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선생 건강교실/우주원리 자료

장부론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21. 12:43
장부론
이 단원은 이 책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만 다루어 보았다.

「그런 때문에 귀는 반드시 멀리 들어야 하며 눈은 반드시 크게 보아야 하며 코는 반드시 넓게 맡아야 하며 입은 반드시 깊이 맛보아야 한다.」 - 원문 -

멀리까지 듣고 크게 보며 폭넓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구분해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리다.

「폐는 반드시 잘배워야 하고(學) 지라는 반드시 잘 물어야 하며(問),간은 반드시 잘 생각해야 하고(思), 콩팥은 반드시 잘 분별해야 한다(辯).」 - 원문 -

이제마 나름대로의 의학적, 유학적 생각이 담겨있는 글이다.

學 問 思 辯은 중용에 나오는 글이다.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辯之, 篤行之

널리배우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밝게 가려내고 독실 하게 행동하라는 글이다. - <중용 20장> -

이해에는 신(神)이 감추어져 있고
막해(膜海)에는 영(靈)이 감추어져 있고
혈해(血海)에는 혼(魂)이 감추어져 있고
정해(精海)에는 백(魄)이 감추어져 있다.

이해와 신(神)은 태양인과, 막해와 령(靈)은 소양인과, 혈해와 혼(魂)은 태음인과 정해(精海)와 백(魄)은 소음인과 관련이 있다.

먼저 神靈魂魄부터 알아보자

신령혼백 역시 어떤 인간에게든 공통적으로 있고 복합적으로 섞여 작용하고 있다.

우선 이제마가 생각하는 神靈魂魄이란 단어의 개념이 무엇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알수는 없고 이제 사전을 빌어 여러가지 책속의 글자들을 가져와 해석을 시도하여 보겠다.

신(神) : 귀신 신. 영묘할 신
령(靈) : 신령 령, 혼백 령
혼(魂) : 넋 혼
백(魄) : 넋 백

이 정도를 보아서는 도저히 신령혼백의 속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영에 의해 정신, 신체 활동을 일어나게 하는 것을 백(魄), 기(氣)에 붙어있는 신 (神)에 의해서 정신활동을 영위하고 성정과 지식이 함양되게 하는 것을 혼(魂)이라 한다.」 - <한의학과 인체의 신비 황무연> -

독자의 대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을 것이다. 한의학 서적을 보면, 혼(魂)이란 [령(靈) : 신(神)]의 집, 백(魄)이란 육신(肉身)의 집이며, 영에는 혼과 백이 있고 혼은 양, 백은 음으로써 혼은 떠돌아다니고 백은 자리를 지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쯤되면 감을 잡기는 커녕 돌고도는 기호의 장난에 혼란만 더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외에 신(神)이라는 단어는 이미 신기혈정을 설명할때 이미 쓰였었다. 신기혈정은 동물이나 식물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령혼백은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이다.

공자가 말한 음양을 아는 자(사람) 신(神)의 작용을 안다. 할때의 신(神)은 신령혼백(神靈魂魄)에서 쓰이는 신(神)과 의미가 통한다. (정령신앙은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 등에 신령혼백이 있다고 보는 신당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자세한 설명은 조금뒤로 미루고 이해, 막해, 혈해, 정해에 관해서 알아보자

「이해는 신(神)이 모여있는 집이고 막해는 기(氣)가 모여있는 집이며 혈해는 피가 모여있는 집이고 정해는 정이 모여있는 집이라 한다.」 - <장부론> 중 요약 -

신기혈정이 담겨있는 이해, 막해, 혈해, 정해에 각기 신, 령, 혼, 백이 감추어진듯이 간직되어져 있다는 것이 위의 글이다.

이외에 이해, 막해, 혈해, 정해는 각기 폐, 비, 간, 신의 근본이라 한다.

폐, 비, 간, 신은 상초, 중상초, 중하초, 하초의 대표적인 장기이니 이해, 막해, 혈해, 정해는 각기 상초, 중상초, 중하초, 하초의 근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진해(津海)에는 의(意)가 감추어져 있고 고해(膏海)에는 려(慮)가 감추어져 있고 유해(油海)에는 조(操)가 감추어져 있고, 액해(液海)에는 지(志)가 감추어져 있다.」 - 원문 -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감추어 진듯이 깊숙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의려조지(意慮操志)에 대해선 어느정도 설명이 있었지만 좀더 하여 보겠다.

意는 기호자체가 갖고 있는 뜻, 의미하고 있는 바이며 마음과 생각이 무엇인가에 대해 "∼하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志는 "∼하다고 알고 있는것"은 어떻건 그 알고 있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다. 굳게 믿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操는 "∼이다."를 굳게 잡고 있는 것이다. 志와 다른 것은 잘 놓지 못하는 것이다. 혹 잡은채 그대로 있으려는 것이다.

慮는 "∼이다"가 자꾸 "아니다"가 되는 것이다. 또는 이것도 저것도 또 저것도 하며 계속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해, 막해, 혈해, 정해, 진해, 고해, 유해, 액해에 대해서는 이책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

마 네 킹

거리에 있었다.
서늘한 느낌에 돌아보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혈색좋은 얼굴에 무슨 의문을 품기라도 한것처럼
약간 치켜뜬채 검게 뜨고 있는 눈
나는 사랑하는 이의 눈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를 보고 있었다.

어느순간 눈앞이 사라지며
머리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어두운 기억속의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어정쩡하게 허리를 약간 구부린채 다시 떠오는 영상속에 야릇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가 나의 눈길을 잡고 있기나 한 것처럼
나의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를 반복하면서도
나는 고개를 내힘으로는 돌릴수 없을 것 같았다

"끝은 없었다 결코"

그와 나는 먼지 속에 허물어져가는
천년도 더된 사막의 성처럼 누렇게 마주선채
모래바람같은 수많은 시선을 견뎌내고 있었다.

첫단락은 의(意)의 심리, 두번째 단락은 려(慮)의 심리, 세번째 단락은 조(操)의 심리, 네번째 단락은 지(志)의 심리이다.

