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성공한 사람들

맞짱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2. 20. 23:09

다시보는 작품들

 

맞짱 

글 / 고쿠락 김문억

 

내가 이번에 맞짱을 뜨고 나서 돌이켜 보니 내 일생에서 두 번 째였다..

 직장 퇴직자들과 술 한 잔을 치고 있으려니 황급한 마누라님의 전화가 귀청을 쾅쾅 때렸다.

우리 동네 돌 아이가 또 행패를 부린 것이다

급전으로 타고 오는 목소리로 보아 불가피 오늘 저녁에는 그 동안 쌓였던 일을 함께 결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맞짱을 한 번 떠야 할 피치 못 할 판국 이어서 택시를 타고 달려 갔다.

 

다급한 마음에 동네에 이르자마자 그 뚱뚱이 하마와 한바탕 뛰고 났는데 일 라운드를 뛰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황급하게 달려 온데다가 술도 한 잔 했겠다. 준비 운동도 없이 실전으로 들어가고 보니 헐떡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에 쌓인 것이 있어서 어쩌구 저쩌구 따질일도 없는 입장이었다. 나에게 몇 대 맞고 난 하마가 엿장수들을 데리러 간 사이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몇 분 사이에 후다닥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 짐작으로는 하마가 장터에서 소리 한가락을 가르치고 있는 듯 했다. 엿장수 몇 명이 하마의 뒤를 따라왔다. 순간 선공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밀릴 것이란 생각에 기다리지 않고 달려가서 한 바탕 붙었다.

그런 전술은 평소에 스포츠 경기를 즐겨 보던 것이 많이 주효했다.  요즈음 K-1 경기를 보면 밥 셉 이라고 하는 뚱돼지가 있는데 체격도 대단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선제 공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하마는 나보다 대 여섯 살쯤 아래지만 언제나 그 자 정도는 무엇으로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평소에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자가 말썽을 부릴 때마다 어떻게든지 동네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인내심으로 타 이르면서 그 동안 참아왔던 것이다.

 

넘어진 놈을 발길로 몇 번 더 후리는 순간 싸움을 말리던 엿장수가 다시 내게 달려 들었다

 

“민,형사상  책임 추궁 없이 맞짱 한 번 뜰래?”

내게 어찌하여 이런 용기가 충천했던고 기왕에 내친김이었고 깔아 놓은 멍석이었다

가을 옥수수 대궁처럼 대중없이 키가 껑정한 말라깽이와 맞닥뜨리는 순간 자신감이 생겼다.

수습할 방책도 없이 이거 일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 아님감? 하는 걱정이 은근히 들었지만

의외로 키다리가 주춤거렸다. 혹시 이 패거리들이 한꺼번에 덤비면 ?

 

 평소에 내가 뜻하지 않은 어떤 위기에 처한자면? 하는 상상으로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가 했던

연기를 모방하겠다고 마음 다진 일이 있었다.

달려드는 깡패들을 맞으면서 맥주병 두 개를 양 손에 꽉 움켜 쥐고 쾅!

 

맥주병이 와장창 깨지면서 달려들던 졸개들이 혼비백산 하던 그 장면은 정말 두고두고 멋 있었다

맨발의 청춘은 커녕 서리 내린 백발에다가 속 알머리 없이 번들번들 대머리가 다 되었지만

내게 아직도 그럴만한 기백이 남아 있다니....

하수구에 머리를 박고 누워서 욕지거릴 퍼붓던 하마가 경찰차가 오니까 죽은 척 하고

 반응이 없는 바람에 달려들던 놈들은 모두 뒤로 물러난 입장이었다.

 

“엉부리지 말고 일어나 이 섀꺄, 아녀자 얼굴에 침뱉고 때릴 때는 언제고 임마 이제와서 엉부려?”

궁둥짝을 한 번 더 걷어찼지만 하마는 계속 죽은 척 내숭을 떨고 있었다.

하마가 죽었다고 소문이 나자 그제서야 놈의 마누라가 달려 나왔다.

아무리 싸워도 내다보지 않는 부부지간 이란 것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마가 진짜 죽는 줄 알고 우리 집 마누라님마저 안절부절 못했다

 

그렇게 따진다면 권투선수는 다운될 때마다 죽어야 한다

경찰이 와서 깨워도 죽은척하고 있더니 마누라가 와서 흔드니까 슬그머니 일어난다. 

파출소에 끌려와서는 더욱 날뛰는 것이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야?

예술인요.

예술도 여러가지가 있잖아

국악인요

 

그럼 당신은 뭐 하는 사람야

시인요

이 사람들 유명한 사람끼리 붙었군.

 

그 자가 너스레를 피는 바람에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나도 얼떨결에 그 자에게 지지않겠다는

경쟁심만 생각한 나머지 시인이란 말이 불쑥 튀어 나오고 말았다. 이를 어쩐담! 지금도 생각할수록 웃지 못할 코미디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최소한의 양심마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마는 환갑 집에 다니면서 노래를 불러 주고 먹고 사는 입장이었다. 국악인은 국악인이다.

