 세번째는 만주의 집안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을 보십시요. 한민족의 전통무덤인 고구려식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비로서 아시게 됩니다.

 

한민족학자들은 이런 유일의 전통 피라미드가 고조선에서 고구려등(인디언,잉카,마야,이집트등)으로 이어져 구려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세계적으로 진출했다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만주 집안의 장군총 피라미드

 

네번째는 부산대 박물관으로,전시실에는 이마가 납작한 두개골이 있는데 가야지역의 경남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두개골의 변형은 이 유골만 아니라 10구의 유골에서도 발견됐는데,학계에서는 당시의 풍습으로 인위적으로 머리를 변형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만,오늘날까지 변화하기 전의 원래의 모습이라고 봄이 타당하겠습니다.

 

이렇게 납작한 형태의 두개골은 가야의 특정한 집단,혹은 특수계층의 사람들이 편두라는 풍습을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봅니다.

 

두개골 유적(가야의 편두)

 

고구려식 피라미드와 가야의 편두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멕시코의 팔렝케유적을 살펴보면,신전은 3개의 방과 벽면에는 6백여개의 마야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있고,피라미드 무덤에서 6구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여성의 유골도 있는데,유골의 가면은 이마가 편두처럼 푹 꺼져 있어 가야의 편두형 머리와 비슷하고,회반죽으로 화장해서 만든 두상도 발견됐는데 왕의 얼굴을 기념해 새긴 인위적인 형상으로 보이고,편두 이마의 조각상도 있습니다.

 

팔렝케유적의 발견 이후,다른 마야유적지 과테말라의 티칼에서도 무덤형 피라미드가 발견됐고,1994년에도 무덤 피라미드가 발견되는데 마야학자들은 최대의 비문이 발견된 팔랑케 피라미드를 기념해 명각의 신전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마야학자들은 명각의 신전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해독한 결과 무덤의 주인이 '방패'라는 뜻을 지닌 파칼(칼=칸)왕임을 밝혀냈고,파칼왕은 12세에 왕위에 오르고 80세(683)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고구려식 피라미드 (주신문명=고조선문명)

 

파칼왕의 명각의 신전과 여러 피라미드들은 한국의 고구려고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고구려식 피라미드는 만주의 집안과 요녕지역에 약 12000기가 분포돼 있는데,파칼왕의 피라미드는 그 규모나 구조가 집안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을 연상케 합니다.

 

차이점은 파칼왕의 피라미드가 지하에 석실과 석관이 있다면 장군총은 5층에 석실과 석관이 있고, 파칼왕은 1개의 석관인데 장군총은 부부의 무덤으로 2개의 석관이 있다는 점으로써,이는 고구려식이 더 발전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그러나 양 피라미드의 유사성을 비교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신전으로서 멕시코 고고학자들이 파칼왕 피라미드의 독창성을 주장하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즉, 파칼왕의 피라미드는 정상에 신전이 세워져 있는 반면 장군총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군총 꼭대기형태까지를 보면 무엇인가를 위해 비워둔 공간이라는데 이의가 없습니다. 즉, 원래부터 빈 공간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공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맨 꼭대기까지 탑을 쌓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타당한 것입니다. 이 주장을 더욱 합리적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장군총 정상의 돌덩이를 살펴본 바, 여기에 일정하게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공(柱孔)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건물의 기초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현재 없어진 피라미드 정상의 어떤 모양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건축물이 세워져 있었음을 명백하게 밝혀낸 증거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많은 한민족사학자들은 "장군총 정상에 사당을 짓고 하늘과 조상에 제사를 지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장군총 역시 피라미드 위에 신전이 있었습니다.

 

특히,중요한 점은 이 피라미드의 축조시기(연대)입니다.   파칼왕의 피라미드는 683년 이후에 건설된 피라미드로써 이 시기를 고구려시대와 비교하자면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패망시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써,파칼왕의 피라미드는 장군총(3세기 이전)보다는 후에 건설된 피라미드입니다. 이러한 사실은,5천년 전,주신(고조선)시대로부터 전파된 한민족이 이미 상당한 지역까지 진출하여 지배세력화 되었슴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파 칸의 피라미드처럼 무덤은 발견되지 않으나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피라미드는 그 건설시기가 훨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먼저 멕시코 최대의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펴낸 책자를 통해 메소 아메리카문화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보면,지금부터 4000~3500년전에는 멕시코에 옥수수를 재배하는 마을이 곳곳에 자리잡았고,이후 토기와 토우예술 및 파라미드들이 건설되므로써 문화가 꽃피게 됨을 알 수있습니다.