신령혼백, 의려조지와 태 소음양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좀더 깊게 들어가 보자

태양인은 神은 많으나 魂은 적고 意는 강하나 操는 약하다.
소양인은 靈은 많으나 魄은 적고 慮는 강하나 志는 약하다.
태음인은 魂은 많으나 神은 적고 操는 강하나 意는 약하다.
소음인은 魄은 많으나 靈은 적고 志는 강하나 慮 는 약하다.- 원문 -

원문에는 태양인은 의(意)는 강하나 조(操)는 약하다는 말만 나와있다. 윗글은 앞서의 글을 확대해석 한것이다.

증산도 에서는 신령혼백(神靈魂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에게는 신(神)과 백(魄)이 있어 혼(魂)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 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령(靈)도 되고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 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 <증산도 도전> -

알듯하면서도 감을 잡기가 모호할 것이다. 유클리드 식의 증명과 꽁트식의 실증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직관적인 논리에 바람을 잡는 것처럼 개념을 잡기 힘들것이다. 필자도 그러하다. 이런 것이 시각적 인식과 후각적 인식의 차이이다.

우선 신(神)부터 한번 함께 생각해 보자 .

@ 신(神)

우리 말에 신(神)들린듯 일을 한다느니 노래를 한다느니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神의 쓰임새를 어떠한 경우에 우리는 사용할까. 아마 정신나간 사람처럼 무엇엔가 몰입되어 있을때 그런 말을 할것이다.

신이 내리다. 신이 들렸다하는 무속에서 쓰이는 말은 어떤 경우에 사용할까. 신이 들린 무속인은 맨발로 작두위에서 춤을 추고 미래의 일이나 인간의 앞날을 예언하여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중 정신이 돌아와서는 잘 기억을 못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정신속에 다른사람 특히 과거의 뛰어난 어떤 인물이 들어와 자신의 몸을 빌어 그러한 말을 한다고 한다. 이럴경우 신이 들리기도 한 것이지만 자신의 혼(魂)이 잠시 자리를 비켜 준 것이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정신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신(神)은 우리 민속신앙의 삼신(한인, 한웅, 단군왕검),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나 그리스 신화속의 여러 신들을 말할때도 쓰인다.

이번엔 神자를 파자하여 보겠다.

신(神)이란 示와 申의 合子이다. 시(示)는 하늘에 존재 할 것이라 생각되는 그 어떤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존재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마땅히 높은 곳에 만들어져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할것이다. 申자는 번갯불의 모양에서 나온 글자이다. 마치 어둠속에서 빛이 번쩍할때의 그 경외스러움과 그때 잠시 비추이는 세상의 모습에서 의미를 생각해 보라.

神이란 이 示와 申의 뜻이 합해진 글자이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번개가 번쩍 비출때 저 높은 곳에 보이는 제단처럼 경외스럽고 숭엄한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다.

신(神)을 아는 것이란 어둠속에서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신(神)을 아는 것이란 易을 아는 것이고 음양을 아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이 통한 사람 곧 신통한 사람은 시공과 이치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태양인이 이런 능력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신(神)이 사람마다 있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신(神)에 대한 생각이 이제마가 동의 수세보원을 쓰며 생각하였던 신(神)의 개념과 비슷한지는 확신이 없다.

아마 이제마의 생각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 영(靈)

이번엔 령(靈)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걸은 지령이라는 말이 있다. 풍수지리적인 말로써 훌륭한 인물. 뛰어난 인물은 땅의 기(氣)를 받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조상의 음덕이 자손에까지 미친다는 말은 조상의 령이 후손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동양에서는 특히 한국에서는 전생과 내세에 대해 말하는 것이 별로 어렵게 인식되지는 않을 줄로 믿고 계속 써 보겠다. 현재 당신의 생활 태도나 버릇 생각하는 태도를 보면 전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지금 현세에서의 선행은 독자들의 영을 깨끗하게 한다 할수있다고도 한다.

영은 그런 의미도 가지고 있다.

령(靈)자는 (오랜 가뭄속에)많은 사람들 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무당 -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무당이 아니라 수천년전 제단 위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사장을 상상하기 바람- 의 간절한 마음이나 절박한 심정으로 비가 내리기를 고대하며 신비스런 작용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에서 헤아리기 바란다.

그런데 이럴때 비가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정성을 다해 드린 지성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제사장은 영험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령(靈)에 대한 개념이다.

「신라 31대 신문왕때 동해에는 조그만 산 하나가 동해가에 있는 감은사(感恩寺)를 향해 떠내려왔다. 그 산위에는 한줄기 대나무가 있는데 낮이면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치곤 하였다 한다.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물때는 비를 내리게 하고 비올때는 개며 바람을 재우고 파도가 가라앉았으므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하였다 한다.」 - <삼국유사> 중 -

만파식적은 神스러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파식적을 불면 靈한 기운이 일어났을 것이다.

매우 오래 살아서, 그래서 그 눈치보는 것 하나는 사람못지 않은 동물을 두고 혹 구미호나 천년묵은 지네나 이무기를 두고 "영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등이 오래되어 마치 생각하고 말도하며 초자연적인 힘도 갖고 있다면 靈이 생긴 것이 된다.

靈驗, 靈感도 모두 영의 이러한 개념에서 나온 말들일 것이다.

영이란 지극한 정성과 마음으로 그 원하는바와 자신이 일치되는 것이다.



@ 혼(魂)과 백(魄);

영혼, 혼백 다 그말이 그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단어를 쓸때 좀 구별하여 쓰고 있다. 데미무어가 나온 영화 "사랑과 영혼"을 "사랑과 혼백"이라 하면 좀 괴기스런 기분이 될 것이다.

백(魄)은 기백이 있다느니 할때 쓰이며 씩씩하고 굳센 패기를 말하는 것이고 혼(魂)은 '혼이 나갔다.' 할때 등에 쓰이며 백(魄)이 동적이라면 혼(魂)은 정적인 느낌을 줄것이다.

魂飛魄散(혼비백산 :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졌다)은 어떤 경우에 사용하고 있는지?

글자를 파자해보자. 두글자 모두 鬼를 가지고 있다.

鬼자는 (사람의 머리)와 (사람)와 (나. 스스로)의 합자이며 죽은 사람의 넋이나 뛰어난 재주를 말하는 글자이다.

