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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의수세보원강론 (김용옥)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21. 12:48

제목: 동의수세보원강론 (김용옥)

【 東醫壽世保元序 ----- 大正三年上元月.


大正三年은 1914년이고, 元月은 正月로 1월이다.
誠堂 韓敎淵이라는 사람이 序를 썼습니다.

【 芸菴 韓錫地와 東武 李濟馬 】
이제마는 함경도 함흥 사람인데, 함경도 함흥에 韓氏가 많이 살아요. 이제마는 사실 사상적 계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상적인 관계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이 芸菴(운암)

韓錫地(1769-1863)이다. 東武 李濟馬 선생이 태어난 설이 확실치 않아요. 역시 1837년으로 봐야되지 않나 봅니다. 정약용 선생이 183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韓錫地라는 사람이 明善錄이라는 책을 지었어요.

이제마가 서른살 정도에 함흥에서 정평으로 가는데 어느 객사에 머물게 됐습니다.

벽지를 뭘 쓴 것으로 발랐다. 보니까 글씨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내용이 대단하다. 이것이 누구의 글씨냐? 우리 할아버지가 학문이 높으신 분이래서 저술을 남기셨는데 다시 정서해서 책으로 놓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수고(원고)는 버리기 아까워 벽지로 발라 썼다. 그러면 원본을 볼 수 있느냐? 이 원문을 보여주면 사문난적으로 몰린다더라. 워낙 우리 할아버지 사상이 특이해서 남에게 보이지 말라는 유시가 계셨다. 그래서 보여줄 수가 없다. 동무가 몇 일을 자면서 명선록이라는 책을 얻고 자기 제자 韓昌淵이라는 사람한테 다시 베끼게 했습니다. 한 본은 동무가 가지고 있었어요. 이 명선록이 최초로 인쇄가 되는 것은 1940년에 이루어집니다. 이제마가 韓錫地라는 사람을 사상적으로 존경했다하는 것만 알아요. 명선록이라는 책이 1940년에 발간된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뭐 그리 대단한 책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제마는 그 사람을 대단하게 생각한 것같아요. 이제마 사상과 명선록과의 관계를 아무도 탐구 안했어요. 논문도 없고 아직 그 방면으로 전혀 연구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관계가 있냐 하는 것을 깊게 연구해 볼 과제입니다.

誠堂 韓敎淵이라는 사람이 1914년에 序를 썼는데 한교연이 芸菴 계열의 후손일 것이라 여겨져요. 나중에 책을 낼 적에 이제마의 책 뒤에 芸菴淵源이라는 말을 썼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은 운암에서 나왔다 하여 이제마 집안에서 반발하고 싸웠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만큼 운암과 동무는 관련이 깊다. 1914년에 序文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판본은 1914년 이후의 판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25페이지부터는 우리나라의 훈이 없어져 버리죠. 계보가 다른 판본들이 섞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마에 관해서 가장 정확한 평전이 하나 있는데 李能和란 사람이 지은 朝鮮名人傳이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도 쓰고 일제시대 때에 관변사학자로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으로 조선총독부 편수관을 하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일제정권하에서 타협하면서 정리한 사람이지만 학문적 업적은 방대합니다. 박물학적인 관심이 있어 각 방면에 탁월한 업적을 많이 냈어요. 조선명인전의 제일 끝에서 두번째에 이제마에 대한 평전이 있습니다. 이능화가 쓴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대나 이제마의 information이 부정확해요. 동의수세보원을 쓴 시기에 대한 기술도 틀립니다. 이제마 자신이 기록한 것이 정확하게 맞는 것입니다.


此書, 自癸巳七月七月十三日始作, 晝思夜度,

無頃刻休息, 至于翌年四月十三日.

少陰少陽人論, 則略得詳備, 太陰太陽人論, 則僅成簡約.

盖經驗未遍, 而精力已憊故也.

記曰; 開而不達則思. 若太陰太陽人思而得之, 則亦何損乎簡約哉!

萬室之邑一人陶, 則器不足也. 百家之村一人醫, 則活人不足也.

必廣明醫學, 家家知醫, 人人知病然後, 可以壽世保元.

光緖甲午四月十三日, 咸興李濟馬畢書于漢南山中.

鳴乎! 公甲午畢書後, 乙未下鄕至于庚子, 因本改草.

自性命論至太陰人論各有增刪, 而太陽人以下三論未有增刪,

故今以甲午舊本開刊.

光武五年辛丑六月, 咸興君栗洞契新刊.

門人 金永寬 韓稷淵 宋賢秀 韓昌淵 崔謙鏞 魏俊赫 李燮恒


이 책은 1893년 7월 13일부터 시작해서 낮에는 생각하고 밤에는 헤아려서 경각의 휴식도 없이 다음 해인 갑오년 4월 13일에 소음 소양인론에 있어서는 꽤 자세히 조사해서 써 놓았다. 태음 태양인론에 가면 내 연구가 부족해서 충분히 쓰지 못했다. 대저 증명을 거친 것이(clinical case가 충분히 축적이 못됐다) 두루두루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 정력이 지쳐 버렸다.(늙어 버렸다) 책을 열어 가지고 그 뜻이 통달하지 못하면 생각을 자꾸만 해라. 태음 태양인의 경우에는 독자들이 생각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으면 다행 아니냐. 그러면 간약한 것을 써 놓았다 할지라도 뭐 그렇게 손해될 것이 있느냐! 만실지읍에 일인만 도기를 굽게 되면 그릇이 부족하고 백가의 촌에 한사람만 의사이면 사람을 살리는데 부족하다. 반드시 의학을 널리 밝히고 집집마다 의학을 알고 사람마다 병을 알게 된 연후에 수세보원을 할 수 있다. 1894년 4월 13일에 이제마가 서울 남산에 있는 이능화집에서 이 책을 다 쓰신 후에 1895년에 서울에서 함흥으로 가서 경자년(1900)까지 머무셨다. 원래 원본에 의하여 개초하였다(5년 동안 시골에 낙향하여 동의수세보원을 자꾸만 고친 것이죠). 성명론으로부터 태음인제론까지는 보태고 뺀 것이 있다. 태양인 이하 3론(태양인, 광제설, 사상인변증론)은보태고 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능화집에서 끝 낸 본을 간본으로 썼다.(마지막 세편은 1894년 판이고 그 앞부분은 1900년 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돌아 간신 다음 해인 1901년에 최초로 출판되었습니다. 어디냐면, 함흥군 율동에서 율동계를 만들어 새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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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계사) : 1893년.

度(탁) : 헤아릴 탁.

略(략) : 꽤.

經驗(경험) : 증험(증명)을 거친 것.

憊(비) : 지칠 비.

萬室之邑(만실지읍) : 인구 5-6만 정도.

壽世保元(수세보원) : 한 세를 오래 살 수 있고 원기를 보전할 수 있다.

漢南山(한남산) : 서울 남산.

公(공) : 이제마, 이 문장은 이제마가 안 쓴 것이죠.

후대에 간행하면서 간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下鄕(하향) : 서울에서 함흥으로 감.

甲午舊本(갑오구본) : 이능화집에서 끝낸 본.

栗洞(율동) : 이제마의 고향, 율동에 사는 사람들이 옛날에는 책하나 만든다는

것이 돈이 많이 들어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계를 조직했어요.

門人(문인) : 제자들, 계를 누가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제마의 제자들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光武五年(광무오년) : 1901년.

醫源論은 李濟馬가 생각하는 세계 의학사예요. 東醫壽世保元은 기본적으로 性命論, 四端論, 擴充論, 臟腑論, 醫源論, 廣濟說, 四象人辨證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醫源論에 해당되는 부분에 임상적인 사상에 대한 약방과 병증 분석이 있죠. 앞의 4편은 의학철학이예요. 醫源論은 少陰人, 少陽人, 太陰人, 太陽人의 순서로 썼다.

이제마 자신은 四象人 중에서 太陽人이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병은 太陽人病이 있습니다. 태양인병이 자신의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인은 워낙 case가 적다고 생각했어요. 태양인은 만명 중의 몇 명꼴, 이런 정도로 적었다고 생각했어요.


【 壽世保元 】


保元에서 元은 목적어이고 保는 동사이다. 뜻은 원기를 보전한다 이고, 世는 목적어로 한 인간의 일생을 말하고 壽는 동사로 오래 살게 한다 늘인다는 뜻이다. 한 세를 오래 살 수 있고 원기를 보전할 수 있다. 여기서 수세보원은 일반명사죠. 책이름으로 쓴 것이 아니다.


醫源論 中에서


許浚具備傳之 著東醫寶鑑 醫道復興 (中略)

宋元以後明以前 病證藥理 李甙 嚒信 許浚傳之


許浚이 동의보감을 지어 구비하여 전하니 의도가 부흥하였다.

송원이후 명이전까지 병증약리는 이천, 공신, 허준이 전하였다.


중국의 이천, 공신과 우리나라의 허준을 같이 얘기하고 있지요. 이제마 선생은 분명히 허준의 동의보감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허준이 쓴 序가 있어요. 거기에 보면 여태까지 이러이러한 것들이 중국에서 의료행위로 진행해 왔는데 중국에도 북방의학 전통이 다르고 남방의학 전통이 다르다. 북방에 사는 사람의 병의 형태가 다르고 남방에 사는 사람의 병의 형태가 다르다. 그러니까 의사들도 북방의사와 남방의사가 다르다. 하물며 중국의학과 한국의학이 지역적으로 풍토나 인간이 다른데 같은 의학이 될 수 있고 같은 의사행위가 될 수 있느냐? 그래서 한국사람들에게 맞는 의료행위를 위하여 내가 이 책을 씀으로 이것을 東醫라 한다. 여기서 東은 海東으로 우리 조선을 가리킵니다. 동쪽이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東洋이 아닙니다. 그래서 東醫寶鑑이라는 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규정한 東醫라는 말을 가져다 쓴거예요. 수세보원하는데 그 수세보원하는 방식에서 주체적인 한국사람들의 수세보원이다. 그래서 東醫壽世保元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漢南山 】


한남산의 집이 필동 근처 어디에 있었는데 이것이 이능화집이었습니다. 바로 東醫壽世保元을 이능화집에서 썼습니다. 이능화의 조선명인전의 평전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이제마가 이능화의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이능화를 보고 너는 소양인이다. 그래서 닭고기, 인삼 같은 것은 쓰지 말아라. 그리고 화(怒)를 내면 큰일이 나느니라. 그렇게 얘기를 하여 이능화가 이제마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굉장히 병약했는데 이제마 선생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음식에 주의하고 감정에 주의한 바대로 하여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


【 東醫壽世保元 版本 】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행림출판, 1993년 중판)은 1901년 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韓敎淵의 序가 1914년인데 이것은 아마 1914년 판이거나 이후에 간행된 판본일 것입니다.

동의수세보원이 간행된 것을 보면 초판본이 1901년에 되었고, 재판본이 1911년에 함흥에서 되었고, 제3판이 1913년에 되었고, 1914년에 제4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제4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그 후판일 수도 있다. 1921년에 제5판을 경성에서 김용준이라는 사람이 했고, 1936년에 제6판이 북경에서 발행되었습니다. 1914년에 제7판이 나왔습니다. 일제시대 때에 7판까지 된 것을 보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이 책은 결코 알려져 있던 책이 아닙니다. 거의 1970년 대에 들어와서 조금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 때에 많은 사람들이 이제마의 책을 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마의 책이 7판이나 나왔다고 해서 이제마가 유명했던 사람은 전혀 아닙니다.

판본이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1901년 판을 구할려고 노력을 하였는데 1901년 판은 개인 소장으로 전해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초판본이 두권으로 되어 있는데 완질로써는 없고 규장각에 목활자본으로 한 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한독의학발물관에 한부(2권) 있습니다.

김두종 선생의 한국의학사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사람인 三木榮의 조선의학사란 책이 있어요. 김두종 선생의 책은 출간 자체는 三木榮의 책보다는 먼저되었어요. 그러나 내용을 보면 이 두사람이 서로 교류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미키의 책을 베낀 거예요. 한국의학사 라는 책은 미키의 책하고 보면 도저히 정밀성이나 문헌을 다루는 수준이 게임이 되지 안습니다. 이분이 평생 모은 책을 죽을 적에 한독약품에 주었어요. 의학관계의 우리나라의 책을 모은 유일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 책이 모두 한독의학박물관에 가 있습니다. 거기에 1901년판 東醫壽世保元 판본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1911년 재판본이 거의 구하기 어려운데 내가 구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판본과 하나라도 글자가 다른 것이 없다면 가치가 없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행림서원 1993년 중판)에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1911년 재판본에는 제대로 돼 있어요.


【 탄생설화 및 행적巷談 】


이제마가 1837년에 태어났는데 의학에 눈을 뜬 것은 말년이에요. 호는 東武이죠. 이사람은 원래 무인예요. 東武에서 東은 동양의 동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한국을 지키는 무인이다 이런 심플한 의미입니다. 이제마의 李氏는 전주이씨입니다. 그러니 이조의 왕족입니다. 그러나 대대로 이제마 집안에서 벼슬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제마의 아버지가 진사에 합격했습니다. 이제마의 집안이 함흥에서는 대단한 부자입니다. 그리고 이제마의 조부가 忠源公이라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攀玉(이진사)라고 하는데 할아버지 忠源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진사가 어느날 향교에 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서 술을 먹었습니다. 늦게까지 먹다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친구들이 이진사를 주막집에 놓고 갔다. 그 주막집의 주모가 아주 못생긴 딸이 있었는데 이진사의 방에 못생긴 딸을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성사가 됐죠. 그뒤 10달 후에 할아버지 충원공이 꿈을 꾸었어요. 어떤 사람이 탐스런 말을 집안 마당으로 들여와 내가 제주도에서 가져온 용마인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사주는 사람도 없어 쓸모가 없어서 당신에게 주고 가니 잘 키워달라. 할아버지가 그 말이 너무 잘생기고 탐스러워 툭툭 치고 있는데 꿈을 깼다. 그런데 밖에서 일이 벌어진 거다. 어느 여자가 애를 강보에 싸가지고 와서 당신네 자손입니다 그런 거야. 이진사를 불러 물어보니 10달전에 그 주막에서 잔 여자이다. 할아버지가 꿈 생각이 나서 모자를 그냥 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제주도에서 가져온 말이다 하여 濟馬라 합니다.

탄생설화의 기록에서 이능화의 기록도 다르다. 이능화는 엄마가 제주도에서 가져온 말의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이진사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서자로 입적을 안시켰다. 호적상으로는 서손이 아니나 주막집 아들이라는 것은 세상사람이 다 아는 것이죠. 그래서 문과 급제 같은 것을 생각 안하고 어려서부터 무예(활쏘기, 말타기 등)를 좋아했다. 이제마가 워낙 총명해서 암기력이 뛰어났고 동네 사람들과 얘기할 적에는 시도 잘 썼다. 집안에 책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책을 탐독하고 할아버지가 꾼 꿈 때문에 이제마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이제마는 행복하게 큰 것 같습니다. 사상적 연원으로 말한다면 韓錫地라는 사람과의 사상적 연관 밖에는 찾을 수 없고 대개 함흥에서 집안에 내려오는 책을 독파해서 학문을 정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마의 전기에 관한 것으로써 소개를 하나 하자면 한의사인 이철호라는 사람이 이제마의 일생을『太陽人』이라는 소설을 쓴 것이 있다. 소설을 쓰면서 이제마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무위도통사라는 벼슬을 하고 있는 金箕陽이라는 사람의 천거를 받았다. 그래서 대신들이 미리 만나 보자. 대신 중에 김의정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불려 갔던 것 같아요. 국가를 구하는 발책이 뭐 겠느냐? 이제마가 하는 말이 나에게 대포를 줄 수 있느냐. 그 대포를 광화문 쪽을 향해서 설치해라. 우선 나라가 바로 잡힐려면 너희 놈들을 다 쏴 죽여야만 한다. 조정이 썩었는데 무슨 개혁이 되겠느냐 라고 하니 김의정이라는 사람이 기절초풍을 하여 그냥 돌려 보냈다. 그런 말이 자기집에서 나갔다면 자기 목이 달아날 것 아니예요. 그 다음날 상감을 만나서 함경도 사투리가 너무 심해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돌려보냈습니다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럴 정도로 성격이나 말이 직설적이고 애두름이 없이 자기 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이제마의 일생에 관한 얘기를 보면 하나같이 굉장히 거만해요. 어디 가서 예의를 지키는 법이 없다. 들어가나 나갈 때 주변을 괴롭힙니다. 이것은 조선조의 문명이 이미 끝났다고 판단하고 산 사람이에요.

이제마가 유일하게 벼슬로 간 것은 진해현감입니다. 이능화 선생의 조선명인전은 한문이 많이 섞인 한글로 쓰여져 있습니다. 최근에 조선일보사에서 다시펴냈어요. 이제마와 운암 한석지와 관계를 논한 글이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들어 있습니다. 이제마가 진해현감을 한 것은 1892년부터 1893년까지로 바로 동의수세보원을 쓰기 직전이죠. 진해현감을 끝내고 서울로 온 것을 알 수 있다. 진해현감을 할 적에 곤장을 치는데 엎드려 있는 사람이 너무도 아파하니까 참다 못해서 내려가서 궁둥이를 어루만져 주고 사슬을 풀어 주었다. 내가 비록 국법이 있어 이런 형벌을 내리지만 사람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지 못하겠노라 하고서 진해현감을 그만두고 올라 왔다는 일화가 있어요. 이 말은 상당히 무인에서 의사로 상당히 경지가 1892-1893년 경에는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格致藁(Manuscript on science) 】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개 1880년 후반부터 잡으면 될 것 같아요. 1880년부터『格致藁』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격치고가 최후로 끝난 것은 1893년에 끝나고 있습니다. 이 격치고에서 券之一 儒略의 事物에서 四戒까지는 1880-1889년까지 쓰여진 것입니다. 天勢에서 大風箴까지는 1889년부터 1890년까지 쓰여졌습니다. 卷之二 反誠箴은 1892년부터 1893년 사이에 쓰여졌습니다. 卷之三 獨行篇은 1882년 작품입니다. 이제마의 작품 중에서 완결된 작품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최고 본이 바로 獨行篇입니다. 이제마의 사상을 추적해 볼려면 이 독행편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儒略


儒略이라는 말은 유교문명을 요약했다 이런 의미이다. 儒略이라는 말을 번역하면 Outline of Civilization이라고 한다.



【 事物 】


物宅身也, 身宅心也, 心宅事也.

객관적인 사물(세계)는 나의 몸에 깃들고, 몸은 나의 마음에 깃들고, 마음은 이 세상일에 깃든다.


儒略의 첫머리가 이 말인데, 여기서 명사를 몇 개 꺼낼 수 있습니까? 物,身, 心, 事 네개 꺼내죠. 넷이라는 숫자에 미쳐 있어요. 그리고 이 儒略이라는 전편이 바로 이 네개의 기둥에 의해서만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사상의학과는 관계가 없어요. 이제마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냐 하는 것을 철학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우주와 인간과 모든 사회의 문제를 통틀어서 物, 身, 心 事로 나누었죠.


身 心

物 事


여기서 身 心과 物 事로 짝을 지어 볼 수 있고, 또한 身 物과 心 事를 짝지어 볼 수 있다. 心은 mind의 문제이고 事는 마인드에서 생겨나는 여러가지 일들이죠. 身은 어디까지나 物의 base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후리임워크를 가지고 이 세계를 전부 설명해 나갑니다.


【 格致 = Science 】


格致藁라는 말에서 격치는 대학에 나온 '格物致知'에서 온 것입니다. 격치라는 말은 1880년대에 오면은 이미 중국에서 백화문으로써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과학(science)이라는 말을 번역할 때 격치라는 말을 썼습니다. 중국에서는 엄복이라는 사상가들이 썼어요. 사실 '시일야방성대곡야'를 쓴 장지연 같은 사람의 문장을 보면 격치라는 말을 science로 쓰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과학을 격치라 불렀다. 이제마는 물론 격치를 서양말의 번역으로 쓴 것은 아니겠으나 여기서 격치고 라는 말에서 고는 원고 고입니다. 격치고 라는 말은 Manuscript on Science(과학에 대한 나의 생각)라고 번역할수 있습니다. 문명의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만드냐 하는 관심이 있어요.

格物이라는 것은 물을 격한다는 의미죠. 격은 격자죠. 물을 격한다는 것은 사물에 이치를 주어서 파악한다는 얘기이다. 格은 질서예요. 사물을 질서를 가지고 인식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뭐예요? science죠. 대상적 세계를 질서지운다는 의미에서 격물이다. 물을 격해서 지식에 도달한다. 사실 격치는 요새 말하는 science에 대해서 더 멋있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죠. 科學이라는 말은 뭐예요?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것이다. 옛날 배움이라는 것은 통째로 배우는데, 과학이라는 것은 科로 나누어서 배운다는 것이다. science라는 말 자체는 라틴어로 앎(knowledge)이다. science에 대한 번역으로써 格致가 낫습니까 科學이 낫습니까? 格致가 제대로 된 것입니다.


一物止也, 一身行也, 一心覺也, 一事決也.

物은 정태적이고, 身은 가고, 心은 깨닫고, 事는 판단(판결)한다.


문제는 넷에 미쳤다. 한귀절 한귀절 다 넷이죠.이런 것을 보면 이제마는 넷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세계를 해석할려는 태도가 사상의학에 앞서서 있다는 것이죠. 인간의 체형을 의학적인 경험에 의해서 넷으로 나누었다기 보다는 이 격치고를 보면 의학과 무관하게 문명과 인간세와 우주 자연세계를 통틀어서 무엇인가 넷이라는 개념적 틀에 의해서 세계를 해석할려는 태도가 치열했습니다.

이제마라는 사람의 위대한 것 하는 격치고에서 동의수세보원으로 오기까지 과정이 과거의 유학자들이 단순히 형이상학적 관념적인 유의만 했던 것을 구체적인 인간의 질병 현상과 관련지어 임상적으로 연결시키고 죽었다는데 이제마의 가치가 있다. 사상의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마가 세계를 넷으로 볼려고 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넷으로 이 세계를 해석할려는 태도를 구체적으로 인간의 질병의 구원이라는 문제랑 연결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는 것이

죠.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이제마는 헛것예요. 그래서 내가 한의과대학을 간 것입니다.


【 格致藁序 】


格致而以亂藁爲言者, 此藁非不格致, 而隨見隨錄, 文子未免草率,

語意或涉蕩略, 可以旁行於世, 而不可以正行於世者也.

蓋忠信未盡於進德, 立誠未全於修辭故也.

然若使眞格致而靑於藍者, 出於藍, 則此藁亦豈非郭외千里馬之乎!


격치고를 쓰는데 어지러운 원고를 가지고 말을 삼는다는 것은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는 바다. 그런데 이 원고가 격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내가 생각날 때 마다 조금 조금 적어 놓은 것이다. 그 문자가 아주 소략하고 엉성한 것을 면할 수 없지만 그 말의 뜻이 망망한 대해를 보는 것같고 큰 줄거리를 보는 데는 조금 관련(섭렵)이 있다. 그러한 관계로 이 세상에 내 책이 겉돌 수는 있어도 정통파의 위대한 책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저 나의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증험할 수 있는 진리는 덕에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내가 증명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모습을 세우는 것도 아직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후대에 진짜로 격치할 놈이 나올 것이다. 쪽에서 나온 청색은 쪽을 뛰어 난다. 내가 쓴 '격치고'라는 원고는 또한 곽외의 천리마의 뼈는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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蓋忠信未盡於進德, 立誠未全於修辭故也. : 周易 乾卦 문헌 九三에 있는 말이다.

(忠信所進德也, 修辭立其誠)

忠(충) : 속마음.

信(신) : 요새처럼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증험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

立誠(입성) : 증명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모습을 세우는 것.


【 藍 : 쪽 】


쪽은 미생물이에요. 풀잎을 따서 발효를 시켜서 남빛을 냅니다. 잿물을 내려서 쪽을 발효시킨 것과 섞어서 천에 들입니다. 잿물이 쪽물의 입자를 끌고 올로 가지고 가서 착색을 시켜줍니다. 그 다음은 잿물을 빨리 씻어내야지요. 보통염료는 씻어 낼때 퍼렇게 물들었던 것이 같이 씻어집니다. 그런데 쪽물만이 붙고 물에 씻으면 잿물만이 빠져요. 왜, '세모시 옥색치마' 이런 줄 아세요? 한번에 파랗게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모시는 아주 고운데 이것은 여러번 잿물에 담글 수 없어요. 기껏 한번 살짝 담갔다가 빼서 잿물을 씻어낸다. 그러니까 옥색밖에 안나온다. 푸른색계통은 쪽으로 다 낼 수 있습니다.


【 郭외千里馬之乎! 】


곽외라는 사람은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의 현인입니다. 연나라의 昭王이 천리마를 구해 오라고 1000냥을 주었어요. 곽외가 천리마가 있는 곳을 갔으나 천리마가 죽었다. 그래서 죽은 천리마의 뼈라도 달라. 뼈를 500냥을 주고 사왔어요. 왕에게 갖다 주니까 왕이 화가 나서 내가 산 천리마를 사오라고 1000냥을 주었는데 죽은 말의 뼈를 500냥을 주고 사오다니 하고 야단을 치니 곽외가 하는 말이 지금 천리마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이 죽은 천리마의 뼈를 500냥을 주고 샀다고 할진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리마를 팔러 이리고 오겠는가? 좀 기다려 보십시오. 그러면 그때 흥정해서 싸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인재를 귀하게 대접하면 온다는 얘기입니다. 이제마가 돌아가시면 앞으로 진짜 격치(science)를 제대로 하는 놈이 나와서 청출어남 한다면 나는 기껏해야 곽외가 산 뼈다귀 밖에는 안되지만 이 뼈다귀를 쳐다보고 앞으로 수많은 천리마가 조선강토로 몰려올 것이다.


【 獨行篇(1882) 】


篇名獨行, 何義耶? 曰: 好而知其惡, 則中立而不倚;

惡而知其美, 則和而不流. 如此者自然獨行, 獨行者不動心.

知人誠僞則不惑, 不惑則正心, 正心則不動心, 不動心則遯世中庸而無悶.

此篇 果正心 不動心者耶 曰此篇 發明知人然後 正心不動心之理也

非眞能盡知人正心不動心者也


내가 이편의 이름을 독행(이세상을 홀로 간다)이라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떠한 대상을 좋아하되 좋아하는 대상의 추한 측면을 알면 가운데 서서 치우침이 없다. 추해서 싫어하지만 그 추해서 싫어하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아름다운 측면을 알면 같이 화동하면서도 내치지 않는다.(나쁜 놈이라고 단정해 버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사는 사람은 스스로 그러하게 홀로 가게 된다. 그렇게 홀로 세상을 갈 줄 아는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을 알 적에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을 알면 미혹할 까닭이 없다. 미혹하지 않으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세상을 은둔하고 중용을 지키면서도 답답함이 없다. 이편은 과연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 것에 관한 그러한 얘기인 것일까? 이편은 사람을 아주 명료하게 안 뒤에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흔들지 않는 것에 관한 이치이다. 참으로 완벽하게 사람을 알고 마음을 바르게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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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行(독행) : 중용에 나오는 말의 돈독할 돈이 아니다. 외롭게 간다는 의미.

惡(오) : 추하다.

美(미) : 아름답다.

中庸(중용) : 밸런스를 취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독행이란 말과 비슷.

發明(발명) : 명료하게 문제를 지적한다.

知人(지인) :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사상적 출발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의사가 병을 고칠려면

궁극적으로 사람을 알아야 병을 고치는 것이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단초를 더

듬어 들어 간다면 知人之學이었다. 인간을 아는 어떠한 학문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인간을 하는데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있더라.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네가지의 유

형으로 나누어서 파악해 보자. 구한말에 이제마가 산 시대가 될수록 별의별 희한

한 인간상이 나오거든요.


그당시 이 獨行篇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의 울분과 고민이 담겨 있는 문장이면서 세상과 인간의 형태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쓴 김지하의 오적시가 아니라 사적 사행시요. 구한말의 인간 유형을 鄙 薄 貪 懦라는 네가지의 인간형으로 나누어 사적 사행시를 쓴 것이다. 이제마가 仁 義 禮 智를 말했다는 것은 孟子의 사단으로 이 사단은 조선조 유학의 전체를 통괄해서 일관되게 있던 사상이죠. 이런 인간 유형론을 통해서 맹자의 학문을 접근해 갔고 이것은 조선조의 인간학을 자기 나름대로 재조정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목: 이제마의 시대 (조광교수)


19세기 한국의 사회 사상적 특성


도올) 이제마라는 인물을 알기 전에 19세기 역사의 일반적 흐름을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해서 역사학계의 19세기 전문 선생님을 모시었습니다. 물론 이제마라는 분은 우리 역사학계에 데뷰를 한 사람이 아니에요. 역사학계에서 이제마를 다룬 논문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세기 사람이 분명하나 우리 역사학계에서 전혀 언급이 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이제마와 관련 속에서 19세기 역사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오늘 하실 말씀은 19세기에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일반적 이미지를 캐치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광 선생님은 고려대학을 저와 같이 다녔습니다. 제가 고대에 재직하고 있을 때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19세기 역사에 관해서 정확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사학자 선생님이십니다.


조광) 방금 소개받은 趙珖입니다. 과찬의 소개를 해 주셨는데 저는 아직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일개 학도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더구나 제가 한시간 동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아는 것의 일부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이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계신 분이 계실 줄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얘기도 시범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왜냐면 현재 우리 학계에서 19세기 한국사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저조합니다.


李濟馬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도움말


역사에서는 발전이라는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유일한 역사의 법칙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역사가 발전하는 한모든 역사의 순간은 변혁기이고 전환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검토하다가 보면 특히 그 변화와 발전의 폭이 넓고 깊은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19세기가 이러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를 극복해 나가고 새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많은 인물이 태어나는 시기가 우리 역사에서 19세기가 될 것입니다.


李濟馬(1837-1900)는 19세기 전반기에 태어나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민란의 시대'로 불리우는 19세기 전반기를 살았고, 개항을 전후한 격변기에서 반봉건과 반외세를 줄기차게 외쳤던 그런 격변기의 사회를 살며 헤쳐 나갔던 인물입니다. 시대와 사상의 관계는 서로 交互的 관계가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시대는 사상을 낳고 사상은 시대를 이끌어 간다. 그렇다면 이제마의 경우에도 시대의 영향을 받았고, 시대를 이끌 새로운 의학사상 내지는 철학사상을 제시했던 인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의학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특성 내지는 사회 사상적 특성을 잘 이해해야만 할 것입니다. 저는 아직 이제마와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마에게 이방인이고 저에게 있어서 이제마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오기 전에 이제마에 대한 얘기를 듣고서 이제마의 사상이 19세기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 완전히 동의를 하고 기회가 있다면 저도 한번 이제마를 공부해 봤으면 합니다.


19세기를 이해한다 할 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19세기 정치를 통해서 이제마를 이해하는 방법도 있겠고, 19세기 경제나 사회 문화라고 하는 맥락 위에서 이제마를 조명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19세기의 일반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을 기반으로해서 19세기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을 했고 그들의 생각이 무엇이었고 그들의 사회적인 특성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힘으로써 여러분들께서 이제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1. 19세기의 사회의 삶


19세기의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자면 의 식 주 문제부터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정치제도라든지 사상이든지는 많이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도 역사에서는 계속 베풀어져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으며, 그들이 품고 있던 희로애락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역사서의 입장에서 아니면 역사계의 관심을 갖는 입장에서 일단은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봅니다. 우선 의 식 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식량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먹는 문제부터 말씀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루 평균 쌀 2되를 먹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되와 그 당시의 되는 크기가 다릅니다. 당시 관두(관청에서 사용한 되)의 용량을 오늘날로 환산을 해보니까 대략 1.2리터의 분량입니다. 관두 1승이 0.598리터이니까 2되를 합하면 1.2리터는 되겠죠. 1.2리터 분량의 쌀을 먹고살았다고 할때 이것을 칼로리로 환산을 해보자면 4080칼로리 정도가 나옵니다. 이것을 제 자신이 아직 해결을 못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면 오늘날 어른들이 하루 동안 먹는 열량이 2000-2500칼로리 내외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보자면 다들 쌀 2되를 먹었다고 되어 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혹시 여기에 대해서 좋은 가르침이 있으면 기대를 해볼까 합니다. 1.2리터 정도의 쌀을 먹었다는 것을 기초로 해서 그들의 삶을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당시 1호당 평균 가족 수는 3.975인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마도 나이 16세 이하의 兒에 해당하는 연령층은 제외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기록으로 보자면 1호당 평균 6인을 치고 있는 것이 일반적 경향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호적 문서에 나타난 것을 보면 대략 4인이 1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일년간 소비하는 식량과 조세 등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적어도 2結 내외의 토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은 三政 체제하에서 田政을 납부해야 되고, 軍政을 짊어져야 했고, 또한 還穀에 따르는 각종 부담을 짊어져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년 동안 먹고 정부에서 요구하는 조세에 응하는 정도만을 순수 계산을 한다 하더라도 2結 정도의 토지가 필요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세기 토지 소유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참고해 보자면 1結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부농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70%이상이 1結 미만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영세 빈농들이었습니다. 19세기를 살았던 대다수가 식생활에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하는 점을 짐작하게 됩니다.