 

멕시코 학자들은 이 시기부터 전기고전기(BC.1200년~BC.100년),고전기(BC.100년~ 900년), 후기고전기(900년~ 1521년)로 나누어 문명의 변천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마야문명은 현재 사람들이 알고 있드시 메소 아메리카 최초의 문명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는 생각이라고 보며, 그 무엇인가 선대문화를 계승한 것으로 본다면 주인공인 파 칸(칼)은 바로 마야문명의 대표적 인물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민족의 고구려식 피라미드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데,대부분학자들은 장군총과 같은 피라미드(적석총)는 고구려 초기의 무덤양식으로 대체적으로 3세기까지를 그 하한시기로 잡고 있습니다.   반면에 고구려 피라미드가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 정확히 말하는 자료는 없지만,그러나 그 기원은 서기전으로 올라가고 고구려, 그 문화를 고조선으로부터 이어 받았다는게 학자들 간의 이의가 없는 부분입니다. 즉, 고구려의 파리미드 장묘제 역시 고조선 문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렇게 보아야 타당하다는 학설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양자강 상류에 있는 용마고성 유적에서 약 5000년전에 쓰인 제사용 토단이 발견되었는데,제사용 토단은 종교적형태를 갖춘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그리고 장강문명의 기원연대와 비슷한 또 다른 문명으로 한민족의 발상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적이 대륙의 요녕지역에서도 발견됩니다.

 

1986년에 중국 고고학계의 보고서가 나온 요녕성의 우하량유적에서 돌제단과 흙으로 구운 신상의 머리가 발굴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았는데,연대가 BC.3700년으로 보고있습니다.

 

후기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이 유적지에 중국학자들은 홍산문명(紅山文明)이란 이름을 붙였고,홍산문명은 종교의 권위가 뒷받침하는 정치권력이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고대문명으로 간주합니다.

 

단국대의 윤내현교수는 "홍산문명은 고조선 등 한민족의 고대사와 직결돼 있기에 중국과 일본학자들은 그 중요성을 외면하고 있지만,홍산문명과 장강문명 등 새로운 고대문명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는 이상 황하중심의 동아시아 고대사 인식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바,이는 인류사,즉 한민족원류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근거입니다.

 

이렇게 홍산문명과 장강문명에서 피라미드의 원형이 발견됐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데 설령, 홍산문명과 장강문명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더라도,그들은 분명,동이족으로써 그 문화가 고구려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할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분명한 것은 동아시아의 피라미드가 멕시코의 피라미드 건축연대보다 빠르다는 점 입니다. 이것은 그 원류가 어디인지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사항으로써 주신(고조선)(한국,환국)의 증거라고 보기에 충분한 사항들입니다.

 

가야식 편두

 

파칼왕의 편두와 가야의 편두가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 인류학박물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편두- 이마가 납작한 두개골(변형)

 

맥시코 시티의 전시실에는 편두 인골을 전시해두고 있는데,부산대 박물관에 있는 것과 같고,인골에는 마야인이 어떤식으로 편두를 했는지도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야학자들은 왜 마야인이 편두를 하고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편두와 연관된 연구결과가 나왔는데,마야인은 심령능력 개발에 노력했고 심령능력을 개발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마야의 군주는 바이라고 하는 별개의 자아 또는 분신을 가지고 있었으며,이 분신은 꿈을 통해 접촉하는 동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마야도시들의 일정한 건물에는 마야왕들이 <환상의 탐구>를 위한 특별한 침실이 있다]

 

이것은 편두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데,일찍부터 영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가야의 편두도 영적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것인지를 기록에서 살펴보자.

 

<삼국지> '동이열전'

兒生, 便以石厭其頭, 欲其遍, 今辰韓人皆遍頭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펑펑한 머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지금의 진한 사람들은 모두 편두이다]

 

중국 진나라 때 진수가 역사를 기록하면서,동이족 국가들의 역사와 풍속을 설명한 글로 진한은 고대의 동이족 국가를 설명하는 것이므로,이 기록은 의심할 여지없이 3세기경 한민족의 풍속을 묘사한 것이다.    