혼(魂)은 귀(鬼)자에 이르다, 말하다 할때의 云이 합해진 것이고 云자 자체는 구름이 하늘로 솟아나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백(魄)은 鬼자에 깨끗하다, 밝다, 아무것도 없다 할때의 白자가 함께 쓰인 글자이며 白자 글자 자체는 해가 위로 비치는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풀이하여 보면

혼은 사람의 넋이나 정신작용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이고 백은 사람의 넋이나 정신작용이 빛처럼 뻗어나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의 혼(魂)과 백(魄)은 죽음 이후와는 관련이 없다.

혼백이란 죽음이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혼백이 빠져나감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삶이란 혼백(魂魄)이 내 몸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 된다.

혼(魂)과 백(魄) 두글자 모두 우리 글로는 넋이라 하지만 이 같은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기 바란다.

이제 신, 령, 혼, 백을 모두 모아 생각해보자

당신이 무언가를 의심할 때 또는 집중하여 파고들지 못할때 神이 들릴수 없다. 神은 무언가에 미쳐버려야 들릴수 (hear가 아님)있다. 당신의 생각으로 이성으로 무언가를 판단할때 그것은 神이 들린 것이 아니다.

신이 들린다는 것은 당신의 정신대신 무언가 다른 정신이 그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신이 들리다는 것은 필자로써는 확인 할 수 없다. -경험이 없기에- 다만 상상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들린듯 하다"며 어떤 행위를 묘사하곤 할 것이다. "이렇게 쉽게 시가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윤동주의 시의 한 구절이 있다. 옥타비오빠스는 "누군가 내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표현에서 신(神)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기 바란다.

영은 통하는 것이다. 동물이 사람과 통하고 제사장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과 통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향한 당신의 정신과 관념이 그것과 통하는 것이다. 신(神)과 다른것은 당신의 정신을 무언가가 대신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금 향해 있는 것과 당신의 정신이 통하는 것이다.

혼(魂)은 사람의 넋이나 정신작용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상상하라고 하였었다.

분명 신들린 듯한 노래와 혼이담긴 노래는 차이가 있다.

무엇을 보고 그 차이를 구별할까? 그러나 웬만한 사람이라면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혼, 예술혼, 등등 혼은 이럴때 쓰이고 있다.

신(神)이 나의 정신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면 혼(魂)은 안에 꽉 뭉쳐 있는 것이다. 내가 나와 통하는 것이다. 나라를 잃은 백성인 윤동주는 자화상에서 자신의 정체성 즉, 혼(魂) 마저 잃고 방황하는 것이다.

우리말 중에 "얼"이라는 단어가 있다.

얼이 빠졌다. 얼이적다>어리석다, 얼을 차리다할때 쓰인다. "얼"이라는 단어는 신, 령, 혼, 백 모두와 관련이 있지만 굳이 말하여 보면 혼(魂)과 가깝다.

백(魄)이란 사람의 넋이나 정신작용이 빛처럼 뻗어나가는 것이라 했다.

기백을 갖고 있다. 한국남아의 기백을 보였다 등은 씩씩하고 굳센 행동을 보인 것을 두고 말한다.

혼(魂)이 뭉쳐있으면서 풍겨나오는 것이라면

백(魄)은 뻗는 것이다. 빛처럼 비치는 것이다.

피곤한 상태에서도 몸에 힘을 주고 걷는 것 패자이면서도 기가 죽지 않는것 우리 몸의 맥박이 힘차게 뛰는것 바로 백(魄)의 작용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정신 어떤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굳게 가지고자 하는 행위 부족하지만 떳떳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행위등은 모두 백(魄)이 충만한 것이라 할것이다.

분명 백(魄)이 있는 노래와 魂이 담긴 노래도 다르다.

이렇게 신(神), 령(靈), 혼(魂), 백(魄)에 대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과연 이런 말들이 이책에 쓰인(동의 수세보원) 신, 령, 혼, 백과는 어느만큼 의미가 통하는지 아직 모를 것이다. 이제 정의 하겠다.

필자가 생각하는 신은 신들린듯하다. 정신이 나갔다. 할때의 신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영은 영험하다. 영기가 있다. 영감이 좋다.

할때의 영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또 인용된 글과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혼은 민족혼, 예술혼 등 혼이담긴노래, 그림, 사상, 글 등 할때의 혼의 의미로 쓸것이다.

백은 기백이 있다할때의 백의의미로 쓸것이다.

위에 쓴 태양인은 신은 어떻고 혼은 어떻고 하는것은 필자가 그리 쓴것이고 수세보원 원문에 그런글은 없다. 의원론 중에 보면 태양인은 의(意)는 강하나 려(操)는 약하다 라는 말이 단 한줄있다. 이글을 연역하여 이처럼 써놓은 것이다.

우선 태양인에 대해서 부터 알아보자

「태양인은 신(神)은 많으나 혼(魂)은 적고 의(意)는 강하나 조(操) 는 약하다.」

신, 령, 혼, 백은 우리의 정신작용을 말한다. 태양인 역시 신, 령, 혼, 백의 모든 정신작용을 하고 있다. 단 신(神)이 좀 유별나고 혼(魂)이 좀 부족하다 보면 된다. 이는 태양인이 청각적 나반이 뛰어나고 후각적 나반이 부족한 탓도 있다.

신(神)은 정신이 밖에나가 돌아다니는 것이고

혼(魂)은 정신이 자신의 마음 처지를 굳게 잡고 잘 안놓고 있는 것이다.

"신"은 의(意)와 뜻이 통하고 백(魄)은 조(操)와 통한다. 그래서 의(意)가 강하고 조(操)가 약한 태양인을 두고 신(神)은 많고 백(魄)은 약하다 하였다.

농 무

신 경 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 처럼 헤헤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쳐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이 글속의 주인공은 일시적으로 신(神)이 들린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이들이나 와이프를 생각한다면 이럴수 없을 것이다.

(실제 태음인은 이런 행동을 잘하지 않는다. 단 낙정이 깊이 빠져들면 혼과 신이 어우러지며 낙정에 신이 들려버릴수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때 발기(發起, 拔起 : 현대어 밝기, 붉기의 뜻일듯)라는 인물이 있었다. 고국천왕의 동생이었으나 (이부분은 분명 김부식의 오필이 들어있다. 형이라고도 한다. 고국천왕은 아들이 없었다.) 고국천왕이 죽은 후 왕위는 발기에게 넘어올뻔 하다가 고국천왕의 아내 우씨(于氏)의 농간으로 그의 동생 연우에게 넘어갔다. 이에 분노한 발기는 왕궁을 공격하다 실패하자 요동땅을 공손씨에게 바치고 항복하였다. 결국 그는 공손씨에게 군사를 빌어 다시 공격해 왔지만 실패하고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자살했다.