또한 당시 농민들은 하루에 두끼 내지는 세끼를 먹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옵니다. 9월부터 1월까지의 농한기에는 남자의 경우에 두끼를 먹습니다. 그리고 2월부터 8월까지는 농사철이 되니까 세끼를 먹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여자의 경우에는 하루에 두끼를 먹는 것이 9월부터 2월까지 입니다. 그리고 3월부터 8월까지 세끼를 비로소 먹게 되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식사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아마도 하루에 두끼를 먹는 것이 생활 관습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 이 당시에 단백질 공급도 상당히 부족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건강과 수명은 그침 없는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편 당시는 높은 유아 사망률로 말미암아 평균수명이 매우 낮았던 것으로 되어 있고 당시의 평균수명은 20세 미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9세기의 먹거리 문제, 그들의 식량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19세기에 있었던 토지 문제의 심각함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2結 이상의 토지를 가지고 있어야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 1結 미만의 영세한 토지만을 가지고 있다 할 때 그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식생활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라고 할 때 거기에서는 기존의 정치 사회제도라든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제기 되어야 되리라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당시의 먹는 문제를 전제로 해 가지고서 우리는 조선후기의 사회가 어떠한 변동의 과정에 놓여 있는가 하는 점을 아주 간략하게 언급을 해 드리겠습니다.


2. 사회 신분의 변동


조선왕조의 경우에는 이미 15세기를 전후한 때에 신분제 질서가 확립이 되어나갑니다. 조선전기 사회에서 양반과 중인, 양인, 천인 등의 4신분 체제로 고정이 되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18, 19세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급격한 신분 변동을 체험하게 됐던 것이 바로 조선왕조의 사회였고 이 신분변동의 폭이 가장 컸던 때가 19세기 사회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대구 지방의 호적을 통해서 확인을 해 줄 수가 있습니다. 대구 지방에는 1690년부터 1858년까지의 호적들이 남아 있는데 이 호적을 통해서 볼 때 1690년에는 양반호가 전체 대구 지역의 호 중에서 9.2%를 차지했습니다. 일반 양인 또는 상인이라고 하는 양인호가 53.7%, 노비호가 37.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가 됩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 와서는 양반호가 전체호의 70.3%로 급격히 팽창됩니다. 9.2%에서 70.3%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변동이 가장 심했던 것이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사회였던 것입니다. 상인호가 53.7%에서 28.2%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노비호는 37.1%에서 1.5%로 급격히 감소되어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19세기를 전후한 우리나라의 사회에서는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4신분 체제가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반과 상놈이라는 班常체제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양반이라고 할 때 소수의 집권 양반들이 있겠죠. 그러나 소수의 집권 양반은 아니라 하더라도 토지 경제를 기반으로 해서 사회적인 위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반열 안에 포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양반 사족들 뿐아니라 일부 성장해 가는 중인들까지도 이때에 와서는 班의 범위 안에 포함을 시켜서 그들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조선후기에 이르러서 노비들의 숫자가 급속토록 감소해 가는 것을 대구의 호적 자료를 통하여 확인한 바 있습니다. 노비가 감소되었다고 하는 것은 양인의 숫자가 그만큼 늘고 양인 중의 대다수가 또한 신분이 양반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겠죠.

여기에서 우리는 양반 신분층의 변동과 서얼 소통의 문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래 조선전기의 관념에 있어서 양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배층이었다. 유한 계급으로서 타인을 지배하는 양반을 한 사회가 전체 인구 속에서 포용할 수 있는 비율이라고 하는 것은 극히 제한이 되고 있습니다. 대략 레저클래스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은 5%내외라고 본다 할 때 조선후기의 양반가호가 70% 이상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 전기적 의미의 지배 신분층이나 양반지주라는 개념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개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경우에는 비록 합법적 비합법적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신분을 양반으로 상승시켜 올라갔다 하더라도 일반 양인이나 진배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일부만이 양반귀족으로서의 처신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기에서 양반층의 분해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소수의 집권 양반은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조선왕조의 정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경기 일부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여주, 이천, 양주, 광주 그리고 포천 등 몇몇 지역에 있던 사람들(가문)만이 조선왕조의 정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양반들의 경우에는 정권 담당하고는 무관하게 그대로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향족 내지는 향반이라고 해서 토지경제의 기반을 유지하면서 그 지방에서 Social Prestige를 받고 있었던 그런 계층도 있습니다. 경상도 지역의 일부 양반이 가장 저명한 예가 되겠죠. 예를 들자면 성주 도씨 이씨 안동의 진성 이씨 등 몇몇 양반 가문들은 향족의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들입니다. 반면에 대다수 양반들의 경우에는 잔반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잔반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당대 양반 사족들이 당대 일반 양인의 소작인으로 전락해 가는 사례마저도 드러날 정도로 18세기 말엽 19세기 우리나라의 사회는 매우 역동적인 사회였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반 신분층 자체가 분해가 되어서 양반 신분이라고 하는 특권적인 신분 계층들이 그들의 신분을 상실하게 되고 양반 이외의 다른 신분층에서 새롭게 사회의 주인공으로 대두를 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서얼 소통의 문제를 들어야만 되겠습니다. 대략 17세기 후반부터 서얼 소통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18세기 후반기에 오자면 규장각 검서관을 비롯해서 서얼들이 관직에 취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19세기 사회에 와서 서얼 소통의 폭은 더욱더 넓어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양반 지배층이 몰락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서얼 소통의 의미는 더욱 새로워질 수 있었고, 더 서얼 소통은 쉬워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양반층들이 종전처럼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세력으로 제한된 소수로만 남아 있었다면 그들은 그들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얼 소통을 계속 유지하고 강화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양반층이 분해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서얼 차대라고 하는 의미가 변해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우리나라의 사회에 오자면 전통 사족이나 일부 향족들 사이에서는 서얼 소통이 계속 논의되고 있지만 상당 부분에서 서얼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즉 양반들 일부에서는 서얼 차대가 계속 되었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차대의 강도가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던 때입니다.

이제마는 서얼로 태어났습니다. 서얼 이제마가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세기 우리나라의 양반제 사회가 무너져 내려가는 이러한 현상과도 관련을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고 15세기 상황처럼 서얼 차대가 강화되고 강요되던 사회였다면 이제마는 어쩌면 제주도 말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그의 천재적인 자질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 환경을 타고났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편 농민층의 분해와 挾戶 流民의 증가라고 하는 점을 우리는 주목을 해야 되겠습니다. 조선후기 양인의 대다수는 농민이었습니다. 농민층들은 경제력의 향상이라든지 의식수준의 향상 등등을 기반으로 해서 상층 양인 내지는 양반신분층으로 상승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농민층에서 양반으로 상승해 올라가는 사람들이 곧바로 전통적인 지배 양반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상층 양인 내지는 중간 계층인 중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이러한 그들의 신분 상승의 중요한 배경이 바로 경제력의 상승과 또한 그들의 의식수준의 향상이라고 하는 두가지를 요인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성공적인 농민들은 자신의 신분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었지만 그러나 대다수 농민들의 경우는 무전 농민화되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경작하던 토지마저도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죠. 자신의 토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죠.

소수의 서민 지주들이 등장하고 전통적인 양반들도 그들의 지주권을 강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영세 토지 소유자들은 몰락을 강요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몰락한 농민들의 경우에는 그 지역에서 차지경쟁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죠. 소작을 따낼려고 하는 경쟁입니다. 소작제를 얻을려고 하는 경쟁에 뛰어들게 되고 소작권은 더욱더 위태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차지경쟁에서 탈락하게 된 많은 농민들이 생기게 되니까 그 농촌 사회에서는 상대적인 과잉 인구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과잉 인구층들이 다른 지역으로 방출을 강요당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들이 挾戶라든지 流民으로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挾戶는 주인집에 같이 挾居하는 그런 존재를 말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主戶에 생산의 주역이 되어서 사역을 당하는 농업경제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만 최근의 연구를 보자면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단순히 주거라는 문제만 가지고서 挾戶를 논해야 된다는 논문도 나온 바가 있다. 여하튼 挾戶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流亡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원래 살고 있던 마을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거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 挾戶와 流民의 증가라고 하는 것이 19세기 우리나라 농촌 사회가 겪고 있던 매우 중요한 현상이 될 것입니다.

이 流民의 증가는 18세기 말엽 경상도 단성현의 호적을 분석해 보자면 좀 명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대략 18세기 말엽에 이르러서 단성현의 호적을 분석해 볼 때 단성현 호구의 67%에 이르는 인구가 자기가 원래 살던 지역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사(流亡)를 가고 있습니다. 원래 우리는 조선왕조 사회를 파악할 때 토지 경제를 중시하고 바로 그 토지에 농민이 얽매어(긴박)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를 하고 이해를 합니다. 농민을 토지에 붙들어 매 두고서 그 농민을 대상으로 해서 조 용 조를 수취하고자 했던 것이 조선왕조의 조세정책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19세기에 오자면 이와 같은 토지 긴박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가 버립니다. 단성현의 호 중에서 67%가 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자면, 이것은 일정한 27년이라고 하는 기간을 대상으로 할 때 67%이고 매년으로 보자면 대략 5% 호구의 이동이 꾸준히 진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전통적인 안정된 농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가고 있을 때가 19세기 우리나라 사회라고 하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기근과 전염병


한편 우리는 조선후기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근과 전염병에 관한 문제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기근하고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후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거의 항구적으로 위협을 가해 주던 요소가 될 것입니다. 조선후기에 기근에 관한 기록부터 검토를 해 보기로 하죠. 조선후기의 기근은 한발과 관련을 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천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근 문제인데 대략 현종 연간에서 철종 연간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기근으로 조선왕조 지배층에게 파악되고 있었던 것이 모두 52회가 나오고 있습니다. 200여년 동안 52회의 기근에 대한 대책을 중앙정부에서 세워야 했던 것이 바로 이 당시의 사회였다. 이 기근이 매우 심각하게 전개되었던 때가 18세기 말엽 19세기 전반기의 사회입니다. 17세기 말엽의 기록이긴 하지만 전국 각지역에서 보고된 기민의 숫자가 69만명 정도로 나옵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69만명으로 나오는데 이 당시 정부에서 파악하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인구는 대략 600만명 내외였을 때입니다.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굶주리고는 기민으로 정부에서 파악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 한해 동안 기근 때문에 굶어 죽은 사람의 숫자가 19,000여명으로 보고가 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축소 보고가 된 것입니다. 왜냐면 당시 지방관들의 경우에는 기근이나 전염병으로 인해서 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하면 축소 보고를 합니다. 실제로 18세기 후반기 일부 기근이 들었을 때 기록인데 기민의 숫자가 너무 적다고 독촉을 하니까 당장에 3배로 느는 경우도 나옵니다. 기민의 숫자를 줄일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 이 당시 관료들의 일반적인 행태임에도 불구하고 70여만에 이르는 기민들 2만여명에 가까운 아사자들이 한해 동안 나타나고 있던 사회가 우리나라의 조선후기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런 기근에 대한 기록들 중에서 1809년에는 전국적으로 기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때 전국에서 파악하고 있는 기민의 숫자가 840만명 정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 전국 인구를 계산한 것이 760만명이었거든요. 전국 인구 보다도 더많은 숫자가 기민으로 뽑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왕조 인구조사 방법이 가지고 있는 결함 때문에 750만명 정도로만 파악이 되었던 것이죠. 어린이들은 다 인구 조사에서 빠져 버립니다. 그리고 인구조사에 들게 되면 조세를 부담해야 되니까 조세를 면하기 위해서는 인구조사에서 빠져야 한다. 정부 당국에서 파악한 인구는 750만명 정도이지만 실제로 1914년 총독부의 간이 인구 조사를 기준해서 역산을 해 가자면 19세기 초반 인구는 대략 1,600만명 정도로 파악할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 중에서 840만명 정도가 기민으로 신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후기의 기록을 보자면 걸핏하면 100년만의 기근이라고 하는 말들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기근의 피해가 심각했다는 얘기가 되겠죠. 물론 전국적인 규모의 기근도 있었지만 각지역에서 국지적으로 전개된 기근 때문에 중앙정부에서는 거의 3년이나 4년 마다(평균 3.6년) 기근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기근을 당하게 되면 流民이 대규모로 발생하게 됩니다. 流民이 되어서 떠돌다가 어린이가 거추장스러우니 어린애를 버리고 도망갑니다. 어린애를 버리고 가는데 7, 8살 정도 되면 쫓아오거든요. 그러니까 나무에 붙들어 매고 도망가는 기록들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또한 기근이 들었을 때 자신의 아들 딸을 잡아먹은 기록까지 나옵니다. 人相食,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얘기죠. 이것은 충청도 연산에 있었던 어떤 비녀(여종)의 기록이 되겠는데 7세兒 5세女를 잡아먹어서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기근이라 하더라도 자식을 잡아먹을 수 있느냐 해서 지방관에서 그 사람을 붙들어다가 심문을 하니까 이 사람 얘기가 나는 잡아먹지 않았다. 그네들이 기근이 들어 굶어 죽었기에 나는 삶아 먹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런 상황이 등장하는 것이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사회였다고 한다면 문제가 많았겠죠.

흔히 둘이 먹다 혼자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것도 당시에 이기근 상황하고 관련이 된 속담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경상도에 기근이 들었는데 두 부부가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서 지방관청에서 죽소를 개설했습니다. 죽을 끓여서 먹여 주는 것인데 하루 2되를 먹는 것이 정상이라고 보던 사람한테 죽소에서 일인당 3홉 정도를 끓여주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죽을 받아먹으러 왔다가 남편이 죽을 먹다가 죽어버립니다. 옆에서 죽을 받아먹던 부인이 자기 몫을 다 먹고 난 다음에야 통곡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상황이 되는 것이죠. 기근의 상황은 이것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조선정부에서는『구황찰요』같은 책을 지어 가지고 초근목피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를 가르쳐 줄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에서 할 일이 아니었죠. 정부에서는 당연히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먹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으면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느냐를 얘기한다고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회피의 또 다른 측면일 것입니다. 기근이라고 하는 것이 그 당시 사회를 강타한 충격은 매우 컸던 것이고 대체적으로 심각한 기근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 내지는 각종의 저항운동이 고조되는 상황을 우리는 주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기근과 더불어 주목을 해야 될 것은 조선후기의 전염병에 관한 문제가 되겠습니다. 조선후기의 전염병이라고 할 때 가장 맹위를 떨쳤던 병은 아마도 콜레라 같습니다. 김두종 선생의『한국의학사』를 보면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들어온 것이 1890년대로 되어 있고 그 이전에는 주로 티프스 계통의 질병이라고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가장 문제가 되는 전염병이 콜레라라고 얘기를 드리게 되는 것은 대개 일본과 중국의 콜레라 발생 기록과 우

리나라에서 대규모 전염병이 일어난 기록이 거의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전염병의 전파 루트도 의주나 동래를 통해서 남행하거나 북행하는 전파 루트가 일반적인 것을 보자면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우리나라에 이환이 되어서 그와 같은 심각한 피해를 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종에서 철종에 이르는 기간 동안을 살펴볼 때 10만명 이상이 한해 동안에 전염병으로 죽었던 적이 모두 6차례 꼽히고 있습니다. 10만명 이하의 사망자를 낸 전염병의 경우에도 60여 차례가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심각한 경우에는 1693년 숙종 연간의 전염병과 19세기 초엽의 순조 연간의 전염병과 같은 사례를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오게 되자면 전염병 이환자로서 18세기 영조 연간에 한해 동안에 23만명이 죽은 기록이 나오고 정조 연간에는 13만명이

죽은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1821년 콜레라의 유행에 관해서는 전국에서 수십만명이 죽었던 기록이 나옵니다. 이 수십만명은 결코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에서 콜레라를 가지고 얘기를 할 때에 1860년에 우리나라에 왔던 서양인들이 바로 순조 연간 1821-2년에 유행했던 전염병에 관한 기록을 남긴 바가 있습니다. 22년에 일어났던 전염병 관계 얘기를 40년이 지난 다음에 할 때도 벌벌 떨면서 얘기를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과정에서 온 가족이 죽는 예 뿐만 아니라 온 마을이 다 죽고 마을 전체가 비는 예가 나옵니다.

우리는 인구 손실이라고 하는 것을 잠깐 생각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7년 동안에 우리나라가 당한 인구의 손실은 대략 50만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병자호란의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나라에서는 30만명의 인구를 피납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구 손실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사회 경제적인 문제와 인륜에 관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야기시켜 준 것으로 얘기가 되고 있죠. 전쟁을 통해서 30-50만명 정도의 인구가 없어졌던 것을 우리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을 만큼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인해서 20-30만명이 쓰러저간 상황에 대해서는 무관심입니다. 실제로 조선후기에 전염병이 일어날 때는 중앙정부에서는 비변사가 직접 전염병에 대한 대책 마련을 나서고 있습니다. 비변사라고 한다면 전쟁 내지 국방을 담당하는 기구겠죠. 그만큼 조선후기 당국자의 경우에도 전염병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생각했건만 우리는 조선후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배불리 먹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던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후기의 사회를 볼 때 바로 이와 같이 전염병이 성행하고 1년에 10만명 이상이 죽은 사회가 조선후기였다고 하는 점을 생각을 해야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문이 변하지 않으면 그 지식인은 가짜입니다. 조선후기에 오자면 18세기 이후에 많은 양반 지식인들이 의학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종전의 조선왕조의 의학이라고 하는 것은 중인지학이었습니다. 중인들의 학문이었고 양반 사족들이 안한 격이 낮은 학문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조선후기에 오자면 양반 지식인들이 의학에 관한 연구에 끼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정약용이『麻科會通』과 같은 것을 통해서 종두법을 소개했다는 것도 바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물론 정약용의 종두법은 우두법이 아니라 인두법입니다. 사람에게서 종균을 채취해 다시 코로 흡입을 시켜서 면역을 시키는 인두법인데 우두법보다는 좀 위험했기 때문에 널리 시행은 못 되고 맙니다. 정약용과 같은 지식인이 의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양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년에 10만, 20-30만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자신의 지식을 생명을 구하는데 당연히 동원을 해야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조선후기 많은 양반 지식인들이 의학을 연구해 '儒醫'라고 하는 명칭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유의는 신분적으로 강등을 강요당한 몰락한 양반들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철학이 변했고 인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변했기 때문에 그들은 종전에 중인지학으로 천대를 받던 醫學에 과감하게 투신하여 인간 구제를 위한 새로운 학문을 개척을 해 나갈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한편 조선후기 전염병 중에서 우역과 같은 것도 매우 심각했습니다. 이 우역이 심각한 것은 그 당시에 노동력과 직결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대체적으로 소 한마리가 농부 9사람의 노동력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 19세기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역이 일어난 것은 조선후기에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농촌에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부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의학뿐만 아니라 수의학 분야에 까지도 그들의 관심을 확장시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조선후기의 상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전염병과 기근을 통해서 조선후기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민을 바라보는 양심적인 지식인의 시각은 어떻게 변경이 되었겠는가 하는 점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4. 삼정문란의 상황


한편 우리는 조선 19세기를 논할 때 의례 얘기를 하는 것이 삼정문란의 상황이 되겠습니다. 三政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왕조 제정체계를 이끌고 있는 새로운 요소들이죠. 종전에는 조 용 조 체제였다가 17세기 이후에 오자면 田政 軍政 還穀과 같은 삼정체제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것이 조선왕조의 상황이었던 것이죠. 田政, 이것은 토지에서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것이죠. 軍政, 이것은 군사 유지를 위해 양역을 부과한 것입니다. 還穀, 원래 국민을 위해서 춘궁기에 양식을 대여했다가 추수기에 10% 이윤을 붙여서 다시 거두어들이는 일종의 빈민구제제도가 환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 17세기 말엽부터 국가 고리대로 운영되기 시작합니다. 빈민구제의 기능이 아니라 국가에서 고리대의 방법으로 환곡을 운영하니 이 환곡의 폐단이 가장 극심하게 노정이 된 것은 19세기 사회였고 19세기에 도처에서 일어난 민란의 배경에는 환곡의 폐단이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을 우리는 주목할 수 있습니다. 환곡 그 원래의 취지는 빈민구제라고 하는 좋은 취지였지만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국가 고리대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억지로 환곡을 대여를 하거나 환곡 대여 과정에서 각종의 협잡을 부려서 중간 관료층들이 착취를 일삼게 되어 환곡은 조선후기에 중요한 대민 착취제도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환곡제도가 폐지가 된 것은 1860년대에 대원군이 집권한 다음에 이르러서 이고 그 이전까지는 환곡에 대한 문제는 조선후기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田政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자유전의 원칙에 대해서 농민들에게 토지를 주고 그 토지를 경작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만 했을 것인데 대다수의 농민들의 경우에는 영세농이었고 자신의 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소규모의 토지를 가지거나 아니면 아예 토지를 다 박탈당하고 차지경쟁에서 마저도 박탈당하여 농촌으로부터도 쫓겨나는 流民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전정의 근본 문제는 바로 토지 소유와 관련이 된 문제로 계속 남아 있게 되

는 것이죠.

한편 軍政의 경우는 1750년대에 와서 양역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서 균역법이 시행되기도 합니다. 균역법은 종전의 양인들이 짊어지고 있었던 2필의 군포를 1필로 줄여주어 양인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필로 감소가 되었지만 19세기 초엽에 오자면 다시 양역의 폐단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이 양역의 폐단과 관련이 된 가장 저명한 사례로서는 우리는 다산 정약용이 지은 哀絶陽이라고 하는 시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다산이 강진 시대에 겪었던 일을 시로 읊은 것입니다. 그 이웃 마을에서 한농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은 무조건 군역을 다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16세 정남이 되면 그때부터 군포를 내게 됨에도 불구하고 워낙 군포가 부족했기 때문에 지방관리들이 黃口簽丁을 시도하게 됩니다. 황구첨정을 하려고 하니 이 농부가 저항을 하였지만 결국은 마을의 이정이 그 집에서 기르던 소를 끌고 가버립니다. 소를 끌고 가니까 그 농부가 자신의 陽根을 잘라 버립니다. 바로 이 물건 때문에 애를 낳아 이와 같은 수모를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자해 행위를 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 부인이 잘린 양근을 들고서 지방관청에 들어가서 항의를 하려고 하다가 문지기에게 쫓겨나서 항의 못하고 말았다는 그 소식을 듣고 애절양이라고 하는 시를 정약용이 짓고 있습니다. 남녀가 같이 만나서 애를 낳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인데 바로 하늘이 정한 이치를 위배하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는 일어나면 안되겠다고 하는 그런 한탄의 시가 나올 정도로 19세기 전반기 우리나라의 사회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19세기 조선왕조를 얘기하면서 종전의 자본주의 맹아가 발생했고, 實學사상과 같은 발전적인 사상이 일어났고, 사상인이 발전하고 국제무역이 발전하고 하는 매우 아름다운 장면들을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장면이 결코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장면과 동시에 제가 말씀드렸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그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인상식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애절양의 시가 쓰여져야 했던 것이 19세기 우리나라의 사회였던 것이고 이 사회에 대한 비판과 이 사회를 새롭게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도 아마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부패하고 타락하고 또한 곤핍한 민중들의 삶을 보고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우리나라의 천재적인 지식인들이 시도를 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5. 민중의 저항


민중의 저항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냐 하는 문제도 우리는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민중의 저항이라면 우선 19세기가 民亂의 시대였다고 하는 점을 생각을 해볼 수 있겠죠. 19세기는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납니다. 1811년에 평안도 농민전쟁이 일어나고 있죠. 이 평안도 농민전쟁 이후에도 민란은 진행되다가 1860년대에 오자면 임술농민항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한해 동안에 전국 80여개 군현에서 민중저항운동이 일어나서 지배층에 대한 항거가 진행이 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민중저항이라고 하는 것 외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되는 것은 流亡이 강화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유망이라고 하는 것 자체는 국가의 수취체계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겠죠. 자기가 살던 향리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면 그에게 조세라든지 역 같은 것을 부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망 그 자체도 소극적인 저항으로 파악을 해줘야만 할 것입니다.

한편 流亡으로 나간 사람들 중의 일부는 火賊화되어 나갑니다. 이 화적들은 1860년 임술민란을 계기로 해서 그 성격이 전환이 됩니다. 대체적으로 1860년 이전에 화적했던 사람을 분석을 해 보자면 그들은 part-time 화적들이라고 볼수 있겠죠.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다가 이들의 활동이 농한기에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1860년대의 이후에 오게 되자면 본격적인 전업 화적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화적 발생의 시기가 농한기 뿐만 아니라 농번기에도 화적들이 발생하게 되고 화적의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이들은 일정한 규모와 조직을 가지고 주로 관청을 대상으로 하거나 부호가를 대상으로 한 약탈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도적이죠. 도적은 윤리적으로 볼 적에 예나 지금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도적이 지배하고 있던 세상에서 화적의 도적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가해자 일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것이죠. 사회의 피해자들이 양산되던 때가 19세기 우리나라의 사회였음을 또한 생각을 해야 됩니다.

민란의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의도적이요. 계획적인 민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전의 민란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빈곤 폭동설과 같이 민중저항운동으로만 이해를 해 온 듯 합니다. 그러나 임술민란을 보더라도 일정한 계획을 가지고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란은 개항 이후에도 그 분위기가 지속됩니다. 고종 연간에도 민란이 일어나고 있죠. 이필재의 난이 고종 초에 일어나고 있고 그 난을 통해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을 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 볼려고 하는 노력을 부분적으로 표현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개항 이후에도 민중저항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임오군란의 과정에서도 19세기 60, 70년대의 움직임과 같은 민중의 움직임이 19세기 80, 90년대에도 같이 확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선후기의 사회는 상당히 민중들의 저항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사회라고 볼 수가 있겠죠. 한마디로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고 있었던 때가 19세기 사회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6. 사상계의 특성


이런 사회의 제반 현상과 관련해서 우리는 사상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을 해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선의 사상계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조선성리학 즉 正學 중심의 체계였던 것입니다. 조선 성리학은 조선후기 사회에까지 지배적인 지도 이념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의 리더십이 되고 조선의 통치 이념이었던 것이 조선 성리학이었습니다. 흔히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사회형태가 뭐냐 할 때 실학을 주목하기도 하지만 실학은 그 자체에 많은 제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후기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성리학이지만 성리학의 사상적인 독점 체제가 붕괴되어 나가던 때가 바로 19세기였다고 생각이 됩니다.그 붕괴가 가장 확실하게 진행이 되던 때는 19세기 사회였던 것이죠.

이 붕괴의 진행이라고 하는 것은 實學과 邪學의 성행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확인이 됩니다. 실학이라고 한다면 1950년대 이후에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만들어 낸 용어입니다. 정약용이나 그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실학자로 identify안했던 것이고 실학이라고 하는 용어가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개념과 동일하게 쓰여지지는 안했습니다. 주로 실학이 학문적으로 재발견되기 시작하는 것은 1928년 이후에 좌파 계열의 인물들 내지는 민족문화재건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조선문화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어 조선문화재건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조선학 내지 실사구시학, 경세지학 등등의 용어로 오늘날 우리들이 실학이라 불리우는 부분이 주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50년대에 와서 실학이라는 개념이 남북한 연구자들에 의해서 확정이 되어 나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해방 직후 현상현 선생이 쓰신『조선유학사』에서도 실학의 개념이 안 나오죠. 해방 전후해서 홍희석 선생이 쓰신『조선과학사』에서도 실학이라는 개념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실학은 후대에 나온 것이죠. 후대에 만든 개념이긴 하지만 분명히 조선후기에 존재했던 하나의 사유 형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유 형태는 존재로서 가치는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그 기능으로써의 가치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하나의 사상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책으로 간행이 되고, 사람을 모아서 2세를 교육하거나 자신의 사상을 전파시킬려고 하는 집중적인 노력을 전개했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들이 실학자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실학자들의 저서가 당대에 간행이 되지 않았고 그들의 책은 후대에 간행이 됩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간행이 되는 것입니다. 정약용이 집중적으로 재발견되는 것도 바로 20세기 초이었던 것이죠. 당시 정약용은 명망인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의 사상이 당시 사회를 변경시킬 만큼 기능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邪學도 조선후기에 와서는 성행하게 됩니다. 사학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전통 종교와 신흥종교가 모두 포괄될 것입니다. 전통 종교 내지는 준 종교적인 상황으로서는 불교와 감교를 들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불교가 조선후기에 재인식되는 과정을 우리는 확인을 해보고자 합니다.불교의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조선후기에 새로운 저서들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 가장 손쉬운 불교 부흥의 확인 방법은 여러분들께서 서울 주변을 비롯해서 어디든지 사찰을 방문해 보십시오. 그 사찰이 언제 다시 중창 불사가 일어나고 있는지 주목을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대략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규모 사찰 중창불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전까지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서 명칭만 전하던 것이 대규모의 사찰로 다시 세워지고 있다는 것은 그 중창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경제력을 뒷받침해 주는 많은 불제자들이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조선후기 사회에서 불교가 재인식되고 부활되어 부흥되어 나갔다는 얘기를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 16세기에 불교 부흥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왕실불교의 차원이죠. 왕실의 차원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가지고 불교 부흥을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의 주체가 민이라 할 때 그 민이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였냐를 가지고 불교 부흥 문제를 논한다면 우리는 조선후기 사학의 하나로써 불교가 재인식 강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편 조선후기에 감교사상의 부흥이라고 하는 것을 주목을 해야 되겠습니다. 『정감록비결』과 같은 것이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처음 나왔다고 되어 있죠. 그러나 조선 17세기 후반기에 오자면『언문정감록』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감록 이본들을 대략 30여종 검토해 본 바가 있는데 대개 19세기 전후한 시기에 정감록이 강하게 출현합니다. 이 정감록은 조선왕조 멸망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씨 500년설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왕조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당시 正學을 하던 조선 성리학자들 예를 들자면 안정복과 같은 인물들은 그의『東史綱目』에서 각 왕대의 세계를 논하면서 실라 1000년, 고려 500년, 아! 조선만만세 라고 얘기합니다. 조선은 만만세해야 될 것으로 바라고 있지만 그러나 민의 차원에서는 조선왕조는 500년까지 밖에 못 간다. 곧 멸망한다고 벼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 감교서에 보자면 이씨 400년설도 표현이 된 바가 있습니다. 아마 더 빨리 망하기를 바랬다가 망하지 않으니까 500년설로 자연적으로 연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조선왕조의 멸망을 대망하던 사상이 감교사상이었던 것이죠. 회피사상, 은둔사상이 아닙니다. 회피와 은둔 그리고 말세의 마지막 조짐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양상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왕조 멸망의 필연성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전통 종교에 대한 재인식이 강화가 되어 나감과 동시에 신종교운동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종교운동은 19세기에 와서 서학이 매우 넓게 전파가 되고 있죠. 동학도 분명 신흥 종교운동으로써 새롭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전통 종교나 신흥종교에서 당시에 지향하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평등'의 이론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존귀함을 강조한다는 데에 그들 사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인간 자체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중인지학으로 천시를 받던 의학과 같은 것이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학문으로 새롭게 인식이 되고 그 가치가 확인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조선후기는 사회적으로 일대 변동을 겪고 있었고 또한 사상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입니다. 조선후기는 격동기였고 혼란기라고 볼수가 있겠죠.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으로써도 개항이라든지 민란이 그침 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격동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 줄 만한 인물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격동기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세계사를 통해서도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기를 그들의 활동시대로 삼았던 정약용이라든지 이제마와 최제우와 같은 종교적 천재가 시대를 구제할 수 있는 영웅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탁월한 생각이 조선왕조에 새로운 희망으로 작용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마가 살았던 19세기가 어떠한 때인가를 매우 소략하게 검토를 해 봤습니다.


