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 사촌 누이가 한 분 있었다.
사촌 누이지만 우리 서울 집에서 오래 같이 살았기에 친누이 같았고
나이차이가 10살이나 되어 더욱 정다워서 친누이처럼 따랐다.
그런 누이가 철원으로 시집을 가서 육군 중사와 결혼 하여 살았다.
누이는 파마기술을 배워 미장원에서 일을 하였고
남편이 다른 부대로 전근을 가면 가재도구를 챙겨 따라다니며
셋방살이를 전전 했다. 나는 방학이면 누님 집을 가서 한달 동안
전방의 산야를 누비면서 놀다 오곤 했다.
아니 누님이 서울 우리 집으로 와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누님이 개울로 데리고 가서
들판으로 뛰어 다니느라 태양빛에 그을려 깜둥이가 된 나를
깨끗이 씻기고 돌아오면서 하얀 고무신 하나 사서 신키고
하얀 런닝샤스 사서 입혀 주면 나는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펄쩍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기분이 째진다.
한 아름씩 되는 수박이 나 딩굴어 있는 갈 가 밭에서
수박이며 참외도 몇 덩이 사서 밤이 늦도록 누님과
어린 조카들과 먹으며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갈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정말 잊지 못할 사고가 생겼다.
누님 집은 큰길가에 있었고 방문을 열면 바로 큰길이다
매형도 술이 취해 늦게 들어와 코를 골고 온 식구가 깊은 잠에
빠진 밤 3시쯤 잘 밤에 먹은 수박 때문에 오줌이 마려워 잠을 깨어
밖으로 나갔다 마침 달빛이 대낮같이 밝다.
한길 가로 나가서 막 오줌을 누려 하는데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에 검은 그림자를 길게
이끌고 나타난 거구의 사나이가 있었다.
그 동네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인데 평소에는 말이 없고
순한 양 같은 사람인데 술만 먹으면 아주 과격해져서
만나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어린 나는 새파랗게 질려서 오줌도 누지 못하고 멀리
돌아서 방으로 들어 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방문 앞까지 와서
열려 있는 방문 틀을 양손으로 턱 집고 서서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는 어린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더운 한 여름 밤에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근 30분을 그 사람은 그렇게 노려보고 있었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 고통과 극도의 공포 속에
그 30분은 30년은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그런 후 그는 방문 앞에서는 물러갔지만 아직 신작로 큰길가
댓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여전히 내 쪽을 흘금 흘금 보고 있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매형 머리맡에 큰 양푼이 있었다.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냉수를 떠다가 머리맡에 두는
누님의 배려다. 그 양푼을 끌어와 보니 냉수는 이미 다 마시고
빈 것이었다. 구세주를 만난 양 그것으로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면할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시원해 보기는
처음 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잠들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새벽이다. 무슨 소리에 얼핏 잠을 깼는데
앗 불사! 술이 아직 덜 깬 매형이 머리맡에 그 양푼을 들더니
거침없이 들이 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날이 밝자 아무 말도 못하고 서울로 도망 쳤지만 그 후에도
평생 그 말을 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 가셨지만
평생 죄송한 마음 금할 수 가 없다
누님생각 하면 항상 가슴이 아려 온다
그렇게 나를 귀여워해 주던 누님이
너무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외국에서 근무 할때 돌아가셔서
조문 조차 못하였기에 더욱 애절하여 여기 글로 남겨 봅니다.
---남촌의 누이 생각 --
남촌선생 가요 반세기 -- 미워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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