발기는 잠시 분함과 슬픔에 신(神)이 들려 혼이 달아나 있었다 하겠다. 그러다가 자신은 고구려 사람이라는 혼을 되찾고 자살한 것이다.

무언가 일, 사업, 학문, 컴퓨터 등에 매달려 미친 사람모양 파고들 경우가 있을 것이다. 바로 신이 들려 있는 것이다.

누구든 신이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태양인이 숫자도 많고 정도도 심할 것이다.

의(意)는 강하나 조(操)는 약하다도 비슷하다.

뜻, 의지, 하고자 하는 바는 강하나,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약한 것이다.

물론 잘 그만두고 다시 다른 일을 벌이고 하는 것은 소양인이다.

소양인이 이러는 것은 조(操)가 약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志)가 약해서 이다. 분명하게 알고있지 않거나 굳은 믿음이 자꾸 흔들려서, 혹 불안정해서 일 것이다.

태양인의 경우는 별생각이 없이 바뀌는 소양인들과는 달리 의(意)가 바뀌었기에 操가 또 그것을 따라가기도 하고 조(操)가 약해서 의(意)가 쉽사리 바뀔수도 있을 것이다.

- 의(意), 려(慮), 조(操), 지(志) 역시 단어로써는 넷이지만 모두 하나의 마음이다 - 조(操)는 간의 힘에서 의(意)는 폐의 힘에서 나온다.

태양인의 경우 장부의 기(氣)의 흐름이 폐에 의해 주도 되고 이때 간은 가장 종속적인 관계이다. 간이 폐에 종속되어 있듯 정신적으로는 조(操)와 혼(魂)이 의(意)와 신(神)이 이끌려 다니는 격이 되는 것이다.
「소양인은 영(靈)은 많으나 백(魄)은 부족하고 여(慮)는 강하나 지(志)는 약하다.」

영험하다느니, 신령스럽다느니 하는 말에서 靈의 뜻을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떤 무당이 굿이나 푸닥거리등을 통해 한집안 혹 나라의 근심이나 재난을 잘 해소시키거나 제거 시켰을때, 또는 어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신기하도록 잘 알아 맞추고 병을 고칠때, 어떤 점술인이 그 찾아간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정말 잘 알아맞추고 예측할때 보통 그 사람 참 영험하다 할 것이다. (또는 신령스럽다고도 할것이다.)

"령"자는 풍수지리나 불교 에서도 많이 쓰인다.

땅에 영험한 기운이 서려있다든지 그 사람의 주변에 영험한 신이 있다든지 전생에 음덕을 많이 쌓으면 그 전생의 령이 좋아지고 현세에도 그 영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은 동양학에선 흔히 쓰이는 말이다.

소양인이 재간이 많은 것은, 가만있지 못하는 것은 마무리가 안좋은 것은, 때로 지나친 자신감이 튀어나오는 것은 영은 많으나, 백은 약하고 려는 강하나 지는 약해서 일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은 지(志)가 약함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는 평소 미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선 상당히 미각적이다. 이때 이른바 도량이 좋아진다. 이 도량이 좋은 것이 때에 따라서가 아니라 매우 자주 나와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장점이나 강한 것, 우수한것, 능한것 등에는 그런대로 자신감도 있고 그렇기에 완급의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떨어지거나 모자라는 것에서는 과도한 생각이나 행위가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주의하라고도 하였을 것이다.

거북이 두 마리가 길을 가다 부딪쳤다 한다. 토끼가 그 이유를 묻자 거북왈 눈깜짝 할새 일어난 일이라 잘 모르겠더라나 토끼는 느려터진 거북의 행위를 이해 못하겠지만 거북이에게는 실제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대체로 소양인들은 무엇인가 하다 막히면 자신의 의도대로 끈덕지게 찾거나 풀어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도를 강구하거나 그만두는 사람들이다. 무엇인가 하다 막히면 다른 방도를 찾으려 하거나 여러가지 다른 방법론들이 빨리 떠올라서 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타상인들이라고 이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양인이 생각도 행동도 좀 빠른 편일 것이다. 소양인들이 끈덕진 면을 보여줄 경우도 있다. 대체로 자신의 성격의 조절이 어느정도 가능한 사람이거나 피해의식을 갖고 있거나 과도하게 보완하고 있거나 하는 경우일 것이다. 하여간 이럴땐 매우 자신의 생각에 완고하다. (문화론 편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런면은 문화로도 나타난다.)

대체로 소양인들은 신축성이 있고 원칙이나 원리등의 공식적, 규칙적인 관념에 억매임이 적으며 행동이 빠르다. 소양인의 관념의 방향은 거의 내일에 맞춰져있으며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을 하여도 치사랑보다는 내리 사랑이다.

또한 대체적인 소양인들은 호전적이고 우선 대결을 하려하며 뒷마무리가 안좋고 잘가꾸고 정리할 줄을 모른다. 발명을 예로 들면 발명하고 자꾸 새로운 길을 찾을 줄만 알지 발명한 것을 잘 가꾸고 다듬고 보완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점은 소양형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소양인들은 경쟁심이 강하고 과시를 좋아하며 즉흥적인 면이 많고 직감이 좋고 임기응변이 좋다 했는데 그렇기에 앞뒤가 꽉막혀 있거나 갈길을 못찾고 주저하는 경우는 대체로 적은대신 원칙적이지 못하고 임시방편이었던 계획이 수백년을 이어지기도 하고 너무 설쳐대 혼란스럽고 따따부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또한 강하게 태음의 요소가 끼어들면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원칙적이거나 무사안일이거나 발이 느리고, 강하게 소음의 요소중 부정적인 면이 끼어들면 지나치게 따지고 들거나 수세적이고 겁을 집어 먹기도 하고 물러서려고만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부정적인 결과만 적은 것이고 긍정적인면도 이만큼은 많이 있다.