제목: 동의수세보원강론 (김용옥)


도올) 조광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가 대학시절의 국사 시간에 강의를 들었던 역사 기술 방식하고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역사라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가 있는 것인데 이제마라는 인간의 고민과 관련해서 19세기 역사의 숨길 수 없는 부분들을 너무도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회상을 조광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자면 격동기 문제도 말씀을 했지만 최근에 한겨레 신문에 칼럼으로 내 얘기를 인용해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왜 요새 대형사고가 우리나라에 자주 발생하냐? 그러면서 기철학적으로 설명되는 방식이 없느냐 하고 나에게 한겨레 기자가 전화를 해서 너무 보수적으로 김영삼 씨가 개혁을 할려고 하는데 부덕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한겨레 같은 신문에서 칼럼을 쓰면 좋지 않겠느냐 하니까 그렇게는 얘기하지 말아라. 격동기에는 이상한 재난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당연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으로 터져야 될 것이 터지고 있는데 김영삼은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재수 없죠.

제가《개벽》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 영화 자체는 굉장히 실패한 작품인데 시나리오하고 거의 반 이상이 다르기 때문에 내 책임은 아니라구.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서 나에게 수확이 있는 것은 실제로 최시형이 다닌 곳을 내가 다녀봐야 되거든요. 학문(논문)을 쓸 때는 그런 짓을 안하거든요. 굉장히 생생하게 장면 장면을 연상해 보기 위해서 국토의 여러 군데를 다녔습니다. 그 때에 느꼈던 것은 19세기에 왜 동학이 일어났고 그런 고생을 하면서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가 하는 단편적으로 느꼈던 문제들을 오늘 조광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전체적으로 그림이 왔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생각나는 얘기로는 제 장인의 어머니가 아주 특이한 분이에요. 평안도 산골에 화전민 부락에서 억세게 사신 분이에요. 장인은 평안도 산골 사람인데 일찍 개화하여 산동의 제남으로 가서 건축기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장모는 엄청난 현대 여성이라구. 동경에서 코란이라는 여학교를 다녔던 여성이었다. 장모의 아버지가 아주 대단한 분이에요. 박화서라는 분으로 근세의 우리 역사의 이면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었다. 장인은 키가 180cm가 넘어요. 그런데 장모는 키가 150cm 정도 된다. 동경에서 졸업하자마자 산동에 좋은 신랑이 있으니 결혼하라고 해서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을 한 것이란 말이에요. 결혼 생활을 제남에서 하다가 시댁으로 갔어요. 그 산골에 서너 채 밖에 없어요. 동경에서 유학생이었던 여자가 산동에서 결혼식을 하고 시집이라고 해서 갔어요. 시어머니가 장을 보러 나가는데 마침 동이가 비어있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도저히 가벼워서 못 가겠다고 바위를 하나 올려놓고 30리 길을 걸어가더란 얘기다. 호랑이가 따라오면 이놈하고 야단치고 간다는 것이다. 그런 할머니다 제 처가 애를 배어 낳을 것을 걱정하니까 하시는 말씀이 보릿고개 때에 소나무 껍질을 죽쑤어 먹는데 가장 무서운 것이 변비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보릿고개 때에 똥누는 것보다 애기 낳는 것이 쉽다." 이렇게 살았던 것이 우리 역사의 상식이었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서 이제마를 생각해 봅시다.

『格致藁』를 지난번에 4천원에 팔겠다고 했는데 4천원에는 밑지는 장사입니다. 앞에 跋文까지 썼지만 한의계에 통용되고 있는 판본들이 아주 형편이 없어 내가 원본을 구할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이능화의『朝鮮名人傳』에 나오는 자료도 원본 자료이고『朝鮮佛敎通史』를 영인한 것도 원본 자료입니다.


【 醫源論 】


醫源論이라는 것은 醫의 근원이죠. 영어로 번역하면 The Origin of Medicine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요샛말로 더 쉽게 번역하면 "의학통사"라고 할 수 있다. 醫源論 앞이 ----- 卷之一로 되어 있고, 醫源論이 ----- 卷之二로 되어 있죠. 卷之一에 性命論, 四端論, 擴充論, 臟腑論 등 4論으로 구성되어 있죠. 卷之一에 해당되는 부분을 여러분과 1년 동안 강독할 실제 부분입니다. 卷之一의 네편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格致藁』를 같이 읽어야 합니다. 卷之二의 醫源論부터가 그야말로 본격적인 李濟馬의 의학 본령에 관한 부분이 되죠. 醫源論의 앞부분은 李濟馬가 의학적 비전을 가지게 된 세계관과 모든 철학의 원론적인 것을 완전히 집약해서 써 놓은 부분이 卷之一입니다. 醫源論에서는 자기가 과거 의학사를 나는 어떻게 보고 있다 라는 것을 쓰고 있고 그리고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이 구체적인 체질론에 따라서 병을 치료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書曰: "若藥不瞑眩, 厥疾不廖."

商高宗時, 已有瞑眩藥驗, 而高宗至於稱歎,

則醫藥經驗, 其來已久於神農 黃帝之時, 其說可信於眞也.

而本草素問出於神農 黃帝之手, 其說不可信於眞也.

何以言之? 神農 黃帝時文字, 應無後世文字 例法故也.

衰周秦漢以來, 扁鵲有名,

而張仲景具備得之, 始爲成家著書, 醫道始興.

張仲景以後南北朝隋唐醫繼之.

而至于宋朱肱具備得之, 著活人書, 醫道中興.

朱肱以後, 元醫李甙 王好古 朱震亨 危亦林繼之,

而至于明李甙 嚒信, 具備得之.

許浚具備傳之, 著東醫寶鑑, 醫道復興.

盖自神農黃帝以後秦漢以前, 病證藥理, 張仲景傳之.

魏晉以後隋唐以前, 病證藥理, 朱肱傳之,

宋元以後明以前, 病證藥理, 李甙 嚒信 許浚傳之

若以醫家勤勞功業論之, 則當以張仲景 朱肱 許浚爲首, 李甙 嚒信次之


서경의 열명에 말하기를 "만약 약이 명현하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지 않을 것이다." 은나라의 고종 임금 때에도 이미 명현의 약험이 있었다는 것이 문헌상 나타나는데 고종이 그러한 명현 현상을 감탄해서 말하는 데에 이르는 것을 보면은 의학의 경험을 거친 그 유래가 이미 신농 황제의 때에까지 오래 되었다. 그 설은 참으로 믿을 만하다. 그러나 본초가 신농에서 나오고 소문이 황제의 손에 의해서 나왔다 하는 설은 참으로 믿을 만하지 못 한 것 같다(의학 경험이신농본초 시대까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은 내가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나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신농본초, 황제내경소문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은 신농과 황제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졌다 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이 말은 이제마의 역사를 바라보는 과학적 정신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어떠한 근거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신농 황제 때의 문자에는 응당 후세 문자의 요리한 예법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신농 황제 때에는 문자는 있었어도 아주 원시적인 형태만 있었고 본초경이나 소문경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는 언어가 도저히 그 시대에 발달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쇠망한 주나라 진한 이래로 편작은 이름만은 있었으나(편작은 이름이 있었을 정도의 인물 밖에는 안되었다. 저술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장중경이가 골고루 갖추어 깨달아 비로소 가를 이루고 책을 지었다. 그래서 의도가 비로소 일어나게 되었다. 장중경이후 남북조수당의학을 이었고 송에 이르러서는 주굉이 구비득지 하여 활인서를 짓고 의도가 중흥하였다. 주굉이후에 원나라 의사로써는 이고 왕호고 주진형 위억림이 이것을 계승했고 명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이천과 공신이가 구비득지하였다. 허준이가 구비전지하여 동의보감이라는 책을 지었다. 그래서 의도가 부흥했다. 대저 신농 황제이후 진한 이전까지의 병증약리는 장중경이가 전했고 위진이후 수당이전까지의 병증약리는 주굉이가 전했고 송원이후 명이전까지의 병증약리는 이천 공신 허준이가 전했다. 만약 의가의 근로와 공업을 가지고서 이를 논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장중경 주굉 허준을 머리로 삼고 이천 공신이 그 다음에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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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曰(서왈) : 三經 중의 하나인 書經입니다.

厥(궐) : 그, that(지시대명사).

廖(료) : 나을 료.

商(상) : 夏 殷 周의 은나라를 商이라고도 함.

高宗至於(고종지어) : 고종이 이런 말을 하게 되기까지 라는 것은 약의 역사는

그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는 것이다.

經驗(경험) : 체험을 거친다.

來(래) : 유래.

而(이) : 그러나, but(의미의 전환), 의미의 전환을 나타낼 때 而를 쓰기도 하

고 의미가 and로 연결될 때도 而를 쓰기도 한다.


何以言之(하이언지) : 무엇을 가지고서 이것을 말하리요(어떠한 근거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요리) : 물결이 흘러내려 가듯이 아름다운 문장을 말함.

例法(예법) : 문장.

何以言之에 대해서 故也로 대답한 것이다.

衰周(쇠주) : 쇠망한 주나라, 東周를 가리킵니다. 東周는 대개 춘추전국시대로

400년을 衰周라고도 합니다. 주나라의 천자가 명목적인 황실만

유지했습니다.

衰周秦漢(쇠주진한) : 약 800년간의 시대.

有名(유명) : 요새 말로 유명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름이 있다는 뜻이다.

而(이) : but.

具備得之(구비득지) : 구비하여 그것을 깨닫다.

王好古(왕호고) : 李東垣의 제자.

朱震亨(주진형) : 나지제에게서 배운 사람인데 주자학의 정통 후계자로 볼 수

있어요. 남방의학 계통입니다.


【 書 】


三經 중의 하나인 書經입니다. 書經에서 書는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요새 말로 하면 문서입니다. 고대 殷, 周나라 때의 왕실에서 보존되었던 문서를 결집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영어로 번역하면 書經은 classic of document 라고 합니다. 三經에는 書經이 있고, 詩經이 있고, 易經이 있는데 易經은 占書란 말이에요. 고대사회에서 점이라는 것은 미래의 예측(prognostica-tion)이다. 우리는 일기도 예측을 하죠.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예측이라는 부분을 과학(science)이 담당하고 있죠. 미래에 대한 예측을 지금은 싸이언스가 담당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占이라는 형태가 담당했었죠. 요새처럼 이름짓고 신수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과거에 占이라는 의미는 국가 대사 등 모든 것을 占에 의해서 결정했기 때문에 점이라는 것 속에서는 그 사람들의 역사라든지 우주와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들어가 있습니다. 점서지만 고대에 있어서는 과학서이기도 하고 우주론(cosmology)의 결집이기도 합니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노래'이다. 詩經에서 詩는 요새 개념의 詩라기 보다는 노래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은 것입니다. 詩經은 고대민요집입니다. 물론 악보는 없어지고 가사만 남았겠죠. 악보라는 것은 가사의 운을 통해서 우리가 추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詩經이라는 책은 영어로 번역할 때는 book of songs 라는 말 보다는 book of poetry 라는 말이 적합하겠죠. 사실 이 세개 중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 근거가 되는 문서는 詩經 밖에 없습니다. 나는 易經이나 書經은 비교적 후대에 조작된 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 若藥不暝眩 厥疾不廖 】


書經의 說命(열명)에 나오고 있습니다. 說命이라는 것은 商나라의 고종이 傅說(부열)이라는 제상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정치를 하려면 이렇게 이렇게 잘 해야 되느니라 하고 훈계를 내리는 문서입니다. 이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의고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의고문이라는 것은 서경의 전문적인 용어로 금문 고문 등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일어난 판본의 문제입니다.

만약 약이 명현하지 않으면 그 병은 나을 길이 없다는 얘기는 고종이 부열이라는 재상에게 신하의 말에서 매서운 말을 들어야 정치가 제대로 된다. 이런 식으로 비유를 하여 인용하고 있습니다. 서경 자체의 원맥락에서는 의학적인 용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신하의 말들도 명현이 올 정도로 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 暝眩 】


명현이라는 말은 방제학, 본초학에서 굉장히 빈번하게 오늘도 쓰이고 있는 말이고 일본 의학계에서는 명현에 관해서 구체적인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명현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에요. 보통 풀뿌리라는 것이 오래간다고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오래가면 약효가 없어지는 풀뿌리도 많아요. 칡같은 것은 늙은 칡은 약효가 떨어져요. 작고 전분이 많은 것이 좋죠. 오래되면 풀뿌리는 죽고 썩는 것인데 어떻게 山蔘은 100년씩 사느냐? 山蔘은 상식에 어긋나는 식물이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산삼은 음지식물이고 습기 등의 적당한 요구가 있다. 자연 조건이라는 것은 항상 그 조건을 유지시켜 주지 못하거든요. 나무가 있다가 태풍에 쓰러지면 환경 생태계가 변하죠. 그러면 山蔘은 휴면기에 들어가요. 자기가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바뀌어 지상의 잎이 다 마르면 땅속에서 완전히 휴면기에 들어갑니다. 그런 뒤 주변의 조건이 山蔘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구. 그때에서야 다시 싹을 틔웁니다. 이것은 동물이 긴 겨울잠을 나듯이 휴면을 할 줄 아는 이상한 식물이에요. 山蔘은 재배 인삼하고는 식물 분류학적으로 다른 식물로 봐야 된다는 설이 많습니다. 山蔘은 두꺼운 뿌리가 아니거든요. 실뿌리가 많고 옥주라고 해서 구슬 같은 것이 실털에 달려 있어요.

산삼을 먹으면 이상한 현상이 꼭 나타나요. 어떤 사람은 산삼을 먹고 나서 한잠도 못 잤다. 어떤 사람은 먹으면 잠을 몇 일 동안 잤다. 여러 가지 상반된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그 현상들이 반드시 그 사람을 해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체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나타나는 특수한 일시적 현상입니다.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暝眩(명현)이라고 불러요. 명현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눈이 어두워진다." 는 뜻이다. 약을 먹으면 눈이 침침해진다는 것은 명현의 한종류이죠. 현대의학에서는 명현을 전부 부작용으로 생각하겠죠. 한의학에서는 부작용이라는 말이 없어요. 명현이라는 말을 씁니다.


【 醫道始興 】


이제마는 세계의학사를 내경 중심으로 보지 않고 상한의학 중심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예요. 이제마는 상한의학과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내경의학과 상한의학으로 말한다면 내경의학 보다는 상한의학을 계통으로 삼아서 자기 의학의 identity를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이제마의 의학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증상에 대한 실증의학으로써 인간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가장 구체적인 것은 약방에 관한 연구이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오늘날까지도 주축이 藥입니다.


【 活人書 】


『南陽活人書』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주굉을 의도의 中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나는 주굉이라는 사람을 의학사에서 이제마가 말하는 것처럼 높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남양활인서』가 유명하느냐 하면『남양활인서』는『傷寒論』의 후대 연구에서 가장 탁월한 책입니다. 주굉을 中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제마가 상한론을 중심으로 해서 의학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상한론에 관해서 원본에 해당되는 것들은 없고『너와 나의 한의학』에서 가장 잘 얘기했지만 송나라 이전의 판본으로써 가장 알 수 있는 것은 당나라 때의 孫思邈이 쓴『備急千金要方』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상한의 고서 형태의 일부가 들어 있다고 생각이 되고 王燾의『外臺秘要』에도 상한이 있습니다. 송나라 때에 成無已 판본이 나온 뒤에 종합적인 연구를 해서 方에 대해서 朱肱이가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마는 주굉을 높게 평가한 것 같으나 주굉이라는 사람은 상한병을 내경의 경락과 관련지어서 보고 있기 때문에 이제마와는 계통이 다릅니다. 이제마는 주굉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철저하게 상한 중심으로 의학사를 보고 있다. 나는 주굉을 그렇게 평가 안하고 朱震亨이라는 사람을 나는 중시를 합니다. 나는 의학사에서 중시조로 본다면 주진형을 치고 싶은데 이제마는 주진형을 가볍게 터치하고 넘어가요.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얘기죠.


【 李嗋 王好古 朱震亨 危亦林 】


이 네사람도 金元四大家로 불리우는 사람들 중에는 李嗋 朱震亨만 들어 갑니다. 李嗋는 李東垣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동원이라는 사람은 의학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나 개인으로는 주진형을 이고 보다 더 치지만 의학사 쪽으로 보면 이동원이가 의의가 높습니다. 왜 원나라 때에 명의들이 나오게 되냐면은, 원나라는 몽고가 들어와서 지배한 것이죠. 몽고사람들이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과거시험을 폐지한 것입니다. 과거시험을 폐지하여 중국인들을 관료로 뽑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회계급을 9등급으로 나누어 과거 한족의 사대부들을 거의 8,9등급으로 내려놨다. 그 당시 지식인들이 살맛 나겠어요. 그러니까 지식인들이 항간에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서 극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곡이 무지하게 발달합니다. 중국의 드라마라는 것은 전부 원나라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무엇으로 해야겠어요. 리얼하게 그 당시 통용되는 말로 해야겠지요. 드라마 대본을 文語로 쓸 수가 없는 것이니까 최초로 자기 口語를 발견해요. 이것이 白話의 시작이에요.

미술사에서도 金元四大家라는 말이 잘 말해지고 있고 화가들이 엄청나게 배출되고 있죠. 그리고 金元四大家라는 말이 잘 쓰이는 곳이 의학사이다. 우리 의학분야에 있어서 엄청난 인재들이 이 의학으로 투입이 됩니다. 그러면서 금원시대를 통하면서 엄청난 의학자들이 길러지게 되요. 이때는 이미 송나라를 거친 것이죠. 송나라에 朱熹라는 유명한 유학자가 있죠. 朱子라는 사람이 이미 新儒學이라는 패러디임을 낸 후이기 때문에 주자학적인 패러디임과 의학사의 지식은 짬뽕이 되기 시작합니다. 신유학의 철학이론과 의학이 접합되는 시기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랑캐가 지배하던 원나라 시대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동원이라는 사람은 脾胃論이라는 유명한 책을 쓰지요. 동원은 元氣를 가운데(中焦)로 보는 것입니다. 만병은 이 脾胃에서 발생한다는 얘기다. 그 사람 비위도 좋다. 이럴 적에 비위는 성격이건 먹는 것이건 잘 소화한다는 얘기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脾라는 것은 思慮(생각한다)하고 관계가 깊어요. 생각을 많이 하면 소화가 안된다는 것이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脾라는 것은 中焦이니까 上焦 中焦 下焦에서 中焦를 중심으로 해서 中焦가 잘 보존이 돼야만 上下焦가 잘 소통이 된다. 그러니 비위를 강하게 하면 모든 사람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동원이 가장 유명한 명방을 남겼는데 소위 "補中益氣湯"입니다.


黃 一錢五分 炙甘草 人蔘 白朮 各一錢 當歸 陳皮 各七分 升麻 柴胡 各三分

生薑三片 大棗二枚


此方出於李 東垣書中

治勞倦 虛弱 身熱而煩 自汗 倦怠

今考更定此方 黃 當用三錢 而當去升麻柴胡 當用紫藿蘇葉


補中益氣(가운데를 보하고 기를 더한다)는 脾胃가 선천적으로 강한 사람들에게 쓰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오히려 나쁘죠" 이제마는 보중익기탕을 소음인 체질방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소음인이라는 것은 腎大脾少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동원이라는 사람은 이론(theory)을 낸 최초의 사람입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명제는 人欲을 제거해서 天理를 존하여 성인이 되는 학문이다(存天理 去人欲 爲聖之學). 주자학적 패러다임과 의학적 패러다임은 인체에서 질병의 발생을 人欲으로 보는 것이죠. 天理를 存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말하면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죠. 사실 성인이라는 개념을 의학적으로 말하면 건강한 사람(Healthy Men)이다. 주작학적 패러다임과 의학적 패러다임이 만나게 되는 것이 원나라 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쇼크를 받았다. 이혼을 당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 그런 뒤 얼마 안 있으면 암에 걸려 죽습니다. 감정의 상태를 조절하지 못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몸에 가장 데미지를 주는 거예요. 육체적 노동이라는 것은 회복이 쉬워요. 여태까지 현대의학에서는 싸이코라고 해서 정신적인 틀에서만 보는 것입니다. 서양의 싸이콜로지, 프로이드의 이론 등 장부론과 관련되지 않은 싸이콜로지는 얼마나 넌쎈스냐! 뇌(brain) 문제로 생각하니 미친놈들이 아니냐!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이 뭐냐?


동물은 과도하게 감정을 내지는 않는다. 예를 들자면 개가 자기와 놀다 다른 개에게 간다고 해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런 현상은 개한테는 없잖아요. 생리적 범위 내에서만 감정이 움직이죠. 동물에게도 감정(喜 怒 哀 樂)이 있어요. 그러나 과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동물에게서만 유독 생리적 범위를 넘어서 감정을 발출하는 메커니즘이 발달되어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아마 이 우주상에 존재하는 희귀한 동물입니다. 이것은 생명 현상에 없었던 문제이고 DNA에도 없었던 문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생긴 줄 아십니까? 이것은 언어 때문에 생긴 것이에요. 인간에게 언어만 없었다면 마누라가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화를 낼 일 없어요. 네가 나를 이렇게 배반할 수가 있느냐! 이것은 언어거든요. 언어는 항상 들어 있으니까, 슬프고 괴로워 인간을 괴롭힌다. 이 언어가 주는 부담으로 오는 질병이 제일 큰 질병이에요. 이렇게 명백한 것을 의학에서 안 다루고 있다는 것이 희한한 것이에요. 의학 공부를 제대로 할려면 나처럼 언어학 공부도 해야 됩니다. 이런 패러디임을 완성한 것은 李東垣으로부터 시작해서 朱丹溪에 이르러서 완성이 됩니다. 동양의 병리 생리의 문제가 여기서 완성이 됩니다.


【 許浚具備傳之 】


許浚이라는 사람을 세계 의학사를 쓰는 입장에서 중국의 의학자들과 나열하면서 같은 평면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독특하죠. 허준이라는 사람을 이제마는 중국사람들과 구분 없이(조선에서는 누가∼ 이러지 않고) 쓰고 있다. 그러나 허준이는 具備得之라고 않고 具備傳之라고 했다.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허준이를 한 단을 낮추고 있는 거예요. 허준이는 모든 것을 전하는 사람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서는 허준이를 높이고 있지만 허준이는 내가 인정하건대 나만큼 독창성이 없는 놈이다. 이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이러한 허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정확합니다.

허준이라는 사람은 전혀 독창성이 없는 사람이에요. 허준의 의학사상은 없어요.『東醫寶鑑』이라는 책은 중국의서들을 모아 놓은 참고서예요. 그런데 대단하다는 것은 엄청난 책을 모아서 읽고 뽑아서 정리를 기막히게 하고, 한국적 현실에 맞는 향약들을 집어넣어 현실적으로 활용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정말 내용 없는 책이에요. 자기 소리 아무 것도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인용입니다. 아마 어명으로 받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중인이라는 천한 신분에서 종2품까지 올라가는 행운을 맞으면서도 정적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을 개진할만한 용기를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은성씨의 소설 동의보감이라는 책은 거의 99%가 픽션입니다. 여기서 인상을 가지고 허준을 얘기하거나 허준이가 시체를 해부했다는 것은 쌩거짓말이에요.


【 病證藥理 】


이제마는 의학사를 藥理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針은 관심이 없어요. 針에 있어서 이제마는 전혀 접근을 못한 사람이에요. 20세기에 위대한 의사를 권도원 선생이라고 생각하는데 권도원 선생하고 이제마하고 가장 큰 차이는 이제마는 약리이론이고 권도원 선생은 철저하게 침리이론입니다. 이제마는 맥을 가지고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했으나 권도원 선생의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은 脈狀을 통해서 체질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 李甙 嚒信 】


李甙 은『醫學入門』의 저자입니다. 의학입문이라는 책은 조선후기에 있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의서에요. 우리나라 의사 치고 의학입문을 안 읽은 사람이 없고 오늘날 한의과 대학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책입니다.

嚒信은 명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아들이 嚒廷賢이라는 사람인데 공정현의 저서에 수세보원이라는 책이름이 있어요. 공정현의 수세보원을 이제마가 의식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정현의 수세보원이라는 책에 대한 연구가 없는데 이런 것을 해봐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마가 수세보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마음에 안 들어요. 왜냐면 중국에 기존하고 있는 이름을 알면서도 자기의 독창적인 이론을 중국에 기존하던 책이름을 따다가 붙였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동의를 덧붙였는지 정확하게 따져 봐야 될 문제입니다.


余生於醫藥經驗五六千載後, 因前人之述, 偶得四象人臟腑性理,

著得一書, 名曰: "壽世保元."

原書中張仲景所論, 太陽病-少陽病-陽明病-太陰病-少陰病-厥陰病,

以病證名目而論之也.

余所論, 太陽人 少陽人 太陰人 少陰人, 以人物名目而論之也.

二者, 不可混看, 又不可厭煩. 然後可以探其根株, 而採其枝葉也.

若夫脈法者, 執證之一端也. 其理在於浮沈遲數, 而不必究其奇妙之致也.

三陰三陽者, 辨證之同異也. 其理在於腹背表裏, 而不必求其經絡之變也.


내가 의학의 경험이 있은 지 5,6천년이 지난 후에 태어나서 옛사람들이 기술한 것에 의거하여 우연히 사상인의 장부성리를 깨닫게 되었다. 한 책을 짓게 되었는데 이름하여 수세보원이라 한다. 원서 중에 장중경이 말한 바 태양병-소양병-양명병-태음병-소음병-궐음병은 병증의 명목을 가지고서 논한 것이다. 내가 말한 바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은 인물의 명목을 가지고 논한 것이다. 이 두가지는 혼동해서 보면 안된다. 또한 내가 새 학설을 냈다고 귀찮게 생각하면 안된다(번거러운 소리 또 했구나 이래 가지고 내 이치를 따져볼 생각은 안하고 그저 그런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 안된다). 연후에 그 뿌리를 탐구해서 가지를 딸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다. 만약 맥법을 가지고서 말한다면 그 증세를 파악하는 하나의 단서이다. 그 이치는 부침지삭에만 있을 뿐이고 그것에 기묘한 이치가 있다고 궁구해 들어갈 필요는 없다(맥상을 통해서 병을 아는 것을 인정 안한다. 그러니 이제마가 독창적이고 과감한 사람이죠). 삼음삼양은 그 증을 변별하는 동이의 문제이다. 그 이치는 배에 있느냐 등에 있느냐 하는 표리의 문제이지 그 경락의 변화를 구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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載(재) : 年.

因(인) : 의거하여.

著得(저득) : 얻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되었다는 의미.

原書(원서) : 아마도 수세보원 그 자체의 텍스트를 가리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세보원을 짓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으로 자기가 참고한 책들을 총칭해서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생

각돼요. 原書를 앞에서 얘기한 것으로 말하면 前人之術에 해당될 수도 있다.

以病證名目而論之也와 以人物名目而論之也는 댓구가 되었죠.

상한론은 병의 구체적인 증세에 관해서 논의한 것이고

사상이라는 것은 인간 그 자체의 장부성리를 가지고 얘기한 것이다.

執(집) : 파악하다.


【 名曰壽世保元 】


醫源論 이전에 네편을 지어 놓고, 의원론에서 수세보원이라는 책이 따로 지어 놓은 것처럼 얘기되고 있잖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壽世保元에서 東醫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마가 오리지날하게 저술한 이름은 東醫壽世保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1894년 봄에 완성되었다고 했죠. 그리고 1900년까지 改草되었다고 했죠. 개초되는 과정 중에 의원론 부분을 써 가면서 東醫라는 말을 붙여야겠다 라는 필연성이 생겨서 동의라는 말이 후대에 붙을 수도 있겠다 혹은 제자들이 이 책을 편집하면서 동의라는 말을 붙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지금 알 수가 없습니다.


靈樞書中, 有太少陰陽 五行人論, 而略得外形未得臟理.

盖太少陰陽人, 早有古昔之見, 而未盡精究也.


영추경이라는 책 가운데 태음인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이 있고, 금 수 목 화 토형인이 있다. 이것은 외형의 분별을 기준으로 해서 한 말이지 아직 장부의 이치를 얻지는 못한 것이다(이제마는 철저하게 장부의 이론을 가지고 체질론을 구성했다는 것을 얘기하죠. 여러분들이 태음인, 태양인 하면 자꾸만 음양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죠. 이제마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태음인은 음침하고 음울하고 태양인은 밝은 사람일 것이다 라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통천편에는 그런 개념이에요. 요즘 중국에서는 체질론이 아직도 통천편 수준이란 말이에요). 대저 태음인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이런 견해는 있었으나 아무도 정밀하게 탐구한 자는 없었다.


靈樞(영추) : 황제내경소문에 대해서 영추라는 고문헌이 있습니다. 영추경은

경락학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책이다.


【 太少陰陽 五行人論 】


太少陰陽을 인수분해 하면 太陰 太陽 少陰 少陽이 된다. 靈樞의 通天篇에 나옵니다. 상한론에서는 太陽-陽明-少陽-太陰-少陰-厥陰이 있고, 通天篇에는 太陰之人 少陰之人 太陽之人 少陽之人 陰陽和平之人이 있다. 太陰陽之人은 陰이 아주 많은 사람, 少陰之人은 양이 많고 음이 적은 사람, 太陽之人은 陽이 아주 많은 사람, 少陽之人은 양이 적고 음이 많은 사람, 陰陽和平之人은 陰陽의 밸런스 딱 맞은 사람이다. 이렇게 인간을 다섯 체질로 나눈 것이 영추경 通天篇에 나옵니다.

五行人論은 靈樞의 陰陽二十五人篇에 있습니다. 金 水 木 火 土形人으로 나누고 金形人에서 또 다섯 가지의 서브카테고리를 만들면 5×5=25가 됩니다. 체질을 25개로 나누어서 논한 것이 한대에 있습니다. 이제마는 내경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의학의 始興은 傷寒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됩니다. 왜냐면 그 뒤의 의학사를 보는 관점을 봐도 상한 중심으로 보고 있어요. 이제마가 방문을 쓰게 된 것도 상한방에서 힌트를 얻어서 출발을 한 것이에요. 이제마는 조선의학사로 본다면 엄청난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상한론이 나왔던 시대는 대규모의 전염병 시대


張仲景은『傷寒論』의 저자로 알려졌습니다. 상한론이라는 책이 언제 성립이 되었으며 장중경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너와 나의 한의학』을 보세요. 역사적으로 얘기되어 온 장중경의 상한론이라는 책은 後漢末에 성립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상한론이 나왔던 시대는 대규모의 전염병 시대였어요. 이조가 무너지면서 콜레라가 엄청나거든요. 최시형이 다닐 무렵은 전염병으로 사람이 하나도 없는 빈 동네가 많았어요. 최시형이 동학교도들에게 포교를 많이 내리지요. 남이 먹던 밥을 먹지 말라 등의 규칙을 내거든요. 단 하나 핵심적인 것이 빠졌어요. "물을 끓여 먹어라"라는 것만 넣었으면 엄청나게 구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학교도들은 비교적 그런 수칙을 지켰기 때문에 콜레라에 비교적 덜 걸렸어요. 그래서 동학교도들은 연대가 더 강해집니다. 콜레라는 설사가 주된 증상이고, 상한은 요새로 보면 대개 전염성 열병이었던 것 같아요. 대개 디프테리아, 파라티프스, 장티프스 이런 계통이다. 여기서 寒이라는 것은 寒邪이고 傷은 상했다는 뜻이다.


