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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사랑하는 뜻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3. 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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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사랑하는 뜻

2009. 03. 09. (월)

보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공간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다르지 않다. 한 달음에 대자연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가? 자연의 상징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그 한 방법이요, 산의 형상을 띤 기이한 바위를 정원에 두는 것이 그 구체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다음은 괴석에 벽(癖)이 있던 정동유(鄭東愈)의 글이다.

내가 평상시 취미로 즐기는 것을 따져보면 괴상하게도 속된 것이 많다. 먹거리 중에는 엿이나 생선과 육류를 좋아하고, 육류 중에도 또한 기름진 것을 편식한다. 의관은 반드시 유행에 맞는 것을 입는다. 꽃은 붉고 농염한 것을 좋아하고, 그림은 완상할 만한 것이라야 한다. 음악은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속악(俗樂)이라도 종일 참고 듣는다. 문장은 관각(館閣)의 화려한 것을 보기 좋아하고, 시는 유우석(劉禹錫)과 백거이(白居易)를 배울지언정 가도(賈島)나 노동(盧仝)은 좋아하지 않는다. 글씨는 필진도(筆陣圖)나 초결(草訣)_1) 등의 서체로 마구잡이로 벽에다 쓰지만 그냥 둘 뿐 굳이 없애지 않는다.

나날이 쓰는 물건이 속된 것을 두루 사용하여 이러한 것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소나무는 늠름하고 기굴한 것을 좋아하며, 바위는 괴이하게 생긴 것을 좋아하여 무릇 사납게 깎이고 구불구불 서리며 우묵하게 입을 벌리고 영롱한 빛을 내는 것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음이 없었다. 어쩌다 이런 것을 만나면 만지작거리면서 좋아하여 침식을 잊을 지경이었다. 늠름하고 기굴한 소나무나 깎이고 구불구불 서리며 우묵하게 입을 벌리고 영롱한 빛을 내는 바위는, 이른바 기이하면서도 속된 것에 맞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 성품의 벽이 이 두 가지 사물과 우연히 어우러졌을 뿐, 그 나머지 여러 가지 일은 모두 벽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괴석이 비록 종종 산에서 나기는 하지만 대부분 서울까지 가져오기에 멀고 내가 힘이 없으니 이를 어찌 가질 수가 있었겠는가? 을사년(1785) 봄 북관(北關)에서 돌아오는 객이 괴석 하나를 나에게 보내어주어, 비로소 나도 괴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철령까지 이미 500리가 되는데, 객이 철령을 넘어 다시 얼마나 더 가서 고생스럽게 이 무거운 것을 가지고 와서 남의 벽을 채워주었으니, 객 또한 일 꾸미기를 좋아하는 이라 하겠다.

바위는 길이가 1척 7촌이고 곁에 뿔이 많이 달려 있는데, 크게는 세 모서리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3척이다. 석질이 강하여 그 갈라진 맥과 나누어진 등성이가 비록 실처럼 가늘기는 하지만 흐릿하지 않고 또렷하였다. 자세히 보면 봉우리나 동천(洞天), 계곡의 모습이 모두 하나하나 지세와 맞아떨어진다. 한 가운데 초목이 무성한 것처럼 된 곳이 있어 절이나 도관을 숨겨놓을 만하다. 깊은 골짜기가 비뚤비뚤하다가 갑자기 끊어져 폭포처럼 된 것도 있고, 또 그러한 곳마다 개울과 오솔길이 있어 이를 따라 왕래할 수 있을 것 같다. 천태산(天台山)에서 길이 막혔다고 한탄할 일_2)은 없을 듯하다. 여러 종류의 산에 있는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다.

전체 몸뚱이는 짙은 푸른색으로 되어 다른 빛깔은 전혀 없다. 어쩌다 정기가 맺혀 수정과 같은 밝은 구슬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대개 이름난 화가가 그린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실재한 세상의 산에는 이러한 형상과 빛깔이 없다. 이를 자리에 두면 푸른빛이 사람을 비출 듯하다. 화가들은 당나라 이사훈(李思訓)_3)이 산을 그릴 때 짙은 푸른빛을 채색하기를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내가 이사훈의 그림을 본 적이 없지만, 상상해볼 때 바로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그 그림과 비슷할 뿐이리라.