소양인의 백(魄)이 약한것은 영이 강한것이 원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착상이 자꾸 떠오르니 백(魄)이 약해질 수 밖에 없고 백(魄)이 약하다 보니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나 착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백(魄)의 부족 지(志)의 부족은 소양인 들로 하여금 초라한 것 작은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게 하고 외부상황에 자꾸 신념이 약화되어 동요되며 항상 외부에 시선이 있는 까닭에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나 반사적으로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다. 이것이 과(풍칠 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慮는 강하나 志는 약한 까닭에 자기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남의 일부터 걱정하고 집안은 말이 아닌데도 집밖에 나가 남의 일에 돌아다니기도 할것이다.영과 려가 좋아 어려운 일도 곧잘 쉽게 해치우고 그렇기에 재간도 있지만 좀 안된다 싶으면 쉽게 그만두고 (타상인에 비해서) 항상 만족치 못하고 불평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한 번 의심이라도 하게되면 끝없이 의심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바둑을 보면 쉽게 사상인이 구별되는 인물이 있다.

유창혁이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우는 바둑기사가 있다.

유기사는 양인이고 소양인일 것으로 생각이 된다. 유창혁은 전투에 능하고 기발한 묘수로써 국면을 전환 시키는 것도 능하며 좌변에서 치고 우변에서 일을 벌리며 상변에서 놀다가(?) 하변을 공격하는 식의 성동격서에 능하고 신축성이 좋아 상대의 전후좌우를 공격 흔들어 놓고는 한다 이런것은 태양인도 능하다. 그러나 태양인은 피하진 않지만 각개 전투식의 치열한 전투를 즐기지 않는 편이며 상당히 전략적이다. 곧 임기응변적인 면보다는 전체적인 구도속에서 두어나간다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유창혁을 소양인이라고 보는 것은 지구력과 끈기의 부족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대단한 끈기를 보여줄 수 있겠지만 끈기보다는 오기일 경우가 많다.

끈기, 지구력, 뒷심, 마무리의 부족 소양인의 단점이다. 애기가 강하고 操와 志가 특히 志가 약해서 이다. 끝까지 갈무리 하는 마음이 부족해서이다. 본인 스스로도 이점을 의식하여 단전호흡을 통해 스스로의 단점을 개선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아울러 음식도 양인의 섭생을 하고 "낙"이나 "희"의 감정을 좀더 가지려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금새 자극받거나 꿈틀대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말고 끈기있게 상대의 반응을 떠 보며 몇 수 더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체력과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마음의 자세 역시 그 못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승패에 연연치 말라고는 필자가 어찌 말하고, 승패에 연연치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마는 되도록 자극적인 감정을 자제해야 할것이다.

음악에 취미가 있다면 빠르고 리드미컬하거나 멜로디 위주의 구슬픈 음악보다는 무드가 있고 끈적거리고 달래는 느낌의 느린 음악을 많이 듣는 것도 좋을 것이고 책을 읽을때도 단번에 읽을 수 있는 책보다는 느긋하게 읽어야할 책을 읽거나 주관적인면이 강하지만 어쨋든 자기 생각을 간결하고도 조목조목 써놓은 종류의 책을 읽는 것도 보탬이 될것이다. 단 이경우는 너무 심하면 안될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박한 심정을 갖지 않고 느긋한 마음과 작은일에서도 기쁨을 가지는 자세라 하겠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바둑기사 세계최강 이창호가 있다.

이창호는 음인이고 태음인으로 보인다. 때론 태양인 같기도하고 체구로보면 소음인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소음인 같은 깔끔함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태양인 이라면 그야말로 음양의 특징이 무섭게 조화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바둑의 스타일은 태음적이다.

많은면에서 이창호는 유창혁과 상대적이다 유창혁같은 번뜩이는 재치나 예리한 면은 없지만 이창호는 가장 잘 둔다. 바둑 7,8급 수준인 필자가 어지 감히 이들의 바둑을 논하랴마는 이창호의 바둑이야말로 우주류라 생각된다.

다께미야의 바둑이 햇볕이 비추이는 곳만의 우주류라면 (즉 과시형의) 이창호는 그야말로 깊고 광막한 우주의 법칙 그대로 이라고 생각된다. 또는 자연류라 하고도 싶다. 또한 易이라고 하고도 싶다. 가당찮지만 이창호의 기보를 놓고 몇시간이고 머리를 쥐어짯던적이 몇번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아주 아주 어린 아이의 마음이 이창호에게 있다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 아무생각이나 번민이 없이 ,자연스레 그저 두어야 할곳에 흐름에 따라 거의 정확히 두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이창호는 절대 서둘지 않는다. 끈기를 가지고 뚜벅뚜벅 제 갈길을 가는 스타일이다. 이창호의 속은 헤아리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 속을 누가 제대로 알 수 있나? 이런 말들은 한귀로 듣고 흘려버려야 될 말이다.

이창호는 끝내기 또한 제일이다. 소음인 마음의 장점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긴 마무리의 정리, 정돈, 가꾸고 다듬기 등을 제외하면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흐트러 뜨리지 않는 것은 태음인의 특성이기도 하고 두텁게 두어나가는 것도 태음인의 특징일 것이다. 그럼 이창호는 단점이 없을까?

이창호가 가끔 국제기전에서 부딪쳐 처음에는 몇번 졌던 사람이 있다. 요다와 마효춘이다. 마효춘은 소양인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태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힘과 끈기가 있다. 그러나 소양인의 성질은 끝내 어쩔수 없어서인지 성급히 바둑을 끝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요다는 태양인 같다. 소양인 일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조훈현과 바둑을 둘 때, 귀를 막고 둔 적이 있다. 조훈현이 횡설수설하며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음인이라면 잘 흔들리지 않는다. 어쨋건이다. 요다도 마효춘도 음인일 수 있다. 언젠가 이창호도 단단한 적을 만날것이다. 그때가면 문제점도 나타나고 스스로의 단점도 보완하여야 할것이다.



