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주역과 인생 교훈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8. 6. 19. 20:15

고전칼럼 003                        (2008. 6. 18. 수)

『주역』과 인생교훈

1. 『주역』의 형성과정

인지가 발달하지 못했던 상고시대의 중국인들은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나, 지진이나 우레와 같은 괴이한 자연현상에 직면하게 되면, 이를 신의 뜻으로 돌리곤 하였다. 그들은 초인적인 능력과 의지를 지닌 신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고 여기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의 뜻을 알아 화를 피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신과의 소통 방법으로 모색된 것이 점치는 방식이었다.

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거북이 껍질이나 동물의 뼈를 불에 구워 거기에 나타난 무늬의 형상을 보고 신의 뜻을 판단한 '복(卜)'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초(蓍草)를 가지고 일련의 배열 조합과정을 거쳐 얻어진 수와 부호를 근거로 신의 뜻을 판단하는 '점(占)'의 방식이었다. 이 점의 대표격인 『주역』은 서주 시대에 시초의 변화로써 사물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었기에 『주역』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주역』은 '주대의 점치는 책'이라는 뜻이 된다. 물론 『주역』 이전에도 '연산역(連山易)','귀장역(歸藏易)' 등의 역(易)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주역』의 내용이 대부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이를 전하는 과정에 전수자의 설명과 해석이 첨부된 전수서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원래의 『주역』을 『역경』이라 부르고, 『주역』의 전수서를 『역전』이라고 불렀다. 어떤 『역전』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하였는데, 한대(漢代)까지 계속 전해져 후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십익(十翼)이라 칭하는 10편의 『역전』이 있다. 「단전(彖傳)」상·하, 「상전(象傳)」상·하, 「문언전(文言傳)」, 「계사전(繫辭傳)」상·하,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이 그것이다.

한대 이후 『주역』은 그 원본인 『역경』은 물론 한대까지 전해져 온 『역전』십익(十翼)까지를 모두 포괄하게 된다. 따라서 한대 이후 『주역』 연구는 『역경』뿐만 아니라 『역전』까지도 함께 포괄하게 되었다. 그 연구는 『주역』 속에 담긴 도리에 대한 연구는 물론 『주역』의 문구에 대한 훈고와 고증을 통해 인사(人事)와 천지만물의 변화를 설명함으로써 2,000여년 동안 동양의 사상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방대한 학술영역을 형성하였는데, 이를 역학(易學)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주역』이라고 말할 때의 『주역』은 원래의 『주역』인 『역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과 『역전』 그리고 『주역』에 관련된 방대한 지식 체계로써의 역학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2. 『역경』의 구성과 역사적 가치

『주역』은 64괘 384효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매 괘는 3효로 구성된 경괘(經卦)가 상하로 중첩되어 6개의 효로 구성된다. 이 6개의 효는 모두 음, 양의 두 가지 효로써 이루어진다. 즉 『주역』은 음효, 양효의 두 부호가 삼중으로 중첩되어 3효로 구성된 8경괘가 만들어지고, 이 경괘가 상하로 중첩되어 6효로 구성된 64괘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주역』이 음양 두 부호로 구성된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사물의 기능, 성질 및 양태 모두가 한결같이 서로 상반된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괘인 8경괘가 3효로 구성된 것은,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영위하게 된다'는 천지인 삼재(三才)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괘·효사의 내용은 대부분 자연 현상의 변화를 가지고 인사(人事)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거나, 인사의 득실과 길흉을 결단하는 점사(占辭)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정도 철학적인 사상의 싹을 지니고 있는 괘·효사도 있다. 다시 말하면 괘·효사는 자연 현상과 인사 사이의 일치성을 논하고, 대립적인 것 상호간의 전환을 논하며,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처세와 일처리에 대한 일련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괘의 순서에도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유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64괘 모두는 서로 상반된 두 괘가 한 쌍으로 이루어진 32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건괘(乾卦)에서 마지막 미제괘(未濟卦)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두 괘의 괘상이 완전히 상반된 형태의 착괘(錯卦)이거나(이런 경우가 8괘), 두 개의 괘상이 완전히 전도된 상태의 종괘(綜卦)로 구성되어(이런 경우가 56괘) 있다. 똑같은 괘상을 아래 위의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서로 다른 한 쌍 안의 상대 괘가 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사물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주역』을 이용하여 점치는 행위가 비록 과학적인 예측은 아니라 할지라도, 길흉의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의혹을 해소시킴으로써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역경』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생활상의 지혜가 사람들의 삶을 올바르게 지도하는 역할을 하며, 대립된 사물과 현상 사이의 상호 전환의 가능성을 통해 어느 한 국면에 고착되어 좌절하거나 자만하지 않도록 일깨워 주고 있는 점은 『역경』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3. 『역전』의 성격과 철학적 원리