 

*지증대사비문

遍頭, 居昧錦之尊, 語襲梵音, 彈舌足多羅之字 ... 宜君子之鄕也

[편두는 신라왕의 존귀함이었고 말은 범어를 차용해 썼다 ... 마땅히 군자의 고향이라]

 

신라의 최치원이 지증대사비에 새겨놓은 것으로 신라왕이 편두에다가 이상한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대목"입니다.

 

서로 반대되는 지역에서 고대에 이와 같은 구전과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는데,마야문명에서 귀족층의 자제들이 종교적의식으로 편두했고,신라의 왕이 존귀함의 상징으로 편두를 했다는 기록은 일치를 보여주는 바, (신라 왕비가 인도에서 왔다는 사실등) 조상이 같은 한민족이라는 역사적 근거가 되는 내용입니다.

 

이와같은 역사적 사실로 볼때,

베링해를 건너간 먼 옛날의 아시아인종이 두 대륙에서 독창적으로 편두를 했다는 설명보다는 역사시대에 아시아에 있던 편두형 집단이 당시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이 붙어있었을 때 아메리카로 건너가 그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했다는 것이 합리적이며 좀 더 논리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용봉문화원류>라는 책에는,중앙 아메리카 최초의 문명인 올멕문화는 은(殷)왕조가 주나라에 망해서 이동한 것으로 보고있으며,은왕조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

 

1910년, 청나라의 외교관 구양경이 멕시코에서 멕시코혁명시 죽은 화교에 대한 배상문제를 협의하는데,

멕시코 원주민인디오의 지도자가 찾아와 만나기를 요청하여 만났는데,자신들은 원래 동이족(은복포족=은나라사람)으로써 약 3천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고 얘기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사로써 정식외교문서인 대만외교부 자료보관처에 보관되어있는 것인데,우리는 이 실사에서 몇가지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정권입니다. 즉,고구려의 후손들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 동이의 나라 즉 한민족정권의 나라입니다. 이전에도 중국의 관리가 멕시코등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이때는 이들이 중국관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청나라가 동이의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찾아와 만났고,같은 동족임을 털어놨다는 사실입니다.  -대만 외교부 공식확인 내용임-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적인 이유는,멕시코 원주민인 인디오들 스스로 자신들을 동이족(은왕조)의 후예로 자처했다는 점, 이주한지 3000년이 됐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입증사실은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입증하는 충격적 사실이며,놀라운 증거입니다. 또,있습니다.

 

북미대륙의 인디언이 3000년전에 북미대륙으로 아시아에서 살았던 동이의 후예가 이주했을 가능성이 높은 유물과 문자들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3000년경으로 보이는 인디언의 돌닻이 발견되었는데,재질이 미대륙에는 없는 것으로 동아시아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고,멕시코 올멕 유적지에서 옥으로 만든 홀(笏)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갑골문으로 해독결과 치우(蚩尤)와 소호(少昊)등 동이족(東夷族)의 이름으로 밝혀졌습니다.

 

 

인류역사는 한민족이 모체

 

결론적으로 우리 한민족참역사의 삼우선생의 역사적 주장(인류 최초의 민족으로써 인류역사 자체...)이 과학적이고 역사적 사실을 근본으으로한 실사임이 다시 확인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고증 역사가 점차 발전하면서,

이집트와 멕시코문명 등은 한국(환인)의 동이문화가 모체임이 위와같이 밝혀지고 있어 한민족의 위대성이 세삼스럽지 않다는 당연한 역사적사실이라는 점!

 

중공당국의 동북공정을 경계하면서 특히, 북중국의 우리 조상님들의 유적인 거대한 피라밋고분들을 우리는 반드시 발굴해야만 한다는 의지를 우리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고저 합니다.

 

(참고: 연사외 5종, 도움: 삼우선생,해돋는산님, 코스모스님)

 

[펌]한민족참역사http://cafe.daum.net/kha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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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단군릉 입니다.

 

김일성의 유일한 업적입니다

북한은 1993년 10월 '단군릉발굴보고'를 발표하여 단군이 5,011년 전의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보고에 의하면 이곳에서 두 사람 분의 유골 86개와 금동왕관 앞면의 세움장식, 돌림띠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북한은 유골을 감정한 결과 하나는 남자, 다른 하나는 여자의 것으로 확인되었고 단군 부부가 함께 묻힌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이 유골을 전문연구기관에서 연대측정한 결과 약 5,011년 전의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를 통해 북한은 단군의 유골이 5,0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석회암지대에 묻혀 있어 화석화 경향을 보였고 매장되어 있던 지역의 토양이 뼈를 삭히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단군릉이 돌로 쌓은 고구려 양식의 돌칸 흙무덤으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 무덤이 고구려시대에 복원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였다.