신 이 내 게 묻 는 다 면

천 양 희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풀이 돋는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리

저 미물보다

더 무엇이라고 말을 하리

다만 부끄러워

때때로 울었노라

대답할 수 있을 뿐


이런 종류의 시를 영(靈)이 서려있는 시라 하고 싶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같은 시도 이와같은 종류의 시이다



「태음인은 혼(魂)은 많으나 신(神)은 적고 조(操)는 강하나 의(意)는 약하다」


이런 경우는 없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이들려 무엇인가를 열성적으로 미친듯이 하는 경우란 전혀 없고 외부세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 집중하고 혹 내부를 꼭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엔가 홀딱 빠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찾을건 찾고 챙길것은 챙겨가며 일을 하는 것이다. 홀딱빠지더라도 밖의일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 낙의 심리나 원래부터 혹 오래전부터 가져온 자신내부의 관심사항에 깊이빠지는것이다. 원래의 버릇이나 습관을 가장 못버리는 사람들이 태음인들이기도 하다. 이런것은 조선인들이 조선말 단발령에 반대하던 것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이런 것은 지(志)의 작용이다. 지(志)가 강하여지면 지(志)에 신(神)이 들린다. 혼(魂) 역시 그러하다. 혼(魂)이 강하여지면 혼에 신(神)이 들린다. 버릇이나 습관은 관습이나 생활에서 비롯되는 것일 경우가 많다.

태음인은 본질이건 형식이건 얼마든지 바꿔도 원래의 생활조건이나 환경에서 형성된 습관 버릇등을 잘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다 이런 경향이 있다 태음인이 조금 정도가 더할 뿐이다. 실용적인 자세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태음인 들이라 했다.

이런 성격탓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의 면이 많은 사람은 일단은 빨리 적응한다. 그이후 실용의 자세가 나와도 나온다.

보기에따라 우유부단하고 쉽게 마음을 못 정하는 것 같지만 사상인중 가장 고집이 센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분명한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면 현상적인 일들은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태양인들이 직선적으로 생각한다하면 태음인들은 곡선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단순하게 생각해보고 태음인과 상대하면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대개의 음인들이 그렇듯 생각은 많이 하지만 행동은 느린 편이다. 생각이 많다보니 의심이 많고 느릴 수 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게다가 조(操)가 강해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의심을 폭넓게 생각하며 오랫동안 머리속에 집어 넣고 있을 것이니 당하는 사람이야 괴롭기만 할것이다. 한번 좋은 마음을 품으면 쉽게 풀지도 바꾸지도 않아서 쉽게 사귀기도 어렵고 쉽게 헤어져 주지도 않을 것이다.

한번 믿게되면 끝까지 믿어줄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 속마음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련하고 굼뜨고 어눌해 보이지만 또는 점잖고 듬직하고 호탕해 보이지만 음흉하고 생각보다 계산이 빠르고, 꾀가 많고 드물게 나타나지만 때론 행동이 전광석화 같기도 하다.

유비는 태음인으로 보여진다 했다 .그렇게 사람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는 제갈공명도 유비의 마음은 짐작못할 경우가 많았다. 태음인의 생각이 마치 끈적거리는 여름밤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말이란 것은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 속에 있던 기호와 이미지 들이 순간적으로 단어로써 발음되어지는 것이다.

태음인은 그 생각하는 범위도 넓지만 막연한 추상 속에서 구체적 형상과 그에 따른 기호를 만들어 내는 능력도 좋다. (필자는 한자를 볼때마다 추상에서 구체로 만들어진 글자라고 생각한다. 임어당도 이런말을 하였었다.)

군대의 장수로 치면 태양인이 연개소문이나 맥아더 같은 용장(勇將)이라면 소양인은 원균이나 패튼같은 맹장(猛將)이라 할 수 있다. 소음인이 이순신이나 롬멜같은 지장(智將)이라면 태음인은 왕건(장군시절)이나 아이젠하워 같은 덕장(德將)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태음인으로 크게 된 장군중에는 소위 덕(德)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많다. 큰 재주도 전략도 지식도 없는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인물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고 배반자도 별로 없을 경우 그를 두고 덕(德)이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태음인에겐 이러한 말을 듣는 사람이 많다. (최소한 한국과 중국에선)

왜그럴까?

일단은 그 성품이 날카롭거나 호전적이거나 도전적이지, 경쟁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친화동기(affiliation motive)를 사람들에게 가지게 하는 것이다. 물론 문화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태음인들은 선천적으로 노자의 도덕경은 읽지 않아도 될듯한 인물들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그러나 이런 성격 때문에 끝없이 공격받고 우롱당하고 핍박 받기도 할 것이다. 이 점은 소음인도 그러하다. 태음인Ⅱ형은 상당히 무뚝뚝하다.

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책에 보면 육적이라 하여 경계하거나 배척해야 할 여섯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첫째 광대한 저택과 화려한 정원을 만들어 놓고 밤낮으로 가무와 음곡을 즐기는 신하이다. 아마 태음인이 이럴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밤낮으로 가무와 음악을 즐기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는 백성으로써 농업이나 누에치기에 힘쓰지 않고 호기 방탕하여 법률이나 금령을 깨트리고 벼슬아치들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자이다. 아마 소양인이 이럴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셋째, 당파를 만들어 현인과 지혜있는자를 탄압하고 군주의 총명을 가리는 자이다. 아마 태`소음양인 모두 이럴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당파를 만드는 심리는 분면 음인들에게 그중 소음인들에게 많을 것이다. 또는 다른 상인(象人)이더라도 소음의 기(氣)가 크게 작용할 때 생기게 되것이다.

넷째는 자기의 뜻을 고집해서 윗사람에게 굽힐 줄을 모르고 자기의 절의를 높여서 허세를 부리며 밖으로는 여러 제후와 사귀어 자기 군주를 경멸하는 자이다. 아마 태양인이 이럴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다섯째, 생략

여섯째, 강한 문벌을 이루어 가난하고 약한 백성을 침탈하고 업신여기는 자이다. 아마 소음인이 이럴 가능성이 많을 것같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문화속에서 형성된다. 사상인 모두 이러 할 수 있다.

덧붙이지만, 위의 글은 필자의 독단적인 편견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든 육적에 속하는 행위를 태 소음양인의 구분없이 할 수가 있다.

어떤 상인이든 구별없이 육적중의 어떤 행위라도 할 수 있다.

다만 "책대로"의 견해였음을 밝혀두며 현실은 가변적이고 책대로의 적용을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고 향

이 기 철


신발을 벗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내(川)를 건너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불과 열집 안팎의 촌락은 봄이면 화사했다

복숭아꽃이 바람에 떨어져도 아무도 아는 체를 안했다

아쉽다든지 안타깝다든지

양달에서는 작년처럼, 너무도 작년처럼

삭은 가랑잎을 뚫고 씀바귀 잎새가 새로 돋고

두엄 더미엔 자루가 부러진 쇠스랑 하나가

버려진 듯 꽂혀 있다.

