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지령이 탕을 먹지않는 이유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3. 24. 22:32

http://www.ozmailer.com

지렁이 탕을 먹지 않

2009. 03. 23. (월)

잊혀져가는 옛사람의 지혜가 한 둘이 아니겠지만,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남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인간의 처지를 생각하여 동물의 곤란함을 생각하는 마음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매우 그리운 것이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인간의 본성을 반성한 채제공(蔡濟恭)의 다음 글은 오늘날 읽더라도 수준 높은 생태주의적 인식을 보여준다.

는 뜻

2009. 03. 23. (월)

잊혀져가는 옛사람의 지혜가 한 둘이 아니겠지만,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남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인간의 처지를 생각하여 동물의 곤란함을 생각하는 마음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매우 그리운 것이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인간의 본성을 반성한 채제공(蔡濟恭)의 다음 글은 오늘날 읽더라도 수준 높은 생태주의적 인식을 보여준다.

제공(濟恭)은 아뢰오. 비록 병으로 누워 있는 중이지만, 어떤 이가 성안에서부터 왔기에 대감의 기거에 대해 물어보고 자세하게 알게 되니 배가 불러진 듯 마음이 든든해졌소. 자세하게 알지 못하였더라면 굶은 듯 배가 고팠겠지요. 내 마음으로 대감의 마음이 어떤지를 헤아릴 수 있소. 얼마 전 정중하게 편지 한 통을 보내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캐물어주시니, 그 말씀이 진지하고 그 정이 듬뿍 담겨 있었소. 이는 대감과 나에게 있어 정말 늘 그러한 것이겠지요. 요즘 속담으로 말하자면 기이하고 희한한 일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요. 보아하니 이리저리 다니느라 허둥댄다니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나는 한 가지 병이 수십 일을 끌어 의원도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여 왔다가는 바로 돌아갈 뿐, 내 마음 속을 시원하게 휘저어 놓기에는 부족하였소. 저 하늘의 운명을 즐긴 이가 하필 팽택령(彭澤令) 도연명(陶淵明) 한 사람에 그칠 수 있겠소. 적어 보낸 약방문을 보니, 대감이 나를 사랑하여 살리겠다는 뜻을 볼 수 있었소. 대감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런 것을 받을 수 있겠소? 비록 그렇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마음에 슬픔이 없을 수 없소이다.  

살기를 기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지렁이나 나나 한가지라오. 저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흙탕물을 마시니 일찍이 저와 다툴 바가 없고, 뱀의 이빨도 없고 또 모기 주둥이도 없으니 일찍이 나에게 독이 된 적이 없다오. 지금 나의 우연한 병으로 인하여 저 허다한 생명을 죽인 다음 불로 익히고 녹여서 탕으로 만들어 가지고 복용하여 즉시 효험이 있다면, 효험을 얻은 사람은 다행이겠지만 효험을 나게 한 지렁이로서는 또한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소?

내가 늘 말하거니와, 불가(佛家)에서 평생 초식을 하고 차마 하나의 생물도 해치지 않는 것은, 비록 우리 유학에서의 치우치지 않고 지극히 바른 성인의 법은 아니지만,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며 똑같이 길러줌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자비(慈悲)의 논의도 또한 충분히 중생으로 하여금 동감하게 할 듯도 하오.

세상사를 두루 겪고 나서 가만히 요즘 사람들을 살펴보았소.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자기가 나아가는 데 이익이 될 것 같으면 곧바로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더라도 난색을 표하지 않고 도리어 뜻대로 되었다고 여기는 자들이 넘쳐나니, 모두가 다 이러하오. 그러나 이러한 무리들은 이익만 알았지 의리를 모르는 자이니, 어찌 알리오? 미래에 자기보다 지혜와 힘이 더 나은 자가 있어 자신을 죽여 그가 지금 한 것처럼 하려 든다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법이니 그 화가 무궁할 것이라, 이 또한 슬프지 않겠소?

지금 지렁이를 탕으로 만드는 처방은 비록 크고 작은 차이가 있어 같지 않음이 있을지라도 남을 해쳐 나를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는 그 마음이 똑같소. 나는 차마 이 일을 할 수 없소. 두보(杜甫)의 시에서 “집안의 닭이 벌레와 개미를 잡아먹는 것은 싫어하지만, 도리어 닭이 팔려 삶아 먹히는 것은 알지 못하네.”라는 시가 참으로 좋소. 이것은 어진 사람이나 군자의 말이라오. 두보가 아니라면 내가 누구에게 귀의하겠소. 정신이 어지러워 글을 쓰기 어려워 길게 쓰지 못하오.        

