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남촌의 세상사는 이야기

중티리 산행후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24. 5. 3. 11:40

필자 - 남촌 서호원 자화상

 

2014421일 새벽5

핸드폰 알람의 요란한 소리에 무거운 눈꺼플을 들어 올리며 잠자리를 털고 일어낫다

어린시절 소풍을 가는 전날이면 마음의 설려임으로 들떠서

잠을 못 이루는  그 버릇이 76세까지  여전하다

언제나 그러하듯 간 밤에도 향우회 정다운 얼굴들이

차례로 떠올라 인사를 하는 바람에 새벽2시 경에야 겨우 잠들어

3시간 자고 일어 나려니 앉아 있어도 눈은 잠에 쩔어있다 

오늘 갈곳 - - 청주와 속리산 중간지점 --->충남 보은군 외산면 중티리

참 오랜만에 산행을 나서는 이 아침 날씨가 하 수상하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오고도 아직도 서글퍼서

정영 하늘은 매양 심술난 시어머니 쌍통을 해가지고

내 얼굴을 내려다 보고 있다

젊은 연인과의 소나기는 촉촉한 연분을 맺는

젊은날의 수채화가 되련만은

해묵은 추억의 우정을 나누는 유림향우 산행길 비는

결코 달갑지 않아서 그만 울음을 그치고 구름을 거두라 하면서도

일변 우산을 챙겨 배낭의 꼽는다

06:10 4호선 창동역 2번출구 하차

오랜만에 내린 창동역은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관광버스 주차공간이 없어졌다

먼저온 허봉오 향우가 아니었으면 새벽부터 헤매일뻔 했다

잠시후 6-7명 향우들이 모이고

06:30분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모두 승차할 수 있었다

07:00사당동

기다리던 향우들이 승차 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서

버스가 예정대로 사당동을 출발했다

또 고속도로 중간에 몇 명이 합류하면서

30여명의 산악 등반대가 성립되었다

회비 4만원씩이 거두어 졌다

적지않은 비용이지만 참가자가 적어짐으로

개인부담이커지는 현실이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줄어들기만 하는

향우회 운영 자체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는 전국의 모든 향우회가 직면하는 위기이다

아마도 그 上京(상경)세대들이 다

늙으면 향우회도 자연 사라질 肅命(숙명)이다

 

시루산과 중티리 --시루산은 중티리의 주산이 된다

사실 지금 젊은이들의 고향에 대한 개념은 그렇게 애뜻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국의 모든 향우회가 사향길로 접어 드는 것이다

우리 유림 향우회도 이대로 끝나지 않도록 모임의 성격을 바꾸어야 하겠다

남촌의 서예작품

이럴테면 여행/음악/미술/노래/등등

독특한 테마를 만들어 단톡방을 만들어

함께 즐기는 단체로 변모 할 필요가 있다

우리 후손들이 매력을 느끼고 동참하도록

창밖의 산하가 새로 피어나는 여린 나뭇잎 연두색으로 너무 아름답다

아 봄날의 수채화 속으로 우리들의 버스가 빨려 들어 간다

우리들의 鄕愁(향수) 그 속으로 질주 한다 포근한 향수의 품속으로 깊숙이 빠져 든다

오늘 목적지 중부지방 보은 지도를 꺼내어 본다 속리산과 청주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재경 향우회가 생긴 사연을 떠올려 본다

6.25전쟁 직후 1956년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개발 바람을 타고

서울로 서울로 상경을 했다

당시 유행가의 가사처럼

한국의 모든 앵두나무 우물가 처녀총각들이 호미자루 내던지고

도망치듯 서울 바람이 불었다

그 당시 유림면 유평리 (버더리) 살던 우리 부모님들도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고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유행어를 따라