 

45정보의 대지를 조성하여 신축한 단군릉은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장군총의 모양과 같지만 장군총이 7단의 돌무덤인 것에 비해 9단으로 만들어져 규모가 더 크다. 무덤의 높이는 22m, 한 변의 길이는 50m이며 화강석 1,994개를 다듬어 쌓아 올렸다.


한번에 10여 명이 들어가 볼 수 있는 무덤칸 안에는 단군과 그 왕비의 유골이 보존되어 있다. 단군릉의 앞과 주위의 넓은 마당에는 상돌·향로·범·망주석·석등·검탑 등이 세워져 있다. 능의 네 모서리에는 돌범들이 서있으며 그 아랫단 네 모서리에는 고조선의 대표적 무기인 비파형단검을 형상한 검탑이 서있다.

 

능 앞의 낮은 단과 계단 양편에는 단군의 네 아들인 부루·부소·부우·부여 등과 8명의 측근 신하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들은 그들이 각기 맡은 직무의 특성에 맞게 개성을 살리면서 의상이나 장신구 등에서는 큰 차이가 없게 만들었다.

 

북한은 단군릉을 발굴하고 새 능을 대대적으로 신축하면서 종래에 신화적·전설적 인물로 간주되어온 단군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과 단군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시조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이 발굴 복원한 제1 단군릉

 

피라미드 밀집지역

 

지켜야 할 귀중한 고조선 역사의 현장,신성한 피라미드에 나무를 심어놓았다.....!

 

북중국의 단군릉(미확인:발굴중?)

 

엄청난 북중국 피라밋들..

주신의 평양(서울)이었던,중국 시안의 단군릉(삼성릉) 전경

 

스페인 카나리아 군도의 귀마르 촌락에 있는  피라미드

스페인 귀마르 피라미드

Guimar pyramid

 

마야 피라미드와  귀마르피라미드는 같은 모습입니다. 같은 종족이 만들었다는 증거입니다.

 

 

1800m짜리 초거대 피라미드

 

중국의 피라미드

 

남미에 피라미드 건축물들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됐지만 동북아 일대에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은 극히 최근에 알려진 사실들이다. 우리가 피라미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고구려 시대의 무덤도 그렇지만 독일인 학자 하우스돌프(Hausdorf)가 중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서방 세계에 전했다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들,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 학자들이 티벳 지방에서 발견했다는 1,800m짜리 초거대 피라미드의 실체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피라미드에서 밭가는 중국농부.주민들은 피라미드의 개념이 없다고 한다

중국 시안지방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는 평균 25~100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길이가 300m 크기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이집트의 쿠푸왕이 만든 기자의 대 피라미드보다 훨씬 크다. 이런 것을 축조하기 위해서는,고대의 기술로는 연인원 100만명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 무덤보다 수천년 앞서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독일인 학자 Hausdorf씨의 TV인터뷰 사진과 직접 찍은 중국의 피라미드

할트위그 하우스돌프씨가 촬영한 중국의 시안지방에 있는 피라미드들,


최근에는 서구세계의 학자들과 방송국의 요청에 못 이긴 듯 '발굴기술과 유물 보존기술이 부족해 다음 세대로 그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는 말을 언론에 보도했으며, 이와 같은 중국 측의 태도는 고구려역사 왜곡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인 학자 하우스돌프씨는 자신이 찍은 이 피라미드 사진들을 용케도 빼내는데 성공하여,1994년 "하얀 피라미드"란 책을 출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티벳의 피라미드

2000년 6월에는 러시아 학자들이 서장 티벳고원에 피라미드가 존재한다고 발표했는데, 티벳지방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은 그 즉시 반박문을 내어, "해발 5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피라미드와 고대 건축물을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어떤 목적과 역량을 가지고 그것을 세웠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그것은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계단형 산일 뿐이지 결코 피라미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그 산들은 해발 6714m의 위용을 자랑하는 캉린보체山의 여러 봉우리인데, 러시아의 과학자 몰다스프씨를 중심으로한 일련의 학자들이 그 봉우리들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였으며, 총 100여개의 피라미드 추정 봉우리와 고대유적을 발견했다고 전해왔다. 그중 가장 큰 피라미드는 높이가 무려 1,800m나 되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는데,이 소식이 곧바로 중국의 '참고소식(2000.06.09일자)'이라는 주간지에 실리게 되어 중국과 러시아의 피라미드 공방에 불을 지피게 된 것이다.