◁◀  체제공초상화(時服本)_이명기_보물1477-1호_수원선경도서관 소장

- 채제공(蔡濟恭),〈참판 이헌경에게 답하는 글(答李參判獻慶書)〉,《번암집(樊巖集)》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236집 《번암집(樊巖集)》36권 서(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문 바로가기]

[해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자가 백규(伯規), 호가 번암(樊巖)으로 18세기를 대표하는 관각의 문인이다. 이 글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1789년 무렵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채제공은 이 해 9월 좌의정에 올라 수원의 현륭원(顯隆園) 공사를 지휘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10월에 파면되어 물러나 있었다.

이헌경(李獻慶, 1719~1791)은 같은 남인으로 채제공의 절친한 벗이었는데 이때 호조참판으로 있었다. 서로 만나지 못한 지 겨우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을 터인데도, 소식이 그리워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배가 고팠다. 그러다 소식을 듣고 나니 배가 불룩해진다고 하였으니 일흔이 넘은 두 노인의 농담에서 평생의 우정을 짐작하게 한다.

채제공이 병이 들어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이헌경은 수소문을 하여 지렁이탕이 좋다는 말을 듣고서 벗에게 이를 조제하여 먹도록 권유하였다. 채제공은 그 뜻을 아름답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무고한 다른 생명을 해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사람이나 동물이 모두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한다는 말은 주자(朱子)가 “추위와 더위를 알고, 굶주리고 배부른 것을 인식하며, 삶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익을 따르고 위험을 피하는 것 등은 사람과 만물이 한 가지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채제공은 여기에 다시 불교의 자비를 끌어들였는데 아마도 이익(李瀷)의 글을 읽은 듯하다. 이익은 “백성은 나의 동포요, 동물은 나의 동류다. 그러나 초목은 지각이 없으니, 피와 살이 있는 동물과 차이가 있어 그것을 취하여 먹고 살아도 좋다. 그러나 금수가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과 정이 한가지니, 또 어찌 차마 그에게 상해를 가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해치는 동물은 이치로 보아 잡아 죽이는 것이 마땅하고, 사람에게 사육이 되는 것은 곧 나를 통하여 성장을 하므로 그래도 생명을 맡길 수도 있겠지만, 산중이나 물속에 절로 나서 절로 살아가는 것조차 모두 사냥꾼과 어부의 독수를 입고 있으니 또한 무슨 까닭인가? 어떤 사람이 ‘동물이 사람을 위하여 생겨났으므로 사람에게 잡아먹힌다.’고 하자, 정자(程子)가 이 말을 듣고 ‘이가 사람을 무는데 사람은 이를 위하여 태어났는가?’ 하였으니 변론한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가 서양 사람에게 물어 ‘만약 동물이 태어난 것이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저 벌레가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였더니, ‘새가 벌레를 잡아먹고 살이 찌면 사람이 그 새를 잡아먹게 되지. 그러니 저것은 곧 사람을 위해 태어난 것이지.’라 답하였다. 그 말 또한 궤변이다. 매번 불가에서 말하는 자비라는 한 가지 일을 생각해보니 아마도 타당할 듯하다.”라 하였다.

생태계 사슬의 제일 위에 있는 것이 사람이므로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간중심주의가 서양에서 등장하였다. 이익은 주자가 말한 사람과 동물의 정이 동일하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불교의 자비(慈悲)까지 끌어들여 동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논리를 부정하였다. 채제공은 남인의 선배 이익의 이 논리를 끌어들여 약자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개진하였다. 여기에 두보의 시를 통하여 닭과 벌레와 개미를 다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것을 강조하여 운치를 더하였다.

글쓴이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저서(역서)
- 해동강서시파연구, 태학사, 1995.
-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 浮休子談論, 홍익출판사, 2002.
- 조선의 문화공간(1-4), 휴머니스트, 2006

 

 

 

악성 위장병 고치기

클릭->http://cafe.daum.net/skachstj  

010-5775 5091

 

'놀라운 공부 > 옛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수를 알고 지켜야  (0) 2009.04.02
홀로일때 삼가하라  (0) 2009.04.01
소보다 귀한뜻  (0) 2009.03.20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란  (0) 2009.03.20
남을 위한 일  (0)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