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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신혼 때 수자리 살러 갔던 사람이 병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쌀을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났단다. 고향을 묻다가 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고는 너무도 기가 막혀 부여잡고 통곡하다 못해 바위에 그 모습을 그려놓고 함께 자살하였다고 한다. 함경도 안변(安邊) 부근의 안현(鞍峴)에 얽힌 이 이야기는 조현기(趙顯期 1634~1685)의 《일봉집(一峰集)》에 전해온다.
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나 두보의 신혼별(新婚別), 병거행(兵車行) 등도 이러한 심사와 아픔을 노래한 것이고, 한중(韓中)의 시인들이 정부사(征婦詞)나 정부원(征婦怨)이라는 제목으로 읊은 시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만큼 사연이 기막히고 절통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력은 불상지기(不祥之器)라는 노자(老子)의 잠언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태평성세를 만나 작은 방이나마 발을 뻗고 누워 우주를 호흡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시의 생명은 결구에 있고 마지막 두 글자 복아(腹兒)가 시안(詩眼)인 셈이다. 복아는 제목의 정부(征婦)와 어울려, 읽는 이의 마음에 시린 물결을 일으킨다. 마지막 구절을 읽는 순간, 평면적으로 서술되던 시가 돌연 한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구조로 완성되어 함축적이고도 극적인 형식미를 준다. 끝 구절에서 송(送)의 대상과 귀(歸)의 의미가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 송의 대상은 아이[兒]로 보이고 귀는 한문의 문리로 볼 때 거(去)와 통하는 것으로 다만 글자의 중복과 평측 등을 고려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포은 정몽주와 청음 김상헌은 ‘절의(節義)’라는 면에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분의 초기 시를 보면 그 시정(詩情)이 너무도 곱고 청신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실제 인물이야 잘 가늠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시만 놓고 보면 참으로 다감하고 순수한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그러한 마음이 변혁과 야만의 시대를 당해 그 무엇으로도 꺾이지 않는 충절과 의리로 승화된 것은 아닐는지?
이 시는 2수로 된 연작시의 전편인데 뒤의 시에 ‘요동객(遼東客)’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수당(隋唐)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쓴 회고시의 일종으로 보인다. 김종직(金宗直)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 이 시를 수록하고 간단한 주석을 덧붙여 놓았고, 장지연(張志淵)은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전편만 실어 놓았다. 한편 민백순(閔百順 1711~1774)의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제목이 〈정부사(征婦詞)〉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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