동네에서 평소에 너무 티를 내려고 한다. 누가 안 알아 준다는 것이다.

 

우리 마누라님이 그냥 훈방 조치 하자는 바람에 그 날은 그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시비를 건 쪽은 그 쪽이고 신고를 한 쪽은 우리 쪽이고 얻어터진 쪽은 그 쪽이면서 피해자는

또 우리 쪽이었다 상황 전개가 그렇게 돌아갔고 파출소에 가서도 그렇게 돌아갔다.

.

돌아오는 길에 눈이 아프다.

치고 받는 중에 나도 한 방 맞은 것이다. 

하필 지난 봄에 수술을 했던 오른 쪽 눈을 정통으로 한 방 맞은 것이다.

싸움을 하고 나서야 아픈 것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한 탕 치르고 나니 속이 아주 후련한 것이 뼈다귀 매콤한 해장국에

독한 술 한 잔 한 듯 기분은 째지게 괜찮았다. 그나 저나 눈이 자꾸만 욱신거렸다. 

 

옷은 다 찢어지고 차림새가 불량배였다. 할 수 없이 택시로 의정부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해 보니

맞장을 뛴다는 일이 이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갑 나이도 문제지만 갑자기 준비 운동도 없이

몸을 쓴다는 일이 부상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비록 그 놈을 묵사발 만들어 놓았지만 (정말이다, 이거는) 나 역시 큰 손해였다. 멍들고 아픈 것이야 적당한 시간이 가면 치유될 수도 있겠지만

한 밤을 지새우면서 생각하니 마음에 준 상처가 너무 크다

 

내가 처음으로 맞짱을 뜬 것은 군에 입대하기 전 한창 팔팔 하던 때다.  

그 놈이 뭐라고 따졌을 때 그냥 대화로 했어도 될만한 것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 깐 놈이 감히 나에게 따진다는 자체가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 나로서는 대뜸 결투를 신청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허송세월 하고 있다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내 청소년 시절이 그렇게 흘러 갔고. 그것이 나중에는 직장 생활마저 그런 인식으로 했기 때문에

나의 청춘은 정말 빵점 이었다. .

 

“야, 임마. 저녁 먹고 오스카 극장 뒤 통나무 야적장으로 나와”

했던 것이다.

어두컴컴한 청량리 뒷마당에서 놈과 맞짱을 떴다.

당시엔 김 일의 박치기와 천규덕의 양 발 치기가 장안의 인기였다. 나는 프로 레슬링에서 상대방의 멱살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 쥐고 앞으로 당기면서 두 발을 상대방 거시기 있는 곳을 차면서

상대방을 뒤로 집어 던지던 모습이 어찌나 통쾌 하던지 그 연기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서로 치고 받으며 공방을 벌렸지만 순간적으로 화면으로만 보아왔던 집어 던지기를

시도 해 보기로 맘 먹었다

내내 아웃 복싱을 하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 쥐었다.

 

얼래?

 

뒤로 집어 던지기 위해 내가 먼저 드러눕는데 이거는 그게 아니고 그대로 그냥 내가 바닥에 깔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얼마나 발길질 주먹질에 묵사발이 되도록 얻어터졌는지 일단 위기를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에 겨우 일어나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완패였다.

 

결투를 신청했던 기세는 엉망 진창이 되고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수모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던 세월은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스럽다.

소 싸움에서도 꼬리를 내리고 꽁무니를 돌리면 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도 천규덕처럼 멱살을 당기고 아랫배를 걷어 차며 집어 던지면 나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 놈이 가만이 있어주질 않았다. .

 

석관동에서 그렇게 맞짱을 뜨고 난 후 다음 날 

서벌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내 눈은 점점 얼룩배기 금빛 게으른 황소처럼

시커멓게 멍들기 시작했다

시조 시인 협회葬으로 결정은 되었지만 제자 된 입장에서 최중태 시인과 함께 장례식을 준비했다.

조문객들마다 눈에 대한 궁금증으로 질문을 하는데 거짓말 하기 싫은 나로서는 맞짱 떴다는 사실을

실토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이는 호기심있게 다음 질문을 했지만 어떤이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입술만

붙었다가 떨어졌다. 발인 하는 날 영결식이 있었다. 

 

조사를 하는 사람은 한 * 도 안 보인다고 욕을 했고,

격려사는 유정천리로 장황하게 왔다 갔다 하고

조시 낭송을 하던 하월곡은 징징 울다가 그냥 들어가고

눈두덩이 시커먼 쌈 꾼은 진행을 하느라고 앞에서 서성거렸으니....

 

어쩌면 우리 선생님 영혼이 빙긋이 웃고 있었을지도 몰라.

하는 일이 우리들 살아 만날 때와 흡사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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