러시아측은 컴퓨터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구조와 산의 구조를 대조분석한 결과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피라미드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으며,티벳피라미드는 멕시코와 이집트의 일부 피라미드처럼 계단식 구조로서,주위의 산들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산을 피라미드로 착각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갈길이 먼 피라미드 연구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 룽산(龍山)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한 변 31m)

 

형태가 완벽한 장방형으로서 피라미드 조건에 꼭 부합하고 있다. 마치 이집트나 남미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보는 듯하다.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현지 중국학자들은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전혀 별개의 피라미드에 대해 살펴봤다. 하지만 아직은 일본의 산들이 정말 피라미드인지,장군총이 아즈텍 피라미드와 같은 종류인지도 확실치 않다. 중국 피라미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티벳 피라미드는 학자들간의 이견 공방 속에 오히려 묻혀버린 느낌마져 든다.

 

아프리카 수단의 사막에 있는 쿠시왕국의 '메로에(merowe)' 피라미드에 이르러서는 거의 두손들 지경이다. 피라미드에 관한한 모든 것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쿠시왕국의 수도 메로에(merowe)에 전해져 오는 정체불명의 피라미드.

 

아직 이렇다할 전문적인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막의 모래바람속에 버려져 있다. 쿠시왕국은 기원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했던 전설 속의 신비한 흑인왕국으로서 일명 이디오피아 왕국이라고도 전해진다.

어떤 현상이나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진실성을 규명하고 밝히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이 오컬트라는 학문의 목표요 사명이다. 피라미드에 얽힌 이러한 미스테리들도 말없이 뒤에서 수고하는 젊고 패기있는 오컬티스트들에 의해 곧 풀리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것이 세월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세월은 피라미드를 두려워 한다.
-고대 이집트 경구-

[심령과학 웹진 오컬트(occult.co.tv) 운영자 이한우 nexio21@hanmail.net]

[참고문헌]
고대유적, 모리노 다쿠미, 들녘, 2001
초고대 문명, 맹성렬, 넥서스, 1997
충격의 고대문명, 찰스 셀리어, 한뜻, 1997
잃어버린 과거의 여행, NHK취재반, 우주문명사, 1984
돌에 새겨진 인간의 정념, NHK취재반, 노벨문화사, 1983
초고대 여행, 박우인, 예예원, 1994
인간 단군을 찾아서, 최태영-김유경, 학고재, 2000
티베트 고원 피라미드 존재 공방, 지해범 특파원, 주간조선 2000.07.27 (1613호)

 

[펌]한민족참역사 http://cafe.daum.net/kha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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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호대왕릉과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우즈베키스탄) 벽화에 나오는 고구려 사신들.

 

디지털 복원한 호대왕릉(한변 길이 약 70~80미터)

 


태왕릉,한 변의 길이 66m

 


수미산,캉린보체 봉우리

 

[펌]한민족참역사http://cafe.daum.net/kha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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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트,갈대아 우루

 

우르는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만 중간지점인 유브라데스강 서쪽 약10 km 떨어진 현재의 텔엘-무카이에르를 가리킨다.

 

지구라트,ziggurat,갈대아 우르 3왕조 시기

 

지구라트,ziggurat,갈대아 우르 3왕조 시기

 


지구라트,ziggurat,갈대아 우르 3왕조 시기

 

 

이집트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136m

 


이집트,기자 피라미드,멘카우레왕,카프레왕(136m,저변216m),쿠푸왕(뒷쪽,146,5m,저변230m,제1)의 피라미드

 

[참고]쿠푸왕 피라미드 아래의 한 변의 길이가 230.34m이고 네 변의 합계가 931.392m이고 이것의 높이 146.6m로 나누면 원주율π(3.141596...)의 정확히 두 배인 6.285...가 된다, 이것을 그냥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피라미드 기저부의 방위가 동서와 남부 축에 의해 정확하게 0.065°로 맞아 있고, 정확한 기하학적 건물이며 피라미드 정점의 중심이기도 하다.

