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대륙경영[1]
(국회청문회 자료 임승국 선생)
□ 중국 정사인 25사 기록마저도 부인한다면 차라리 역사를 논하지 말자
나의 사학(史學)은 중국의 정사(正史)인 [25사]를 토대로 하여 성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도하는 학회는 <한국정사학회>입니다. 또한 백제를 규명하는데 있어 제가 동원한 사료 역시 [25사]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중국의 정사인 [25사]는"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진서""송서""양서"......등등 이렇게 해서 명나라의 역사책인 "명사"까지 25개 왕조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25사] 가운데 [백제전]이라고 하는 기록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사서(史書)는 사기, 전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다음의 "송서"입니다. 즉 [25사]중 6번째입니다. 그 다음에 "양서, 남제서, 북제서, 주서...." 이렇게 해서 "명나라 역사"까지 이것이 [25사]의 체계인데 우선 <송서>의 기록부터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송서, 양서"의 기록은 같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지금 저는 정사(正史)의 기록을 가지고 얘기하지 결코 야사(野史)나 비정규사료를 들지 않겠어요.
만일에 어떤 분들이 중국역사의 기록도 부인한다면 학문하지 말자는 얘기나 마찬가지예요.
1. 중국 정사(正史) 송서(宋書)에는 <백제가 하북성 유역에 있다>고 하였다(유성과 북평지간 : 진평이군 점유)
송서의 백제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어요.
백제자 후점강대 겸제소국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 진세 구려기략유요동 백제전거유요서진평이군의 금유성북평지간 자치백제군(송서 백제전)
百濟者 後漸强大 兼諸小國 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 晋世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今柳城北平之間 自治百濟郡
제가 이렇게 원전(原典)을 읽어 봤자 잘 이해하지 못할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즉,
"백제라고 하는 나라는 후에 점정 강하고 커져서 여러 작은 나라를 병합하고 그 나라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 때 (3세기 중엽)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의 2군을 점령하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이다"
[참고]
유성과 북평사이의 진평 2군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 북경의 서쪽과 서남방면 일대(북평)에서 황하 남부 鄭州에서 산동방면(유성)에 이르는 땅이다. 어찌하였던 하북성 유역이다.
여기서 <고구려>를 <구려>라고 적은 것을 좀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나 이는 중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필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려>와 <고구려>를 구별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큰 잘못이에요. [같은 나라]라는 말입니다. "구려(句麗)"에는 "고(高)"자를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왜 안 썼는가 하면 중국 사필(史筆)처럼 오만한 필법(筆法)은 없습니다.
"고"자가 높을 "고高"자이기 때문에 안 쓴 것입니다. 이는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왕망>이란 자가 한(漢)을 멸망시키고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그는 주변에 있는 나라이름 산의 이름 지명들을 멋대로 고쳤습니다.
<고구려>라는 나라의 이름을 뭐라고 고쳤는지 아십니까? "고"자가 보기 싫다 하여 "하(下)"자로 고쳤어요. 그래서 <하구려>라고 불렀어요. 중국인들의 심뽀를 이만하면 알 것입니다
2. 중국 사람들 역사기록의 원칙 3가지)
중국 사필(史筆)에는 세 가지 뚜렷한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 중국을 위해 중국의 수치를 숨기고
둘째 긍화하이누이적(矜華夏而陋夷狄) - 중국을 높이고 외국을 깎아내리며
셋째 상외략외(詳內略外) - 중국의 역사는 상세하게 외국의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손(不遜)한 사필정신 밑에 역사를 적었으므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구려 재요동지동(本與句麗 在遼東之東)"이라고 "고"자 쓰지 않고 "구려"라 한 것입니다.
3. 요동(遼東)은 만리장성 동쪽
먼저 번에 <갈석>의 사료를 말씀드리면서 [요동遼東의 개념]을 말씀 드렸는데 여기서는 알기 쉽게 만리장성의 동쪽을 우선 <요동遼東>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위 글의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이라는 대목의 <요동遼東>도 현재의 <요동>이 아니고 저 상고시대의 <요동>입니다.
아마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보고 [백제의 위치]를 적으라고 한다면 어김없이 "백제여신라재반도지서남지의 "百濟與新羅在半島之西南地矣"
라고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송서 백제전>은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 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 이라고 적었다 이 말입니다. 이어 <송서 백제전>을 계속해서 해석해보겠습니다.
"진나라 때 (3세기 중엽)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의 2군을 점령하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다"
위에서 말하는 진(晋)나라는 265년에 건국합니다. 그러므로 AD 3세기경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했다는 이야기이지요. 아울러 위의 "백제전거유요서진평이군의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라는 말의 [요서․진평 2군]이라는 기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한 AD 3세기에 백제도 지금의 하북성 일대인 <요서와 진평>을 점령했다 했기 때문입니다. <요서>가 한국 땅이 아니고 중국 땅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요서>만이 아니라 <진평군>의 2군(郡) 땅을 점령했다고 정식으로 적었어요.