발을 닦으며 바라보면 모래는 모래대로 송아지는 송아지 대로

모두 제 생각에만 골똘했다

바람도 그랬다


이러한 시를 혼(魂)이 담긴 시라 하고 싶다.

이러한 분류는 필자의 주관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도 혼(魂)을 노래하는 시라 하고 싶다. 모든 시를 신, 령, 혼, 백으로 나눌수는 없다. 이외에 희, 노, 애, 락, 의, 려, 조, 지, 교, 금, 벌, 과, 탈, 치, 나, 절의 심리적, 사고적 움직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소음인은 백(魄)은 많은데 영(靈)은 약하고 지(志)는 강한데 여(慮)는 약하다」


대체로 평상시의 소음인은 조용한 편이고 이지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체구가 큰 사람도 대체로 순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금 깊게 사귀어 보면 강단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강단이 너무 세다.

소음인은 대체로 호리호리한 편이지만 소음인 II형은 체격도 크고 힘도 세다한다. 성격도 활달하고 거칠기도 하다. 그러나 태음인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쨋건 소음인 I, II형의 공통점은 두드러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소음인은 이래도 따라주고 저래도 따라주지만 경우에 따라 딱 부러지게 제동을 걸기도 하거나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자신만이 이것저것 잘 구별해 놓은 생각들일 경우가 많다. 이것이 慮가 약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여간 누구든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변별해 놓은 생각이 그 사람이 얼마나 합리적인 사람인가에 따라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도 할 것이다.

말할때 "∼라고 생각합니다"는 식으로 또박또박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결론지어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음인 이거나 소음인에게 강하게 영향 받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반면에 "∼같습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양인이거나 소양인에게 강하게 영향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 아닌 그저 평상시 대수롭지 않은 버릇에서 살펴야 한다) 언제나 얘기하듯 속단과 책대로는 금물이다.

이 책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같다"하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그럴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고 소양인이라고 "∼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확신이 안서고 그럴 것 같아 그리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음인은 잘 그러지를 않는데 경쟁심이 일어나면 작은일에까지 경쟁심을 가지고 달려들기도 한다. (소양인은 자주 그런다) 아마 어떤 종류의 피해의식이나 특별한 상황이 있어서 일것이다. 소음인이 피해의식이 생겨 혹 어떤 필요 또는 욕구에 의해 행동할 마음이 생기면 정말 난해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점은 태음인도 그러하다. 배를 침몰시키려면 그배의 밑바닥에 내려가 대못을 하나 빼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그 하나의 대못으로 인해 언젠가 그 배는 가라 앉을 것이라는 말이다.

음인의 공격적인 마음이 무서운 것은 먼저 매우 비밀스런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양인들의 비밀스런 공작은 세련되지 못할경우가 많다. 조심성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인들은 다르다. 대체로 양형문화권의 국가가 어느 다른 문화를 정복했을 경우는 그 문화를 깡그리 불태워 버려 없앤다. 반면 음형 문화권의 국가가 어느 다른 문화권은 정복했을 경우는 흡수하여 자기것으로 한다. 음인들은 성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첩, 모략, 공작, 음모 이러한 것을 "음"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푸코의 추에 나오는 프리메이슨도 "음"의 단체라 생각하면 될것이다. 음의 전쟁은 어둠속의 그림자 같다는 것이다. 잠시 얘기가 곁가지로 나갔던 것 같다.

소음인의 강한 백(魄)은 자신으로는 최대한으로 물러서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마음의 자세라 할 수도 있다. 양보할 만큼 다 양보 했으니 이젠 조금도 더이상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말하거나 벼랑끝에선 마음으로 상대를 맞이하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소음인은 남에게, 밖의 일에 매우 세심하게 대하고 일일히 생각하고 신경을 써준다. 세세하게 변별하여 판단을 내리고 모나지 않게 행동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주의가 깊다. 그러나 음인은 밖의 일에 푹 빠져 거처를 생각치 않는 경우가 적다. 물론 모두 대체적이다. 음인이라고 다 이런것은 아니다. 그 음인을 둘러싼 구조도 중요하다. 51:49는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냥두면 양인들은 마냥 서로 어울려 돌아다니고 일은 안하고 힘만 길러 마냥 약탈하고 싸움이나 하려하고 음인들은 남의 일은 신경쓰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활만 꾸려가려 할것이다. 마치 한웅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처럼 한쪽은 약탈이나 하려하고 한쪽은 꽁꽁 닫아 걸어놓고 있을 것이다.

소음인이 령(靈)이나 려(慮)가 적은것은 백(魄)과 지(志)가 강해서 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해도 처음의 관념에 신념이 강해 망설이고 주저하고 조심하기 때문에 려(慮)가 적다 할수 있다.

자신의 주변에 몇년동안 다니던 길을 벗어나 다른곳으로 목적하는 (주로 학교) 곳에 간적이 없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주로 여자에 많다.)

버릇인지 습관인지, 그래야만 안심이 되어서인지 다니던 길로만 몇년이고 아니 평생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소음인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志가 강해서이다.

태음인도 이러할 수 있다. 태음인은 잘 바꾸지 못해서이다. 지(志)보다는 조(操)가 강해서 이다.

대철학자 칸트는 태어나서 고향을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고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정확한 시간에 집을 나서 꼭 다니던 길을 산책하는 것을 평생을 거르지 않고 했다한다. 소음인이 이럴 가능성이 많다.

칸트는 몸이 약해 평생을 엄격한 섭생법을 실천 했으며 (소양인이면 거의 이러지 못한다.) 체구가 작고 (태양인은 대체로 강한 체력을 갖고 있다.) 매사를 신중히 생각한 다음에 행동했다 한다. 칸트는 음울했다 하는데 이는 누구든 이러할 수 있다. 음울한 특징은 평소의 소음인을 보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소양인이 활발한 중에 갑자기 음울해 지는 것을 보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태양인이 깊게 생각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환경적으로 음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지역속에 살며 그런 특징을 가질수도 있고 태음인도 그렇게 보일 수 있고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그런 성격이 형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태음인이 자신의 마음을 꽉 잡고 있다하면 소음인은 자신의 마음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志)가 강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으며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나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마는 소음인에게는 긍심(矜心)을 주의하라 하였다.