9살 아직 어린 내손을 붙잡고 버더리에서 제1호로 상경길에 올랐다

그때가 1958년 내나이 9살 동생 봉원이가 2살 강보에 쌓여 업혀 갔다

동네 분들은 일변 부럽기도 하고 일변 두렵기도 했던 표정으로

배웅해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행은

그 후 수십년 전국적으로 계속되어

결국 지금은 젊은이가 없는 고향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참혹하리 만치 생존경쟁이 처절한 낯선 서울하늘아래

가진자들의 권위주위 텃세 촌놈에 대한 무시와 멸시를 받고 서러워지면

고향이 그리워 남녁하늘을 향해 눈물짓게 되엇고

그래서 당시 고향노래가 수백곡이 나와 힛트를 쳤다 나는 겨우 9년동안 보아온 향수로

70년을 버텨낸 것이니 타관살이 하는 방랑자에게 고향이란 아련한 어머니 품속같은 것이다

80년대에 이르러 아래 위로 10년 향우들의 인맥을 두루 꿰고 있는 정재규/정재삼 형제와

몇몇 소수 향우들이 일어나 본 재경 유림 향우회가 發起(발기)되었다

매양 유림 산악회는 하루 산행을 하면서 평생을 꿈속에서만 그리고 살던 고향이야기를

同病相燐(동병상린)의 향우들을 만나 원없이 주절대면서 향우회가 급속히 발전 되어 나갔다 그래서 나는 향우회에만 나오면 술이 떡이 되어 가곤 하였다 뭐 다른 향우들도 대부분 그랬다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은 고향떠난 사람들의 寃力(원력=원한의 힘) 콩글리쉬로

heong-geulijeongsin-헝그리 정신이라고 단언한다 한 맺힌 사람의 성난 분노의 힘으로만

기적이 창출 되는 법이다 그 시대에 도시로 몰리는 형상은 세계대전을 겪은 지구촌인류

전체의 추세라 보아야 할 것이다

창밖의 봄풍경에 취하여 옆에 앉은 봉원아우와 간간이 옛 추억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밥//과일//심지어 막걸리 까지 돌려며 상춘버스는 막힘없이 달린다

09:40분 중티리 마을회관 도착

정재삼 고문의 환영 인사말과 오늘의 등산코스가 설명되는 동안

우리들의 버스는 등산이 시작되는 산아래 멈추어 섯다 등산은 어렵지 않다

처음은 조금 힘들어도 계속 내려 갈 것이라 했다 모두 안심하고 산으로 스며들었다

등산길 바닥이 턱에 닿을 듯 경사가 심한데 낙엽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그래도 이 산 정상에 가면 능선을 타고 내려

중티리에 도착 할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올랐다

누군가 늙은 필자의 뒷모습을 잘도 잡았다 너무 멀리 와버린 나그네가 처음 출발했던 유림면 버더리를 찾고 있는듯 하다

계속되는 오름으로 다리가 풀려 잘오르지 못하니 자연 대열이 좁아진다

수많은 고개를 넘고 넘어

꿈에도 그리던 중티고개를 찾고야 말았다 

두릅과 시골내음 풍기는 야채안주는 정재삼 가족이 준비한 정성이다

우리 모두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길고 긴 산행 끝에 받은 밥상은 꿀 맛입니다

정겨운 건배후에 반주로 겯들이는 술 한잔 약중에 약이다

잘 가꾼 정원 화단은 보는이의 마음까지 포근하고 안정되어 집니다 

결국 우리는 다알리아 화창한 시골집에서 알뜰한 진수 성찬을 받았다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가족을 위해 맛좋은 음식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중태리의 주변 산세는 수려했고 산을 넘고 재를 건너온 물과 공기는

맑고 참신 그 자체입니다

구티재와 탁주봉

구티재와 탁주봉

모두가 잊지못할 추억을 두고 갑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향우 정재삼 가정에 행운을 빌어주고 가니

억대 고사치성을 올린 효과를 봅니다 

모든 향우님들 오늘 행사를 계기로 남은 여생이 더욱 강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