땀구멍은 외계와 소통하는 창구


우리가 보통 中風이라고 하잖아요. 中은 적중했다는 中입니다. 들어맞을 중자입니다. 中風이라는 말은 風에 맞었다는 얘기다. 인간이 외계와 교섭하는 창구를 피부로 봤다. 인간에게 가장 고마운 것이 skin이에요. 피부라는 개념은 인간을 나라는 개체로서 유지시켜 주는 가장 경계막이죠. skin을 조직학에서는 epithelial cell이라고 한다. 이 epithelial cell의 구조가 조직세포들 하고 다른게 있어요. epithelial cell은 세포 하나하나 사이가 짝 붙어 있는 세포에요. 이 사이로 물질이 잘 통과 안되죠. 그러니까 우리 몸을 유지하는 것이죠. cell과 cell사이가 엉성하게 되어 있으면 목욕탕에 들어가 몸이 금방 붓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identity를 유지시켜 주는 작용을 epithelial cell이 일차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skin을 한의학에서는 衛氣라 한다. 營이라는 말은 인간의 몸의 inside를 운영하는 체계이고, 衛라는 것은 나의 존재를 나의 존재답게 protect해 주는 시스템이다. 衛氣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skin이에요. skin은 엄청난 일선 방위부대에요. 효소, 임파구, 미세혈관 등이 분포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skin을 뚫고 들어온다는 것이 외부에 있는 미생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청난 방위병들이 있는 것이다. skin 중에서 구멍이 난 곳은 입, 코, 귀, 눈 등으로 七竅, 九竅라고 합니다. 인체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구멍들이다. 인체를 볼 적에 입에서 똥구멍까지 뻥 뚫려있는 것 아니에요. 식도, 위, 소장, 대장의 안은 체내에요 체외에요? "체외입니다." 위장 속을 체내로 생각한다면 안되요. 체외란 말입니다. 체내로 한번도 못 들어간 놈이 "똥"이란 말입니다. 입에서 잘라주는 물리적 작용을 하고 위에 들어가면 위산, 효소들이 나와 화학적 소화를 한 뒤에 미세하게 만들어서 빨아들이는 현상을 우리가 "소화"라고 부르는 것이죠. 소화관의 벽은 skin하고 동일한 epithelial cell입니다. 위벽은 skin하고 같은 세포들이에요. 인간에게 있어서 밖에서만 風邪를 맞는 것이 아니다. 상한의 문제는 교섭하는 창구가 안팎으로 다 있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교섭 창구를 理(주리)라고 부른다. 주리를 요새로 말하면 땀구멍입니다. 고대의학에서 땀구멍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외계와 소통하는 결정적인 창구예요. 땀구멍을 통해서 대개 風도 맞고 寒도 맞는다. 風 寒 暑 濕 燥 火라는 대기의 변화를 땀구멍을 통해서 맞는 것입니다.


내경은 인간의 철학이다.


傷寒論은 성립시기를 한나라 문명이 끝나는 조조시대로 본다면 소위 內經의학의 성립시기는 이미 한대로 본다. 內經의 內는 內科라는 말은 아니고 外經에 대해서 內經이라는 말입니다. 內經을 영어로 번역하면 비밀스런 경전(esoteric)이다. 內經의 내용을 오늘날로 말하면 內科學이다. 옛날 내과학이라는 것을 요새 개념으로 말하면 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이다. 서양의 예방의학은 기본적으로 전염병 예방의학인데 우리 예방의학이라는 것은 養生學입니다. 몸의 조시를 평소에 생활 속에서 컨트롤해서 병에 안 걸리다는 문제이니까 이것은 생활철학의 문제이고 삶의 습관의 문제이다. 내경은 인간의 철학이에요. 나의 내적구조(internal organization)를 가장 온전하게 유지하느냐 하는 養生學이기도 하면서 몸의 내적구조에 나타나는 經絡을 중심으로 해서 보고있다. 몸에 있어서 氣의 흐름의 루트로써 經絡이 형성되고 그 經絡의 상호 밸런스 의해서 인간의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이 內經學이다.

내경적인 사고방식으로 아무리 나의 몸을 잘 조절해도 전염병에 걸리면 다 죽거든요. 그러니 내경의학이 무기력하단 말이야. 그런 무기력한 상황에서 내경의학에 대한 반란의학이 상한의학이에요. 인간의 삶의 복잡한 내과적인 예방의학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들어오게 되면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내경에만 의존하겠는가 하고 새로운 학풍이 대두된 것의 결집형태가 상한의학으로 보면 된다. 내경의학이 인간의 내면적인 양생을 중심으로 한 내과학이라고 본다면 상한의학은 증후에 대해서 어떤 약을 쓸 적에 어떤 효과가 있다는 구체적인 치료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한의학이 나오면서 비로소 약방문이 나오나 내경에는 약방문이 없어요.


조선의학사는 내경 중심 일본의학사는 상한 중심


우리나라의 한약분쟁이 사회를 시끄럽게 한 문제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약사분들이 교육제도의 뒷받침 없이 의료행위를 거져 먹을 수는 없어요. 대개 약사들 중에 한의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단기코스로 공부(약대에서 가르치는 것은 거의 없고)를 하는데 이 연구는 상한(고방)입니다. 조선의학사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내경학을 정통으로 해서 내려온 것으로 금원사대가들의 내경 해석을 통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의학 발전입니다. 동의보감에도 상한에 대한 얘기는 있지만 동의보감은 기본적으로 내경의학이에요. 한국사람들은 원리적인 것을 좋아하고 고차원적인 것을 좋아한다. 일본의 에도 의학이라는 것은 철저히 傷寒學 중심입니다. 상한의학은 내경의 관념적 구조에 집어넣어서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경에 대한 안티테제로 상한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상한은 내경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상한 그 자체로 연구되어야 합니다.

조선 의학사는 내경 중심으로 보면 되고, 일본 의학사는 상한 중심으로 보면된다. 내경이 상한보다는 역사적으로 더 오래 된 것이죠.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상한을 古方이라 부른다. 왜냐면 고방으로 말한다면 상한이 제일 오래된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에게 내경은 금원시대를 거쳐 명대에나 들어오는 내경해석이다. 이것을 후세방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 한의학계에서 후세방, 고방이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 의학사에는 없는 말입니다. 이것은 일본 의학사에만 있는 말입니다. 옛날에 경희대학 전신인 동양의학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일본사람들에게 배운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후세방, 고방이라는 말을 가지고 조선 의학사를 정리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 못된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상한(고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 이외의 것을 전부 후세방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내경지학을 무시했다.

상한방이라는 것은 증후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다. 한국사람들에게 보약은 내경의학의 전통으로 養生之學이니까, 한약(보약)이라고 하면 두루두루 먹어두면 좋다는 생각을 갖는다. 오늘 아침에 SBS에서 방송하는 것을 보니까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한약을 지어 가지고 와서 몸 아픈데 먹으라고 하니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이 안되는 것이거든요. 아무 약이나 지어 가지고 먹으라고 하니 감사하다고 열심히 다려 먹었으나 잘못 될 수도 있어요. 약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후세방의 특징은 두리뭉실 다 걸리지 않게 섞어 주는 것이다. 君 臣 佐 使라고 하여 아무나 아무렇게 먹어도 대강 통과되는 것이 후세방의 특징이거든요. 그러니 양과 가지수가 많지요. 그런데 고방이라는 것은 가지수가 적습니다. 그때그때 쓰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지요. 그러나 맞어들어 가면 척척 맞어들어갑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의 기질에는 고방이 구미에 맞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그런 것을 오히려 천시하고 人蔘, 鹿茸, 黃 , 熟地黃 등을 上焦, 中焦, 下焦로 두루두루 사용합니다.

문제는 상한은 원래 유행성 열병을 모델로 해서 개발된 약들이기 때문에 근세에 오면서 일본에서는 상한의 문제를 미생물학이 해결 한거라구. 여러분이 지금 먹는 아스피린이나 심지어 항생제까지도 한의학적 개념에서 본다면 상한약들이다. 사실 서양의학도 한방적 개념에 의해서 분류하고 규정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열병을 앓는데 어떤 사람들은 엄청나게 열이 나는데 이불을 덮어 줘도 덜덜 떠는 사람이 있죠. 이것을 惡寒이라고 한다. 열이 나는데 춥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그냥 덥다고 옷을 벗어제친다. 같은 열이라도 서양에서는 human temperature에 대한 이런 개념이 없거든요. 그런데 상한에서는 이런 것을 구분하죠. 어떻게 구분하냐면은 惡寒일 경우는 땀이 없죠(無汗). 寒邪가 최전선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현상으로 본다. 최일선에 있는 방위군이 굉장히 강한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 전투가 아주 치열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방위군들이 치밀하게 스크럼을 짜고 못 들어오게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어서 땀이 날 수가 없죠. 그 대신 惡寒이 생긴다. 그런데 방위군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땀구멍이 벌어지겠죠. 그리고 熱邪가 점점점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속에서 煩熱이 난다.

소위 寒邪가 表에서 裏로 진행되는 방향의 순서를 6가지로 나누어서 태양 양명 소양 소음 태음 궐음으로 하고 궐음까지 가면 맥이 없어지고 불알이 오그라든다. 면역능력이 없어져 죽는 것이죠. 오늘날로 말하면 임뮨시스템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심프토마틱하게 기술한 것이다. 이것을 경락의증세하고 맞추어서 해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피는 돈다


여러분 맥을 본다는 것이 오묘하게 생각되죠. 기본은 피가 가는 것이에요. 이 혈관을 세 곳에서 짚어 느끼는 것이에요. 서양에서는 피라는 것에 대한 개념은 blood이다. 이것이 혈관을 돌아다니면서 영양물질을 수송하고 면역, 효소, 호르몬 등 우리 몸의 모든 circulation을 담당한다. 동양인들은 피라는 것을 관의 개념으로만 생각한 것 같지는 않아요. 피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잠시도 쉼 없이 돌아야 한다. 老子에 보면 "反者道之動"이라 한다. 항상 빙빙 도는 것이 도의 움직입니다. 周易이라는 것에서 易은 바꾼다(exchange)는 뜻이다. 이것은 blood circulation과 같은 얘기다.

피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라는 액체의 실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가 돈다 라는 문제에요. 피가 아무리 있어봐야 돌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피는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야 하는데 그 돌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불러서 氣라고 했어요. 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서양의학에서 기계론적으로 말하면 심장박출능력에 의해서 도는 것뿐이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피를 생각할 적에 피라는 액체를 피로만 파악한 것이 아니라 피 속에 氣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피는 기가 있기 때문에 피는 살아 있다는 얘기다. 그럼 氣라는 것은 뭐냐?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에요. 그래서 血은 인체에 있어서 陰이고 氣는 陽이다. 血을 營으로도 보아 인체를 運營하는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氣는 衛로 보아 인체를 protect하는 시스템으로 생각한다.

맥을 눌러 보면 위에서 잘 잡히는 맥이 있고, 꾹 눌러 보면 눌려서 잡히는 맥이 있다. 위에서 잡히는 것이 浮脈이고, 밑에서 잡히는 것이 沈脈이다. 대개 浮脈에서는 인간의 病邪의 表證 상태를 보고 沈脈에서는 裏證 상태를 본다. 『醫學入門』에 諸脈體狀이라 해서 맥의 종류가 잘 정리되어 있어요. 흔히 맥에 대해서 얘기할 적에 浮 沈 遲 數만 보면 끝난다. 여기에 각 경락에 맞추기도 하고 上 中 下로 나누어 복잡하게 맥학을 구성했다.


成無已의 註解가 저지르고 있는 오류


太陽-陽明-少陽-太陰-少陰-厥陰이라는 것은 經絡이름인 足太陽膀胱經 등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양자를 자꾸만 혼동을 했어요. 상한에서는 이러이러한 증상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太陽에서 厥陰까지 심프토마틱하게 붙여진 기호일 뿐인데 그 기호의 이름이 經絡에 쓰이고 있는 이름과 같기 때문에 예를들어 太陽病은 膀胱病이다. 이렇게 하면 우습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은 상한론의 成無已註부터 되어 있어요. 이것이 전통으로 내려와서 우리나라는 상한의 이해도 이러한 식으로, 경락상의 六經病으로 상한병을 이해하는 것이 조선유학사의 전통이다.

일본의 고방학자들은 이 成無已를 개좆으로 뭉갠다. 이 사람 때문에 상한 고방은 다 망쳤다. 그리고 상한은 내경 전통과 단절된 상태에서 그저 순수하게 심프토마틱하게 정리해 들어간 상한 고방이 오늘날 약사들의 구미에 딱 맞지요. 약사들이 배우는 상한은 일본에서 개발된 이런 증후(symptom)에 이런 약을 주어라. 이것이 일본의 상한 고방 정신이다. 약사들은 이것을 배워서 하는데 한의사들은 이것은 넌쎈스다는 얘기죠. 어떤 의미에서는 약사와 한의사의 이론투쟁은 한국 의학사와 일본 의학사의 투쟁이죠. 일본에서는 상한이 현대의학이 들어오면서 완전히 퇴색이 되어 한의학에 대한 깊은 연구가 부족합니다. 현대 과학적인 실험적 원리는 개발이 많이 되었으나 이제마와 같은 심오한 사상은 일본의학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 反誠箴 】


인간의 언어를 모두 4귀로 맞춘다고 할적에 무리가 없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마는 사고가 도식적(schematic)이기 때문에 분명히 무리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아주 도식적이에요. 이제마라는 사람은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의 틀의 전형을 극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사람 같아요. 가장 재미난 것은 조선 유학의 특징이 그림(diagram)이 많아요(天命圖, 性學十圖). 중국에는 별로 그런 것이 없거든요. 언어로 아규먼트를 계속 진행하는데 한국사람들은 diagram을 좋아합니다. 박정희이래 우리나라에 가장 유행하던 문화가 브리핑 문화로 우리는 군대문화라고 욕도 했지만 사실은 한국사람들은 원래가 도식적인면이 옛날부터 많습니다. 이제마는 4라는 글자 속에서 모든 것을 볼려고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이제마를 읽을 적에는 4구로 형성된 언어의 커튼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작업이 쉽지 않아요. 나도 아직 이제마를 완전히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이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여러분과 더불어 이제마에 대한 感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自壬辰閏六月初九日, 至十二月初四日, 又自癸巳正月十七日, 至二月二十五日, 改草數十次而成之. 更題其名曰: "反誠箴"(本名八箴在篇名下)


임신년(1892) 윤6월초 9일부터 12월초 4일까지 써 가지고 또 계사년(1893) 정월 17일부터 2월 25일까지 개초를 수십차하여 썼다. 그래서 제명을 반성잠이라 했다.


東醫壽世保元을 쓴 것이 계사년(1893) 7월 13일이라고 했죠. 反誠箴은 같은 해인 2월 25일까지 끝냈으니까 한 다섯달 후에 동의수세보원을 썼죠. 동의수세보원을 쓸 때의 이제마하고 반성잠을 쓸 때의 이제마는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의수세보원하고 같은 해에 쓰여진 것이니까 반성잠은 굉장히 중요하죠. 反誠箴을 보면 乾箴, 兌箴, 坤箴, 艮箴, 箴, 震箴, 坎箴, 巽箴 등 八箴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본명을 八箴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改草를 하면서 이름을 반성잠이라 고쳤다고 했다.


格致藁卷之二

【 反誠箴 】


此箴名義, 依倣易象, 而乾兌箴尊道中庸, 坤艮箴欽德大學,

震箴取則柳下惠, 坎巽箴取則伯夷.


東武姓李, 出身爲東國武弁, 故號曰東武.(諱濟馬, 字務平)

篇名反誠, 何謂耶? 東武自幼至老, 千思萬思, 詐心無窮,

行詐則箇箇狼狽, 愈困愈屈, 不得已反於誠而自警也.

自警者, 反身之誠, 而未免有詐, 屢復屢失, 而至於自警也.

東武今年五十七齒, 而尙未忘行詐, 故彌彌自警, 詐亦難矣哉!


詐心而行詐, 則詐也. 詐心便發未及行詐, 而反誠則學問也.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凡人心中, 或酒或色或貨或權, 必有膠着之欲, 故行詐也.

就其中膠着之甚者克之, 則其他泛泛之欲不克而自克也.

此之謂克己復禮也, 其法莫如此等, 非禮之事,

勿視, 勿聽, 勿言, 勿動, 最爲上策.


形理之取象只是臆見, 而其象有八, 非眞謂伏羲易象如此也.

若夫卦之名義, 暗合有異者, 則實非臆見探 之所及也.

固不可擧論也, 故曰: "依倣."


自壬辰閏六月初九日, 至十二月初四日,

又自癸巳正月十七日, 至二月二十五日,

改草數十次而成之. 更題其名曰: "反誠箴." (本名八箴在篇名下)〕


이 잠의 이름과 뜻은 주역의 상을 본떴다. 건태잠은 중용의 도를 높인 것이요. 곤감잠은 대학에서 덕을 기린 것이요. 리진잠은 유하혜와 같은 현실주의에서 취한 것이요. 감손잠은 백이와 같은 이상주의에서 취한 것이다.

나 동무는 성씨가 이씨요, 출신은 동국의 무관 출신이다. 그래서 호를 말하기를 "동무"라 했다.(휘는 제마요, 자는 무평이다)

편명을 성으로 돌아간다 했는데 그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이뇨? 나 동무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천사만사로 사기를 칠려는 마음이 끝이 없었다. 그런데 사기를 칠려고 하면 사기를 칠 때마다 낭패가 되어 더욱 곤궁해지고 더욱 굴종적 인생이 돼 버려서 할 수 없이 성으로 돌아가 스스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경계한다는 것은 몸을 돌이켜 성(성실한 우주의 본 모습)으로 가는데도 사기를 칠려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다. 자꾸자꾸 사기를 쳐서 자꾸자꾸 낭패하면 스스로 경계할 수밖에 없는 데에 이르게 된다. 나는 금년의 나이가 57세인데 사기칠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욱 스스로 경계하고 사니 이 사심이야말로 정말 인간 존재의 어려운(괴로운) 문제로다!

사심이 있으면서 intentional하게 사심을 행동으로 옮겨 사기를 쳐버리면 그것은 진짜 사기이다. 그런데 사심이 발했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하고 성으로 돌아가면 그것을 학문이라 한다. 배우로 묻고 하는 학문의 길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마음(사기치는 마음)을 수렴할 뿐이다. 대저 사람 마음 중에 어떤 사람은 술을 좋아해, 어떤 사람은 여색을 좋아해, 어떤 사람은 재화를 좋아해, 어떤 사람은 권세를 좋아한다. 반드시 유별나게 달라붙는 욕심이 있다. 그러므로 사기를 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 교착이 심한 놈만 골라잡아 극복하면 그 나머지 덤덤한 욕심은 극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극하게 된다(그 인간에게 티피컬하게 나타나는 어떠한 욕을 극복해 버리면 스스로 극복이 된다). 이것을 일컬어 극기복례라고 하는 것이다. 극기복례의 법은 다음만 같지 못하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마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

형리의 취상은 단지 내 억견이다(내가 제 멋대로 한 것이다. 여기에 건잠이니 곤잠이니 태잠이니 이런 얘기들에 속지 말아라). 그 모습은 반성잠에 8개가 있으나 복희의 역상이 이와 같다는 것을 진짜 말할려는 것이 아니다(자꾸만 주역하고 관계 짓지 말아라, 주역의 언어를 썼다고 해서 이제마는 주역의 대가인 것처럼 여기지 말아라, 내가 제 멋대로 한 것으로 주역의 언어만 빌린 것이다. 말이 없어서 내가 갖어다가 쓴 것이니 혼동하지 말아라 이런 말이다). 만약 괘의 이름만 빌려다 쓴 것인데 어쩌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런데 억견은 심오한 것을 탐구해서 미칠려고 하는 바의 얘기들이 아니다(주역에 대비를 시켜 가지고 문왕의 선천지도가 어떻구 하도락서가 어떻구 이러지 말아라). 진실로 주역에 대한 것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본뜬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말만 빌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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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義(명의) : 잠의 이름.

依倣(의방) : 본뜨다.

欽(흠) : 기리다.

柳下惠(유하혜) : 유하혜라는 사람은 맹자에 나오는데 임금이 부덕하든 말든 도덕적기준에 의해서 자기 거취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다고 생각하면 나아가서 얼마든지 벼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주의를 편사람입니다. 유하혜는 어떤 의미로 현실주의(realism)이다. 伯夷(백이) : 도덕적으로 그르면 임금이 아무리 성군이라 할지라도 산 속에 들어가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타협을 안하는 사람이죠. 굉장한 이상주의(idealism)을 표방한 사람이다.

武弁(무변) : 무관.

弁(변) : 고깔 변, 옛날 사모관대.

反誠(반성) : 반성은 요새 우리가 생각하는 반성이 아니지요. 잘못하여 반성했다는 것은 살필성

(省)자를 쓰지요. 여기서는 정성성(誠)자를 씁니다.

反(반) : 返, 되돌아 간다.

反身(반신) : 자기의 몸을 돌이킨다.

之(지) : 갈 지, 영어의 of가 아니고 간다는 의미.

未免有詐(미면유사) : 사기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면할 수 없다.

齒(치) : 이는 연령의 표시.

學問(학문) : 학은 배운다는 것이죠. 문은 묻는다는 것이다. 원래 중용에서는 問學으로 나옵니

다. 물음이 없으면 배움이 성립할 수 없고 배움이 성립하지 않으면 물음이 있을 수

없죠.

而已矣(이이의) : 뿐이다.

求(구) : 수렴한다.

或酒或色或貨或權 :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소양인이고,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소음인이고, 재화

를 탐내는 사람은 태음인이고, 권세를 좋아하는 사람은 태양인 계열이 될

것입니다.

膠(교) : 아교 교.

膠着(교착) : 인간에게 욕심은 다 있는데 뭔가 특별히 달라붙는 욕심이 있다. 어떤 사람은 색을

밝혀, 어떤 사람은 유별나게 돈을 밝혀, 어떤 사람은 유별나게 명예나 권

세를 밝혀, 어떤 사람은 유별나게 술만 좋아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교착

으로 欲이 들러붙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면 typify한 형태로 나타난다.

暗合(암합) : 어쩌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探 (탐이) : 심오한 것을 탐구하다.


【 求其放心 】


맹자가 말한 求放心은 흩어지는 마음을 수렴한다는 의미, seek한다 라고 영어식으로 번역하지 마세요. 현대인들이 직선사관이 되어 가지고 이런 글자 하나 해석을 하는 데에도 막 추구해 가면서 달려가는 것을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동양의 求는 빙빙 돌리면서 가운데를 잡고 있는 모습이에요. 反誠箴은 1893년도에 쓴 것이니까 이 얘기는 앞의 잠을 다 쓰고 얘기한 것입니다. 동의수세보원을 착수하기 다섯달 전의 문장이에요. 사상의학의 사상이라는 것은 구기방심해서 흩어져 가는 인간의 유형들이다. 구기방심하면 병을 얻는 것이죠. 사기치는 인간들의 유형에 따라서 사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독행편에 나타나고 있는 비박탐나와 연결이 됩니다.


【 克己復禮 】


論語의 顔淵第十二에 나오는 말이죠. 안연이가 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자기를 극복해서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 한다." 어떻게 실행해 옮길 수 있습니까?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아라." 안연이가 그것을 듣고 저는 불민하긴 하지만 그 말씀을 실천해 옮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기서 극기복례라는 것은 논어의 중요한 사상이죠. 이제마는 극기복례를 체질론으로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상당히 중요한 사상적 전환이 되겠습니다. 소위 과거의 유학적 논의하고는 맥락이 너무도 다릅니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이제마를 실학이라든지 개신유학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면 망한다


격치고의 跋文에 내가 짧게 쓴 매서운 말이 있는데 이제마는 실학하고 다르기 때문에 개신유학이다 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송일병선생이나 정우열선생이 사상사를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계속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혼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마를 실학이라든지 개신유학이라는 개념속에서 규정을 해 들어가면 망해요. 선생님들은 별 의식 없이 이제마를 좋게 새롭다고 말씀할려고 한 단순한 말이지만 그러나 사상사적으로 개신유학은 굉장히 잘못된 언어입니다.


격치고 跋文 中에서


최근 이제마의 철학사상을 지칭하여 무반성적으로 "實學"이니 "改新儒學" (neo-Neo-confucian-

ism)이니 운운하는 자들이 있으나 이는 모두 조선철학사의 내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천박한 발언에 지나지 않음을 명기하여 두고자 한다. 이제마의 철학사상은 反朱子學的 近代性의 축으로서 설정된 實學 개념이나 新儒學을 改造한 어떤 사상사적 맥락이 아닌 이제마 자체의 독자적 학문으로서 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며 오히려 우리가 상식적으로 운운하는 실학이니 개신유학이니 하는 사상체계를 역으로 이제마의 사상맥락에서 거슬러 올라가 규정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역은 한의학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을 한다는 사람치고 주역 운운 안하는 사람은 없는데 주역하고 한의학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하버드에서 주역에 관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인데, 제발 한국사람들은 주역에 대해서 미치지 말아야 합니다. 한의학계에 가장 큰 병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양학만 했다 하면 入山해 가지고 주역을 10년 봐서 도통했다고 해요. 조선조 유행하던 모든 도식적 사고 방식이 주역에서 나왔고 아직도 주역의 도사들이 설치고 있는 불행한 사상 풍토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도사들은 주역의 도사들이에요. 이건 쌩구라입니다. 주역은 과학적 사고에서 일단 제치고 보세요. 주역을 들여다 보면 재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에 현혹되다가는 병신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슬픈 현실이 내가 보기에는 "무지"예요.



未來在天天在上也

乾兌

知行在我我在左也 震 太極 坎巽 祿財在他他在右也

坤艮

過去在地地在下也


동양의 우주관 속에서 하늘이라는 것은 미래를 나타내고 땅이라는 것은 과거를 나타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의 복합체죠. 인간은 머리가 위에 있으나 동물은 머리가 옆(횡)으로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땅에 박혀 있어 뿌리가 죽으면 다 죽죠. 가지는 하늘을 향해서 뻗고 위에서 꽃이 핍니다. 그런데 인간은 머리가 위에 있고 다리(뿌리)가 밑에 있고 팔(가지)가 있고 꽃은 하초에서 핍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거꾸로 된 거예요. 조선유학자들이 식물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식물입장에서는 인간이 거꾸로 된것입니다. 천지의 사건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의 최대의 사건은 "직립"입니다. 직립의 구조는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연결한 사건이죠. 뇌가 발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라구.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의 복합체를 인간이라고 보는 것은 동양학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부분을 魂이라고 하고 땅에서 온 것을 魄이라고 하죠. 그래서 魂魄이라는 말을 쓰죠. 魂魄이 하나로 되어 있는 사태를 우리는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魂魄이 complete하게 분리가 되면 "죽음"이에요. 정신이 나간 것을 魂이 나갔다고 하죠. 잠깐 분리되어 魄만 남아있고 魂은 살짝 나갔다가 들어왔다는 얘기다. 땅만 남아 있고 하늘이 나갔다 온 것이죠. 사람이 죽으면 魂은 자기 고향인 하늘로 가고 魄은 자기 고향인 땅으로 간다. 그러니 무덤 속에 남는 것은 魄입니다. 서양의 의학은 시체(魄)해부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魄의 의학이거든요. 인체에 있어서 땅의 구조는 대단히 치밀하게 밝혔지만 하늘의 구조는 밝히고 있지 못 해요. 이것을 자꾸만 형이상학이니 psychosomatic이니 하는 말로는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경락의 문제도 魂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魂魄의 문제는 여러가지 차원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朱子의『朱子語類』에 鬼神章이 있는데 "魂이라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요. 魄이라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동양사람들에게 魂의 작용이라는 것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지요.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으로 말한다면 인간은 동물과 크게 차이가 안질거예요. 기억이라는 것이 detail하게 있지만 미래 예측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획기적인 것이거든요. 우리의 문명(science)이라는 것은 미래 예측에서 나온 것입니다. 과학의 법칙을 발견할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예측(predict)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에게 직립이라는 구조가 결정적입니다.

이제마에게 미래는 하늘에 있고 하늘에 치우친 사람은 태양인의 모델이 되겠죠. 땅은 밑에 있잖아요. 땅이 발달된 사람들은 소음인 형태가 되겠습니다. 하늘이 발달될수록 idealist가 많고 global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땅의 기운이 발달된 사람은 궁둥이가 퍼져 가지고 아기도 잘 낳고 섹스가 발달됩니다. 이런 것이 인간의 유형론의 재미난 typology를 만드는 기준이 될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혈압을 잴 적에 유의해야 될 것은 오른손을 쟀으면 반드시 왼손을 또 재 보세요. 어떤 경우는 래디컬하게 다릅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도 혈압의 밸런스가 굉장히 다를 수 있어요. 인간이 서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한은 上 下의 구분이 없을 수가 없어요.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만 봐도 서 있다가 고개를 숙이면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동양인들이 생각한 인체관이라는 것은 심플한 것같으면서도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제마는 건곤을 혼백의 문제로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坎巽 祿財在他 他在右也에서 祿財는 문명에서 얻은 재화들이죠. 祿은 벼슬이고 財는 돈이죠. 富貴라는 말에서 富는 財이고 貴는 祿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祿財의 문제는 인간 존재의 사회적 측면이죠. 그리고 知行이라는 것은 내가 알고 행동하는 것이죠. 이것은 개인(individual)의 문제죠. 여러분 여기 와서 나하고 공부하고 자기 수행하고 배움을 얻는 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知行은 나에게 있는 거라고 했죠. 祿財는 나로서는 해결이 안되는 것이죠. 나 혼자 돈 벌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祿財는 在他라고 했어요.


富貴而矯奢, 則天理厭之, 而流俗 之.

貧賤而勤苦, 則天理憐之, 而流俗侮之.

一簞食一瓢飮, 處於陋巷之君子, 其知其力,

豈其不及於富貴顯達之疆域而然哉!


부귀하면서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면 천리는 그를 싫어한다. 그러나 인간세의 유속은 그에게 아첨을 한다. 빈천하면서 아주 열심히 고생스런 삶을 살면 천리는 그를 동정을 한다. 그러나 유속은 그를 모멸한다. 밥 한 그릇에 청수 한 그릇을 하며 누항에 사는 군자는 그 앎과 힘이 어찌 부귀현달의 강역을 미치지 못해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겠는가!(앎과 힘이 못 미치어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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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貴(부귀) : 富는 돈인 많은 것(richness), 貴는 지위가 높은 것(nobleness).

貧賤(빈천) : 富의 반대가 貧이고, 貴의 반대가 賤입니다.

憐(련) : sympathize.

一簞食一瓢飮(일단사일표음) : 소박하게 솥쿠리에 밥만 놓고 표주박으로는 떠서 마시는 것, 이

것은 안회의 삶이었습니다.

陋巷(루항) : 누추한 골목, 가난한 삶의 모습.


未來在天天在上也

乾兌

知行在我我在左也 震 太極 坎巽 祿財在他他在右也

坤艮

過去在地地在下也


乾坤彖坎箴之情僞, 我必行欺詐於人之機勢也, 存心戒也.

艮兌震巽箴之情僞, 人必行欺詐於我之機勢也, 守身之戒也.


건곤리감잠에서 말하는 정위는 내가 타인들에게 사기를 칠려고 하는 기세로 (나로부터 타인에게 나가는 방향의 문제다) 내 마음을 어떻게 가꾸냐 하는 존심의 계율이다(내 마음을 어떻게 보존하고 기르느냐 하는 문제이다). 간태진손잠은 정위는 타인들이 나에게 사기를 칠려고 하는 기세로 내 몸을 타인으로부터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계율의 문제다(내가 아무리 정조를 지킨다 해도 타인이 나를 겁탈할 때는 비참하게 당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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彖라는 것은 불이고 坎이라는 것은 물이에요.

情僞(정위) : 여기서 情이라는 것은 진실 僞라는 것은 거짓 이렇게 해석을 하셔도 됩니다.

我∼人 : 我라는 말과 人이라는 말은 대비가 됩니다. 人이라는 것은 동양 고어에서는 반드시 타

인을 말합니다. 나를 뺀 다른 사람이다. 人이라는 말을 요샛말로 man이라고 번역하면

안돼요. 영어로는 others로 번역 하세요.