『역전』은 본래의 『주역』, 즉 『역경』의 내용과 그 이치를 설명하는 저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해져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앞서 설명한 일곱 종류 10편의 『역전』, 즉 십익이다. 이중 「단전」은 『역전』 중 가장 앞에 배열되어 있고, 경문(經文)을 따라 상·하 편으로 나뉘며, 『역경』 64괘의 괘상, 괘명, 괘사를 설명하고 있다. 「상전」 역시 경문을 따라 상·하 편으로 나뉘며, 64괘의 괘상과 괘의[大象], 그리고 효상과 효사[小象]를 해석하고 있다. 「문언전」은 건곤(乾坤) 두 괘의 괘·효사만을 해석한다. 「계사전」은 괘·효사의 의의에 대한 부분적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역』의 대의와 서법에 대한 통론으로 역대전(易大傳)이라고도 한다. 「설괘전」은 8괘의 괘상과 괘의를 해석하고 있으며, 「서괘전」은 64괘의 배열 순서를 설명한 것이고, 「잡괘전」은 괘명에 따라 64괘가 32개의 대립면으로 구성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역전』에서는 『주역』이 천지인 삼재의 도를 바탕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사물의 근본 도리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여긴다. 여기에서 성인은 『주역』을 통해 사물 변화의 법칙과 방향을 탐구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역』 본래의 점복기능은 크게 퇴색되었다. 결국 『역전』은 『주역』을 수신에서 치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책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춘추시대 이후 철학적 시각에서 『주역』을 해석하게 된 경향의 결과이다.

특히 『역전』에서는 강유(剛柔)의 상반된 개념을 사용하여 천지만물의 변화를 설명한다. 즉 '강유가 서로 밀치며 교체함에 따라 변화가 발생한다(剛柔相推, 變在其中)' 고 말하는데, 이는 대립적인 양면의 상호작용을 변화의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지의 차고 빔도 때에 따라 자라나고 소멸된다(天地盈虛, 與時消息)'고 하여, 이 소식영허(消息盈虛)의 법칙을 '천도'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천지의 두 기운이 왕성하게 교감하여 만물을 무성하게 생성한다(天地絪縕, 萬物化醇)'고 하여 대립면의 상호교감과 흡인(吸引)이야말로 만물 생성의 근원이자 변화와 질서의 원천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역전』에서는 『주역』을 지은 목적이 '덕을 높이고 업적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한 것(崇德而廣業)'이라고 하였다.

4. 『주역』의 인생교훈

『주역』은 원래 점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음양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부호를 사용하여, 변화하는 세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있는 '변화의 철학서'이다. 따라서『주역』에서 일체 사물은 생성소멸을 반복하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물도 생장쇠망하는 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 없는 과정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함께 변화하며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항상 새롭게 변화된 상황에 응하는 노력이 요청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신(日新)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주역』에서는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수많은 생활의 지혜를 괘·효사의 단점지사(斷占之辭)를 통해 표명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가도록 안내한다. 예컨대 이괘([臣+頁]卦) 구이(九二)효사에서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 마침내 길하다'라고 말한 것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조심하고 경계하며 노력해 나가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됨을 설명한 것이며, 건괘(乾卦) 상구(上九)효사에서 '지나치게 높이 올라간 용이니 후회함이 있다'라고 한 것은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 떨어질 위험에 직면해 후회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또한 가인괘(家人卦) 구삼(九三)효사에서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하면 마침내 부끄럽게 된다'라고 말한 것은 조심하며 경계하지 않으면 좋은 상황도 곧 어려운 국면으로 전환하게 됨을 훈계하는 내용이다. 이처럼『주역』의 괘·효사에는 우환의식이 충만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신중하고 경건하게, 그리고 근신하며 조심할 것을 항상 주문한다.

『주역』에서 언급되고 있는 수신이나 경세에 관한 내용이 비록 과학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오랜 생활경험을 통해 얻어진 삶의 지혜인 만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활용할만한 가치는 아직도 많다. 『주역』에서 길흉을 가름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되는 '시위(時位)에 적절하고 합당함[當位]',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조화의 획득[得中]', 그리고 '교감과 협력의 성취[正應]' 등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꼭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이는 우리의 국익과 관련된 정치·경제·군사·외교상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사안이기 때문에 쉽게 언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길흉을 가름하는 『주역』의 기본적 요건에 입각해 볼 때, 광우병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민 대다수의 정서에 반하는 성급한 정치적 행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과 대화를 통한 교감과 소통, 그리고 신뢰와 협력의 토대 위에서 다수의 국민이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함께 협력하게 될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김학권
*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
* 저서 / 역서
『동양의 자연과 종교의 이해』,형설출판사(공저),1992.
『주역의 현대적 조명』,범양사(공저),1992.
『중국철학의 이단자들』,예문서원(공저),2000.
『주역의 근본원리』,철학과 현실사(공저),2004.
『주역과 중국의학』,법인문화사(공역),1993.
『주역산책』,예문서원,1999.
『주역의 건강철학』,(주)정보와 사람,2007.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