지(志)와 긍(矜)이 서로 극단으로 어울리면 한번 마음 먹은 것은 절대 바꾸지 않고 어떠한 행위도 합리와 정당화 될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 여인들의 일편단심이나 정몽주의 고려를 향한 충절등은 조(操)나 지(志)가 강하게 있던 경우이다.


망아지의 풋풋한 아침이 되고 싶다 .

이 태 수


뛰어가고 싶다. 때로는

물거품처럼 부서지더라도

식어가는 가슴에 하나, 불을 달고

오랜 망설임도

주저앉아 기다리던 기다림도 박차 버리고


이마를 부딪고 싶다. 휘어지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맹렬하게

하지만 싸늘하게 눈 부릅뜨고

화살되어 꽃히고 싶다

어딘가 가 닿아 뜨겁게 불붙고 싶다


고은의 "화살"이란 시를 읽는 기분이다.

이 시의 지은이는 지금 백(魄)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라 하고 싶다.

그러나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소음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나 글 속에서 신, 령, 혼, 백은 어느 하나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 령, 혼, 백 나누기는 넷으로 사람의 마음을 나누었지만 마음은 유물론에서 말하는 변증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령혼백은 모두 우리의 마음의 작용이다. 때에 따라, 관념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리고 신체의 여러가지 변화에 따라 마음속에서 백(魄)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의 움직임이 크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선동열과 박찬호

선동열 선수는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투수이다.

박찬호 선수는 지금 미국에서 활동중인 총알같은 강속구의 투수이다.

필자가 보기에 선동열 선수는 음인 그리고 소음인,아니면 태음인이고 박찬호 선수는 양인, 그중에 소양인이라 생각된다.

선동열 선수는 체구는 크지만 조용함 속에(소음인 II형도 체구가 크다) 강인하고 날카로운 면이 보이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며 가끔 생글거리며 말을 하곤 한다. 이 점에서 대체적인 태음인은 좀 무뚝뚝하다. 어떻게 보면 점잖게 말하는 듯하다. 몸은 체구에 걸맞지 않게 탄력있고 유연하다. -태음인도 이럴수있다. 그러나 좀 딱딱하다. 태음인에겐 다른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양인도 유연한 사람이 있지만 양인은 그 특징이 빠르게 끊어지고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말하는 품새는 잔잔하고 장난끼가 있으며 꾀병으로 생각되는 행동도 가끔 보인다. 아마 몸을 사려서 일 것이다.

투구내용은 빠르고 무거운 구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두뇌형을 피칭을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함부로 나서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언론에 나오는 언행을 보면 매우 세밀 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면서 할말은 또박또박 말하며, 약하고 순함중에 강인한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미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충동적인 면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특징만 가지고 선동열 선수를 소음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눈도 관념에 따라 오목렌즈로 보면 오목하게 보이고 볼록 렌즈로 보면 불룩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선동열선수는 그리 성적이 좋지 못하다. 충고를 하나 한다면 때론 과감하게 중앙에 정면승부를 걸고 때론 성동격서를 하라는 것이다. 워낙 컨트롤과 구질이 좋기에 이렇게만해도 게임은 상대적인 사람들에의해 상대적으로 풀려갈 것이다. 때론 두 번 혹 여러번 생각하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이다.

박찬호 선수는 어떠한가?

선동열 선수보다 좀더 빠른 구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 잘 흔들리며 기복이 심하고 성급하다.

물론 이런 점은 아직 신인이어서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양인의 특징이 곳곳에 나타난다.

기차게 잘던지다가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그것도 제풀에- 기분에 따라 투구내용도 들쑥날쑥이며 두뇌의 피칭보다는 일단 성깔로 밀어 부치는 타입이다. 물론 음인만 두뇌피칭하고 양인만 성깔로 밀어 부친다는 법과 경우는 없다 . 그런면이 최소한 51;49로 자주 나타날 뿐이다.

체구는 전형적인 양인의 체구이며, 냉정함이나 부드러움, 무뚝뚝함 섬세함 등의 인상은 많지 않다. 경쾌함과 날카로움이 많이 느껴진다.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선 가벼움과 경박함 신경질적인 면이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점은 태양인이나 소음인에게서 느껴질 수도 있다.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박찬호 선수에 대해선 이 정도 밖에 모른다.

소양인으로 생각되기에 적어 보았다. 박찬호 선수에겐 유창혁기사에게 하여준 충고를 하고 싶다. 기록에 집착하거나 너무 큰 목적을 이루려 하지말고 또는 뜻대로 안된경우에는 빨리 잊거나 애정을 느끼면 빨리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바둑으로 치면 반집만 이겨도 이기면 되는 것이라는 자세이다.

소양인들은 애정이 급하다. 애기가 매우 강하면 순간적인 큰힘은 낼 수 있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도 크다. 게임중에 한번 비관의 감정을 가질때 그 기분을 복돋으려면 몇배에 힘이 더들어가야 하고 그만큼 애기가 더 소모되고 에너지가 소모된다. 지속적인 힘을 얻으려면 평소 애정의 느낌을 느끼지 않으려 하거나 들었어도 빨리 풀어 버려야 하고 게임에 임해선 더더욱이다.


이상으로 동의수세 보원의 주요내용은 모두 마친다.

이 책을 한번 읽고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몇번 이책을 읽고 무엇인가 알 것 같다고 혹 알았다고 생각해도 오산이다. 세상은 알아도 역(易), 몰라도 역(易)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버티며, 버티며 떠 밀려가는 군중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버티는데 우리는 떠밀려간다.

필자역시 이렇게 아는 척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잘못된 추측과 궤변을 너무 늘어 놓아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는 않을까 모르겠다. 꼭 원문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쇼펜하워가 말했던대로 이 책은 필자의 편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다고 이렇게 쓰고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원문까지 의심이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믿어라, 그러나 확인하라"라고 말한적이 있다. 이러한 마음에서 이책을 이해하기 바란다. 이 책에서도 자꾸 의문과 모순에 부딪치는 것. 최소한의 이책을 읽는 자세로써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