一身立誠於昊天之下, 而中庸之道行於昊天之下, 乾兌部位所以形於上也.

萬物同胞於大地之上, 而大學之德行於大地之上, 坤艮部位所以形於下也.

整齊知行之術, 其理在左, 而可得之術, 必在於我, 震部位所以形於左也.

平均財祿之權, 其理在右, 而可得之權, 必在於他, 坎巽部位所以形於右也.


하늘 아래에서 일신에 성을 세우는 것은 중용의 도가 호천의 아래에서 행하여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건태부가 위에 드러나고 있는 까닭이다. 인간사회라는 것은 땅(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대학의 덕은 대지 위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곤간부위가 아래에 드러나고 있는 까닭이다. 정돈하고 제가하고 알고 행하는 술은 그 이치가 좌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술은 반드시 나에게 있으므로 리진부위가 좌에 드러나고 있는 까닭이다. 평균하고 재록하는 권세는 그 이치가 우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있는 것이므로 감손부위가 우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좌우는 我와 他의 문제이고 상하는 一身立誠과 萬物同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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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之德 : 대학의 덕이라는 것은 修身齊家治國平天下입니다. 修身齊家治國平

天下라는 것은 사회 군집에서 발생되는 여러 도덕의 문제입니다.

形(형) : 드러난다.

整齊(정제) : 자기 몸을 단정히 하고 제가하는 것, 자기 몸과 관련된 개인적인 일.

平均(평균) : 사회적 균등의 문제.


身有兩用, 誠身敬身也.

心有兩用, 理心利心也.

誠身敬身者, 身之前後也, 誠於乾而敬於坤也.

理心利心者, 心之左右也, 理於 而利於坎也.

擇理未精, 則理亦利也.

擇利得正, 則利亦理也.


몸에는 두가지 쓰임이 있으니 성신이고 경신이다. 마음에는 두가지 쓰임이 있으니 理心이고 利心이다. 誠身敬身하다는 것은 몸의 전후의 문제이고 건에 성하고 곤에 경한 것이다. 理心利心하다는 것은 마음의 좌우를 나타내고 리에 리하고 감에 리한다. 理를 택하는 것이 정미롭지 못하면 理 또한 利가 되는 것이요. 利를 택하는 것이 올바르면 이기적인 利도 또한 天理가 될 수 있는 것이다(천리도 택리가 잘 못되면 이기적인[개인적인] 리고 타락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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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心利心(리심리심) : 理心은 天理를 말하는 것이고 利心은 주로 이기적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易曰: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太極心也, 兩儀心身也, 四象事心身物也.

八卦事有事之終始, 物有物之本末, 心有心之緩急, 身有身之先後.

乾事之始也, 兌事之終也, 坤物之本也, 艮物之末也,

彖心之急圖也, 震心之緩圖也, 坎身之先着也, 巽身之後着也.


주역에 말하기를 "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태극에서는 양의를 생한다. 양의(음양)은 사상을 생하고 사상은 팔괘를 생하고 팔괘는 길흉을 정하고 길흉은 대업을 생한다." 태극은 마음이요 양의는 심신이요 사상은 사심신물이요 팔괘라는 것은 사에는 사의 종시가 있고 물에는 물의 본말이 있고 심에는 심의 완급이 있고 신에는 신의 선후가 있다. 건은 사의 시요 태는 사의 종이요 곤은 물의 본이요 간은 물의 말이요 리는 심의 급도요 진은 심의 완도요 감은 신의 선착이요 손은 신의 후착이다(이제마는 마음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완급[느린것 급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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兩儀(양의) : 陰陽.


太極之心, 中央之心也. 心身之心, 兩儀之心也. 事物心身之心, 四象之心也.

易繫辭之乾坤, 以兩儀之乾坤言之也.

八卦之乾坤, 以八卦之乾坤言之也.

六十四卦之乾坤, 以六十四卦之乾坤言之也.

中央之心, 兩儀之心, 四象之心, 亦類此也.

統而言之, 則六十四卦, 皆太極也.

六十四卦之三十二卦, 皆乾也. 八卦, 皆心也. 不必執一而置疑也.

曰: "然則身之上下爲乾坤, 心之左右爲 坎者, 何耶?"

曰: "身之實理直行, 故有前後而無左右. 心之實理廣 , 故有左右而無前後."

若夫身之左右橫放, 心之上下出沒, 卽私放逸慾之所致也.

非擇乎中庸 允執厥中之上下左右也.


태극의 마음은 중앙의 마음이다. 심신의 심은 양의의 마음이다. 사물심신의 심은 사상의 마음이다(같은 심을 말해도 이렇게 레벨이 다르다. 이것을 하나의 마음으로 얘기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주역의 계사에서 말하는 건곤은 양의의 건곤을 가지고서 건곤을 말한 것이다. 팔괘의 건곤은 팔괘의 건곤을 가지고서 건곤을 말한 것이다. 64괘의 건곤은 64괘의 건곤을 가지고서 건곤을 말한 것이다(같은 건곤이라고 하지만 그 주어진 맥락에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중앙의 심, 양의의 심, 사상의 심도 역시 이것과 같은 것이다(같은 심자를 썼어도 그것이 말하고 있는 context가 다르다). 이것을 다 통괄해서 얘기한다면 64괘가 모두 태극이요. 64괘 중의 32괘가 모두 건이 될 수 있고 8괘가 모두 마음이 될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하나에만 고집해서 의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몸의 상하가 건곤이 되고 마음의 좌우가 리감이 되는 것은 무었이냐? 신의 실제적인이치는 직행이다. 그러므로 전후가 있고 좌우가 없다(몸이라는 것은 앞뒤로 가는 것이다 신이라는 것은 시간입니다). 심의 실제적인 이치는 넓게넓게 옆으로 공간적으로 퍼지는 거다(이제마는 심이라는 것을 공간으로 보고 있어요). 그러므로 좌우가 있고 전후가 없다(몸은 앞뒤로 가고 마음은 좌우를 살펴야 한다). 몸의 좌우가 게처럼 옆으로 가고 심이 상하로 출몰하면 탐욕스런 마음이 사사롭게 발현되는 소치이다. 그것은 택호중용 윤집궐중의 상하좌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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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갈 적에 앞을 보고 가지 게처럼 옆으로 가지는 않아요. 암(cancer)이라는 것이 뭔 줄 아세요? 서양말의 cancer의 어원이 게입니다. 앞뒤로 가지 않고 옆으로 퍼져진다. 길 없이 막 다니면서 꽉꽉 붙어 안떨어집니다. 서울대학 암연구소 뺏지를 보면 게를 그려 놓았어요.

여기서 택호중용 윤집궐중이라는 말은 오늘날 현대의학으로 말한다면 perfect한 homeostasis를 말합니다. homeostasis라는 개념은 몸의 평형상태이다. 이 평형상태를 깨고 자꾸만 상하좌우가 거꾸로 되는 현상, 여기에 인간의 질병이 발현한다. 그러한 경향성은 인간의 臟理와 관련되어서 四象으로 나타납니다.


【 四端論 】


四端論에 사상이 제일 처음 나온 말인데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이해한다 할 적에 사단론의 첫 줄이 다입니다.


人稟臟理, 有四不同.

肺大而肝小者, 名曰: "太陽人." 肝大而肺小者, 名曰: "太陰人."

脾大而腎小者, 名曰: "少陽人." 腎大而脾小者, 名曰: "少陰人."


人趨心慾, 有四不同.

棄禮而放縱者, 名曰: "鄙人." 棄義而偸逸者, 名曰: "懦人."

棄智而飾私者, 名曰: "薄人." 棄仁而極欲者, 名曰: "貪人."


五臟之心, 中央之太極也. 五臟之肺脾肝腎, 四維之四象也.

中央之太極, 聖人之太極, 高出於衆人之太極也.

四維之四象, 聖人之四象, 旁通於衆人之四象也.


太少陰陽之臟局短長, 四不同中, 有一大同, 天理之變化也. 聖人與衆人一同也.

鄙薄貪懦之心地淸濁, 四不同中, 有萬不同, 人欲之 狹也. 聖人與衆人萬殊也.


인간이 품부한 장리에 네가지 다른 것이 있으니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자를 이름하여 "태양인"이라 한다.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자를 이름하여 "태음인"이라 한다.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자를 이름하여 "소양인"이라 한다.

신이 크고 비가 작은 자를 이름하여 "소음인"이라 한다.


인간의 심욕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네가지 다른 것이 있으니

예를 버리고 방종하는 자를 이름하여 "비인"이라 한다.

의를 버리고 투일하는 자를 이름하여 "나인"이라 한다.

지를 버리고 식사하는 자를 이름하여 "박인"이라 한다.

인을 버리고 극욕하는 자를 이름하여 "탐인"이라 한다.


오장 중에서 마음은 중앙의 태극이다. 오장의 폐 비 간 신은 네방향의 네모습이다. 중앙의 태극에 있어서는 성인의 태극이 중인의 태극보다 높게 나타난다.(태극에 있어서 중인과 성인의 차이가 있다. 성인이라고 해서 장기가 다른 것은 아니다) 네방향의 네모습에서 있어서는 성인의 사상이 중인의 사상과 공유되는 것이다.

태소음양의 장기의 국면이 길고 짧은 것은 네가지 다른 네체질을 얘기했지만 그 속에 크게 같은 것이 있으니 천리의 변화라는 것이다(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하늘의 법칙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인과 중인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비박탐나의 심지청탁은 네체질이 다른 중에 또 만가지로 다르니 인욕이 넓고 좁은것이다(사람의 욕심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무형적이래서 천차만별이고 변화무쌍하여 컨트롤하기 어려운데 장기의 문제는 4가지로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여기서는 성인과 중인이 아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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臟理(장리) : 理는 동양에서는 天理를 나타내는 말이에요. 장리라는 말은 여기

서 天理라는 의미가 있어요.

旁通(방통) : 옆으로 통했다, 공유되는 것이다. 인간이나 성인이나 공유되는

것이다.

萬殊(만수) : 아주 다르다.


五行으로 말하면 肺가 金에 속하고 肝이 木에 속하여 金克木하니 서로 相克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가 강하면 하나가 약하다.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엄밀하게 말해서 이제마는 출발이 五行에 관심이 있지 않아요. 인체의 장기의 형상론, 위치와 음양관계에 의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는 유한하다


이 우주에 관해서 literal한 의미에서 무한이란 없어요. 나는 스티븐 호킹을 보면서 한심하게 느끼는 것이 있어요. 그 사람이 우주에 대해서는 기막힌 성공을 하는데 자기 몸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스티븐 호킹의 근무력증은 고칠 수 있어요. 권도원 선생은 스티븐 호킹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을 갖고 있어요. 권선생이 말하기를 金陰체질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의 병은 大腸의 문제입니다. 하여튼 스티븐 호킹이 말한 우주의 스케일은 말할 수 없이 엄청난 것이죠. 그렇지만 그 모양새를 얘기 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무한한 것이 아니죠. 어떤 경우에도 limitation이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지금의 현대 천체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는 엄청나게 커졌죠(인식의 범주). 그리고 그것이 리얼리티에 더 가깝습니다. 내가『기철학산조』에서도 썼지만 우리는 지동설을 영어로 말한다면 heliocentricism이라 하거든요. 지동설에는 땅이 빠집니다. 지동설이라는 것은 태양중심설입니다. 그리고 천동설이라는 것은 geocentricism이죠. 우리는 천동설은 틀리고 지동설을 맞다 이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은 우주는 그렇게 볼 수가 없죠. 현대 물리학에서 지동설이나 천동설이라는 것은 우주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미미한 태양계의 문제죠. 이것을 제3자가 놓고 볼 적에는 천동설이던 지동설이던 비슷비슷한 얘기예요. 우주에 거의 먼지 같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도느냐 하는 것이니까 그 먼지 속에서 어떤 것이 이렇게 도느냐 저렇게 도느냐 하는 것은 하느님 입장에서 보면 우스운 얘기다. 사실은 이런 것은 의미가 없어요. 천문학적으로 본다면 둘다 맞아요. 단지 지동설이 항성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더 간단합니다. 천동설도 정확하나 훨씬 복잡해요.

내가 가운데 있고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것을 기술하든 여러분들이 가만히 있고 내가 움직이는 것으로 기술하든 만약 우주에 있어서 일정한 공간의 축이 없다면 기술하는 방식은 같죠. 결국은 당위론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호킹이 거대한 우주를 말해 봐도 우리가 지구를 떠나고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동양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지구를 떠나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하늘을 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예요. 왜냐면 생명의 근원이 땅(지구)에서 나온 것이니까. 동양인들이 생각한 천지라는 것은 사실은 오늘날로 본다면 대기권 정도의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아무리 태양계-은하계-수 없는 galaxy로 넓혀 봐도 마찬가지로 limitation은 있다. 만약 비그뱅이 200억년 전에 생긴 것이라면 빛의 거리가 200억년 가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우주는 너무도 명백한 limitation속에 있는 것이다. 그 limitation을 어디에

설정하나 다 똑같아요. 은하계로 설정을 하든, 태양계로 설정을 하든, 지구 중심으로 설정을 하든, 최소한의 단위인 나라(사회)로 설정을 하든, 인간개체의 내 몸으로 설정하든 똑 같이 limit된 우주라는 것이다.


인체란 우주에서 하나가 크면 하나가 약해진다


나라는 존재자의 우주는 몇 백억년을 사는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정말 하루 살이도 안되는 기껏해야 80년의 우주지만 같은 우주다(limitation이 있다). 유한성(limitation)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氣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죠. 이것은 물리학에서 생물학까지 공통된 것이다. 氣의 총량은 일정한데 그 氣의 총량의 분배 형태가 다른 것이에요. 우주는 유한합니다. 몸도 유한합니다. 그러나 무한성이라는 것은 유한성 속에서 발현되는 기능의 무한성입니다. 예를 들면 장자가 "有涯를 가지고 저 無涯를 따라 갈려고 하니 아! 슬프도다." 이런 말을 하거든요. 인간의 생각이라든지 유애한 인간의 몸에서 발현된 모든 기능은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죠. 그러니까 유애를 가지고 무애를 따라갈려고 하니 얼마나 불쌍하냐! 이런 개탄이 나옵니다.

이 우주에도 혹성이 있고 이러듯이 인간이란 우주에도 혹성이 있고 별도 있겠죠. 은하계들이 여러개 있는데 거기에 간이라는 은하계가 있고 폐라는 은하계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인간이라는 대우주안에 장기는 엄청난 별들의 집합으로 보세요. 거기서 기의 총량은 동일하죠. 그러면 하나가 강하면 반드시 하나는 약하게 되죠. 이것이 대원칙입니다. 서양의학이 너무도 심플한 이런 원리를 무시하고 학문을 한단 말이야. 장기 실체를 정확하게 microcosmic하게 들어가서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는 서양의학이 놀라운 경지에 도달했지만 이렇게 macro한 원칙들을 전혀 안봐요. 병리검사할 적에 간이 큰 사람의 피냐 폐가 큰 사람의 피냐 이런 것은 안볼 것 아니야. 그런데 동양에서는 앞으로 피검사를 해도 체질의학적으로 하면 그렇게 해야 될 것이다. 지금 그것은 소용이 없어요. 피를 분석하는 언어들이 다르니까. 그러니 새로운 메커니즘이 나와야 겠지요. 분명히 생각해 보세요. 인체란 우주에서 하나가 크면 하나가 약해집니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가장 큰 차이


내가 실습을 하는데 벌써 명의로 소문이 나서 큰일이 났어요.『너와 나의 한의학』앞에 보면 이리시 신동에 21세기 호떡이라고 있는데 그 여자가 매일 서 있으니까 띵띵 부었어요. 내가 침을 놓았는데 일주일만에 부기가 쫙 빠졌어요. 그러니까 그 동네에서 소문이 나서 자꾸만 침 놔 달라고 하여 요새 귀찮아요. 어느 정녀가 나한테 왔어요. 그런데 평생 간이 나쁘다. 그래서 30년을 앓고 있는데 죽겠다는 거야. 사실 간이 나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간이 약한 것인지 간이 강한 것인지도 서양의학에서는 말을 안합니다. 간이 나쁘다니까 간이 약하다고만 생각한 것이죠. 내가 맥을 잡아보니 이 여자의 모든 문제는 간이 강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간이 약하다고 그러니까 간에 좋다는 약들을 대개 썼는데 방제학이나 본초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간약(歸經; 肝) 이렇게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약이 간의 function을 강화시키는 것인지 약화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정확히 없어요.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실 이제마는 그런 면에서는 훌륭한 사람인데 감정조차도 이 사람은 어떤 감정은 간이라는 장기에 +가 되고 -가 된다는 감정의 논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마의 획기적인 이론이라고 보거든요.

우리가 간을 가지고 얘기를 해도 그 여자의 경우는 간이 강해서 생기는 문제인데 조개를 먹습니다. 예로부터 조개는 간을 강화시켜 주거든요. 조갯살도 먹고 간에 좋다는 것은 다 했답니다. 그리고 조금만 아프면 포도당 주사를 맞습니다. 그런데 포도당 주사는 태음인에게는 극약입니다. 양의사들은 절대 안믿지만 포도당 쇼크라는 것은 있습니다. 이명복 선생과 같은 의과대학의 원로 교수의 딸에게 집에서 포도당 주사를 놓다가 딸이 죽어버리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명복 선생이 나중에 권도원 선생의 말을 듣고 먹는 것이 다 포도당이 되는데 무슨 말이냐? 그러나 포도당 주사가 인간을 죽일 수 있어요. 불이 났는데 거기에 휘발유를 끼얻는 식이다. 그럴 경우에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상쇄시킬수 있지만 몸이 허약하거나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냥 죽습니다. 그러나 포도당 주사만 놓으면 태양인 같은 반대 체질은 아주 좋아져요. 이것은 모든 체질론의 문제들인데 이것이 무시가 돼요. 내가 그 여자 보고 당신은 간이 커서(강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고 간을 죽여라.


약한 것도 병이요 강한 것도 병이다


이제마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의 총량은 유량(limitation)이 있다. 반드시 제한성이 있어요. 거기서 어느 하나가 강하면 약하게 되기 마련이니까 병이라는 것은 약한 것도 병이요 강한 것도 병이지요. 많은 사람은 강한 것을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의학의 가장 큰 오류입니다. 정상 상태에서 강한 것이 병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약한 경우에 약한 것을 補하는 방법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치면 그 사람 병이 깨끗하게 낫을 수 있겠죠.

20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은 보약에 미쳤어요. 왜 그래요? 한마디로 말해서 못 먹어서입니다. 한의원에는 補藥이라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瀉藥이라는 것이 있어요. 보하면 사하는 것이 있어야지요. 이 우주는 limitation이 되어 있으니까 기를 강화시키면 빼는 것이 있어야지요. 사실 보약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약도 중요합니다. 20년전까지만 해도 한의원에서 사약을 함부로 못썼어요. 왜냐면 워낙 영양이 빈곤한데 사약을 함부로 쓸 수가 있겠어요. 그런 시대에서는 보약이 중심이 되지요. 그러나 요새는 모든 질병이 무슨 문제인줄 아세요? "영양과다예요." 워낙 처먹고 운동을 안하니까. 요새 병들은 대부분 사약을 잘 써야 명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하는 쪽보다는 강한 쪽을 치면 되는 것입니다. 하여튼 몸이라는 우주를 이제마는 장기들 사이의 强弱으로 원칙을 세워서 체질을 논했어요.


【 肺大而肝小者, 名曰: "太陽人" 】


肺라는 것은 하늘이죠. 우리가 공기를 마시면 어디로 들어가요? 肺로 먼저 들어가죠. 공기라는 것이 뭐죠? "하늘입니다." 하늘(공기)이 여러분의 몸에 제일 먼저 닿는 곳은 肺죠. 肺는 오늘날 lung이라는 개념보다는 이제마에게 있어서는 하늘의 개념(어깨 머리 다 포함해서 上焦의 개념)이에요. 사실 이제마가 말한 肺라는 것은 오늘날의 뇌기능까지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肺라는 것은 하늘이에요. 그러면 肝이라는 것은 하늘에 대해서 뭐겠어요? "땅입니다." 肺라는 것은 氣의 문제죠. 肝이라는 것은 血(피)의 문제입니다. 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혈을 저장(肝藏血)하는 기능입니다. 그리고 이제마는 肝이라는 것을 "中下焦"로 보는 것입니다. 직립이란 인간을 생각하면서 보세요. 태양인들은 대개 哀性이 강하고 고집이 강하고 이상주의가 강하면서 괴팍한 사람들이 많고 체형적으로는 어깨가 벌어지고 궁둥이가 좁은 형태다.


【 肝大而肺小者, 名曰: "太陰人" 】


태음인은 피가 발달하고 기가 적은 사람이다. 그러니 하늘보다는 땅적인 면이 많죠. 간대폐소자에게는 똥배 나온 사람이 많습니다. 송일병 선생의 사상의학 책을 보니까 거꾸로 해 놓았던데 사실은 태음인 쪽이 근육형이 많아요. 송일병 선생은 비만형으로 해 놓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이제마의 구도는 肺-脾-肝-腎으로 되어 있어요. 肺가 上焦이고 腎이 下焦이고 脾 肝이 中焦입니다. 中焦에서도 上 下로 나누고 肺 脾를 묶어서 上焦로 보고 肝 腎을묶어서 下焦로 봅니다. 그래서 脾는 中上焦가 되고 肝은 中下焦가 됩니다. 그러니까 肺와 肝이 짝이 되고 脾와 腎이 짝이 됩니다. 陰陽으로 인체를 이분하면 상극관계로 되어 있어요. 肺라는 것은 金이고 肝이라는 것은 木이죠. 脾라는 것은 중앙 土이고 腎이라는 것은 水입니다.


【 脾大而腎小者, 名曰: "少陽人" 】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사람은 소화기 계통이 발달된 사람이죠. 한의학에서 비장이라는 것은 분명히 spleen이 아니고 pancreas입니다. 오늘날 spleen이라는 것은 피나 임파구를 처리하는 곳이죠. 우리는 spleen이라는 장기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과거의 脾臟이 낮을 비(卑)자가 쓰여 있다고 해서 자기들이 몰랐던 spleen에 배속을 시키고 높을 췌자를 써 가지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pancreas를 膵臟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비장이라는 것은 pancreas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서양의학을 받으면서 사전을 만들 적에 편찬과정에서 비장을 spleen에 배속시켰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 이전의 모든 脾는 pancreas입니다. 동의보감을 보시면 위장 밑을 받치고 있습니다. 비장은 pancreas로 지라(spleen)가 아닙니다. 일본사람들이 번역 과정에서 만든 조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腎이라는 것은 복강 내에 있는 것이 아니죠. 배를 갈라봐도 신장은 없어요. peritoneum을 다 떼어내면 척추 앞에 있죠. 양쪽에 있고 豆모양이에요. 오늘날로 말하면 "콩팥"이 아니라 둘 다 똑같으니 "콩콩"이라고 해야지요. 왜 콩팥이라고 하냐면 동양사람들은 콩과 팥의 function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신을 요새로 말하면 피를 걸러내는 기관이죠. 걸러내고 노폐물은 방광을 거쳐 소변으로 나가는 거죠. 동양사람들은 腎이라는 것을 피의 필터링 기관으로 생각했다기 보다는 소위 생식기능, 종족 번식과 관련된 모든 기능을 신장에 배속시켰습니다. 신이라는 것은 땅이지요. 인간은 꽃이 땅쪽에서 피는 것 아닙니까. 여기가 인간의 생명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신은 先天之氣의 집합으로 봅니다. 신하고 비가 연결되는 것은 일리가 있죠.

인체라는 우주에서 input이 있고 output이 있다면 input이라는 것에 대표적인 것이 하나는 콧구멍이고 하나는 입구멍입니다. 코로 들어가는 것은 하늘이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땅이 들어가는 것이죠. 땅에서 나온 곡식(음식)을 먹고사는 것이다. 입으로는 땅을 먹고 코로는 하늘을 먹는 거예요. 그래서 코와 입이 일차적으로 믹스되는 곳이 脾죠. 脾를 중앙 土로 봅니다. 모든 火는 어디서 생기는 거예요? 태양에서 오는 것이죠. 인간은 36℃라는 火를 유지해야 됩니다. 그것은 유지시키기 위해서 피는 circulation 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피를 circulation시켜서 에너지를 유지시키는 기본적인 태양에 해당되는 것이 뭐예요? "당연히 심장이죠." 심장이란 놈처럼 우리 몸에서 열심히 죽을 때까지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심장은 24시간을 일할 뿐만 아니라 몇 십년을 일해도 지치지 않아요. 바로 태양이란 말이야! 태양만이 유일하게 지치지 않고 빛을 발하는데 마찬가지로 심장은 火(태양)이죠. 氣의 근원으로 말한다면 心火도 중요하지만 중앙 土가 중요합니다. 土(脾)가 강해야만 모든 것이 잘 돌아갑니다. 한의학적으로 말하면 脾는 後天之氣이고 心은 先天之氣입니다.


【 脾大而腎小者, 名曰: "少陽人" 】


밥 잘 먹고 소화 잘 시키는 사람이 색욕이 적어요. 대개 밥을 안 먹고 삐질 삐질 하는 사람이 섹스가 강합니다. 같은 쉰밥을 먹었는데 어떤 여자는 좋다고 하고, 조금 먹어도 그대로 질질 싸는 경우가 있죠. 이것은 소양인과 소음인의 차이입니다. 소위 말해서 "비위가 좋은 새끼다."라고 하면 비위가 좋은 새끼는 土氣가 강한 사람으로 소화력이 강하며 욕을 먹어도 잘 소화하니 비위가 좋은 것입니다. 이것은 동양에서는 엄연한 의학입니다. 대개 비위가 강한 사람은 비위가 좋습니다. 소화 잘 시키는 사람은 웬만하면 짜증 안내지요. 비위 좋은 사람들이 소위 소양인이다. 내 느낌으로는 소양인들의 피부는 야들야들합니다. 피부를 잡으면 껍질이 얇게 잡혀요. 태음인은 껍질이 두껍게 잡힙니다. 여자들의 경우는 살결이 흰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색욕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수녀는 대부분 소양인이 많습니다.


【 腎大而脾小者, 名曰: "少陰人" 】


대개 섹스가 강한 사람은 下焦(궁둥이)가 발달된 사람이죠. 그렇지만 몸 전체의 느낌은 초라해요. 대개 술집 여자들은 소음인들이 많습니다. 술을 먹어도 소음인들은 체질적으로 견디어요. 태양인이나 태음인 같은 사람은 견디기 어려워요. 금방 병이 나서 그 직업을 못해요. 술집 여자들은 섹스가 강하고 술이 강하나 소화가 잘 안되니까 밥은 잘 안먹습니다.


火라는 것은 인체에 있어서 무형적인 것이다


오행으로 말하면 肺 脾 肝 腎 心으로 5개인데 肺 脾 肝 腎에서는 心이 빠졌죠. 이제마는 心이라는 것을 다른 차원으로 놓은 것입니다. 격치고의 다이어그램에서 가운데에 太極이 있었죠. 바로 이 太極이 이제마에게는 중앙 土가 아니라 心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肺 脾 肝 腎이 사방으로 퍼져 있는 구조이다. 이제마가 한 얘기는 아니지만 火라는 것은 인체에 있어서는 무형적인 것이죠. 예를 들면 원자폭탄하고 원자로를 생각하면 됩니다. 원자폭탄이란 것은 뭐냐? 일시적으로 뻥 터트려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파괴력을 일시에 터트리지 않고 야금야금 쓰는 것이 원자로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불이 한꺼번에 뻥나면 이 우주는 파괴되어 죽는 것입니다. 야금야금 이 열을 쓰는 것이 효소작용들이죠. 간이라는 것은 불(글리코겐)을 저장했다가 조금조금 보내는 것이죠. 그래서 인체가 피곤할 때는 간에 저장되었던 영양분을 내보내는 것

이죠. 어떤 의미로는 불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인체에 있어서 불이라는 개념은 무형적인 것이고 모든 장기에 들어갑니다. 肺 脾 肝 腎에서 불이 제일 없는 것이 뭐겠어요? 물이죠. 물이 제일 불이 적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金이겠죠. 그 다음에 木이 되겠고 土는 불이 많다고 볼 수 있겠죠. 어떤 의미로 火라는 것을 무형의 에너지의 근원으로 보고 4臟의 기를 논한 것이다.

내가 뉴스메이커에 불은 내리고 물은 올려라 그런 글을 썼죠. 불의 특징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炎上) 것이죠. 인체도 똑같죠. 화가 치밀어 올라 죽겠다. 불이라는 것은 항상 위로 올라가나 물이라는 것은 항상 위에서 모든 것을 촉촉하게 적시며 내리지요(潤下). 인체에서 물이 밑으로 내려가고 불이 위로 가 있는 상태는 어떻게 됩니까? "죽는 것이죠." 항상 발이 차고 머리가 더운 사람은 오래 못 삽니다. 머리가 차고 발이 더운 사람은 건강하게 살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위치 에너지가 많을수록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직립 인간에서 가장 거대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불을 내리고 물을 올리냐는 문제입니다. 물이 위에 있어야 비가 내리는 것이죠. 물을 위로 올린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자연을 보세요. 계곡에 물이 흐릅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불이 물을 열심히 올려놨기 때문에 흘러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이 天地요 생명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水火의 문제가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제마는 肺 脾 肝 腎의 문제는 天理다 아주 원칙이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으로 봤어요. 그러나 심이라는 것은 무형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로 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리(오장육부)에 있어서는 성인과 범인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성인과 범인의 차이가 있는 것은 주로 마음에 있다고 봤습니다. 鄙 懦 薄 貪人은 太陽人 太陰人 少陽人 少陰人과 일치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太陽人 太陰人 少陽人 少陰人은 臟理를 근거로 해서 나눈 인간의 유형이고, 鄙 懦 薄 貪人은 인간의 心慾의 형태를 가지고 나눈 것이기 때문에 이 양자를 같은 차원에서 사상하는 사람들이 묶을려고 하면 안됩니다.



【 性命論 】


-1-

天機有四, 一曰地方, 二曰人倫, 三曰世會, 四曰天時.

人事有四, 一曰居處, 二曰黨與, 三曰交遇, 四曰事務.

耳聽天時, 目視世會, 鼻嗅人倫, 口味地方.

天時極蕩也, 世會極大也, 人倫極廣也, 口味極邈也.

肺達事務, 脾合交遇, 肝立黨與, 腎定居處.

事務克修也, 交遇克成也, 黨與克整也, 居處克治也.

稟有籌策, 臆有經綸, 臍有行檢, 腹有度量.

籌策不可驕也, 經綸不可矜也, 行檢不可伐也, 度量不可 也.

頭有識見, 肩有威義, 腰有才幹, 臀有方略.

識見必無奪也, 威義必無侈也, 才幹必無懶也, 方略必無竊也.


천기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방이요, 둘은 인륜이요, 셋은 세회요, 넷은 천시이다.

인사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거처요, 둘은 당여요, 셋은 교우요, 넷은 사무이다.

귀로는 천시를 듣고, 눈으로는 세회를 보고, 코로는 인륜을 맡고, 입으로는 지방을 맛본다.

천시는 극히 넓은 것이요, 세회는 극히 큰 것이요, 인륜은 극히 넓은 것이요, 지방은 극히 묘연한 것이다.

폐가 발달된 사람은 인간세의 일들을 다루는 능력이 발달되고, 비가 발달된 사람은 교우가 원만하고, 간이 발달된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사회생활을 잘 하고, 신이 발달된 사람은 거처가 분명하다.

사무는 잘 닦아야 되고, 교우는 잘 이루어야 되고, 당여는 잘 통합(정돈)해야 되고, 거처는 잘 다스려야 된다.

함에는 주책이 있고, 억에는 경륜이 있고, 제에는 행검이 있고, 복에는 도량이 있다.

주책은 너무 교만해서는 안되고, 경륜은 너무 긍지를 가져도 안되고, 행검은 너무 뻗대도 안되고, 도량은 너무 과장해도 안된다.

