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할 때였습니다.
독서하는 틈틈이 당시 유행하던 6줄짜리 육현금(六絃琴)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막역한 동료였던 권오복(權五福)이 찾아왔다가 보고는 물었습니다.
“자네는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육현금을 배우는가?”
보통 유가(儒家)에서 정통으로 인정하던 가야금은 5줄짜리 오현금(五絃琴), 7줄짜리 칠현금(七絃琴)이었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도 했습니다.
그러자 탁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즘 음악도 또한 옛날의 음악에서 유래한 것이네. 소강절[邵康節 : 송(宋)나라의 철학자 소옹(邵雍)]도 요즘 사람은 요즘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같은 생각일세.”
그리고 집에 돌아가 오현금의 뒷면에 위와 같은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전통에 담긴 훌륭한 정신은 계승하겠지만, 형식적인 면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외형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효도는 뒷전이면서, 정작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유난히 소중히 합니다. 불편함을 해소한 개량품이 있는데도 굳이 옛것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물론 형식이나마 보존할 수 있다면 다행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남의 이목이나 끌고, 대단한 내공이라도 지닌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진정한 전통은 현대에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정신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미래에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전통문화는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과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