더욱이 "주(註)"에 뭐라고 적혔는가 하니 분명하게 "금유성북평지간 今柳城北平之間"이라고 했습니다. 버들 "류(柳)"자와 재 성(城)자! 아마 좀 낯선 지명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지도를 찾아보시면 황하 남쪽에 <유성>이 있습니다. 정확히 [하남성] 이지요
<북평>은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거예요. 오늘날 중국의 서울인 <북경>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사서(史書)에서 "유성과 북평사이" 바로 거기에 [요서군과 진평군]이 있었는데 "자치 백제군(自治百濟郡)"이라 했습니다. 즉, "백제가 백제군을 자치(自治)했다"고 한 것입니다.
□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정사(正史)의 기록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국사학계(國史學系)의 참담한 현실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언급한 것들은 정사(正史)의 기록이요. 그것도 동양정사(東洋正史)의 기록입니다. 헌데 나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많이 있지만 여전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어요.
뭔지 아시겠습니까? 이 글은 피해자인 중국 측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국사당국(國史當局)은 어째서 이 기록을 못 본 체 하십니까? 기록 그대로 이 무렵의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백제에게 자기의 땅을 뺏기고 주권을 유린당하고 피해를 입은 나라입니다.
저들의 중국사 속에 백제가 요서 진평의 두 군을 점령했다 自治百濟郡을 했다고 적었는데 왜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외면합니까?
여기다가 살을 붙이고 분칠을 하고 아름답게 꾸며서 적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플러스 알파"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이너스 알파"는 안 되지요.
1. 사료(史料-정사正史의 기록)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사료>라고 하는 것은 역사사실이라고 할 때 당연하게 협상의 대상이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료를 있는 그대로 우리 국사교과서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좀 이 수수께끼를 좀 풀어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이 자료를 [단편적인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지요. 이러한 [백제의 대륙경영 기록]은 <송서> 뿐만 아니라 [25사]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송서> 한 군데만이 기록이 있는 것이라면 단편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송서, 양서, 북제사, 남제사, 주서........" 심지어 "만주원류고"까지 이러한 기록으로 꽉 찼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기록을 [왜 단편적인 기록]이라고 합니까? 또 왜 이것을 무시합니까? 전 무시하는 이유를 알아요. 이는 우리나라의 영광 및 주체적인 활동과 관계되는 기사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우리의 영광과 주체적인 활동상이 가득한 책만 골라 못된 책이라 배척하는 국사학계의 이상한 태도
그 증거로 어저께 <이용범> 교수는 한국의 뚜렷한 자긍심이 강조되고
주체적인 경영활동들이 뚜렷한 책! 예를 들면 <만주원류고>나 <요사지리지> 같은 책을 모조리 잘못된 책이라고 나무랐으니까요.
[덧글]
중국적 춘추필법(春秋筆法)이 가득 찬 다른 사서(史書)들을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 금과 옥조로 삼으면서 이런 책들을 실증주의에 어긋난다고 거꾸로 얼굴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한 현실을 말하려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25사] 가운데에서 "지리지"를 가지고 논할 때 가장 참고 할 것이 많은 "지리지"가 <요사지리지>인데 하필이면 이런 서적은 용케도 골라서 못된 책이라고 그러는 가 이 말입니다.
이걸 보면 마치 현대판 숭명(崇明) 사대주의자였던 삼학사(三學士) 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 같아요. 이런 일은 지난날 숭명(崇明)사대주의자들이 하는 짓이예요. 명(明)나라가 제일이고 명나라가 미워하는 나라는 청(靑)나라요 만주족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과거에 명나라가 미워했으니까 청나라에서 쓴 책이나 만주족이 쓴 책(요사도 마찬가지입니다)은 모조리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것이 숭명 사대주의자들이 아니고 뭡니까? 그래서 현대판 <삼학사>들이 다시 나온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그들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사람들 말입니다.
지금 제가 소개한 [백제사료]는 <절대사료>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한테 읽어드리겠어요. <절대사료>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백제자 후점강대 겸제지국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 진세 구려기략유요서 백제전거유요서진평이군의 百濟者 後漸强大 兼諸小國 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 晋世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이 기록을 왜 외면합니까? 그토록 외면하는 이유가 어디 있어요? 뿐만 아닙니다. [1부 완完]
악성 위장병 고치기 클릭->http://cafe.daum.net/skachstj 010-5775 5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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