머리에는 식견이 있고, 어깨에는 위의가 있고, 허리에는 재간이 있고, 궁둥이에는 방략이 있다. 식견은 반드시 탈함이 없어야 하고, 위의는 반드시 사치스러움이 없어야 하고, 재간은 반드시 나태함이 없어야 하고, 방략은 반드시 비밀스럽게 도둑질함이 없어야 된다.


-2-

耳目鼻口, 觀於天也.

肺脾肝腎, 立於人也.

稟臆臍腹, 行其知也.

頭肩腰臀, 行其行也.

天時大同也, 事務各立也, 世會大同也, 交遇各立也.

人倫大同也, 黨與各立也, 地方大同也, 居處各立也.

籌策博通也, 識見獨行也, 經綸博通也, 威義獨行也.

行檢博通也, 才幹獨行也, 度量博通也, 方略獨行也.

大同者天也, 各立者人也, 博通者性也, 獨行者命也.


이목비구는 하늘의 기운을 받고,

폐비간신은 인간됨의 본질을 구성하고,

함억제복은 끊임없이 알려 하는 것이고,

두견요둔은 끊임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천시는 크게 같고, 사무는 제각기 서 있고, 세회는 크게 같고, 교우는 제각기 서 있고,

인륜은 크게 같고 당여는 제각기 서 있고, 지방은 크게 같고, 거처는 제각기 서 있다.

주책은 넓게 통하고, 식견은 자기 홀로 행하고, 경륜은 넓게 통하고, 위의는 자기 홀로 행하고,

행검은 넓게 통하고, 재간은 자기 홀로 행하고, 도량은 넓게 통하고, 방략은 자기 홀로 행한다.


-3-

耳好善聲, 目好善色, 鼻好善嗅, 口好善味.

善聲順耳也, 善色順目也, 善嗅順鼻也, 善味順口也.

肺惡惡聲, 脾惡惡色, 肝惡惡嗅, 腎惡惡味.

惡聲逆肺也, 惡色逆脾也, 惡嗅逆肝也, 惡味逆腎也.

稟有驕心, 臆有矜心, 臍有伐心, 腹有嚜心.

驕心驕意也, 矜心矜慮也, 伐心伐操也, 嚜心嚜志也.

頭有擅心, 肩有侈心, 腰有懶心, 臀有慾心.

擅心奪利也, 侈心自尊也, 懶心自卑也, 欲心竊物也.


귀는 좋은 소리를 좋아하고, 눈은 좋은 색을 좋아하고, 코는 좋은 냄새를 좋아하고, 입은 좋은 맛을 좋아한다.

좋은 소리는 귀에 순하고, 좋은 색은 눈에 순하고, 좋은 냄새는 코에 순하고, 좋은 맛은 입에 순한다.

폐는 싫은 소리를 싫어하고, 비는 싫은 색깔을 싫어하고, 간은 싫은 냄새를 싫어하고, 신은 싫은 맛을 싫어한다.

싫은 소리는 폐에 역하고, 싫은 색깔은 비에 역하고, 싫은 냄새는 간을 역하고, 싫은 맛은 신을 역한다.

함에는 교심이 있고, 억에는 긍심이 있고, 제에는 벌심이 있고, 복에는 과심이다.

교심은 교의요, 긍심은 긍려요, 벌심은 벌조요, 과심은 과지이다.

머리에는 천심이 있고, 어깨에는 치심이 있고, 허리에는 나심이 있고, 궁둥이에는 욕심이 있다. 천심은 탈리요, 치심은 자존이요, 나심은 자비요, 욕심은 절물이다.


-4-

人之耳目鼻口, 好善無雙也.

人之肺脾肝腎, 惡惡無雙也.

人之稟臆臍腹, 邪心無雙也.

人之頭肩腰臀, 怠心無雙也.

堯舜之行仁, 在於五千年前, 而至于今天下之稱善者, 皆曰: "堯舜."

則人之好善, 果無雙也.

桀紂之行暴, 在於四千年前, 而至于今天下之稱惡者, 皆曰: "桀紂."

則人之惡惡, 果無雙也.

以孔子之聖, 三千之徒受敎, 而惟顔子三月不違仁, 其餘, 日月至焉.

而心悅誠服者, 只有七十二人, 則人之邪心, 果無雙也.

以文王之德, 百年而後崩, 未洽於天下, 武王 周公繼之然後大行,

而管叔 蔡叔猶以至親作亂, 則人之怠行, 果無雙也.

耳目鼻口, 人皆可以爲堯舜.

稟臆臍腹, 人皆自不爲堯舜.

肺脾肝腎, 人皆可以爲堯舜.

頭肩腰臀, 人皆自不爲堯舜.


사람의 이목비구는 선을 좋아하는 것이 견줄 데가 없다.

사람의 폐비간신은 오를 싫어하는 것이 견줄 데가 없다.

사람의 함억제복은 사심이 견줄 데가 없다.

사람의 두견요둔은 태심이 견줄 데가 없다.

요순(좋은 사람의 대표)이 인을 행한 것이 5천년 전에 있었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선을 말하는 자들이 다 요순을 말한다.

사람이 선을 좋아하는 것이 과연 견줄 데가 없는 것 아니냐(5천년전에 좋은 사람을 지금도 계속 좋은 놈이라 하고 있으니 인간이 얼마나 좋은 것을 좋아하느냐 이런 얘기다).

걸주의 행폭은 4천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지금까지 싫은 것을 얘기하는 사람은 모두 걸주를 얘기한다(전두환을 얘기할 때도 저 걸주 같은 놈 한다).

그러니 사람이 오를 싫어하는 것이 과연 견줄 데가 없는 것 아니냐(이것은 인간의 움직일 수 없는 측면이다).

공자 같은 성인이 3천명의 제자를 가르쳤는데 오직 안자 한 명만이 3개월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을 뿐이고 그 나머지 2천 999명은 기껏해야 하루나 한달갔다.

그러니 마음속으로 심열하고 성복한 자는 단지 72인에 불과 했으니 인간의 사심이 얼마나 견줄 데가 없는 것이냐(3천 제자중에서 겨우 72제자 낳고 그 중에서 3개월 가는 놈은 안자 하나밖에 없으니 인간이 얼마나 사심으로 가득한 놈이냐).

덕스러운 문왕이 100년을 살다가 죽었는데 천하에 충분히 젖어 들어가지 못했는데 무왕 주공이 이것을 계승한 연후에 크게 행하여졌다.

그러나 관숙 채숙 같은 놈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삼촌인데도 불구하고 난을 일으켰으니 사람의 태행이 얼마나 견줄 데가 없는 것 아니냐.

이목비구는 사람이 모두 요순이 될 수 있고,

함억제목은 사람이 모두 스스로 요순이 될 수 없고,

폐비간신은 사람이 모두 요순이 될 수 있고,

두견요둔은 사람이 모두 스스로 요순이 될 수 없다.


-5-

人之耳目鼻口, 好善之心, 以衆人耳目鼻口論之, 而堯舜未爲加一鞭也.

人之肺脾肝腎, 惡惡之心, 以堯舜肺脾肝腎論之, 而衆人未爲一小鞭也.

人皆可以爲堯舜者, 以此.

人之稟臆臍腹之中, 誣世之心每每隱伏也.

存其心養其性然後, 人皆可以爲堯舜之知也.

人之頭肩腰臀之下, 罔民之心種種暗藏也.

修其身立其命然後, 人皆可以爲堯舜之行也.

人皆自不爲堯舜者, 以此.


사람의 이목비구는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중인의 이목비구를 가지고 말해도 요순이 더 더할게 없다.

사람의 폐비간신은 오를 싫어하는 마음이 요순의 폐비간신을 가지고 말해도 중인이 거기서 더 뺄게 없다.

그래서 사람이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의 함억제복 중에는 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마음이 모든 사람에게 숨어 있다.

그러니 존기심양기성한 연후에 요순의 지에 도달할 수 있다(성인이라고 해서 다를게 없으니 빼고 더할게 없다. 그것은 인간의 현실인데 여기서 말하는 함억제복에는 존기심양기성한 연후에 요순의 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두견요둔하에는 타인들을 망해 먹을 나쁜 마음이 가지가지로 암장되어 있다.

그러니 수기신입기명한 연후에 요순의 행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모두 스스로 요순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6-

耳目鼻口之情, 行路之人, 大同於協義, 故好善也.

好善之實, 極公也. 極公則亦極無私也.

肺脾肝腎之情, 同室之人, 各立於奪利, 故惡惡也.

惡惡之實, 極無私也. 極無私則亦極公也.

稟臆臍腹之中, 自有不息之知, 如切如磋而驕矜伐嚜之私心, 卒然敗之, 則自棄其知而不能博通也

頭肩腰臀之下, 自有不息之行, 赫兮喧兮而奪侈懶竊之慾心, 卒然陷之, 則自棄其行而不能正行也


이목비구의 정은 지나가는 행인일지라도 의로움을 서로 협동하려는 바가 크게 같다. 그러므로 선을 좋아하게 된다.

선을 좋아하는 실내용이 극히 공평한 것이다. 극히 공평하면 역시 극히 무사한 것이다.

폐비간신의 정은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자기들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이목비구의 정은 보편적인 것이고 폐비간신의 정은 개별적인 것이다. 둘 다 요순은 요순인데 보편적 측면과 개별적 측면으로 나뉜다고 했죠). 그러므로 싫은 것을 싫어하게 된다.

싫은 것을 싫어하는 것은 어떤 개별적인(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극히 공평한 장기의 법칙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극히 무사하면 역시 극히 공평한 것이다(사적인 측면으로 보면 안된다).

함억제복 중에는 스스로 부단히 알려고 하는 경향성은 있는데 도덕적인 훈련을 해도 교긍벌과하는 사심이 졸연히 덮치면 그런 앎을 스스로 버리고 박통할 수 없게 된다.

두견요둔하에는 스스로 부단히 행동할려고 하는 경향성은 있는데 갈고 닦고 해도 탈치나절하는 욕심이 졸연히 덮치면 그런 행동을 스스로 버리고 정행할 수 없게 된다(이 양측면은 인간에게 있어서 항상 악으로 빠지게 되는 인간의 조건을 말한 것이죠).


-7-

耳目鼻口, 人皆知也.

稟臆臍腹, 人皆愚也.

肺脾肝腎, 人皆賢也.

頭肩腰臀, 人皆不肖也.

人之耳目鼻口天也, 天知也.

人之肺脾肝腎人也, 人賢也.

我之稟臆臍腹, 我自爲心而未免愚也.

我之免愚, 在我也.

我之頭肩腰臀, 我自爲身而未免不肖也.

我之免不肖, 在我也.


이목비구는 사람이 다 있는 그대로 아는 바이고,

함억제복은 사람이 다 우매한 바이고,

폐비간신은 사람이 다 현명한 바이고,

두견요둔은 사람이 다 불초한 바이다.

사람의 이목비구는 하늘과 같으니 하늘은 있는 그대로 안다.

사람의 폐비간신은 사람과 같으니 사람은 현명하다.

나의 함억제복은 내 스스로가 내 마음을 삼는 것이므로(개인주의적인 것이고 egoistic하다) 우매함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우매함을 면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있다.

나의 두견요둔은 내 스스로가 내 몸을 삼는 것이므로 불초를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불초를 면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있다.


-8-

天生萬民, 性以慧覺.

萬民之生也, 有慧覺則生, 無慧覺則死.

慧覺者, 德之所生也.

天生萬民, 命以資業.

萬民之生也, 有資業則生, 無資業則死.

資業者, 道之所生也.

仁 義 禮 知 忠 孝 友 弟諸般百善, 皆出於慧覺.

士 農 工 商 田 宅 邦 國諸般百用, 皆出於資業.

慧覺, 欲其兼人而有敎也.

資業, 欲其廉己而有功也.

慧覺私小者, 雖有其傑, 巧如曹操而不可爲敎也.

資業橫濫者, 雖有其雄, 猛如秦王而不可爲功也.


하늘이 만민을 낼 적에는 지혜로운 자각이 들 수 있도록 성을 내주었다.

그러나 만민의 삶이라는 것은 혜각이 있으면 사는 것이요 혜각이 없으면 죽는 것이다(질병에 대해서도 질병에 대한 혜각이 있으면 사는 것이요. 혜각이 없으면 죽습니다. 의사가 못 고칩니다).

혜각이라는 것은 덕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하늘이 만민을 낼 적에는 자업으로써 명하였다(혜각만 있어도 못 살잖아요. 자업이라는 것은 인간이 사는 데에 있어서 문명의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말하는 것입니다. 집도 있어야 되고 물자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나 만민의 생이라는 것은 자업이 있으면 생하고 자업이 없으면 죽는 것이다.

자업이라는 것은 도가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혜각이나 자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후천적인 것입니다).

인 의 예 지 충 효 우 제의 모든 좋음은 모두 혜각으로부터 나온다.

사 농 공 상 전 택 방 국의 모든 쓰임은 모두 자업으로부터 나온다(이제마의 철학이 정치 등 모든 것까지 포괄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혜각이라는 것은 반드시 타인과 협동하고 공유한다(share)는 데에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자업이라는 것은 자기가 청렴하고 검약하다는 데에 그 공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혜각이 사소한 자는 비록 걸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교사가 조조와 같으니 가르칠 수가 없는 놈이다(不可爲敎이니까 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보다는 배울게 없다는 의미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자업이 횡람한 자는 비록 영웅호걸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맹렬하기가 진시황 같으니 인간세의 모범이 될 수가 없다.


-9-

好人之善而我亦知善者, 至性之德也.

惡人之惡而我必不行惡者, 正命之道也.

知行積則道德也, 道德成則仁聖也.

道德非他卽知行也.

性命非他卽知行也.


타인의 선함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역시 그 선함을 아는 것이 지성의 덕이다.

타인의 싫어함을 싫어하면서도 내가 반드시 그 싫어함을 행하지 않는 것이 정명의 도이다.

그래서 지행이 쌓여지면 그것이 도덕이요 도덕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바로 인이요 성이다.

도덕은 별개 아니다 그것이 바로 지행이다.

성명은 별개 아니다 그것이 바로 지행이다.


-10-

或曰: "擧知而論性, 可也. 而擧行而論命, 何義耶!"

曰: "命者, 命數也. 善行則命數, 自美也. 惡行則命數, 自惡也. 不待卜筮而可知也."

詩云: "永言配命." 自求多福, 卽此義也.

或曰: "吾子之言, 曰耳聽天時, 目視世會, 鼻嗅人倫, 口味地方, 耳之聽天時, 目之視世會則可也. 而鼻何以嗅人倫, 口何以味地方乎?"

曰: "處於人倫察人外表, 默探各人才行之賢不肖者, 此非嗅耶! 處於地方, 均嘗各處人民生活之地利者, 此非味耶!"

存其心者, 責其心也. 心體之明暗, 雖若自然, 而責之者, 淸. 不責者, 濁.

馬之心覺, 綗於牛者, 馬之責心, 綗於牛也.

鷹之氣勢, 猛於眴者, 鷹之責氣, 猛於眴也.

心體之淸濁, 氣宇之强弱, 在於牛馬眴鷹者, 以理推之而猶然, 況於人乎!

或相倍擨, 或相千萬者, 豈其生而輒得, 茫然不思, 居然自至而然哉!


어떤 자가 나에게 묻기를 "지를 가지고서 성을 논한 것은 알아차리겠노라. 그런데 행을 가지고서 명을 얘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말하기를 "명이라는 것은 명수가 아니냐. 행동을 선하게 하면 명수가 스스로 아름다워질 것이다. 행동을 나쁘게 하면 명수가 스스로 나빠질 것이다. 그러니 점을 안 쳐보고도 다 아는 명수가 아니냐."

시경에 말하기를 "길도다! 그 명이 배한 것이여." 스스로 구하면 복이 많아진다는 것은 바로 이 뜻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한 말 중에 귀로 천시를 듣고 눈으로 세회를 보고 코로 인륜을 맡고 입으로 지방을 맛본다 라고 했는데 귀로 천시를 듣고 눈으로 세회를 보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코로 인륜을 냄새 맡고 입으로 지방을 맛본다고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말하기를 "인간의 동아리에 처해서 사람들의 외표를 살피고 그 사람들의 재행의 현불초를 묵탐하면 이것이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겠는가! 땅에 앉아서 그 지방의 생활에 맞는 특산물, 기후 조건 등 골고루 살필 줄 아는 것이 어찌 이것이 맛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마음을 존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채칙질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몸 때문에 밝고 어두움이 비록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 같지만 내 마음을 책하면 청하게 되고 불책하면 탁하게 된다(후천적인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죠).

말의 마음의 깨달은 바가 소보다는 조금 더 영민한 것은 말이 자기 마음을 책하는 것이 소가 자기 마음을 책하는 것보다 더 영민하기 때문이다.

독수리의 기세가 매에 비해서 맹렬한 것은 독수리가 자기 기를 책하는 것이 매가 자기 기를 책하는 것보다 더 맹렬하기 때문이다.

심체의 청탁과 기우의 강약이 소와 말과 독수리와 매에 있어서도 이치로 추측해 보건대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하물며 사람이 자기 기를 책하고 자기 기를 청하게 하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자들은 서로 2배, 5배하며 어떤 자들은 서로 천배, 만배 차이가 날 수 있다. 어찌 사람이 태어나 곧 얻어서 멍청하게 아무 생각도 안하고 가만히 않아서 스스로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해설 -1-


天機有四, 一曰地方, 二曰人倫, 三曰世會, 四曰天時.

人事有四, 一曰居處, 二曰黨與, 三曰交遇, 四曰事務.

과연 이 말들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마는 격치고 이래로 모든 문장을 써가는 형식이나 사고를 진행하는 형식이 4와 2라는 숫자를 가지고 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먼저 天機와 人事라는 두개의 기둥을 세웠다는 거예요. 그리고 天機를 넷으로 분류했고 人事도 넷으로 분류했죠. 이것이 성명론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핵심입니다. 天機는 하늘의 기운이라고나 할까, 하늘의 moment라고나 할까 번역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天機에는 4가지가 있는데 一曰地方-二曰人倫-三曰世會-四曰天時로 되어 있고, 셋째 줄은 거꾸로 배열이 되어 있죠. 耳聽天時-目視世會-鼻嗅人倫-口味地方으로 되어 있다.

地方이라는 것은 아래쪽에 해당됩니다. 인간의 몸에 있어서 아랫동아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여러분 지금 앉아 있는 곳이 어디죠? "땅에 앉아 있죠." 땅과 닿은 데가 어디입니까? "궁둥이가 닿죠." 그러니까 지방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지방에서 地는 뭔가 땅과 관련이 있고 方이라는 것은 공간 개념과 방향을 나타낼 때도 쓰는데 뭔지 잘 모르겠어요. 人倫은 三綱五倫이고, 一曰地方을 下焦로 본다면 四曰天時는 上焦가 되고 二曰人倫과 三曰世會는 中焦에 들어갑니다. 인체에 있어서 위가 天時가 되고 아래가 地方이 되고 중간이 世會와 人倫이 되는데 여기서 방향성은 어떻게 되겠어요? 天時는 머리를 중심으로 하늘과 관련된 움직임이고 地方은 땅과 관련이 되겠지만 人倫과 世會는 이런 종적인 방향이 아니라 횡적인 방향입니다. 人倫은 인간과의 관계이죠. 그러니 옆으로 관련이 되는 것이죠. 天時-世會-人倫-地方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인체적 구조가 있어요. 그러니까 世會와 人倫은 횡적인 관계로 구조가 되어 있고, 天時와 地方은 종적인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人事에도 마찬가지죠. 一曰居處는 땅쪽으로 下焦이고 四曰事務는 하늘이고 上焦이다. 二曰黨與는 무리를 짓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고, 三曰交遇는 만나고 사귀는 것이다. 事務는 肺가 되고 交遇는 脾가 되고 黨與는 肝이 되고 居處는 腎으로 배속이 됩니다. 그리고 天時는 耳가 되고 世會가 目이 되고 人倫이 脾가 되고 地方이 口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肺와 耳(귀)와 관련이 있고 脾와目(눈)과 관련이 있고 肝이 鼻(코)와 관련이 있고 腎이 口(입)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한의학과 전혀 무관합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한의학에서는 目은 어디와 관련이 있죠? "주로 肝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마는 완전히 독창적인 자기 나름대로의 체계가 있습니다. 耳目鼻口는 天機이고 肺-脾-肝-腎은 人事가 됩니다. 여러분 이해가 갑니까? 성명론의 구조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해석이 안됩니다.


天機 人事

稟 耳 天時 事務 肺 頭

臆 目 世會 交遇 脾 肩

臍 鼻 人倫 黨與 肝 腰

腹 口 地方 居處 腎 臀


耳聽天時-目視世會-鼻嗅人倫-口味地方에서 귀가 듣고, 눈이 보고, 코가 냄새맡고, 입이 맛본다 라는 것은 틀림이 없죠. 이것은 정상적인 기능과 관련지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蕩 大 廣 邈(탕 대 광 막) : 크다는 얘기이고 인체가 대상으로 하는 현상의 거대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居處(거처) : 거처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거처는 성적 기능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수완이 좋고 거처가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克(극) : 잘 극, 착할 선(善)과 똑같습니다. 善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耳-目-鼻-口와 肺-脾-肝-腎이 하나의 짝이 된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稟-臆-臍-腹하고 頭-肩-腰-臀이 또 한 짝이 됩니다. 그리고 耳-目-鼻-口는 稟-臆-臍-腹과 짝이 되고 肺-脾-肝-腎은 頭-肩-腰-臀과 짝이 됩니다. 稟이라는 것은 턱 부위이고, 臆은 가슴 부위이고, 臍는 배꼽 부위이고, 腹은 아랫배(배꼽이하) 부위입니다. 우리 개념으로 肺는 臆이어야 할텐데 이제마에게 폐의 개념은 턱에 있어요. 그리고 脾의 개념은 가슴에 해당되고, 肝의 개념은 배꼽 주변이고, 腎의 개념은 아랫배입니다. 폐에 대한 개념이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lung이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마의 폐라는 개념은 인체에 있어서 하늘적인 세계와 소통하는 기능입니다. 이해가 잘 안가지요. 해괴한 의학 체계라고 내가 처음에 얘기했잖아요. 이 해괴한 의학체계가 소광섭 선생의 수리 모델을 가지고 오히려 설명이 잘 될 수 있는 체계인지 모릅니다. 이제마가 전개하는 방식에서 내용은 극히 비수학적인 것이지만, 사고를 전개하는 방식은 아주 단순한 수학적 논리죠. 수리적 모델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마 나름대로 세계를 보는 통찰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籌策은 우리말로 잘 쓰는데 "주책없다."고 하죠. 주책은 주사알입니다. 주책은 계산하는 능력입니다. 주책이 없다는 것은 계산을 못한다는 것이다. 계산이라는 것은 이성적 능력이죠. 어떤 의미에서 하늘적 세계와 들어맞죠. 그러니까 오늘날의 브레인과 가깝습니다. 서구라파 이성주의는 여기서 말하는 (籌策) 에 들어가요. 서양 사람들이 추구한 세계는 동양말로 하면 주책이에요. 이성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명치시대이후에 만든 말이에요.

經綸은 횡적인 개념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

行檢은 행동의 제약성이다.

檢(검) : 행동의 단속(검속). 度量이 있다고 하면 가슴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마음 씀씀이는 배에서 나오는 거예요.


頭有識見은 오늘날 봐도 맞죠. 머리에 식견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현대의학적인 발상이 들어가 있어요. 이것은 brain function을 어느 정도 의식한 것 같아요. 肩有威義는 어깨가 딱 벌어지면 위엄이 있죠. 사관학교 생도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모자를 내려쓰고 어깨는 넓어지게 하죠. 그래야 위의가 생기죠. 이것은 어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깡패들 보고 "어깨"라고 하죠. 어깨로 폼을 잡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죠. 腰有才幹, 이것도 맞죠. 허리가 뚱뚱한 사람들은 대개 재주가 없죠. 허리가 가는 사람들이 재주가 있다. 물론 sex하고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臀有方略, 이런 것들이 어렵죠. 방략이라면 지모 지략 같은 것인데 궁둥이가 큰 사람들이 엉큼한 방략들이 많다. 궁둥이가 크고 발달한 사람들이 지모 지략이 많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마의 체계 속에서는 궁둥이가 발달된 사람들이 현실성이 강한 것이에요. 이 구조에서 하늘(상초)로 올라갈수록 idealism이 강하고 하초로 내려갈수록 realism이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이 사회적인 function이 강한 것으로 되어 있죠.


耳目鼻口, 人皆可以爲堯舜.

稟臆臍腹, 人皆自不爲堯舜.

肺脾肝腎, 人皆可以爲堯舜.

頭肩腰臀, 人皆自不爲堯舜.


耳目鼻口, 稟臆臍腹, 肺脾肝腎, 頭肩腰臀 등 이 4개를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 고민스럽지 않습니까? 내가 이것을 굉장히 고민했는데 상당히 깊은 뜻이 있는것 같아요. 여기서 耳目鼻口와 肺脾肝腎은 요순이 될 수가 있고, 稟臆臍腹과 頭肩腰臀은 요순이 될 수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죠. 이제마가 이 문제를 굉장히 고심한 것 같아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에서(맹자도 마찬가지이지만) 괴롭혔던 문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신의 형상으로 창조했으면 인간은 당연히 선해야지요. 그런데 왜 인간이 악(evil)한 짓들을 하느냐? 어떻게 인간의 악이라는 것을 설명하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유치한 질문이나 인류(사상가들)을 괴롭힌 문제 중의 하나예요. 이제마가 고민한 흔적이 있어요. 인간을 선하다고만할 수 있느냐 인간을 악하다고만 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그러니까 요순이될 수 있다(人皆可以爲堯舜)는 것은 뭐예요? 본질이 선하다는 거예요. 人皆自不爲堯舜이라는 것은 스스로 요순이 될 수 없으니 후천적 교육을 통해서 善쪽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것은 굉장히 기발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한 선악의 가능성을 인간의 "몸"에다 봐야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눈을 보고 저 놈 선하다 악하다는 것은 곤란해요. 아무리 악한 놈이라도 이목구비는 그대로 생긴 것이다. 耳目鼻口라는 것은 사물을 인식하는 곳이죠. 거기에 선악이 있을 수가 있겠어요. 그러나 稟臆臍腹, 頭肩腰臀(뽐내고, 어깨에 힘 주고, 계산 굴리고)에서는 선악이 있다는 것이죠. 肺脾肝腎을 놓고 이 폐는 악하다 이런 폐는 선하다 이것은 말할 수 없잖아요. 의사가 살인강도의 폐를 검진할 때 이 사람 폐는 악한 폐다. 이것은 불가능할 것 아니예요. 그러니까 肺脾肝腎에 있어서는 선악을 물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언제나 요순입니다. 그런데 頭肩腰臀에서는 선악이 나타나죠. 요순이 아닌 놈들이 나타납니다. 궁둥이 잘 못 돌리면 곤란하죠. 여자들이 궁둥이 잘 못 돌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있고, 허리 잘 못 돌려 병신되고, 어깨 잘 못 쓰고, 대가리 잘못 굴리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인간의 몸을 놓고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서양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철학이에요. 이런 위대한 철학이 구한말에 조선 땅에서 나왔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이라는 인체에 있어서 선악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이제마의 성명론에서 받은 감명 중의 하나입니다.


해설 -2-


耳目鼻口는 하늘이죠. 레이저를 비추면 하늘에 영상이 나타나잖아요. 그런데 일부분만 떼어서 비추어도 약간 흐릴 뿐이지 똑같은 영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holistic 모델이거든요. holistic 모델로 한다면 耳目鼻口라는 것은 비록 얼굴에 나타나지만 이 얼굴은 얼굴로 끝나는게 아니라 우리 몸 전체를 나타낸다고 봐야겠죠. 그러니까 耳目鼻口라는 것은 인체에서 하늘을 받는 것이죠. 식물은 뿌리가 땅에 있고 열매(가지)가 하늘에 있지만 인간은 머리(뿌리)가 하늘로 가고 꽃이 땅쪽에서 피죠. 인간은 머리에서 하늘의 기운을 받습니다. 行其知也에서 知는 뒤에 가면 不息之知이라고 했습니다. 不息이라는 것은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行其行也는 不息之行이라고 했습니다. 天 人 知 行 이렇게 되죠. 天 人이라는 것은 absolute한 본질적인 것이고 知 行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측면이에요. 그러니까 知 行에는 뭐가 있어요? "선악이 있죠." 知 行에는 요순이 아닌 것이 있는데 天 人에는 요순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 요순이 되는 거죠.

耳와 肺와의 관계에서 天時-事務, 世會-交遇, 人倫-黨與, 地方-居處 이렇게 되겠죠. 그 다음은 籌策-識見, 經綸-威義, 行檢-才幹, 度量-方略 이렇게 짝이 지어지겠죠. 이제마는 어떻게 보냐면, 天時大同也, 事務各立也, 世會大同也, 交遇各立也. 人倫大同也, 黨與各立也, 地方大同也, 居處各立也. 이 짝 중에서도 耳目口鼻는 大同이고 肺脾肝腎은 各立이죠. 무슨 얘기냐면 耳目口鼻는 완벽하게 보편적인데 肺脾肝腎은 各立이라고 했으니까 거기서 바로 四端論으로 발전이 되어 나갑니다. 제각기 서 있는 구조가 다르다는 말이다. 개별적이란 말이죠. 보편성과 구체성입니다. 籌策博通也, 識見獨行也, 經綸博通也, 威義獨行也, 行檢博通也, 才幹獨行也, 度量博通也, 方略獨行也에서 博通은 보편적 구조이고 獨行은 자기 홀로 행하는 것이죠. 개별적이다. 인간이라는 인체에 있어서 보편적인 측면과 개별적 측면으로 나눕니다. 4-2, 4-2라는 구조로 얽혀 있어

요.

天 人이라는 것은 기본이고 性 命은 후천적인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天 人이라는 것은 apriori한 것이고 性命이라는 것은 aposteriori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유교의 성명론과 전혀 다릅니다. 이퇴계에 있어서 성명론이란 뭐죠? 性이라는 것은 先天的인 것으로 仁 義 禮 智의 근본입니다. 이제마에게 있어서 性命이란 後天的인 것으로 인간의 노력의 범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봅니다. 그것이 뒤에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마의 철학은 실학자들과 통한다는 말이 이런 데에서 근거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실학하고도 전혀 다른 거예요. 실학이니 이런 말을 하면 이제마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야! 이제마는 절대 실학자가 아닙니다. 大同者天也, 各立者人也, 博通者性也, 獨行者命也에서 다시 둘로 말한다면 天과 性이 univeral side이고 人과 命이 particular side로 보면 됩니다.


해설 -3-


이목비구는 요순이 될 수 있으므로 귀는 좋은 소리를 좋아하고, 눈은 좋은 색을 좋아하고, 코는 좋은 냄새를 좋아하고, 입은 좋은 맛을 좋아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죠. 그러니까 선하다는 말입니다. 이제마에게 있어서 선이라는 의미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셔야 될 것은 동양 사람들의 善이라는 개념은 이런 것입니다. 만약에 좋은 음식을 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크지 않습니까! 인간 세상의 가치관이 변하겠죠. 여러분들이 대개 맛있는 음식은 맛있어 하잖아요. 이것은 tautology인데 서양 철학하고 아주 다른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나는 맛있다고 하는데 마누라는 그것을 왜 맛있다고 하느냐 이럴 때도 있죠. 이것이 극심해 버리면 음식 장사도 안되겠죠.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공통성이 있죠. 내가 칠판에 분필로 끼익∼ 그으면 괴로운 소리가 나겠죠. 이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없겠죠. "좋은 소리를 좋아한다." 인간에게 이러한 보편성이 없다면 사회적 가치가 성립 안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요순이라는 얘기예요. 좋은 소리를 좋아할 줄 알면 요순이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좋아할 줄 모르니 큰 문제죠. 의학이라는 것은 좋은 소리를 좋아할 수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비틀어지면 "미친놈"이라 하죠. 끼익∼ 하는 소리만 좋아하면 미친놈인데 사실은 미친놈이 아닐 수도 있죠. 그 사람의 청각 구조가 달라지면 그런 것만 좋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와 같이 아까 말한 "黨與"가 안돼요. medicine에 있어서 선악이라는 문제도 같은 문제예요. 암세포가 나쁜 놈이 아니라구! 이 암세포는 워낙 번식력이 강해서 주변에 있는 세포들을 마구 무시해 버립니다. 암세포들은 막 자라므로 주변에 있는 세포들이 암세포 때문에 죽습니다. 암세포 자체는 선악이 없어요.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선악이 규정되는 거예요.