우리 집 동산에 예전부터 오래된 반송이 한 그루 있었는데 용이 할퀴고 범이 뛰어오르는 것 같다. 임진왜란을 겪고서도 탈이 없어 세상 사람들이 기이하다 하였으니, 실로 이 소나무는 우리 동산에서 최고였다. 괴석을 구한 다음에 나의 벽이 제법 채워졌다고 하겠고, 소나무도 이웃이 외롭지 않게 되었으니, 소나무도 또한 기뻐할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객의 말로는 바위가 나온 산에는 크기가 한 길, 혹은 몇 길을 넘는 것도 있고 푸른빛이 눈을 쏠 듯하다고 한다. 내가 이 말을 듣고는 기뻐 부러웠지만 말을 몰아 천리 길을 가서 미불처럼 바위에 절을 한 번 할 수 없었다._4) 이 때문에 끝내 속티에 쌓인 것을 벗어날 수 없구나. 이를 기록하여 겸하여 부끄러운 뜻을 적는다.    

     ▲ 석죽도의 일부분_신위(申偉)_개인소장

- 정동유(鄭東愈),〈괴석기(怪石記)〉,《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

1) 필진도(筆陣圖)와 초결(草訣)은 왕희지(王羲之)의 법첩(法帖)으로 알려져 있는데 글씨를 익히는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2) 후한 때 유신(劉晨)과 완조(阮肇)가 천태산에 약을 캐러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두 여인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반년을 지낸 후 나오니 7대가 지났다는 고사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보인다.
3) 당(唐) 종실(宗室)의 인물로,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로 유명하였다.
4) 북송(北宋)의 서화가(書家) 미불의 별호이다. 매우 기이하게 생긴 거석(巨石)을 보고는 크게 기뻐한 나머지 의관을 갖춰 절을 하면서 형(兄)이라고 불렀다는 ‘미전배석(米顚拜石)’의 고사가 전한다.

[해설]

정동유(鄭東愈, 17441808)는 조선 후기 뛰어난 학자다. 그의 저술 《주영편(晝永篇)》이 일찍부터 알려졌고, 특히 그 안에 훈민정음과 관련한 중요한 논문이 실려 있어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의 문집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만 있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였다.

18세기 이래 문인들은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는 벽(癖)이 크게 유행하였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배척하던 풍조가 사라지고, 오히려 떳떳하게 자신의 벽을 드러내는 세상이 되었다. 정동유는 자신이 맛난 음식과 유행에 맞는 옷을 좋아하는 속된 취향을 지녔다고 자인하면서도, 오직 괴석과 소나무를 사랑하는 고상한 취향을 지녔다고 자부하였다.  

조선의 문인들이 정원에 괴석을 둔 것은 심오한 조경 방식의 하나였다. 집안에 대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의 하나로, 이른 시기부터 석가산(石假山)이 우리나라에 유행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태호석(太湖石)을 중국에서 수입하기까지 하였다. 또 조선 전기 석가산이 못 안에 섬의 형태로 된 것이 일반적이었음에 비하여, 18세기 무렵부터 화분에 올려 정원이나 방안에 많이 두고, 이를 완상하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대자연을 즐기는 일이 유행하게 되었다.  

정동유 역시 그러하였다. 평소 괴석에 벽이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하지 못하다가, 함경도 지역에서 난 괴석을 구하여 그 기쁨에 이 글을 지었다. ‘속(俗)’을 글 전체의 눈으로 삼아, 자신의 모은 취향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괴석을 가짐으로써 ‘속’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방식으로 글을 끌어나갔다.    

이 집안은 대대로 남산 아래 살아 회동(會洞) 정씨(鄭氏)의 일컬음을 받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죽지 않은 소나무 아래 이 괴석을 두어 돌과 소나무의 덕이 서로 어우러지게 하였다. 《논어(論語)》〈이인(里仁)〉에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 하였으니, 소나무가 덕이 있어 돌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멋을 부린 것도 이 글을 읽는 재미의 하나다.    

글쓴이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저서(역서)
- 해동강서시파연구, 태학사, 1995.
-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 浮休子談論, 홍익출판사, 2002.
- 조선의 문화공간(1-4), 휴머니스트, 2006.
- 우리 한시를 읽는다, 돌베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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