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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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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癖) 곧 고질병은 병이다. 특정한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하는 정도가 심하면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특정한 어떤 물건을 즐기는 사람이 있어서 즐기는 정도가 심하면 고질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중서(董仲舒)와 두예(杜預)는 학문에 고질병이 있는 사람이고, 왕발(王勃)과 이하(李賀)는 시에 고질병이 있는 사람이다. 사령운(謝靈運)은 산수 유람에 고질병이 있는 사람이고, 미불(米불)은 돌에 고질병이 있는 사람이고,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에 고질병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 외에도 갖가지 기능과 기예에 고질병이 생긴 사람이 있고, 집과 진귀한 보물, 각종 물건에 고질병이 생긴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부스럼딱지를 즐겨 먹고, 냄새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인간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고질병이 괴기한 지경으로 빠진 사람이다.
나는 본래 다른 기호는 없고 오로지 그림만을 몹시 즐긴다. 마음에 드는 옛 그림을 보면, 찢어진 화폭이거나 파손된 두루마리라도 반드시 높은 값을 쳐주어 사고, 내 목숨과도 같이 아낀다. 어느 곳에 좋은 작품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바로 정성을 쏟고 힘을 바쳐서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눈으로 감상하여 정신에 파고들면, 아침 내내 싫증이 나는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피곤한 줄을 모르며 먹는 것을 잊고서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 심하다! 나의 고질병이여. 앞에서 말한 부스럼딱지를 즐겨 먹고 냄새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인간에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구나!
그런데 그림 가운데 오래된 옛것은 부식되고 망가진 것이 많아서 손을 대기만 하면 찢어지는 것들이 왕왕 생긴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아주 없어질까봐 늘 안타깝게 여겼다.
방유능(方幼能)이란 사람이 있는데 본래 예술에 대한 감식안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고질병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또 남보다 특별하였다. 종이가 훼손되거나 비단이 바스라진 옛 그림을 만나면 그는 반드시 손수 풀을 발라 다시 장황(裝潢, 표구)하였으며, 늙어서까지도 부지런히 일하여 그만두지 않았다. 그가 눈대중으로 치수를 재어 손을 놀리는 것을 보면, 잣대가 저절로 움직이는 듯, 한 자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그는 움직이고 쉬며, 일어나고 잠자는 일거수일투족이 풀 그릇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많은 녹봉으로 대우하겠다고 유혹을 해도 일을 하는 즐거움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비한 기술로 만든 솜씨는 거의 포정_1)이 소를 잡고, 윤편_2)이 수레바퀴를 깎는 수준과 같아 서로 막상막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내가 소장하고 있는 옛 그림 가운데 부식되고 상한 것이 모두 그의 도움으로 낡은 것이 새것이 되어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었다. 심하다. 방유능의 고질병이여! 내가 견주자고 덤빌 수준이 아니로구나. | |
그림을 향한 내 고질병이 장황을 향한 방유능의 고질병의 도움을 받아서, 부서진 옛 그림이 모두 온전하게 살아났다. 한가한 날이면 그와 더불어 서탁을 맞대고 앉아 함께 그림을 감상하면서 흠뻑 심취하여, 하늘이 세상을 덮고 대지가 만물을 싣고 운행하는 사실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그림에 세월을 몽땅 보내면서도 아무런 싫증을 내지 않으니 심하다! 나와 그대의 고질병이여! 그래서 고질병을 묘사한 글을 지어 그대에게 준다.
《단원풍속첩》중 '그림감상'▶▷ 국립중앙박물관_조선시대 풍속화 | |
- 홍현주(洪顯周), 〈벽설증방유능(癖說贈方幼能)〉, 《해거수발(海居수勃)》 | |
1) 포정(포丁) : '포'는 부엌을 뜻하는 글자. 엄호[床-木] 속에 包가 들어간 글자임. 포정은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 소를 잡는 장인. 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을 때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소를 잡은 데서 나온 말로, 사물의 성질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여 자유자재로 솜씨를 발휘한 장인을 가리킨다. 2) 윤편(輪扁) :《장자》 〈천도(天道)〉에 나오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저명한 수레 만드는 장인. | |
※ 이 글의 원문은 본원 홈페이지 '고전의 향기' 게시판에 수록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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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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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주(1793~1865)가 1817년에 쓴 글이다. 제목은 고질병을 밝힌다는 뜻의 〈벽설(癖說)〉로서, 자신과 방유능 두 사람의 서화(書畵)에 빠진 벽(癖)을 자조하기도 하고 자부하기도 한다. 저자는 정조의 부마인 해거도위(海居都尉)로서 시문을 잘하였고, 서화의 수장가로서 감식안도 뛰어났던 인물이다. 19세기 문화계에서 아주 비중이 높은 인물이다.
그런 홍현주가 이 글을 써서 준 사람은 방효량(方孝良, ?~1823)으로서 유능(幼能) 또는 유능(孺能)은 그의 자(字)이다. 장황(裝潢), 곧 서책과 그림의 장정에 특별한 재능과 전문성을 지닌 장인으로 당시에 매우 유명하였던 인물이다. 홍현주를 비롯하여 신위(申緯) 등의 서화를 표구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정조가 특별히 그에게 벼루를 만들어 올리라는 명을 내린 일이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도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홍현주 자신도 서화벽이 있는데, 서화를 잘 보수하는 방효량과 같은 장인이 있어서 서화를 소장하고 감상하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고 하였다. 같은 분야에 벽(癖)을 가진 사람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글의 주제는 벽(癖)이다. 어떤 물건이나 일을 좋아하여 푹 빠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18세기 이래 이런 고질병을 인간의 한 덕목으로까지 내세우는 분위기가 일부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서화에 대한 벽은 다른 것에 견주어 고상한 것으로서 문인 예술가들은 자신의 벽을 과장되게 자부하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글로서, 이 글이 쓰인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쓰인, 《나석관고(蘿石館稿)》의 〈서화서(書畵序)〉가 있다. 그 글에서는 다른 벽이 탐욕에 기운 병이거나 음란함에 빠진 병이거나 사치에 빠진 병이지만, 서화에 빠진 벽은 성격이 다르다고 하였다. 서화는 우아한 일, 곧 아사(雅事)이므로 서화벽(書畵癖)이 있다 해도 우아한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병과는 다르다고 구별해서 보았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서 몰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만 있다면 그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홍현주와 비슷한 사람들처럼, 서화에 빠지는 벽을 다른 벽보다 우위에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나치게 괴벽한 것이 아니라면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벽 하나쯤은 지니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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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