싫은 소리를 싫어하는 것도 선한 것이죠. 요순이죠. 肺는 아까 뭐와 관련지었죠. 肺는 耳(귀)와 관련지었죠. 脾는 目이고, 肝은 鼻이고, 腎은 口와 관련이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될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동양인들에게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선악 개념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꾸만 선악이라는 말이 우리말에도 있지 않느냐 이제마에게 있지 않느냐 하는데 이제마가 말한 선악이라는 개념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선악과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선악이라는 것은 good & evil의 번역이에요. 현대어에서 말하는 선악이라는 것은 good & evil이라는 서양적인 그릇된 전제 속에서 생겨난 개념들입니다. 여러분 서양 사람들은 선악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쉽게 생각해요? "good은 천사이고 evil은 마귀입니다." 선악에 대한 definition이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Principia Ethica}는 G.E. Moore의 대표적인 작입니다. 서구라파 역사의 윤리학의 종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윤리학 책이라고 부르는 책이에요. 이 책을 보면 선악이라는 것을 말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얘기해요.

선악이 도대체 무어냐? 원래가 선악이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동양 사람들은 선악이라는 말이 예로부터 없었고 善에 대해서 不善이라는 말을 썼어요. 不善이라는 말은 뭐예요? 善에 대해서 악을 실체로 파악 안했다는 거예요. 不善이라는 것은 善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죠. 악이 따로 없는 거죠. 惡이라는 것은 美(아름다움)의 반대 개념으로 썼어요. 선악이라는 것은 인간의 몸 철학으로 본다면 궁극적으로 단 두 가지 결론밖에는 없어요. 내몸의 좋은 것이 선이고 내몸의 싫은 것이 악이에요. 그러면 선악이라는 말의 의미 체계는 "좋음 싫음"밖에는 없어요. 이것을 여태까지 모든 학자들이 마치 선악이 있는 것처럼 오해한 것입니다. 동양인들에게는 선악의 아규먼트가 없어요. 단지 "좋음 싫음"이고 그 기준은 내 몸입니다. 동양 사람들에게는 서양이 말하는 evil이라는 악이 없고 惡는 전부 "오"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동양에는 '성악설'이 없고 '성오설'만 있다는 얘기다. 순자의 책을 보면 성오설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인간이 왜 다른 인간이 싫어할 짓을 하느냐에 대한 아규먼트입니다. 순자의 성오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존재론적(ontological) 탐구 논문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 인간이 살면서 다른 사람이 싫어할 짓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예요.

肺惡惡聲에서 악이라는 것이 악일 수 없죠. 나쁜 소리를 싫어한다는 애기죠. 나쁜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오"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로 혐오감이라고 할 때 이 오자를 쓰죠. 그러니까 선오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몸의 상태나 감정을 나타내는 말에 불과하다는 얘기예요. 선악이라는 것이 독립해서 하늘에 천사 악마가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G.E. Moore의 {Principia Ethica}의 내용이에요. G.E. Moore의 [Emotive Theary]는 모든 윤리라는 것은 감정의 발설에 불과한 것이다 라는 얘기예요. 선악은 없는 것이고 단지 기분 나쁜 것이 악(evil)이고 기분 좋은 것이 선(good)이다. 서양에서는 악이라는 것을 실체화시켜야 악의 주인인 악마가 있고 거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존재가 정당화되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존재화 시킬 수 있고 그 존재를 믿게 만들 수 있잖아요. "네 속에 악마가 있나니 그 악마를 죽이기 위해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악마를 쳐 부시게 하라!" 서양의 윤리적 이원주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 아니면 극단적인 방탕주의로 나타납니다. 그런 데에 반해서 동양인들은 그러한 양극단을 겪지 않고 뭔가 조절할려 합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없고 좋고 싫음을 잘 조절해서 살자. 섹스를 여자와 한번 했다고 해서 이 더러운 새끼! 이 더러운 년! 섹스라는 이유가 있고 상황이 있는 것이지 이렇게 될 수는 없어요. 왜 지탄이 되느냐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든지 관련된 사람들에게 뭔가 질투감을 나타낼 뿐아니겠어요. 혼외정사를 했다고 해서 무지막지하게 나쁜놈들은 아니잖아요. 동양 사람들의 윤리 의식에는 그런 것이 없단 말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누가 얼마만큼 좋고 싫게 되었냐 그것 좀 타협하자 이런 애기입니다.


耳目鼻口는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고, 肺脾肝腎은 싫은 것을 싫어하는 것이라서 이것은 요순이다. 그런데 臆臍腹과 頭肩腰臀에서 驕心, 矜心, 伐心, 嚜心, 擅心, 侈心, 懶心, 欲心에는 心이 전부 들어가 있죠. 이것은 心의 세계입니다.


四端論 중에서

太少陰陽之臟局短長, 四不同中, 有一大同, 天理之變化也. 聖人與衆人一同也.

鄙薄貪懦之心地淸濁, 四不同中, 有萬不同, 人欲之簧狹也. 聖人與衆人萬殊也.


肺脾肝腎의 기국 장단은 天理의 변화로 성인과 중인이 다 똑같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鄙薄貪懦의 心地淸濁은 만부동하기 때문에 성인과 중인이 만 가지로 다르다고 했습니다. 인간과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사실은 肺脾肝腎의 기본적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씀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를 보면 驕心, 矜心, 伐心, 嚜心, 擅心, 侈心, 懶心, 欲心 이렇게 되어 있죠. 전부 心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만부동한 행위 형태가 나오고 선오가 갈리게 됩니다.


해설 -4-


洽(흡) : 흡족하다, 젖어 들어간다.

管叔 蔡叔 : 문왕의 아들이 무왕이고 무왕의 형이 주공입니다. 그리고 무왕의 아들이 성왕으로 주공은 성왕의 삼촌이죠. 그런데 관숙 채숙이 주공의 형제들인데 성왕 때에 반란을 일으켰죠. 그래서 잡혀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왕 주공이 계승해서 정치를 잘하는 데도 관숙 채숙 같은 놈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삼촌인데도 불구하고 난을 일으켰으니 사람의 태행이 얼마나 지독한 것이냐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好善, 惡惡, 邪心, 怠心은 뭐입니까? 내가 생각하기엔 모두 인간의 빼놓을 수 없는 측면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할 줄 알면서도 동시에 邪心이 있고 怠心이 있죠. 이제마는 인간의 조건을 4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 싫은 것을 싫어하는 것, 사악한 마음, 태행 등 이 4가지가 인간의 조건으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측면들이라는 것이죠. 인간의 몸에서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면적인 측면을 가지고 철학을 구성할려고 하지 않아요. 성선도 아니고 성악(오)도 아니란 말이죠. 이런 의미에서 재래적인 조선 유학의 논의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心을 자꾸만 특수하게 분화시켜 얘기하고 있다는데 함정이 있어요.


해설 -5-


지금 우리나라 한의학계에서 이 문헌을 내가 본대로 명료하게 분석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마의 성명론의 구조는 전체를 포괄하는 대단한 introduction의 자격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격치고의 일련의 사고가 성명론에서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격치고의 체계를 한군데에 요약해 놓은 위대한 논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설 -6-


관상쟁이가 관상을 제대로 볼려면 함억제복이나 두견요둔을 잘 봐야겠고 의사는 이목비구와 폐비간신을 보는 것입니다. 不息之知와 不息之行은 반드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如切如磋는 {詩經}[衛風]에 있는 瞻彼淇澳라는 시에 나오는 것입니다. 切嗟 磨(절차탁마)를 요새 무슨 의미로 씁니까? "갈고 닦아서 연마한다는 의미로 쓰죠." 시경은 대개 B.C.7세기경을 전후로한 중국의 민요집입니다. 시경의 내용이 그 당시 풍습을 반영한 것인데 그 때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상당히 중국문명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대부분 아주 섹시한(음탕한) 노래들입니다. 그러한 민요의 성격을 유교가 발달되면서 그대로 해석할 길이 없거든요. 그래서 잘 못 해석했어요. 절차탁마 같은 것도 갈고 닦고 연마해서 도덕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切이라는 뜻은 깎은 듯이 磋는 매끄럽게 빠진 듯이 이런 얘기입니다. 이것은 여자가 지나가는 미남을 꼬시기 위해서 그 미남자의 섹시한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에요. 赫兮喧兮도 그 시에 나오는 말입니다, 빛나는 듯이 폼재는 것.


해설 -7-


知(지) : 안다는 것이 아니라 인식한다, 지혜롭게 이 세상을 안다, 있는 그대로 안다, 요순이 된다는 얘기다.


내가 말한 몸철학이죠. 내 몸의 나라는 현상을 내 몸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이죠. 그것은 철저히 내 책임이라는 것이다. 요새 세상에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아요? 병이 나는 것을 병이 나는 환자 본인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료의 가장 큰 문제예요. 병은 나게 되어 있고 내 병은 의사가 고쳐 주는 것이다. 이것이 의료보험을 드는 이유거든요.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의 의학적 지식에 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병을 낫게 하도록 만드는 삶의 구조입니다. 더 크게는 문명의 구조입니다. 거기서 나타나는 병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때도 있어요. 물론 예방 의학의 발전으로 많이 해결이 됐지만 전염병 같은 경우는 특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빈번한 내과병에 있어서는 환자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인체가 낫게 되는 과정도 의사가 낫게 해 주는 법은 없어요. 내 몸의 병은 내 몸이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치료하는 과정을 의사들은 도와주는 것 뿐이죠. 어리석은 것도 내 책임이고 병난 것도 내 책임입니다. 이제마는 의사지만 의사의 본론인 四端論을 들어가기 전의 결론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네 병에 대해서 네가 책임질만한 어떠한 행동방식을 가져라 이것이 성명론이에요. 天人論이 아니죠. 天人과 性命에서 악(오)가 발생하는 쪽이 性命이므로 제목이 性命論이에요. 이것은 인간의 책임권한에 있는 문제부터 다스리고 들어가야 질병이 해결된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성명론이 앞에 나온 것입니다.


해설 -8-


欲其兼人 : 人은 타인, others.

廉(렴) : 수렴한다, 청렴하다, 겸에 대해서 렴을 썼어요. 겸이라는 것은 남들과 공유(share)할려는 방향이고, 렴이라는 것은 절약(economy)하는 방향이다.

慧覺者, 德之所生也 : 번역본을 보니까 전부 거꾸로 했어요. 덕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바의 것이다 하니까 덕이 혜각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거예요. 덕으로부터 혜각이 생겨난다는 문법이 아닙니다.

慧覺私小者, 資業橫濫者 : 혜각사소라는 것은 남들과 많이 share를 해야 되는데 거꾸로 자기 혼자만 감추고, 자업횡람이라는 것은 절약을 해야 되는데 남들에게 자꾸만 뿌려주고 진탕방탕하는 것.


해설 -9-


好人之善而我亦知善者 : 타인이 선한 짓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내가 그 선한 것을 할 줄을 안다.

知行(지행) : 知行合一사상으로 전통적으로 얘기됐던 동양학의 term들입니다. 여기에 도덕이라는 어려운 말이 들어가 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morality의 현대어 번역이라는 그런 도덕 개념은 동양에는 없습니다. 이 도덕이라는 것은 道德經에서 말하고 있는 도덕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 해주세요.


해설 -10-


不待卜筮而可知也 : 인간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라는 굉장히 현대적인 말이죠. 이제마는 굉장히 치열한 실천론자 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어디 인간의 운명이 정해진 것이 있느냐. 인간이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운명이 나오는 것이고,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운명이 나오는 것 아니냐! 이렇게 뻔한 것을 점을 친다고(주역한다고) 하느냐 미친 소리하지 말아라. 아주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내가 동양철학을 한다고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점을 쳐 달래요. 물론 한번도 응한 적은 없습니다만 나 혼자 있을 때는 나에 대한 점은 칩니다. 주자도 쳤고 옛날 유학자들이 점을 쳤습니다. 주역에 점을 치는 법이 있거든요. 우리 유학자들은 그것을 압니다. 그냥 재미로 치는데"엉터리"예요.

永言配命 : 言은 말씀 언자가 아니고 시경에서는 단순한 어기사입니다.

人倫(인륜) : 인간과 인간의 동아리 법칙, 혼자 있을 때는 인륜이 있습니까? 로빈슨 크루스한테는 인륜이 없어요. 倫은 동아리 륜, 묶을 륜.

處於人倫察人外表, 默探各人才行之賢不肖者, 此非嗅耶! 處於地方, 均嘗各處人民生活之地利者,

此非味耶! : 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웃기는 얘기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성을 가지고 내 말을 접근해 와라 하는 구체적인 한 예를 이제마 자신이 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제마가 치열한 사고를 해서 쓴 문장인가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제마의 문장은 4구에 맞추어 적당히 쓴 것으로 압니다.

雖若自然 : 自然은 nature라는 명사로써 자연이라는 말이 아니고 스스로 그러하다는 단순한 형용사입니다.

馬之責心, 綗於牛也 : 자기 마음의 채찍질을 잘 할 줄 알기 때문에 소가 안되고 말이 된 것은 조금 진화론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소도 마음을 책하는 바가 청하게 계속되면 말이 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아규먼트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진화론적 종의 개념이 없는 사람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氣宇(기우) : 기가 깃든다.

猶然(유연) : 그러하거늘.

在於牛馬眴鷹者, 以理推之而猶然, 況於人乎 : 이것은 니이체의 초인 이론 같은 거예요. 니이체가 말하기를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저 원숭이는 사람으로 진화했는데 너희 인간은 왜 초인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런 비슷한 얘기죠. "저 매는 독수리로 자기 기를 다스려서 진화했는데 어찌하여 인간들은 이렇게 추접스러운 비박탐나의 현실에 머물러 있는가!"

倍擨 (배사) : 倍는 2배이고, 擨는 5배를 말한다.

或相倍擨, 或相千萬者 : 인간과 인간의 기력의 차이가 2배도 말 수 있고 5배도 날 수 있고 천배도 날 수 있고 만배도 날 수 있다는 얘기다. 心은 萬不同이라고 했죠.

豈其生而輒得, 茫然不思, 居然自至而然哉 :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뭐가 되겠는가. 인간이 인간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니이체가 얘기한 것처럼 초인으로 진화할 길을 열어야만 인간세의 모든 질병도 해결된다는 얘기다.


내가 고려대학 교수로 있을 적에 이제마 강론을 했어요. 대학원 강론으로 몇년 동안 할 때 읽었는데 그래서 내 책을 보면 새까맣게 써 놓았는데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를 못하고 강의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의과대학 4년 다니면서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그쪽으로 사고를 많이 하니까 요새 이제마가 조금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동의수세보원을 철학계통의 선생님으로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문헌이라고 인정하고 연구한 분이 이을호 선생님 한 분이 있었어요. 이을호 선생님은 원래는 전남대학교에 계시면서 박물관 관장도 하시고 정다산에 관해서는 상당히 선각자로서 우리 철학계에서 이름이 있는 분이지만 철학자로서는 내가 보기에는 대단한 분은 아니예요. 동양철학에 깊은 분은 아니지만 상당히 노력가이시고 훌륭한 분입니다. 이 분이 원래는 철학과 출신이 아니고 서울대학 약학대학 전신 출신이에요. 원래 약사입니다. 이 분이 어렸을 적에 사상하는 사람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사상을 배웠어요. 이제마에게 직접 배운 제자한테 이을호 선생님이 배웠어요. 그래서 평생 이제마에 대한 향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에요. 그래서 철학계에서는 유일하게 책을 쓰셨습니다. 그것이 {四象醫學原論}이라고 홍순용 선생님하고 같이 풀어놓았어요.이을호 선생이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東醫壽世保元}이 풀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저를 만나자고 했어요. 지금 광주에 사시는데 아직도 정정하신 편입니다. 그 분이 얘기하기를 "이제마가 1900년에 죽었는데 죽으면서 얘기하기를 내가 죽고 나서 100년 뒤에나 나를 이해하는 놈이 나올 것이다."하고 돌아가셨는데 이을호 선생이 말하기를 "아마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제마를 이해할 놈은 너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번 가든 호텔에서 단 둘이서 식사를 하면서 오후 내내 장시간 얘기를 했습니다. 이을호 선생이 부탁을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노쇠해서 동의수세보원을 다시 만질 길이 없고 그나마 내가 써 놓은 것이 있으니까(그 책을 주면서) 김박사가 사명을 가지고 이 동의수세보원만은 제대로 밝혀 보라. 내가 보기에는 이제마는 조선유학사의 종지부로 조선유학사는 여기서 완성되는 것인데 아무도 이제마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 철학의 부끄러운 일입니다."



【 四端論 】


-1-


人稟臟理, 有四不同.

肺大而肝小者, 名曰: "太陽人." 肝大而肺小者, 名曰: "太陰人."

脾大而腎小者, 名曰: "少陽人." 腎大而脾小者, 名曰: "少陰人."


人趨心慾, 有四不同.

棄禮而放縱者, 名曰: "鄙人." 棄義而偸逸者, 名曰: "懦人."

棄智而飾私者, 名曰: "薄人." 棄仁而極欲者, 名曰: "貪人."


五臟之心, 中央之太極也. 五臟之肺脾肝腎, 四維之四象也.

中央之太極, 聖人之太極, 高出於衆人之太極也.

四維之四象, 聖人之四象, 旁通於衆人之四象也.


太少陰陽之臟局短長, 四不同中, 有一大同, 天理之變化也. 聖人與衆人一同也.

鄙薄貪懦之心地淸濁, 四不同中, 有萬不同, 人欲之 狹也. 聖人與衆人萬殊也.


인간이 품부한 장리에 네가지 다른 것이 있으니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자를 이름하여 "태양인"이라 한다.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자를 이름하여 "태음인"이라 한다.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자를 이름하여 "소양인"이라 한다.

신이 크고 비가 작은 자를 이름하여 "소음인"이라 한다.


인간의 심욕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네가지 다른 것이 있으니

예를 버리고 방종하는 자를 이름하여 "비인"이라 한다.

의를 버리고 투일하는 자를 이름하여 "나인"이라 한다.

지를 버리고 식사하는 자를 이름하여 "박인"이라 한다.

인을 버리고 극욕하는 자를 이름하여 "탐인"이라 한다.


오장 중에서 마음은 중앙의 태극이다. 오장의 폐 비 간 신은 네방향의 네모습이다.

중앙의 태극에 있어서는 성인의 태극이 중인의 태극보다 높게 나타난다.(태극에 있어서 중인과 성인의 차이가 있다. 성인이라고 해서 장기가 다른 것은 아니다)

네방향의 네모습에서 있어서는 성인의 사상이 중인의 사상과 공유되는 것이다.


태소음양의 장기의 국면이 길고 짧은 것은 네가지 다른 네체질을 얘기했지만 그 속에 크게 같은 것이 있으니 천리의 변화라는 것이다(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하늘의 법칙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인과 중인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비박 탐나의 심지청탁은 네체질이 다른 중에 또 만가지로 다르니 인욕이 넓고 좁은 것이다(사람의 욕심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무형적이래서 천차만별이고 변화무쌍하여 컨트롤하기 어려운데 장기의 문제는 네가지로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여기서는 성인과 중인이 아주 다르다.




해설 -1-


臟理(장리) : 理는 동양에서는 天理를 나타내는 말이에요. 장리라는 말은 여기서 天理라는 의미가 있어요.

趨(추) : 나아간다, 뛰어간다.

旁通(방통) : 옆으로 통했다, 공유되는 것이다. 인간이나 성인이나 공유되는 것이다.

萬殊(만수) : 아주 다르다.


여태까지의 체질의학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외형상의 분류라든지 음양상의 분류였다. 그런데 내(이제마)가 분류한 특징은 장리에 있다고 했죠. 결국 인간의 장기의 이치를 가지고서 인체의 typology를 만들었다는 것이 나의 기발한 점이다 라고 얘기한 것이 있죠. 그것이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은 지난 시간에 인간이라는 body를 유한한 우주로 볼 적에 그 유한한 우주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과 같이 반드시 강한 데가 있으면 약한 데가 있다는 원리에 의해서 이런 大小라는 개념을 썼습니다. 사실 大小라는 개념은 사상의학에서는 실제적으로 morphologycal하게도 적용이 돼요. 권도원 선생님이 말씀한 것이지만 肝大而肺小者라고 하면 실제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간이 크다는 것이거든요. 형태적(morphology)으로도 간이 크다. 심지어는 서울 대학교 암연구소에 있는 서정선 박사에게 쥐의 장기의 대소를 가지고 쥐의 체질을 구분하여 실험을 해볼 수 없느냐는 얘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 장기가 형태적으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요새 수술을 해보니까 일치가 된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 보다는 기철학적으로 얘기를 한다면 여기서는 역시 "活性度"를 말하겠죠. 즉간이라는 장기의 activity가 강하다는 것이다. 大小라는 의미는 양측면에서 분석이 돼야 할 것이다.


【 人稟臟理∼ : 人趨心慾∼ 】


이 두 문장이 댓구를 이루고 있죠. 여기서 臟理하고 心慾은 이원적으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格致藁에서 心 身 物 事로 말한다면 臟理라는 것은 身에 해당되고 心慾은 心에 해당되는 것이죠. 옛날에 心이라는 문제를 잘 이해 못했는데, 역시 이제마는 臟理와 心慾을 어느 정도 이원적으로 보고 있는 패러다임이 있어요.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제마도 주자학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鄙 懦 薄 貪人의 네가지 인간의 typology가 또 나왔는데 이것은 太陽 太陰 少陽 少陰人의 인간 구분과 다른 차원입니다. 나는 옛날에 이 鄙薄貪懦와 太陽 太陰 少陽 少陰을 연결 시킬 수 없느냐! 예를 들면 鄙人이 太陽人 계열이고 懦人이 少陰人 계열이고 薄人이 少陽人 계열이고 貪人이 太陰人 계열 아니냐 이렇게도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은 일단 단절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격치고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마가 완전히 다르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이라는 것은 臟理상의 구분이죠. 心慾상의 구분은 다른 것입니다. 臟理상으로 네가지 인간의 유형이 나오겠고, 心慾상으로 또 다시 네가지 유형이 나올 때 그것은 다른 typology가 될 수 있다는 얘기죠.


【 五臟之心 】


五臟중에서 四臟은 肺脾肝腎으로 人稟臟理로 나간 것이고, 五臟중에서 肺脾肝腎을 뺀 心은 人趨心慾의 네가지 鄙薄貪懦로 나타난 근원의 心입니다. 五臟의 心은 중앙의 태극이고 五臟의 肺脾肝腎은 四維의 四象이다. 四象論이라는 것은 肺脾肝腎의 臟理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앙의 태극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상의학은 어디까지나 臟理를 중심으로 하고 心의 문제는 빠지는 것입니다. 心의 문제는 격치고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나는 이것을 혼동했었는데 요새 체계적으로 보니까 이제마에게 두 측면이 parallelism으로 가고 있다.

장리의 사상으로 말하면 성인이나 중인이 보편이다. 방통이라는 말은 같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성인이 보통사람과 다른 이유는 뭐냐? "오로지 心이 高出이다." 이제마의 사상론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의 보편이 science입니다. 그러나 心의 이론으로 가면 사상의학을 넘어서는(高出) 세계로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인의 세계입니다. 이제마에게 있어서 이런 이원론이 있어요.


【 存天理去人欲 】


주자학이 뭐냐? 그러면 생각하여야 할 두마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天理와 人欲입니다. 주자학의 명제는 人欲을 버리고(去) 天理를 존(存)한다. "存天理去人欲"이 주자학의 대명제입니다. 예를 들면 칸트 철학에서 moral maximum이 있어요. 칸트의 정언 명령의 제1명령이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말고 목적으로 다루라."이다. 이런 식으로 철학의 모든 것이 연역되는 대전제가 있거든요. 주자학의 가장 중요한 것은 "存天理去人欲"입니다. 그래서 천리를 존하고 인욕을 거한다고 할 때 천리는 상당히 형이상학적(metaphysical)인 것이고 인욕은 형이하학적인 것이겠죠. 그러니까 천리는 도덕적인 법칙(性)이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인욕은 인간의 마음(心)이다. 그러므로 천리는 좋은 것이고 인욕은 나쁜 것이다. 우리가 조선조의 문화를 주자학의 문화라고 하는 것은 뭐예요? "인욕을 억누르는 문화죠." 이것이 주자학의 특징이에요. 여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feminist들이 조명하는 조선조의 역사는 去人欲의 문화입니다.

이제마의 기발한 점이 뭐예요? 천리를 뭐로 봤어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천리를 오히려 肺脾肝腎의 장리로 본 것이죠. 천리라는 것이야말로 법칙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science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有一大同을 오늘날의 말로 말하면 현대과학에서 쓰고 있는 uniformity of nature입니다. uniformity of nature라는 것은 무슨 얘기냐면? 뉴튼 물리학의 절대 공간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예요. 똑같은 힘의 벡터를 주어서 떨어졌을 적에 이 공간에서 했을 때와 저 공간에서 했을 때가 다르면 안되죠. 어디서든지 uniform하게 나타나는 것이 자연이라는 절대 시공의 구조입니다. 그것을 uniform하다고 규정한 것이 근대과학의 출발이거든요.


【 臟局短長 】


臟局의 短長의 차이는 있지만 그 不同한 중에서 움직이는 법칙은 보편적인 것이다. 聖人과 衆人이 旁通하는 것이죠. 그런데 차이가 지는 것은 뭐냐? human problem은 사실은 人欲에서 온다는 것이다. 聖人與衆人 一同也는 성인과 중인이 다 똑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얘기죠.


조선역사의 최대 학술논쟁인 四端七情論의 새로운 이해


1. 退溪의 첫 편지


又因士友間, 傳聞所論四端七情之說, 鄙意亦嘗自病其下語之未穩,

逮得 駁, 益知 劉 繆, 卽改之云: 四端之發純理, 故無不善;

七情之發兼氣, 故有善惡, 未知如此下語無病否?


요새 친구들 사이에서 사단칠정설에 관해서 주고받는 얘기들을 듣고 있는데 (정추만이라는 사람의 도해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는 논쟁) 내가 생각할 때는 천명도설의 밑에 써 놓은 말(下語)이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반박을 얻게 되는 데에 이르러서 더 잘 못 됐다는 것을 알아 다시 개량을 해서 말하기를 사단의 발은 순전한 리라서 선하지 않는 것이 없고 칠정의 발은 기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선할 수 있고 오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말의 병폐가 있는지 없는지 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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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端이라는 것은 仁義禮智를 말한 것이고 七情은 喜怒哀樂愛惡欲을 말한 것입니다. 仁義禮智는 요샛말로 하면 인간의 moral nature이고 七情이라는 것은 우리의 감정적 hall을 나타내는 sentiment입니다.




2 高峰의 첫 편지


蓋人心未發則謂之性, 已發則謂之情; 而性則無不善, 情則有善惡.

此乃固然之理也. 但子思 孟子所就以言之者不同,

故有四端 七情之別耳, 非七情之外復有四端也.

今若以爲四端發於理而無不善, 七情發於氣而有善惡, 則是理與氣, 判而爲兩物也


대저 인간의 마음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성이라고 하고 그것이 발현되면 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발현되지 않은 성에 있어서는 무불선이고 정에 있어서는 선오이다. 그러니 이것은 원래가 그런 것 아니냐. 단지 자사와 맹자가 그것이 나아가는 바를 가지고서 말하는 것이 부동하다. 그러므로 사단 칠정의 구별이 있을 뿐이지 칠정 이외의 또 다시 사단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선생이 지금 고쳐 가지고 말하기를 사단은 리에서 발해서 무불선하고 七情은 기에서 발해서 유선오라고 한다면 이것은 리와 기가 완전히 나뉘어져 두물이 되어 버린다(이렇게 되면 리기이원론이 되는 것이죠. 리라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moral nature를 말한 것이고 기라는 것은 인간의 정감의 세계가 되는것이죠).

측은지심도 측은한 마음이 드러난 것 아니예요. 발현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仁之端이라고 했죠. 端이라는 것을 빙산으로 본다면 tip입니다. 첨단할 때 단입니다. 仁의 端으로 나타나는 것이 측은지심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단이라는 것은 仁義禮智예요. 사단이라는 것은 단이고 단이라는 것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죠. 사단칠정논쟁에서 사단이라는 것이 인의예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사단이라는 것은 인의예지가 표출된 감정이죠. 그러니까 기고봉은 사단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발현된 것이다. 그러니 未發의 性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이라도 칠정외로 따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사단과 칠정을 하나로 묶어 보자는 것이죠. 그러나 사단과 칠정을 하나의 칠정이라는 차원에서 묶으면 사단이라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도덕성이 정에 소속되어 버린다. 인간은 감정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그 감정에다가 인간의 도덕성을 맡겨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이퇴계의 입장입니다. 이제마는 天理는 공통이고 人欲이 다르다고 봅니다. 인간의 질병의 문제가 대두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장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부 心慾의 문제거든요.

브로노브스키의 중요한 얘기 중의 하나는 "인간이라는 것은 언어의 노예다." 라고 한다. 개를 보면 병의 발생률이 우리보다 적은 것은 인간과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실연을 해도 대단하게 실연을 하거나 옆에서 놀던 개가 돌아갔다고 해서 나를 배반할 수 있느냐 하고 고민하는 것은 없다. 병의 발생이 기생충이나 식생활로 인한 것은 있지만 개가 암에 걸리는 것은 별로 없거든요. 감정의 범위가 일정하죠. 그런데 인간은 네가 나를 버리고 갔느냐 하며 고민하고 그러다 보면 병이 되는 것이죠.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는 칠정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것이 조선조 유학의 최대의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medicine과 관련지어서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기고봉이 얘기하는 것은 인간의 문제를 칠정의 입장에서 일원화시키자 이원적으로 도덕성을 따로 볼 수 없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컨트롤하는 것은 결국 정을 컨트롤 해야되지 않느냐 이퇴계는 인간에게는 도덕적인 본성이 있으므로 그 도덕적인 본성의 당위성에 의해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입장이 강한 것이고 기고봉은 그럴 필요가 없이 인간에게 발현되는 감정만 컨트롤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蓋性之乍發, 氣不用事, 本然之善得以直遂者, 正孟子所謂四端者也.

此固純是天理所發. 然非能出於七情之外也, 乃七情中發而中節者之苗脈也.


만약 성이 갑자기 발할 때 기가 간섭을 하지 않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선함이 곧 바로 발현되는 것이 맹자가 말한 사단인데(기가 간섭이 된 것이 없이 인간이 가지고 있던 moral nature가 곧 바로 발현되는 것이 사단인데) 이것은 분명히 순전히 천리의 소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칠정의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결국 칠정중에서 발하되 그 발한 것이 제대로 절도에 맞아 떨어질 적에 그러한 식으로 발현되는 묘맥이 소위 말해서 우리가 도덕이라고 하는 것이다(상가라는 상황에서 깔깔대고 웃을 수는 없죠. 그것은 하나의 상황 즉 절(節)이 있다. 그 절에 맞게 슬프게 발현이 되야죠. 어떠한 상황 상황에 감정이 알맞게 발현되면 그것이 도덕이다).


夫理, 氣之主宰也; 氣, 理之材料也.

二者固有分矣, 而其在事物也, 則固混淪不可分開.

但理弱氣强, 理無朕氣無跡, 故其流行發見之際, 不能無過不及之差.

此所以七情之發或善或惡, 而性之本體或有所不能全也.

然其善者乃天命之本然, 惡者乃氣稟之過不及也,

則所謂四端七情者, 初非有二義也.