 

19세기의 고고학자로 이집트학의 플린디스피트리 경(Sir Flinders Petrie)은 직접 측정해보고 기자 피라미드의 정밀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쿠프 왕의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대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 230.34m에 대해서 겨우 1.52㎝의 오차만 내었을 뿐이다. 이것은 1/15,000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모서리는 직각에서 각도 12′의 오차만 있을 뿐이다. 낮 동안의 온도 변화에 의해서 자의 길이 변화는 이보다 더 큰 오차를 낼 수도 있다.

 

수평과 돌을 다듬어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데 적용된 정밀도도 180㎝ 길이에 달하는 접합 면은 직선에서 0.25㎜ 정도만 벗어난다. 카프리왕의 피라미드는 이보다 3배 정도 오차가 커서 밑변 길이 215.265m에 대해 3.81㎝를 벗어나고 모서리가 직각에 대해서 33′ 벗어나 있다.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는 이보다 더 심해서 각각 105.512m에 대해 7.62㎝, 직각에 대해 1′50″벗어나 있다.


이 이후의 시대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이 초기 왕조의 건축물에 비견한 만큼 정밀하게 건축된 건물은 없다."  피트리 경은 남아있는 몇 장의 외장재를 측량해보고 180㎝가 넘는 길이를 측정한 결과 직선에서 겨우 0.25㎜ 정도의 오차만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가공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런 외장재들이 서로 붙어있는 틈새 사이에는 매우 고운 모르타르가 발려져 있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기술인데 외장재 접합부의 면적은 대략 2.4m ×1.5m인데 이렇게 넓은 면적에 0.5㎜ 두께로 고르게 깔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미장 전문가가 현재에도 없다. 우주왕복선에 사용된 스페이스 셔틀의 표면에 붙이는 내화타일 간의 간격도 0.5㎜보다는 크다.  그리고 15톤 이상 되는 외장재를 그 높은 곳에서 제자리에 올려놓은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정밀한 두께의 모르타르로 이음매를 처리하면서 한두 개의 돌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힘들다.

 

피라미드 밑변의 네 모서리는 직각에 가깝다. 최근에 측정한 바에 의하면 밑변의 남동쪽 모서리는 89°56′27″, 북동쪽 모서리는 90°3′2″, 남서쪽 모서리는 90°0′33″,북서쪽 모서리는 89°59′58″로서 90°에 대해서 최대 오차는 0.07% 이내이다. 또한 방향을 보면 네 밑변이 각각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우선 북쪽 면은 2′28″서쪽으로 돌아가 있고, 남쪽 면은 1′57″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동쪽 면은 5′30″북쪽으로, 서쪽 면은 2′30′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방향에 따른 오차는 0.015%로 어긋난 최대 면으로 따지면 1.1m에 해당된다. 이 정도로 정밀한 각도와 방향으로 건축할 수 있었을까?

 

밑변과 방위를 잘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건물 전체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는 대각선 측량이 불가능했다. 돌출된 암석이 측량을 위한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각 면은 뒤틀림없이 정확하게 사각뿔의 중앙으로 모이도록 건축되는 상당히 어려운 기술인 것이다.


오늘날 모서리가 직각에 가깝고, 그 방위가 가장 정확해야 하는 건물은 천문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세계 시간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자오선 빌딩이 그 대표적인 것인데 이 건물 중앙의 정남북을 잇는 선인 자오선이 바로 경도가 0°이기 때문에 이 건물의 남북 방위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 피라미드는 남북방위가 고작 3′정도 어긋나 있는데 비해 이 건물은 자오선에 대해서 9′이나 기울어서 지어졌다.  현대 건축물에 사용하는 측량장비보다 더 정밀한 측량장비가 이미 5,000여년 전에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날 지어지는 건축물의 허용공차가 1% 정도 적용된다. 건축을 함에 있어서 너무 지나친 정밀도를 요구할 경우에 비용과 시간,노력 면에서 엄청난 투자가 들어갈 뿐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별다른 효용가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피라미드는 무덤이라기보다는 천문대보다 더 정확성이 요구되는 건축물이었거나 아니면 당시의 건축기술이 그 정도로 발전된 수준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세계 7대 불가사의」의 저자 존 로머(John Romer)는,대 피라미드는 가장 오래되고,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며,현재까지 지어진 세계의 건물 중에서 가장 정밀한 건물이라고 하였다.

저변으로부터 3분의 1 지점에 어떤 연유로 왕의 관이 놓여지게 되었으며,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피라미드는 과연 무덤인가에 대한 의문은 역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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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른사회
글쓴이 : 알마자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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