대저 리라는 것은 기의 주재라고 하는 것이고, 기라는 것은 리의 재료이다. 이 둘은 원래 리기의 분별이 있다. 그러나 사물에 있어서는 실제로 하나로 얽혀 있어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리가 약하고 기가 강하다든지 리가 조짐이 없는데 기가 흔적이 있다든지 하는 그런 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흘러가다가 발현되어 나타날 때에는 과불급이 없을 수는 없다(과불급이 인간에게 있어서 병을 일으키는 것이죠. 칠정의 과불급 상태가 인간의 질병 상태입니다). 그래서 칠정의 발은 혹선하고 혹오한다. 그것은 성의 본체가 온전하게 다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을 수가 있으나 그때에 우리가 말하는 선이라고 하는 것은 천명의 본래의 모습이요. 오라고 말하는 것은 기품의 과불급을 말하는 것 뿐이니 사단칠정이 처음부터 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본래 그러한 모습이 선이고 기가 발현될 적에 너무 지나치거나 불급이 되면 오가 된다. 이제마의 병리론에 가면 바로 기품의 과불급의 문제를 가지고 장리에 나타난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로애락의 과불급이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가지고 인체를 나누었다. 소위 사단칠정론하고 동의수세보원은 하나의 패러다임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學者須知理之不外於氣, 而氣之無過不及自然發見者乃理之本體然也.

而用其力焉, 則庶乎其不差矣.


학자들이 반드시 리가 기밖에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혹자는 저의 기철학을 가리켜서 너는 기고봉의 입장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고봉하고 나는 또 달라요. 그러나 기고봉은 기일원론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처리하고 있어요). 그러한 기가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든지 하는 것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데로 발현되면 그것이 바로 리의 본래 그 모습이다(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일원이고 기가 과불급이 없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야말로 리의 본체다).

성철 스님이 도를 닦는 다는 것은 잡념을 없애고 언어의 노예가 되는 언어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것이 불교의 명제 아닙니까? 언어가 단절된 상태에서 기가 인간 그대로 flow한다. 불교 이론도 medical science를 가지고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퍼펙트한 Healthy State를 열반이라고 하죠.


3. 퇴계의 첫 대답


夫四端情也, 七情亦情也, 均是情也.

何以有四七之異名耶? 來喩所謂"所就以言之者不同"是也.

蓋理之與氣, 本相須而以爲體, 相待以爲用, 故未有無理之氣, 亦未有無氣之理.

然而所就而言之不同, 則亦不容無別.

從古聖賢有論及二者, 何嘗必滾合爲一物而不分別言之耶?


네 말대로 사단도 정이다. 칠정 또한 정이다. 둘 다 정이다. 왜 사단칠정의 이명이 인간세에 나타나 있느냐(감정과 이성이라는 말들이 왜 있느냐)? 편지에서 말씀하신 바 말을 하고자 할 때 그 말의 근거가 되는 그룬트가 문제이다. 대저 리의 기와 더불어 본래 서로 필요로 해서 한 몸이 되는 것이고 서로 기다려서 용이 된다. 그러므로 리가 없는 기가 있을 수 없고 또한 기가 없는 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룬트의 부동함을 말한다면 또한 구분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니 옛날 성현으로부터 이 두가지를 논급을 해 왔는데 하필 지금 와서 두리뭉실 혼합하여 한물로 만들고 나누어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당신은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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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喩(래유) : 편지.

所就以言之者 : 말을 하고자 할 때 그 말의 근거가 되는 것, 그룬트.


至於後世程 張諸子之出, 然後不得已而有氣質之性之論, 亦非求多而立異也.

所指而言者, 在乎稟生之後, 則又不得以本然之性混稱之也.

故愚嘗妄以爲情之有四端 七情之分, 猶性之有本性 氣稟之異也.

然則其於性也, 旣可以理 氣分言之; 至於情, 獨不可以理 氣分言之乎?


후세에 정 장의 제자가 나오는 데에 이르러서 연후에 부득이 기질지성의 논쟁이 있게 되었다(부득이해서 논쟁이 있게 되었다는 말은 기질지성의 론과 본연지성의 이원론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많은 것을 구해서 다른 학설을 세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가리켜서 말하는 바의 것은 생명을 품부받고 난 후에는 본연지성을 가지고서 혼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정에는 사단과 칠정의 분별을 가지고 성에 있어서는 본성과 기품의 다름이 있다고 나는 일찍이 생각했다. 그렇다면 성에 있어서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라는 리와 기를 가지고 분언을 할 수 있다면 왜 정에 이르러서 유독 리와 기를 가지고 분언할 수 없겠는가(성에 있어서도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의 차이를 둔다면 발현되어 있는 정에 있어서도 사단과 칠정의 리와 기의 분언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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程 張諸子之出 : 신유학이라는 패러다임을 주자이전에 만들어간 사람들입니다. 氣質之性이라는 말하고 대비되는 말이 本然之性입니다. 本然之性이라는 말은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moral nature를 말한 것이고 氣質之性은 인간이 후천적으로 습득되어지는 완전히 일치시켜서 봐야 된다는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이제마는 이러한 면을 불철저하게 사고하고 있어요.


惻隱 羞惡 辭讓 是非, 何從而發乎? 發於仁 義 禮 智之性焉爾.

喜 怒 哀 樂 愛 惡 欲, 何從而發乎? 外物觸其形而動於中, 緣境而出焉爾.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어디로부터 발현되는 것인가? 그것은 인 의 예 지의 성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발현되는 것인가? 그것은 외부의 사물이 나의 몸을 촉발시켜서 내 마음속에서 동하게 되면 연경을 따라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조선조 유학자들이 논쟁했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마음이라는 것이 도덕적 자발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조선유학자들이 말하는 칠정이라는 것은 동물과 공통되는 언어입니다. 희로애락은 개에게도 있죠. 화날 때는 월월하고 좋아할 때는 꼬리치고 자기 자식들을 보호하는 것이 있잖습니까? 그런 것은 칠정의 세계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언어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넘어서는 언어를 브로노프스키는 "science"라 하고 이퇴계는 "도덕"이라고 합니다. 생물적인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를 기고봉은 칠정의 레벨에서 다 환원시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이니 science니 주장하지만 결국은 그것은 헛거다.


이제마는 장리는 성인과 방통이라고 했죠. 장리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퇴계라는 사람은 그러한 기고봉의 논리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퇴계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다움이라는 그룬트를 범동물적인 본능적 세계에서 벗어나 따로 확보할려는 노력이에요. 이 논쟁이 조선조의 가장 핵심적인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여태까지 동물적 언어라고 보아 왔던 부분이 사실은 이성적인 brain

science가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더 치밀하고 조직적이다. 이제마는 역시 기고봉이 얘기하고 있는 입장을 철저화시켜 나온 사람이죠.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구조가 아니라 장리의 구조로 환원시켜 장리의 구조속에서 보자. 장리상의 희로애락의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나타나냐 하는 것을 논의해 들어갈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도덕적 문제에 가면 이제마는 또 다시 중앙지태극이라는 심을 따로 설정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이원적 구조가 있고 결국 퇴계적 패러다임을 또 탈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제마가 철저성이 없고 애매하다.



【 과학과 인간 】


과학(science)은 뭐냐?


과학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science를 번역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100년전에 만들어 놓은 신조어예요. 科學이라는 말은 중국의 고전이나 동양어에 원래 없었다고 저는 알고 있어요. 일본 사람들이 말 하나 번역하는데 얼마나 애를 썼는지 여러분이 아셔야 돼요. 지금 freedom이라는 말을 일본 사람들이 自由라는 말로 번역할 때까지 고민한 것을 보면 제일 처음에는 自放이라고도 했다가 放縱이라고도 했다가 自由라는 말로 했어요. 우리가 쓰는 말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써 버리는데 그 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science를 과학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science라는 말은 라틴어의 scientia인데 앎이라는 말이고 요즘의 말로는 知識입니다. science가 뭐냐 라는 물음을 물으면 知識이 되니까 科學은 知識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working definition이 참 좋다고 보는데 우리는 그저 정의(definition) 하나 딱 내려놓으면 요지부동이 되잖아요. 정의에 의해서 흑백이 싹 가려져요. 미국 사람들이 working definition이라는 말을 쓰거든요.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서 잠정적으로 내리는 definition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absolute definition이라는 말은 별로 쓰지 않아요. 오늘 이 강의를 하기 위해서 일단 내려지는 working definition은 과학은 뭐냐? 그것은 science이고 scientia이고 앎이고 知識이다. 그러니까 과학은 지식이다는 working definition을 내릴 수 있잖아요.

여기 많은 분이 계신데 어제 밤에 꿈을 꾸어 알고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앎도 과학이냐!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라는 것은 뭔가? "이것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다." 이것도 working definition입니다. 인류의 오랜 경험을 재정리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다. 이렇게 일단 working definition을 내려놓자. 해가 동쪽에서 아침마다 뜨니까 해는 동쪽에서 뜨는 것이다 라는 지식이 하나의 지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니까 인류의 오랜 경험을 재정리한 것이 지식이다. 이 경험은 누구의 경험이냐? "인류(사람)이다." 과학이라는 것은 뭐냐라는 질문을 해서 어원적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이 뭐냐 라는 질문 없이 과학이 뭐냐 라는 질문에 답변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은 과학이라고 하면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요즘에 쓰는 과학화란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뇌 과학사(Brain Science)를 쓴 매크레인이 최근에 발표한 것을 보면 인간의 머리는 3중구조라는 것이 대강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제일 안에 있는 구조가 파충류 두뇌이고 그 다음에 있는 것이 포유동물이고 제일 바깥쪽이 신피질(neocortex)이 됩니다. 사람이 호모사피엔스가 되는 것은 코(안경)와 이마가 직각인데 이것이 직각이 안되면 사람이 아니죠. 이 각도가 제로이면 곤충입니다. 이 각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고등동물이 되잖아요. 인류학적으로 따지면 호모일렉투스, 호모사피엔스는 뇌 크기입니다. 사람하고 제일 가깝다는 유인원인 원숭이가 400cc 전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1400∼1500cc 정도로 약 3배입니다. Lewismanfood는 사람이 사람되는 데가 이 커진 뇌의 활동에서 모두 나온 것이라고 단적으로 얘기하죠.

과학을 얘기할 때 독일어의 Wi enschaft를 씁니다. Wi en은 앎이고 schaft는 기계의 軸이니까 Wi en에 중점을 두느냐 schaft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과학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Wi en에 중점을 두면 相對論으로 흐를 것이고 schaft에 중점을 두면 客觀論으로 흘러 어떻게 보면 방법론적인 얘기가 될 것이다. Wi en을 대표하는 학자가 있다면 토마스 쿤의『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입니다. 최근에 가장 Wi en 쪽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리차드 로티(Rorty)일 거예요. 구라파 사람들이 철학에서는 미국 것을 앝잡아 봐서 소개를 안하는데 로티의 책은 모조리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schaft 쪽을 보면 객관론적인 것이니까 칼 포파, 포페리언(Popperian) 등이 있어요. 과학론만 하더라도 객관론이냐 주관론이냐 이 싸움이에요. 과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Wien에 중점을 두느냐 schaft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Kuhnian Popperian으로 갈라집니다.

"작금 거론되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한 마디로 상대주의와 객관주의를 넘어서 보자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죠. 윤평중 박사가 쓴 책도 있습니다. Postmodern을 내가 생각할 적에 상대론과 객관론을 넘어 보자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과학의 역사성이다." 歷史性과 時代性은 어떻게 보면 동의어 같은 얘기가 되겠지만 조금 다르죠. History라고 그러느냐 독일어로 Geschichte라고 그러느냐 조금 다르잖아요. History는 관조하는 것이고 Geschiate를 영어로 말하면 happening이죠. History라는 말은 멀리 떨어져서 보는 입장에서 나왔다면 Geschiate는 사건(happening, event)으로 굉장히 다릅니다. 과학의 역사성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사과가 떨어진다. 이것은 물체의 낙하운동인데 희랍 사람들은 사과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얘기했어요. 희랍시대 때에 원소는 몇 개입니까? 土 水 火 空氣가 희랍시대 때의 四元素이죠. 지금은 원소가 42개이고 전이상태까지 포함하면 103개가 되지만 그때는 4개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사과는 흙이라는 원소로 되어 있고, 모든 원소는 자기 고향으로 갈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고 봤거든요. 흙은 고향이 땅이므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집니다. 이것을 요즘에 열역학적으로 봤을 적엔 의미가 있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의 열역학 안정성으로 보면 과학적으로도 논할 수 있으나 어떻든 그때 사람들은 그렇게 봤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 사람입니까? B.C 3세기이죠. 아이작 뉴톤은 언제입니까? 17세기이죠. 이 사이가 몇 년입니까? 2000년간 서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물체 낙하운동의 첨단이론이 물체는 흙으로 되어 있고 흙이라는 원소는 땅으로 갈려는 의지가 있으니까 땅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2000년간을 지배해요. 17세기까지 첨단 과학이론이에요. 그런데 요즘에는 싹 잊어버리고 있잖아요.


이러다가는 과학 만담가가 되겠다


브로노브스키(Jacob Bronowski)가 쓴『인간등정의 발자취』라는 책은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내 아우가 여기 앉아 있지만 이 사람 비슷한 사람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원래 통계학자이고 수학자인데 안하는 것이 없어요. BBC방송국의 프로그램 제작도 하여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하고 시도 굉장히 잘 씁니다. 이 사람이 쓴『The ascent of Man』(인간등정의 발자취)는 1975년에 나오는데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1년간 유지됐다는 책인데, 이 사람이 책을 만드느라고 너무 고생하다가 그 다음 해에 죽었어요. 제가 동경에 있을 적에 BBC방송에서 자기 책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을 봤습니다.

한달전에 방송국에서 현 과학기술처 장관하고 아침시간에 1시간 정도 대담을 했어요. 그것을 하고 나서 얼마지나 또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요전에 아주 잘 봤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뭘 하시고 싶은 말이 많으신 것 같은데 라디오지만 시간을 드릴테니 하고 싶은 소리를 3∼4분씩 매일 해 주셨으면 어떻겠습니까 1주일에 한번씩 녹음하고 가시면 됩니다. 내 생각으로는 정년퇴직도 했고 대중 매체를 통해서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했어요. 그런데 PD가 그저 쉽게만 얘기 해달라는 거예요. 이번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게 학자 이름을 자꾸만 쓰시면 안됩니다. 나도 쉽게 얘기할려고 꽤 고심해서 원고를 써 가느라고 다른 일을 못할 정도인데 PD가 공부를 안하고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게만 얘기해 달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의 병폐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주 쉽게 얘기하느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아주 신경이 쓰여요. 그만 두어야지 이러다가는 과학 만담가가 되겠다. 신문에서 떠드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과학이라면 그저 신기한 것으로 국민들을 선동만 했지 실질적으로 과학의 본질이 뭐라는 것은 전혀 얘기를 안 해줍니다. 과학 그러면 내일 모레 달나라 가는 것이고, 지금 PD같이 그냥 자기들이 알아듣는 것이 과학으로 그것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하학적 개념에서 물리학적 개념으로 바꾸었다


아이작 뉴튼이 정립해 놓은 운동 방정식은 F=ma입니다. F는 힘이고 m은 질량이고 a는 가속도입니다. 이 방정식에 맞는 운동계를 뉴튼의 역학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완전히 방음장치가 잘 된 10Km 상공을 시속 600km로 달리는 점보기안에서 여러분이 강의를 듣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속도의 변화가 오면 몸에 힘을 느끼잖아요. 가속도라는 것은 속도의 변화이니까 빠르게 변화하면 빨라지는 가속도이고 느리게 변화하면 느려지는 가속도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다 적용됩니다. 속도의 변화에다가 무게를 곱한 것이 뉴튼의 힘의 개념이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등은 기하학적인 차원에서 머물죠. 천체를 보고 어떻게 작도를 하면 가장 간단한 작도 속으로 모든 천체의 움직임이 들어 가느냐를 본 사람이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사실은 천동설로 작도하는 것보다는 지동설로 작도하는 것이 훨씬 간단 명료하게 되니까 지동설이 나온 겁니다. 그 사람들은 기하학적인 영역에서 머물렀는데 뉴튼이 기하학적 개념에서 물리학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 뉴튼의 위대한 점입니다. 중력이라는 힘의 개념을 세워 놓고 힘을 수식으로 정식화해서 적용을 시켜보니까 모든 천체운동이 일목요연하게 풀리는 거죠.

4세기부터 14세기까지가 중세기 암흑기죠. 그리고 15세기가 르네상스이고 16세기가 종교개혁이고 17세기가 과학혁명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과학혁명이라는 것을 봐야지 과학혁명이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4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서구 사회에 있어서 종교의 횡포라는 것은 새삼 얘기할 필요 없잖아요. 엊그제 신문에 났어요. 우리나라에서 1년에 교회를 통해서 들어가는 헌금의 액수가 10조원이랍니다. 거기에 1/10만 쓰면 우리나라의 보건사회부의 1년 예산이래요.

다음 번에 소광섭 교수가 오신다고 하는데 그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성 원리의 최첨단 이론가입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교수이고 스티븐 호킹 밑에서 1년간 연구한 분입니다. 상대성 이론에서 보면 중력이라는 것은 천체와 천체 사이를 잇는 시공면의 최단 거리입니다. 이미 절대공간이 있어 그 안에 지구가 들어가 있고 태양이 들어가 있고 우리도 들어가 있는 것이 뉴튼의 3차원의 물리학인데 상대성 원리가 되면 공간이 없어요. 천체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 것이죠. 오늘 강조하고 싶은 점은 뉴튼을 4차원의 시공면에서 보면 천체와 천체, 물건과 물건 사이를 잇는 최단 거리가 중력이에요.

롤스토(Holmes Rolstone)은 작년에 제가 미국에 가서 하루 동안 지내봤습니다. 신학 철학 과학을 두루 섭렵했어요. 이 사람이『과학과 종교』라는 책을 썼습니다. 뭐라고 그랬냐면 롤스톤은 "과학혁명을 설명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같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놓고 희랍시대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뉴튼은 이렇게 설명하고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설명하니 과학혁명은 설명의 혁명이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말 아니예요.

[일단 만유인력과 그에 따르는 운동방정식이 수학적으로 정립된 이후의 영국사회는 완전히 일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매사에 간섭하던 신의 힘은 뉴튼의 운동방정식과 만유인력의 수학적 정식화를 통해서 기계적인 힘으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다. 신은 시계를 만들 때까지만 필요한 존재요 그 이후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소위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이 얘기는 17세기 과학혁명에 대한 결론과 같은 말이다. 알렉산더 포프라는 시인은 뉴튼보다 30세쯤 젊은 사람인데 뉴튼이 죽고 난 다음에 뉴튼의 묘비를 썼는데 거기에 알렉산더 포프의 시가 있어요. 제일 첫 줄이 "하나님이 뉴튼 있으라 하시니 이 세상에 빛이 있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이 세상에 빛이 있었다."에서 앞의 빛이 뉴튼으로 둔갑을 한 것인데 이것은 포프가 만든 것이 아니고 그 당시 런던 시내의 아이들이 고무줄 넘기를 하면서 부르던 동요래요. 그 당시의 런던의 영국 사회에서 뉴튼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어는 정도였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 당시는 하나님을 몽크(신부, 목사)가 콘트롤 하는데 교회에다가 돈을 바치면 죄를 면해줍니다. 면죄부를 팔아먹는 데까지 갔으니 요즘 세상과 같죠. 교회에 헌금 많이 하면 구원 간다. 저도 어느 교회의 장로예요. 장로가 이런 소리하면 안되는데 나는 이 소리는 하고 싶어요. 성철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弔電을 보냈는데 내가 속해 있는 신교는 어느 교단치고 조전을 보냈다는 것을 신문에서 못 봤어요. 이웃이 죽어도 문상가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인데, 나는 성철 스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신문지상에 보면 참 신선하지 않아요. 돌아가셨는데 거기에 애도의 뜻도 펴지 못하는 맹꽁이들, 이것이 한국의 종교의 실상입니다. 나는 거기서 밥 안 얻어먹으니 이런 소리를 저 같은 사람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목사님들이나 신학대학 교수들은 이런 소리하면 쫑겨나니 하고 싶어도 못해요. 루터가 95개의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다가 승복을 벗어제치고 뛰어 내려오면서 종교개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교 목사들이 다시 주워 입죠.

[17세기의 영국에서 개화되었던 과학혁명이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무대가 영국 아닌 구라파의 대륙으로 옮겨간다. 흔히 우리는 18세기를 계몽주의시대 또는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계몽주의라면 우리는 프랑스의 백과사전파를 연상하게되고 산업혁명이라면 영국의 방직산업을 연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속에서 18세기에 인간의 사고구조에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진보라는 개념이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보라는 개념의 역사가 불과 2백년도 못 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튼에 홀려서 영국은 뉴튼으로 정지가 되어요. 그런데 뉴튼의 물리학은 불란서 독일로 와서 발달 해요. 아주 아이러니컬한 것이죠.


동양에는 progress라는 개념은 없고 있다면 progression이 있다


진보라는 개념은 김용옥 박사 때문에 얻은 지식인데 김용옥 박사가 1972년에 대만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참 귀한 분하고 만났어요. 석사논문의 지도교수로 方東美입니다. 대만 대학의 철학과 선생들 보고 임어당이 굉장한 분이죠 했더니 임어당은 저널리스트지 학자가 아닙니다. 方東美 교수에 대해서 그때 들은 소리입니다만 장개석 정권이 대만으로 도망갈 적에 모택동이가 무릎을 치면서 내가 놓친 것이 두개 있다. 하나는 대만에 있는 고궁 박물관이고 하나는 方東美를 못 잡아 둔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분 하고 1시간 대화를 나누었어요. 동양에는 progress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方東美 교수의 말입니다." 동양에는 progress라는 개념은 없고 있다면 progression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시면 progress는 進步이고 progression은 進行이다.

서구 사회에서도 진보라는 개념은 18세기 이후에 생겨요. 그전에는 진보라는 개념은 인류의 머리에 없어요. 이 지구상에 사는 총 인류의 80∼90%가 자기가 태어난 데에서 300마일 밖을 나가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예요. 옛날 사람은 50세만 넘으면 죽을 준비하는데 60살쯤에 살아온 과거를 회상해 보면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남는다면 전염병이 와서 손자들이 죽어 버렸다든지 난리가 나서 온 동네가 휩쓸렸다든지 이런 끔직끔직한 사건만 기억이 되지

좋은 기억은 없다. 그러니 찾는 것은 요순시대이고 기독교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동산, 복지죠. 자꾸 옛날만 그리워하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거든요. 이것은 18세기에는 계몽주의가 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납니다. 뉴튼의 패러다임과 진보가 결부되면서 여기서 나오는 것이 "과학만능주의"라고 보시면 됩니다.

뉴튼의 기본적인 세계관이 왜 우리 머리속에 꽉 박히는가 하면 뉴튼은 우리의 감각세계를 논해요.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3차원의 공간에 대한 역학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 용어가 바로 뉴튼의 물리학에서 쓰는 언어와 같아요. 언어가 같으니까 우리 머리속에 쏙 들어오죠.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나 불확정성의 원리는 우리의 오관으로 감지된 세계를 넘어서는 세계를 논합니다. 1광년만 해도 거리가 얼마입니까 불확정성의 원리에서는 10-8cm, 10-12cm이하 단위이니까 우리 감각을 넘어서죠. 하이젠베르그가 쓴『부분과 전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시면 이런 얘기가 재미있게 쓰여있습니다.


물질과학시대와 생명과학시대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1912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1927년에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가 나오고, 1945년에 원자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다. 이는 物質科學時代에 해당합니다. 1952년에 왓슨과 크릭에 의해서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나오고, 1965년에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 나오고, 1977년에 일리아 프리고진의 비가역열역학은 물리학에서 생명현상까지 다루고 있죠. 1984년에 나온 {혼돈으로부터 질서}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1981년에 로저 스페리의 brain science가 나옵니다. 요즘에 문제가 되는 것은 chaos 패러다임입니다. 여기는 生命科學時代라고 볼 수 있습니다.

物質科學의 시대를 자꾸만 연구해 오다가 1938년에 오토 한이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물질이 뭐냐 하는 것을 규명하다가 핵분열 반응을 발견하죠. 이것이 원자탄으로 둔갑을 합니다. 내 연령이 해방전에 일본 사람들에게 군대에 뽑혀 갈 연령입니다. 나보다 1살 더 많은 분은 싱가포르나 말레지아에서 돌아가신 분이 많을 거예요. 저는 아슬아슬하게 일본군대에 끌려가기 직전에 해방이 되어 안 끌려간 세대입니다. 그리고 해방이 된 뒤에 교회 목사님들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벌을 주셔서 우리를 해방시키니 하나님 만세!"

1970년초에 일본에 교환 교수로 1년 있으면서 하이젠버그의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1945년 8월 7일 아침에 하이젠버그와 폰 바이쯔재커(지금 독일 대통령의 형님)의 대화가 나누어집니다.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만남의 세계가 있는데 그때 쇼킹했어요. 하이젠버그가 말하기를 "인류의 미래를 그린다면 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언론 자유가 있고 인류의 유토피아적인 미래상의 모델이라면 미국인을 그렸는데 그 미국이 다 이긴 전쟁에 원자탄을 투하해서 비무장인 시민을 순간적으로 몇 십만씩 살륙하니 이제는 미국 사람들도 도리 없이 제국주의자라는 소리를 면할 수 없게 됐고 약육강식의 누명을 벗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느냐 이것은 인류를 위해서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미국의 정책 수립자들이 히로시마에 투하하는 것을 결정할 때 이 점을 고려했다면 투하를 안했을 것이다. 인류의 가장 큰 오점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제 와서는 반세기가 지났는데 그 당시 한국의 목사님들의 말은 답답하나 하이젠버그의 말은 길이 남을 말이 되잖아요. 한국의 목사님들은 한국이라는 좁은 부분에 매달려서 그저 하나님 만세만 부르고 앉아 있고 하이젠버그는 세계 전체를 보고서 그런 얘기를 해요. 퀘스트라의 {야누스}라는 책을 보면 첫마디가 "이제는 인류의 기원을 다시 써야 한다. 1945년이 PH 1년이다. 1945년이 인류의 신기원이다. 포스트 히로시마 1년부터 인류는 기원을 다시 생각해야 된다."

뉴튼의 도그마가 생명 세계에 200년 지각해서 들어온 것이 거든요. 우리들이 생명할 적에는 어떤 생각이 있어요. 제가 유기화학 강의를 30년 하면서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니까 유기화학은 좀 가르치는 편이겠죠. 그런데 유기화학 첫 강의 시간에 유기화합물이란 뭐냐를 가르칩니다. 1828년에 네라라는 사람이 무기물에서 요소를 만들었습니다. 생명체에 관한 물질은 유기화합물이고 생명체와 관계가 없는 것이 무기화합물이거든요. 개미를 빨면 개미산이 나오니까 시죠. 그것도 생명체이므로 하나님의 것이니 사람이 터치하면 안된다. 오줌, 똥도 그렇구. 1828년에 네라라는 사람이 가열해서 유리아를 만들거든요. 무기물질을 가지고 요소를 만드니 이때까지의 개념이 뒤집혔죠. 말하자면 유기물질은 터치못하는 것인데 무기물질을 가지고 유기물질을 만들었으니까 이 경계가 부서져버립니다.

왓슨과 크릭은 단세포 생물, 대장균을 가지고 연구한 거예요. 제 아우와 나와는 얘기하는 폼이 비슷한 점이 있죠.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family resemblance라 합니다. 물리화학적인 성질을 가지고 유전 현상을 설명해 보자는 것 아닙니까. 뉴튼의 제1차적인 물리화학적인 성질을 가지고 생명현상을 탐구해 보자 그래서 DNA가 나와요. 이것도 왓슨이 쓴 {이중나선} 이라는 책이 서울대학의 하두곤 교수가 번역했어요. 노벨상을 탄 학자들이 못나게 싸우는 것을 보면 재미나요. 왓슨이 그 책을 썼을 때 자연과학자들이 이것은 내면 안된다는 것을 왓슨이 내버렸어요. 왓슨하고 루이스 폴링하고 싸우는 것을 보면 재미나요. 루이스 폴링이라는 사람을 제가 존경했었는데(노벨상을 두개나 탔는데 하나는 화학상 가지고 타고 하나는 평화상으로 탔다) 그 책을 읽고 정 떨어졌어요(노벨상을 먼저 타려는 암투). DNA는 물리화학적 성질이 지배하는 세계인데 단세포 생물인 대장균 가지고 연구를 했어요. 그런데 다세포 생물로 되니까 안되는 거예요. 단세포 생물에서 했던 것이 맞어들어 가면 좋은데 다세포 생물에서는 안맞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궁지에 몰려요. 1987년도 도네까와 스스무가 면역학으로 노벨상을 타게 됩니다. 다세포에 혁명이 일어나게 되요.

다세포 생물을 모르니까 세포 가위를 가지고 잘라 붙이는데 여기까지는 이미아는 것이고 이것은 다시 배양시켜 보면 여기까지 알던 이외의 성질이 나오면 이것 때문에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DNA재조립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유전자의 미지의 분야를 알기 위해서 생긴 분자 생물학의 연구 방법이에요. 핵분열 반응이 원자탄으로 둔갑하듯이 이것이 유전공학으로 둔갑했어요. 요즘에 유전공학이라면 다들 신기해합니다. "무추" 아시죠? 위는 배추이고 밑에는 무우이다. DNA를 가지고 장난을 해서 만들어 내는데 나는 걱정이에요. 유전공학하는 연구실에 가보면 실험관에 이 세포 저 세포 서로 접붙여서 놓았는데 저것이 쏟아져 나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원자탄이 서울시내에 떨어지면 서울시 인구가 몇백만명 죽고 말겠지만 저것이 흘러나와서 생태학(ecology)적인 균형을 깨트리기 시작하면 무슨 괴물이 나와서 일류가 어떻게 될지 끔직해요. 함석헌 선생님이 노자 강의에서 말하기를 "지성소라는 것이 달리 있어 너희들은 들어오면 안돼,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을 자꾸만 들어갈려고 하니까 그래 너희들 그렇게 들어와 보고 싶으냐. 조금 볼래 하고 열어 봐 주신 것이 원자탄이야!" 안 봐야할 데까지 파고 들어가서 보니 원자탄이에요. 자연과학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학의 윤리학적인 측면을 염두해 두셔야 합니다.

로저 스페리(Roger Sperry)는 좌우반구의 절단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심한 간질병 환자를 치료하는 최후의 수단은 좌반구와 우반구를 갈라 놓는 것이다. 좌반구와 우반구를 절단해 놓으면 처음에는 사람은 한사람인데 두사람 같이 행동한데요. 그런데 오래 동안 관찰해 보니까 언어 중추가 좌반구 쪽에 있으니 좌반구가 손상된 사람은 말은 못하지만 서서히 우반구가 좌반구의 기능까지를 회복해 간다는 것이다. 바퀴가 있으면 바퀴를 구성하는 원료(고무, 철,나무 등)은 일차적인 물리화학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어쩌다가 바퀴가 되면 굴러가는 성질이 나오지 않느냐 이 굴러가는 성질은 바퀴를 구성하고 있는 일차적인 물리화학적인 성질은 아무 데도 없고 제3의 성질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굴러간다는 속에 다 종속되어 버린다. 그러니 이 사람은 이원론이 아니예요. 이때까지의 연구 방법은 자르고 잘라서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최하 단위까지 가서 원인을 찾는 것은 upward causation인데, 굴러가는 성질 밑에 종속이 되니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랄도 여기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downward causation이다. 이런 새로운 Holist-Mentalist를 스페리가 말합니다.

[브로노프스키는 모든 생물은 같은 생물종 사이에서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이에 더하여 또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이 또 하나의 언어가 사고를 위한 언어이며 바로 사고를 위한 언어가 과학이라는 것이다.] 브로노브스키의 {나는 누구인가}란 조그만 책이 있는데 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동양학(자연과학)을 하시는 여러분이 읽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끼리 벌은 벌끼리 개미는 개미끼리 통하는 communication

language를 가지고 있고 사람은 언어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데 그런 같은 생물종 사이에 통하는 언어 이외에 사고(thinking)를 위한 언어가 과학이다. 저는 이 정의가 좋아서 늘 씁니다. 다이슨(Freeman Dyson)의 {무한한 다양성을 위하여}를 강원대학에서 과학철학을 하고 있는 신중섭 박사가 번역을 했습니다. 다이슨은 박사학위가 없는 노벨상급의 물리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